소설리스트

리턴 서바이벌-3화 (3/176)

<3화>

확산이 빨랐다. 회귀 전에는 좀비들이 혼란을 가져오기까지 약 이틀 정도가 걸렸던 것으로 기억한다.

의문의 사망사고와 사망 판정을 받은 인간이 일어나 사람을 물어뜯었다는 뉴스가 뜨고 하루 이틀 정도 인터넷과 SNS가 뜨겁게 달궈졌었다.

‘이거 좀비 아포칼립스 아님?’

‘워킹데드!!’

‘혼란을 틈타 청와대 접수할 파티원 모집(1/999)’

등등의 시답잖은 글들이 네트워크를 도배하다가, 끔찍한 인증사진과 목격담들이 속속들이 올라오고서야 혼란이 시작되었다. 통신망이 두절된 사흘째부터는 본격적인 살육이 시작되었고.

다시 말해, 진원지가 분명하게 있었고 정부가 조금만 현명하게 대처했으면 사태를 막을 기회가 있었다는 이야기다. 헌데 지금 상황은 달랐다.

이번엔 예고 없이 빠르게 사태가 퍼져나갔다. 전조도, 뉴스 기사도 없었다. 진원지가 한두 곳이 아닌 모양이었다.

그야말로 갑작스럽게, 이 정도로 빠르게.

무엇이 달라진 걸까. 왜 달라진 걸까.

예상할 수 있는 것은 자신이 회귀한 게 연관이 있을 것이란 사실이다.

요한이 삼성 전자기기 대리점 진열장에 있는 대형 TV로 시선을 돌렸다.

TV에서는 긴급속보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뉴스 속보입니다. 2016년 12월 16일 서울, 부산, 대구, 광주 등 국가 전역에서 원인을 알 수 없는 질병이 창궐하여 감염자가 속출하고 있다는 소식입니다. 감염 증상으로는 감염자가 이성을 상실하고, 난폭성이 극대화되며, 주변의 사람을 공격하거나 물어뜯는 등등의 위험한 반응을 보인다고 알려졌습니다. 청와대에서는 현 상황을 전시, 사변 또는 이에 준하는 국가 비상사태로 규정하고 국가 긴급명령 선포를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

SNS도 시끄러웠다. 거의 회귀 전 사흘째 되는 날의 반응과 유사한 혼란이다.

‘지체할 수 없겠어.’

요한이 발걸음을 돌리려는 찰나 누군가 요한에게 다가왔다.

휙, 곧바로 뒤를 돌며 나이프를 꺼내는 요한. 잘 벼려진 날붙이가 목표를 향해 정확하게 쇄도했다.

나이프가 접근자의 동공을 찌르기 직전,

“자, 잠깐만요!”

사람이었다. 나이프가 허공에서 멈췄다.

요한도 익히 아는 인물이었다. 경성실업 시설팀 여사원 2년 차 임정미.

“정미 씨?”

그녀는 달려왔는지 무릎에 두 손을 올리고 숨을 헐떡거렸다.

“무슨 일이시죠?”

“자, 잠시만.”

요한의 눈이 빠르게 그녀의 전신을 훑었다.

신발과 하의에 붉은 핏자국이 있었다. 한눈에 보기에도 그녀의 상처는 아니었다.

자신이 나가고 나서 주점은 아비규환이 되었을 테고, 이만하면 그녀는 재빨리 그곳을 빠져나온 셈이다.

‘나름대로 위기를 벗어나는 판단력이 있는 여자.’

그녀에 대한 요한의 평가는 제법 긍정적이었다.

그녀가 손을 들어 요한의 팔뚝을 붙잡으려는 모양새를 취했다. 요한이 그녀를 제지했다.

“아까 못 들으셨나 본데, 제 몸에 손대지 마세요. 실수로 죽여도 책임 안 집니다. 그리고 물리거나 다친 데는 없습니까?”

“없어요. 대체 무슨 일인지 이게······.”

“저도 모릅니다. 설명할 시간도 없고요. 무슨 볼일이시죠?”

“아니 그래도 이렇게 차갑게 굴 건 없잖아요. 우리 제법 친하다고 생각했는데.”

정미가 서운하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물론 재직 당시 친하게 지냈던 동료임은 틀림없다. 하지만. 미안하게도, 제게는 그게 벌써 4년 가까이 지난 이야기였다. 4년이면 친했던 사이도 소원해지기에 충분한 시간이었고.

“죄송하지만, 제가 좀 급해서. 볼일이 없으시면 먼저 가보겠습니다.”

“부탁… 부탁 하나만 할게요!”

정미는 말하면서도 불안한 눈빛으로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사실 좀비들이 곳곳에서 나타나고는 있었지만, 아직까지 크게 위협이 되는 수준은 아니었다.

좀비들은 어디까지나 ‘갑자기’, ‘많은 수’가 나타날 때 위험한 거였다. 물론 좀비의 존재와 대처법을 모르는 초보자에겐 멀뚱히 서 있는 한 마리의 좀비도 위험하겠지만.

어쨌든 내키지 않는 동행이다. 시작부터 책임질 사람을 늘릴 필요도 없고.

그녀가 선한 사람이라는 건 아는 바지만 극한의 상황까지 갔을 때 어떻게 변할지는 예상할 수 없다. 그리고 요한은 예상할 수 없는 행동은 철저하게 배제하는 주의였다.

“사양하겠습니다. 누굴 챙길 만큼 여유로운 성격이 아니라서.”

“요한 씨, 인천에서 자취하시잖아요. 인천까지만 같이 가요. 더 무리한 부탁 하지 않을게요.”

그녀 또한 인천에서 출퇴근하던 사람이었다. 조금씩 잊고 있었던 옛날 기억이 떠올랐다. 물론, 그게 요한이 그녀와 함께해야 할 이유는 아니었다. 성별을 떠나서 아포칼립스 초기에 다른 생존자와 함께하는 건 지양해야 했다.

“지하철을 타시든, 버스를 타시든, 택시를 타시든 하세요.”

정미가 말없이 건넨 동영상 화면에는 지하철의 객실 안, 피와 살점이 튀는 잔인한 영상이 재생되고 있었다.

요한이 인상을 썼다.

“회식하면서 계속 SNS를 들여다보고 있었어요. 이 사태. 좀비 아포칼립스라고 시끄럽더라고요. 끔찍한 사진들도 많이 올라와요. 아무리 생각해도 무섭고 심각해 보이는데, 요한 씨는 마치 예측이라도 한 듯 주점을 빠져나갔고 그 뒤에 저 안이 난리가 났어요.”

요한은 그녀에 대한 평가를 정정했다.

“그래서 허겁지겁 뛰어왔어요. 왠지 그래야 할 것만 같아서……”

최소한 1년은 살아남을 상이다. 불운만 겹치지 않는다면.

“평소에 이런 무시무시한 칼을 들고 다니던 것도 이상하고, 갑자기 사람을 찌른 것도 이상해요. 제가 알고 있는 요한 씨가 아닌 것 같아 무섭긴 하지만…….”

요한이 그녀의 말을 잘랐다.

눈치는 가상하나 꾸물거릴 시간이 없었다. 상황은 점점 가속화될 테니까.

“저는 부천으로 갑니다. 오토바이를 타고 이동하다가 중간에 도로 상태가 안 좋으면 걸어갈 수도 있다고 생각하세요. 못 따라오셔도 그냥 갑니다. 위험해지셔도 도와드리지 않아요. 동행은 부천까지입니다.”

“알겠어요.”

“그리고.”

요한이 손을 내밀었다. 정미가 그 의미를 모르겠다는 표정을 하자 요한이 말을 덧붙였다.

“도와주는 대가를 내세요. 뭐라도 좋습니다. 돈 따위는 말고요.”

대가 없는 호의는 역효과만 부를 뿐이었다. 정미는 요한의 짐짓 진지한 표정에 굳은 얼굴로 액세서리와 시계를 끌러 건넸다. 억지로 미소를 지으려는 듯한 표정이었으나 굳은 얼굴에 그려진 억지 미소가 어색하기만 했다.

그때 길 바로 건너에서 날카로운 비명이 들렸다. 한 여인이 좀비에게 쫓기다 발을 헛디뎌 넘어진 모양이었다. 높은 구두 굽 한쪽이 부러졌는지 덜렁거리는 모습이다.

금방이라도 물어뜯길 기세였다.

“어, 어······.”

정미가 요한과 그 여인을 번갈아 바라보며 발을 동동 굴렀다. 요한은 표정 변화 없이 시선을 거뒀다.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들려오는 와그작, 찍, 물어뜯기는 소리와 이어지는 비명이 고막을 때렸다. 걸음이 빨라졌다.

요한은 곧바로 근처 편의점으로 향했다. 직원은 진작에 대피했는지 편의점 문도 잠겨있었다.

쨍그랑!

요한이 근처의 벽돌을 들어 편의점 유리창을 깼다.

그 소리에 죽은 시선이 몇몇 모여들었다. 요한은 들어가기 전 다가온 좀비의 관자놀이에 정확하게 나이프를 꽂아 넣었다.

정미를 보니, 공포를 참으려는 듯 입을 틀어막고 있었다.

요한은 왱왱거리는 경보기를 벽돌로 던져 부수고 편의점 안으로 들어갔다.

챙길 것은 간단한 식료품, 물, 라이터, 손전등.

요한은 가방에 딱 필요한 만큼만 물자를 집어넣고 가방에서 지도책을 꺼냈다.

‘노들로를 통해서 국회대로까지. 그리고 외부순환고속도로.’

쉘터까지 넉넉잡아 서너 시간이면 도착할 수 있으리라.

초기에는 시가지보다 대로가 더 안전했다. 물론 감염이 진행되면 모든 곳이 다 위험하겠지만.

요한이 일어섰다. 정미가 움찔하고서 따라 일어섰다.

밖으로 나가려던 요한은 떨리는 손으로 커터칼을 챙기는 정미를 보았다. 요한이 옅은 한숨을 쉬었다.

“그걸로 좀비가 죽겠어요? 내려놓으세요.”

“네? 하지만······.”

“그런 거로 놈들을 죽이려다간 정미 씨만 죽습니다.”

요한은 가방 측면에서 나이프 하나를 꺼내 정미에게 건넸다. 과도 크기의 가벼운 나이프였다.

“뇌를 정확하게 쑤셔야 합니다. 아니면 목을 자르던가요. 심장을 뚫어도 죽긴 죽는데, 심장이 뚫리면 죽는 데까지 3분 정도 걸려요. 죽은 것처럼 쓰러졌다가 다시 일어나 물기도 하니까. 장거리에서 싸울 때 아니면 무조건 머리를 노리세요.”

실제로 급소를 정확히 노리지 못해 허무하게 죽은 사람들도 꽤 됐었다.

“관자놀이, 안구, 경추. 세 곳이 가장 찌르기 좋습니다. 뇌까지 깊게 찌르고 빠르게 빼세요. 찔린 이후에도 30초간은 반격하기도 하니까.”

“네? 네.”

이 정도면 호의는 충분하겠지.

살아남는 것도 운명, 죽는 것도 당신의 운명이니까.

“슬리퍼도 하나 챙기세요. 걷다가 발이 너무 아프다 싶으면 중간중간 갈아신으시고.”

힘든 여정이 될 겁니다.

요한이 한쪽에 주차해 두었던 이륜차의 시동을 걸었다. 그 뒤로 정미가 타는 게 느껴졌다.

* * *

요한과 정미는 노들로를 통해 대로에 진입했다. 갓길을 막고 있는 차량과 생존자들이 막고 있어 더 이상 운행이 불가능해지자, 요한은 고민 없이 오토바이에서 내려 한곳에 버려두고 걸었다. 어차피 예비 오토바이도 충분했다.

걷기 시작한 지 거의 4시간째. 아무래도 여의도가 진원지 중의 하나인 듯, 큰 도로에 진입하자 감염자의 수가 한결 줄어들어 거의 보이지 않았다.

다만,

빵- 빠앙-!

퇴근 시간이 한참 지났는데도 도로는 꽉 막혀 있었다. 요한이 흘깃 시계를 봤다. 오후 11시. 멈추기도, 전진하기도 모호한 시간이다.

정미는 예상보다 씩씩하게 따라왔다.

그가 조언해준 대로 플랫슈즈와 슬리퍼를 번갈아 신으며 요한의 발목을 붙잡지 않았다. 저 정도면 훌륭한 정신력이었다.

요한이 보는 그녀의 수명이 점점 늘어나고 있었다.

어느 순간부터는 사람의 목숨을 수치로 환산하는 습관이 생겼다. 이 사람은 어떤 사람이구나, 어떤 삶을 살아왔겠구나 보다 그저 이 사람은 얼마나 살겠다, 이 사람은 언제쯤 죽겠구나가 더 큰 관심사였다.

6개월까지는 용맹하거나 신중한 사람들이 살아남는다.

6개월부터는 그중 운이 좋은 사람들이 살아남고,

1년부터는 운도 좋은 데다가 냉정한 사람들만이 살아남는다.

한 3년 차부터는 냉정함이 지나쳐 악만 남은 사람들만이 살아남는다.

내가 살아남기 위해서 남을 얼마든지 희생할 수 있는 사람들. 3년 차에 만났던 사람들은 대부분 그랬다.

“그나저나, 차가 정말 안 빠지네요.”

정미의 말대로였다.

아무리 난리가 났다지만, 이 정도로 차가 꽉 막혀 있다는 것은······.

‘중간에 뭐가 있군.’

이 정도 규모라면 교통사고는 아니다.

좀비가 있다.

요한은 고민했다.

이대로 전진할 것인가, 우회할 것인가, 아니면 멈춰서 날이 밝을 때까지 휴식할 것인가.

‘역시 지금 대로를 통해서 가야 한다.’

인적이 드문 곳에서의 습격은 더욱 치명적이다. 어두운 곳은 더욱. 사방이 트인, 넓은 공간을 통해서 이동해야 한다.

비록 그 과정에서 한 차례 격돌은 불가피하겠지만, 걱정이 되지는 않는다. 은신에 들어가기 전 마지막으로 실전 감각을 끌어올린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편했다.

생각을 정리한 요한은 갓길에 주저앉아 다리를 주물렀다. 휙휙, 준비운동을 하는 그를 보면서 정미가 이상하게 바라봤다.

“아마 곧 좀비 떼를 뚫어야 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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