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리턴 서바이벌-1화 (1/176)

<1화>

1부-생존게임

* * *

1. 회귀

2020년, 한강 난지공원

무엇보다 담배 생각이 간절했다.

마지막으로 태운 게 언제더라, 6개월? 아니 넉넉잡아 8개월은 지난 기분이었다.

“죽기 직전에 한다는 생각이 고작 담배라니.”

스스로 생각해도 어이가 없어 피식 웃음이 새어 나왔다.

뜯긴 어깨에서 흘러내린 피가 상의를 넉넉하게 적셨다. 고통이 익숙하지 않아 절로 인상이 찡그려졌다.

단 한 번의 실수도 용납하지 않았던 빌어먹을 세상에서 얻은 처음이자 마지막 좀비에 의한 상처.

요한은 손등으로 이마를 닦으며 고개를 천천히 들었다.

앉아있는 주변의 풍경이 눈에 띄었다.

완벽한 지옥이었다.

단 한 명의 생존자도 보이지 않는 완벽한 몰살. 또다시 파티 전원이 몰살당했다. 두 자릿수가 된 이후부터는 더 이상 세지도 않았던.

그동안 죽어 나갔던 동료들만 수백이었고, 맨 처음 동료였던 사람들은 이름, 얼굴조차 희미하다.

요한은 시선을 우측으로 옮겼다.

그의 옆에는 그가 죽인 마지막 좀비가 있었다. 몇 시간 전까지만 해도 그의 가장 오래된 동료였던, 그리고 자신을 감염시킨 사람.

멸망한 세상에서 인간성을 잃어 가던 자신과 마지막까지 함께해 준 사람.

“후우······.”

그는 지칠 대로 지쳐있었다.

좀비가 나타난 지 3년. 오래 버텼고, 오래 살아남았지만 결국 여기까지였다.

살아있는 사람은 있을까? 어쩌면 이 팀을 마지막으로 인류는 종점을 찍을지도 모른다.

바닥을 드러냈던 물자를 놓고 대립했던 집단 간의 마지막 싸움은 치열했다. 그만큼 강하고, 그만큼 오래 살아남은 두 세력 간의 생사전.

자신의 팀은 전멸했고, 상대 세력도 거의 회복이 불가능한 타격을 입었다.

패배했지만, 양패구상이리라.

그래도 최선을 다해 살아남았어.

이제는 진짜 쉴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었다.

요한은 눈을 감았다.

* * *

눈을 뜨는 느낌이 생경하다.

푹신한 이불이 몸을 덮고 있는 것이 느껴졌다.

이불?

요한은 번쩍 눈을 떴고, 믿기지 않는 풍경에 다시 한번 얼어붙었다.

“여긴······.”

희미한 기억 속 올올히 떠오르는 장소다.

그가 눈을 뜬 곳은 그가 24살 때부터 살았던 인천의 자취방이었다.

“이게 무슨······.”

요한이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컴퓨터, 에어컨, 세탁기. 쓸 일이 전혀 없을 것 같던 물건들. 모두 그가 기억하던 그의 방 모습이었다.

- 픽미 픽미 픽미 업

한참 동안이나 혼란에 빠져있던 그를 깨운 것은 휴대폰 벨소리였다. 요한은 얼떨결에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 야!

전화기 너머에서 들려오는 고함에 요한은 인상을 찡그렸다.

“누구세요?”

- 너 미쳤어? 지금이 몇 신데 아직도 회사를 안 와!

“어······.”

- 당장 튀어와!

남성은 한 번 더 소리를 지르고는 일방적으로 끊어버렸다. 휴대폰에 저장된 이름은 문 대리.

하지만 그보다 요한의 눈을 사로잡은 것은 휴대폰에 적힌 날짜였다.

2016년 9월. 좀비 시대가 창궐하기 6개월 전, 아직은 세상이 평화로웠던 그때.

꿈인가.

요한은 혼란스러움에 제 몸을 꼬집었다. 통증이 선연하다.

그렇다면 아포칼립스를 겪은 것이 꿈이었나?

삼 년의 기억을 더듬었다.

단순히 길고 끔찍했던 악몽이라 치부할 수 없었다. 삼 년이 넘는 시간을 꿈으로 꿀 리도 없거니와 그러기에는 사건 하나하나, 인물 하나하나가 너무나 생생히 기억났다. 초기 동료들은 얼굴이나 이름이 희미해진 사람들도 있었으나, 치열하게 살아왔던 기억들은 좀처럼 잊히지 않았다.

당장에라도 썩은 시체들이 일어나 아가리를 들이밀 것만 같은 긴장감이 온몸을 휘감았다.

‘그렇다면 설마…….’

돌아온 것이다. 과거로. 그것 말고는 설명할 길이 없었다. 물리적으로 설명할 길은 없었지만 이미 가설은 굳어지고 있었다.

요한은 이마에 손을 올리며 다시 이불에 드러누웠다.

돌아왔다.

단 한 번도 원한 적은 없었지만 어쨌든 그는 되살아났고 되돌아왔다. 느껴지는 감정은 다시 또 그 짓을 해야 한다는 억울함보다는 그저 안도감이었다. 한숨이라도 편하게 쉴 수 있으리라는 안도감.

요한은 휴대폰을 들어 천천히 문자를 써나갔다.

-오늘 몸이 안 좋아서 쉬겠습니다.

어차피 6개월이면 흔적도 없어질 회사다. 그보다는 지금의 편안함을 즐기고 싶었다.

쉬고 싶었다.

요한은 눈을 감았고 베개에 얼굴을 파묻었다. 보드라운 면의 감촉이 너무나 포근해 당장에라도 잠에 빠져들 것 같았다.

정말로 오랜만에 느끼는 안락함이었다. 지독하게 현실감이 없어 더욱 그랬다.

잠이 쏟아졌다.

* * *

요한은 눈을 번쩍 떴다.

몸이 날아갈 듯 상쾌하다.

3년 동안 한 번도 느껴본 적 없었던, 다시는 느낄 수 없으리라 생각했던 그런 숙면감이었다.

시각을 보니 거의 하루를 통째로 잤다. 회사에서 온 부재중 전화는 거의 서른 통에 이르렀다.

요한은 스마트폰을 휙 집어 던지고 바닥에 굴러다니는 쿠폰을 집어 들고 치킨, 피자, 보쌈, 족발 등등을 닥치는 대로 시켰다.

3년 만에 맛보는 배달음식은 정말 환장할 정도로 맛있었다.

청승맞게 눈가에 눈물이 맺힐 만큼.

거의 무슨 식신이 된 것마냥 입에 욱여넣었는데도 남아있는 음식들이 한가득이었다.

가장 절박했던 수면욕과 식욕이 채워지니 정신이 점점 맑아진다. 그리고 지난 3년간의 기억이 떠올랐다.

2017년 3월. 그러니까 지금으로부터 정확히 6개월 후. 전 세계에 괴물들, 그러니까 좀비가 나타났다.

누구는 언데드라고도, 누구는 좀비라고도, 누구는 그냥 괴물이라고도 부르는 그 미스터리한 존재들.

누구라도 놈들에게 물리거나, 할퀴어지거나 해서 놈들의 피가 상처에 들어가면 온몸을 벌레에 뜯어먹히는 고통과 함께 죽어간다. 그리고 빠르면 5분 만에, 늦어도 한 시간 안에 좀비가 되어 되돌아온다.

움직이는 시체인 만큼 그다지 강하지도, 빠르지도 않았다. 다만 문제는 그 수였다.

대한민국은 초기진압에 완벽하게 실패했다.

곳곳에서 나타난 좀비는 삽시간에 퍼졌고, 인구가 밀집되어 있는 서울, 부산, 대구 등의 대도시들은 딱 한 달 만에 도시의 기능을 잃었다. 도시가 완전히 마비되기까지는 한 달이었지만, 사실상 도시가 혼란에 빠지는 것은 반나절이면 충분했다.

죽여도 죽여도 끝없이 나오는 좀비들, 점점 떨어져 가는 식량. 아마도 추측건대, 1년이 지난 시점부터는 대한민국 인구의 1%도 채 안 남았을 것이다.

초기에는 좀비가 두려웠으나 갈수록 사람이 두려워졌다. 무법지대가 된 대한민국은 살인, 강도, 성폭행들이 자행됐다. 무리 안에서도 배신은 늘 존재했고, 그 결과는 항상 무리의 전멸로 이어졌다.

요한은 함께 생활했던 동료들의 죽음을 스무 번 넘게 경험해야 했다.

스무 명이 아닌, 스무 번의 전멸.

극한의 상황에서 홀로 살아남았고, 괴로워했고, 자살을 생각했던 것이 스무 번이 넘었다.

그러나 그는 삼 년을 살아남았다.

몇 번이나 황천을 들락날락하고 몇 번이나 염라대왕의 수염을 잡아당기고 돌아오면서 그 지옥을 삼 년이나 버텼다.

그리고 되돌아온 지금, 자신은 미래를 알고 있다.

꿈이라고 치부할 수도 있었지만, 그 가능성을 배제했다.

모든 것을 걸고서 종말을 준비한다.

만약 종말이 오지 않아 현실이 엉망진창이 된다고 해도, 준비되지 않은 채 종말을 맞이하는 것보다는 천 배는 나을 터다.

요한은 다른 생각을 머릿속에서 지우개로 지워버리고 오직 하나만을 떠올렸다.

6개월 후 세상은 멸망하고, 오직 나만이 종말이 오는 것을 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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