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전 2. 26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
카페에 돌아온 미경은 제가 관리하는 사이트에 올라온, 에코를 걱정하는 수많은 글을 보며 손끝으로 테이블을 탁탁 두드렸다.
괜찮다고. 우리 에코, 다른 곳도 아니고 한국에서, 그것도 여기 가평에서 행복하게 살고 있다고 알려 주고 싶었다.
거기다 자두.
그래, 자두.
우리 자두.
볼살이 통통하게 오른 귀여운 자두를 생각하는 순간 미경은 저도 모르게 주먹을 쥐었다. 그 반짝거리는 초록색 눈동자라든가 쉴 새 없이 옹알거리던 입술. 거기다 온통 핑크핑크한 옷까지 떠올리는 미경의 얼굴엔 자연스럽게 미소가 머물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자두가 딸이었어? 분명 코코가 아들이라고 한 것 같은데.
그때 만두 빚으면서 자두는 아들이라고 했다고 했는데.
하지만 제가 본 자두는 딸 같았다. 하긴 딸이든 아들이든 그게 뭐가 중요하리.
에코와 아기가 모두 건강하게 잘 있다는 글을 쓰고 싶어 손끝이 근질거렸다. 한동안 노트북 화면을 멍하니 보던 미경은 요란스럽게 울려 대는 휴대전화로 손을 뻗었다. 에반과 자두를 만난 이후 미경은 구름 위를 나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관리하는 홈페이지를 나온 미경은 누군가가 제멋대로 써 놓은 에코 사망설을 보고는 혀를 찼다. 대형 언론사들이야 몸을 사리겠지만, 에코가 사라진 이후 악플러들은 끊임없이 분란을 만들고 있었다.
“지랄하고 앉아 있네.”
에코가 살아 있다면 제게 연락을 하란다. 뭐 듣도 보도 못한 어그로꾼에게 왜 그래야 한단 말인가? 오랜만에 마음 놓고 외장 하드에 잔뜩 쌓아 놓은 자료들을 보는 내내 미경은 계속 입에서 자두를 되뇌었다.
“그르네. 자두 이마가…… 에반이네. 여기 머리 깐 거 보니 딱이네.”
“아…… 입술! 그래. 입술은 코코 인정. 요 통통하고 빨간 것이 거기다 우리 코코 집중 부리랑 똑같네.”
만면에 미소를 띠고 에코를 감상하는데, 계속해서 귀찮게 울려 대는 휴대전화를 엎어 놓았던 미경은 참지 못하고 액정을 바라보았다. 도대체 누군데 그치지 않고 전화질…….
그 순간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사…… 사…… 사장…… 사장님. 저기…….”
무슨 일인데 노크도 안 하고, 거기다 벌벌 떨리는 직원의 목소리에 고개를 든 미경의 손에 들린 휴대전화가 툭, 하고 떨어져 내렸다.
“누나!”
어쩔 줄 몰라 하는 직원 뒤로 후광을 가득 품은 에반이 환하게 웃으며 서 있었다. 솔직히 에코 팬으로 그들을 따라다닐 때는 에반의 성격이 이런 줄 몰랐다. 마트에서 제정신 아닌 상태로 에반과 장을 봤고, 그때 에반이 그리 말하긴 했다.
‘누나! 저보다 나이 많으신데. 편히 그렇게 부를게요.’
그것보다 저를 향해 손을 흔드는 에반의 옆에 꿈에서라도 보고 싶던 코코가 서 있었다.
“꺄아~~”
한 번 봤다고 친밀하니? 에반이 손잡이를 잡고 있는 유모차에서 들어 본 기억이 선명히 떠오르는 아기의 맑은 목소리까지 들려오자 미경의 심장이 다시 한번 내려앉았다.
갑자기 나타난 에코와 자두를 본, 미경을 비롯한 직원들은 모두 넋을 놓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카페를 운영하는 일주일 중 가장 손님이 없는 목요일 오전. 3층 미경의 사무실 소파엔 에코가 앉아 있었다.
“아…… 어, 그러니까.”
“목요일 오전이 제일 한가하시다면서요. 우리 집에서 걸어서 15분 정도 거리라 바람 쐬러 나왔어요.”
유모차에 앉아 있는 자두를 꺼내 품에 안으면서 천연덕스럽게 말하는 에반을 바라보던 미경은 얼른 손짓해 문가에 그대로 서 있는 직원을 불렀다.
“그렇긴 한데. 뭐…… 뭐 마실래요?”
“여기서 제일 맛있는 거요.”
에반의 품에서 자두가 계속 시끄럽게 떠들어 대자 시우는 자두를 제 품으로 데려왔다. 그러곤 꼭 끌어안자 자두가 작은 머리를 시우의 어깨에 폭 기대는 것을 넋 놓고 보느라 미경은 에반이 하는 말을 제대로 듣지 못했다.
“네?”
“맛있는 거 주세요. 그리고 누나, 그때 우리 말 편하게 하기로 했는데, 왜 또 어색하게 그러세요.”
“아니 그게…….”
그날 에반과 자두를 만났던 것이 꿈같이 느껴지기도 하는데, 거기서 말 편하게 하기로 했다고 해서 다시 보자마자 정말 그럴 순 없었다. 무엇보다 그들은 미경의 최애가 아니던가. 최애랑 마트에서 쇼핑한 것도 꿈만 같은데, 그때 에반이 물어보는 것에 바로바로 대답해 줬더니 그걸 다 기억한 모양이었다.
무슨 일 하냐길래 근처에서 카페를 운영한다고 했고, 어디냐고 묻길래 카페 이름을 말해 줬었다. 그리고 낮 시간에 카페를 비우고 왜 마트에 있냐고 하기에 한가한 날과 이것저것 말했던 것이 이제야 떠올랐다.
“저도 홈마님 알아요. 자주 뵀잖아요. 언제지? 그때 옛날에 출국 날 여장했을 때, 그때 면세점 근처에서 만났고, 그때 말고 저희 팬 사인회에도 와 주시고 생방에도 자주 와 주셨잖아요.”
에코의 건너편에 앉던 미경은 밝은 목소리에 표정 관리를 할 수가 없었다. 지금 제가 자신의 표정을 보지 못해서 그렇지. 아마 굉장히 어색하고 이상한 표정을 짓고 있을 것이 분명했다. 그리고 제가 좋아하는 연예인과의 추억은 팬들이 기억하는 것이 대부분이었다. 하루에도 만나는 사람이 수없이 많은 이들이 지나치는 팬을 기억하는 건 말이 되지 않았다. 거기다 시우가 여장을 했던 일은 거의 10년 전 일이었다.
“그걸 기억하세요? 그게 저이긴 한데, 그런데 여기는 어떻게? 아니 그게 아니고. 지금 어. 그러니까 이렇게 사람들 눈에 띄면 안 되는 거 아니에요?”
거의 일주일이 넘게 이 비밀을 지키려 매일 밤마다 이불을 쥐어뜯었는데, 지금 제 카페에 있는 직원 및 손님까지 몇 명이 그들을 봤는지 정확히 가늠되지 않았다.
“그러려고 했는데, 세상에 가만히 있었더니 다들 내가 죽었다잖아요. 어찌 그런 말을 할 수 있지? 우리가 불행하길 바라는 사람들이 너무 많은데, 이제는 그냥 대놓고 보란 듯이 잘 사는 모습 보여 주려고요.”
“그런데…… 여긴…….”
그러니까 살아 있는 모습을 보여 주는 건 좋은데, 왜 자신의 카페로 찾아온 것인지 미경은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말했잖아요. 집에서 걸어서 15분 거리라 산책 삼아 나왔죠.”
이곳에서 15분 거리에 있는 집을 떠올리던 미경은 그제야 고개를 끄덕일 수 있었다. 몇 달 전 근처전원주택을 대대적으로 리모델링한다는 소식을 들었었다. 풍경이 아름다운 북한강을 따라 카페나 전원주택이 늘어서 있는 곳에서는 새로 건축을 하거나 리모델링을 하는 일은 다반사였다.
그곳이 에코집이라고? 3m는 족히 되어 보이는 담을 보고 모두들 쑥덕거렸는데, 그곳이 에코의 집이라면 충분히 그러고도 남을 일이었다.
“거기 담 높은?”
“네. 거기예요. 사람들 눈을 피하려니 그 정도는 돼야 할 것 같더라고요. 그런데 누나 말대로 카페 안에서 보는 북한강 정말 예쁘네요.”
정신없다, 정신없어.
방금까지 앞에 앉아 있던 에반은 창가로 걸어가 밖을 내다보고, 자두를 안은 시우는 아기랑 장난을 치더니 능숙하게 한 팔로 아기를 안정적으로 안고서 다른 손으로 유모차에 있는 가방에서 쪽쪽이를 꺼내고 있었다.
내가 전생에 나라를 구했나?
이 정도면 우주를 구한 것 같기도 하고, 실제로 그들을 보는 것도 황송한 마당에 이렇게 사적인 모습까지 보게 될 줄은 몰랐다.
“코코, 마음에 들어?”
“응. 지나가면서 봐도 너무 예뻐서 한번 와 보고 싶었는데, 사장님, 아니 누나. 어, 저도 누나라고 불러도 되죠?”
정말 솜사탕이 사르르 녹을 것 같은 다정한 목소리로 시우에게 질문하는 에반이나 이내 그를 보며 대답하던 시우의 모습을 지켜보던 미경은 갑자기 그들의 시선이 제게 쏠리자 저도 모르게 허리를 바짝 세워 앉았다.
“아. 거기 태우야. 아이스아메리카노하고 레모네이드랑. 하여튼 알아서 좀 챙겨 와. 그리고 누나든 뭐든 편하게 불러요.”
급히 직원을 내보낸 미경은 안절부절못했다. 지금쯤 SNS에 에코 사진이 떴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에반에 이어 시우가 자두를 안고 창가로 가는 것을, 흐려지는 정신을 필사적으로 붙잡으며 바라보던 미경은 어금니를 꽉 깨물었다.
푸르른 하늘과 한가로이 평화롭게 흐르는 강. 햇살 가득한 발코니에 선 가족을 보니 말 그대로 가슴이 웅장해졌다. 그리도 보고 싶던 모습을 지금 보고 있었다. 제 자리까지 들리지는 않지만 둘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고, 시우의 품에 안겨 있던 자두가 한 팔을 에반 쪽으로 뻗자 당연한 듯 에반이 자두를 안았다.
그와 함께 시우는 바람에 날린 에반의 머리카락을 정리해 주었다.
감히 이런 성스러운 모습을 눈으로 봐도 되는 것인지, 이게 방송 촬영 중이거나 다른 상황이라면 몰래 휴대전화에 담기라도 하겠지만, 미경은 이도 저도 하지 못했다.
“누나! 우리 사진 좀 찍어 주세요.”
그리고 불쑥 휴대전화를 내밀면서 말하는 에반을 보며 미경은 떨리는 손으로 그의 휴대전화를 두 손으로 받아 들었다.
아. 역시 에반은 휴대전화도 시커먼 것을 쓰는구나. 그것도 최신형이네.
케이스 없이 그냥 쓰는 것도 여전하구나.
손이 덜덜 떨려 무려 세 번이나 도전하고서야 겨우 최애 가족을 제대로 담아내는 데 성공했다. 잠시 기다려 준다면 여기 어딘가 처박아 놓은 대포 카메라 꺼내서 제대로 찍어 줄 수도 있을 텐데……
미경이 사진을 찍고 휴대전화를 건네자마자 에반은 한참을 휴대전화를 만지작거렸고, 에반이 고개를 드는 것과 동시에 미경의 휴대전화에 짧은 알람이 울렸다. 저는 신경 쓰지 않고 대화를 나누는 에코를 본 미경은 얼른 휴대전화를 꺼냈다.
[사진]
날씨 좋다.
정말 짧은 SNS 내용엔 그 흔한 해시태그조차 없었다. 환하게 웃고 있는 에반과 시우. 그리고 쪼꼬미 자두는 에반의 품에 꼭 안겨 있었기에 얼굴은 조금도 나오지 않았다. 잠시 그것을 확인하는 사이 미경의 휴대전화엔 계속해서 메시지가 쏟아져 들어왔다.
잠시 숨죽이고 있던 에코단들이 깨어나는 소리였다. 메시지에 이어 이번엔 요란하게 전화벨 소리가 울렸다. 에코가 찍은 곳이 어딘지 아는 미경의 지인이었다.
외전 27
시우는 햇살이 잘 드는 곳에 있는 흔들의자에 앉아 아름다운 풍경에 시선을 두었다. 바로 옆에서 레오와 에반이 실랑이하는 목소리가 들렸지만 미소만 지을 뿐 굳이 그쪽을 바라보진 않았다.
뭐 또 우유병을 떨어뜨릴까 봐 걱정된 에반은 잡아 주겠다, 이제 혼자 두 손으로 잘 잡고 먹을 수 있게 된 레오는 혼자 먹겠다, 이 안건을 두고 거의 며칠째 실랑이 중이었다. 떨어지면 다시 주워 주거나 젖꼭지가 더러워지면 새로 타 주면 되지 별 시답잖은 것으로 난리인 것을 보니 앞으로의 육아가 그다지 편치 않을 것 같았다.
“어허! 아들. 아빠 말 좀 들어.”
“빠빠!!!!!!!!”
“그러니까 잡아 준다잖아.”
“마아~~~~~~~~~~~~”
“둘 다 조용히 하지.”
휴대전화를 꺼내 풍경을 찍으며 시우가 작게 읊조리자 두 알파의 실랑이는 간단하게 끝났다. 시우의 휴대전화엔 에반과 자신, 레오의 사진이 가득했다. 인큐베이터에 있는 레오 옆에서 찍은 사진. 저나 에반이 레오를 안고 있는 사진을 보던 시우는 조용해진 그들을 바라보았다.
에반의 품에 안긴 레오는 두 손으로 우유병을 꼭 쥐고 있었다. 그리고 우유병 끝 쪽을 살짝 잡은 에반은 레오와 시선을 마주치고 있었다. 뭐가 그리 좋은지, 우유를 먹다가도 생긋생긋 웃는 레오가 발로 에반을 살짝 밀기도 하고 탁탁 치자 에반 역시 피식 웃었다. 그런 모습들을 휴대전화에 담던 시우는 짧게 한숨을 내쉬었다.
차가운 기운이 가득한 늦가을. 여름내 북적거리며 많은 사람들이 수상 스포츠를 즐기던 강 위엔 한가로이 새들만 날아다녔다. 그런 곳에 갑자기 보트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강 위에 갑작스럽게 나타난 보트는 자신의 충동적인 결정 때문이었다. 언제까지 숨어 살 수도 없고, 지금이야 레오가 집 안에서 얌전히 있다고 하지만, 언제까지 집 안에서만 키울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유치원도 가고, 쇼핑도 가고, 놀러도 다니고 그래야 하지 않겠는가?
저나 에반이나 여행을 좋아했고, 어릴 때만큼은 교육에 연연하지 않고 많은 것을 경험해 보는 것이 좋다고 생각하기에 이제 밖으로 나다니고 싶기도 했다. 무엇보다 최근 들어 깔짝깔짝 보이는 저와 레오의 사망 소식이 유독 눈에 거슬렸다. 대형 언론사들이야 나름 겁먹고 자중한다지만, 제멋대로 떠들어 놓고 아니면 말고, 또는 제가 그랬나요? 라는 어이없는 반응을 보이곤, 소송전으로 들어가면 반성문이니 뭐니 내놓는 일인 방송인들이 문제였다.
늘 생각하지만 저는 그렇다 쳐도 레오까지 건드리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언론은 가해자이자 보호자였다.
사람들은 비밀과 숨겨진 것에 대한 호기심이 더 강하기에 이제는 모습을 드러내도 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다시금 모습을 드러내는 곳이 오랜 시간 자신과 에반을 지켜봐 준 팬의 카페가 될 줄은 몰랐지만.
“이야, 빠르다. 두 시간 좀 안 걸린 것 같아.”
가까이 다가온 보트에 카메라를 든 사람이 있는 것까지 확인한 시우는 흔들의자에서 일어났다. 에반이 사진을 올렸고, 가평에 있는 카페가 배경이라는 것을 알아낸 사람들이 몰리기 시작한 것이다.
“조금만 더 미적거렸으면 걸렸겠네.”
“미경 누나한테 좀 미안한데? 저 보트들 가는 방향을 보니 다 미경 누나 카페 쪽인데.”
“그럼 뭐 해. 카페 한 달 문 닫기로 했잖아.”
집에서 찍은 사진을 올려도 되긴 했지만, 자신들을 본 일반인들의 도움이 필요했기에 조금 강하게 나가긴 했다. 사장인 미경에게 양해를 구했고, 직원들은 한 달간 유급휴가. 미경에게도 충분한 보상을 할 테니 한 달만 문을 닫아 달라고 했더니 사진첩에 있는 몇 장의 사진으로 쉽게 합의해 주었다.
그리고 저희들이 들어갔을 때 만났던 카페 방문객들과는 레오를 제외한 시우나 에반과 사진을 찍는 것으로 간단히 해결했다. 사진을 찍은 일반인들까지 개인 SNS에 올렸으니 미경의 카페가 입에 오르는 건 당연했고, 기자들이 몰리는 것도 당연한 일이었다.
“심심할 때마다 1면 장식하는 것도 나쁘지 않네.”
아이돌 활동을 할 때도 심심찮게 1면을 장식하다 최근엔 사고 소식으로 한동안 본의 아니게 언론을 장악했고, 오늘은…… 휴대전화로 인터넷 뉴스를 보는 시우의 입꼬리가 한쪽만 삐뚜름하게 올라갔다.
“왜! 우리 레오. 아들인데 왜 다 딸이라고 해? 레오 얼굴을 봐. 완전 너 판박인데! 어! 태어날 때부터 완전 이마에 에바니 아들이라고 붙여 놓은 것 같잖아!”
에반은 레오가 입고 있는 옷이 분홍색이고, 단지 귀엽다는 이유로 아침마다 시우가 그 가늘고 짧은 머리카락을 정성스럽게 모아 묶어 준 사과 머리를 여전히 하고 있었다는 말을 굳이 하지 않았다.
물론 아들이 분홍색 옷을 입고 사과 머리를 할 수는 있지만, 그들이 끌고 다닌 진회색 유모차 안에 있는 담요도 분홍색 계열이었고, 레오가 지금 열심히 먹고 있는 우유가 담긴 병 역시 분홍색 계열이라고 말하지도 않았다.
그리고 가족사진이긴 했지만, 레오는 에반의 넓은 가슴에 폭 파묻힌 데다 모자까지 쓰고 있었기에 실제 얼굴이 제대로 보이지도 않았다.
“그렇지?”
“거기다 내가 라이브 때 아들이라고 확실하게 말도 해 줬다고!”
“그랬지.”
에반은 조금 흥분한 시우에게 최대한 중립적으로 대답하며 우유를 다 먹은 레오의 입가를 닦아 주고는 꼭 안고 등을 토닥거리며 창가로 다가갔다.
“많이도 왔네.”
계속해서 카페 쪽으로 향해 달려가는 보트를 보며 에반 역시 고개를 끄덕였다.
“이렇게 된 거 신나게 즐겨야지. 이상한 말들 또 꺼내기만 해 봐.”
발코니가 아닌 거실 안쪽 소파에 드러누운 시우의 손끝이 빠르게 움직였다. 이때까지 내 페어, 내 아들 잘생긴 거 꼭꼭 참고 살았는데, 이제 그럴 이유가 없었다. 보란 듯이 진짜 우리 잘 사는 거 보여 줄게.
[동영상]
영원히 사랑해.
설명 따위를 달지 않는 시우가 처음으로 자발적으로 멘트를 달아 넣고는 싱긋 웃었다.
“코코!!!! 코코!!!!!!!!”
“왜?”
“빨리~ 빨리~”
웬만한 일에 놀라지도 않고 조바심을 내지 않는 에바니의 다급한 목소리에 시우는 휴대전화를 팽개치고 에반과 자두가 있는 곳으로 뛰어갔다.
“어……무……마.”
“엄마 했어! 우리 자두 천재야!”
“아부…… 바바바바…….”
털을 쓰다듬는 건지 쥐어뜯는 건지 모를, 어쨌거나 엎드려 쉬고 있는 러쉬를 만지는 자두의 입에선 끊임없이 옹알이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자두야. 엄마! 엄마!”
“아바~~~~~~~~~~”
“어. 아빠 했네. 축하해.”
자두의 옆에 앉아 그 큰 덩치를 숙여 자두와 눈을 맞추며 다시 엄마 해 보라는 에반의 어깨를 툭툭 두드리는 시우의 입에서 작은 웃음이 터져 나왔다.
행복이 다른 곳에 있나? 여기에 있지.
“자두야, 아빠한테 ‘사랑해’라고 말해 줘. 그리고 꼭 엄마가 전해 줬다고도 말해야 해.”
“아빠도 엄마 사랑한다고 말해 줄래?”
“킁-”
햇살이 잘 드는 자리에 엎드려 낮잠을 자려던 러쉬의 입에서 한숨이 흘러나왔다.
- 완결-
[에코]…… 여기 천국이니?
에코가. 우리 코코가. 에바닉…….
자두야!!!!!!!!!!!!
그래. 그 미친 파파라치 새끼들 때문에 어! 근데 한국이래.
한국이야.
가평. 가평 카페 거기…….
……홈마님?
┗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홈마님 카페 맞음. 홈마님 나와 주세요
┗ 레알 우리 홈마님. 살아 계신 거 맞죠?
┗ 나였음. 심장마비. 이 세상 하직했을…….
┗ 헐…… 홈마님 카페 하는 건 알았는데, 거기 가평????
┗ 홈마님 카페 맞음;;;;;;;;;;;
┗ 머선 129????
[에코] 에코결입니다.
안녕하세요, 에코결입니다.
다들 많이 놀라시고 당황하셨을 텐데, 여러분이 보신 대로 에코와 자두는 한국에 있으며 저희 카페를 방문해 준 것도 사실입니다.
저 역시 최근에 에코와 자두가 한국에 있는 걸 알았고, 개인적으로 연락을 하거나 그들이 무사한 사실을 알고 있었던 것도 아닙니다.
파파라치로 인해 많은 고통을 당한 만큼 에코 역시 조심스러운 모습이었습니다.
아시겠지만 우리 에코는 처음부터 숨긴 적 없었습니다. 진짜 에코단님들 아시는 것처럼 처음부터 방송에서 대놓고 연애했는데, 우리 망상이 그걸 부인했을 뿐이지요.
쓸데없는 유교걸이었던 저를 다시 돌아보며 지난번 일과 함께 에코단을 떠나신 분들도 많이 계신 상태이지만, 인원 충원 없이 이대로 운영할 계획입니다.
*여기부터 잡솔이고 성덕으로서 에코와 자두 영접한 썰 풀겠음. 알겠지만 음습체.
유출되면 알죠? 지구 끝까지 따라가서 응징합니다. 저도 그렇겠지만, 에바니가 가만히 안 있을 거라는 사실에 제 양 손모가지 겁니다.
일단…… 저 살아 있고요. 심장마비 올 뻔했지만, 무사히(?) 고비 넘겼습니다.
에코 진짜. 우리 에코 모습 변한 거 일도 없음.
우리 코코……. 코코 출산한 거 맞니? 어쩜 나날이 미모 갱신하는지.
에바니는 역시나 자기주장 강한 얼굴이 열일하고 있고,
코코는 평소대로 스키니 진에 오버사이즈 후드 티 입고.
뭐 사진 보면 알겠지만. 그냥 아기 한 명 데리고 화보 찍는 느낌이었음 ㅜㅜ
그리고 어, 제대로 공개되지 않은 자두는.
이미 완성형입니다. 에코를 잘 섞어서 귀여움 무한대로 넣어 놓았습니다.
동글동글 커다란 눈에 쌍꺼풀도 짙고 코코 닮은 건지 속눈썹 진짜 길어서 음영 만드는데! 눈동자는 에바니랑 똑같은 초록색. 높고 오뚝한 코도 에바니인데 그 도톰하고 작고 빨간 입술은 코코임.
그 코코 집중의 부리. 그거 꼭 닮아서.
옹알이도 진짜 잘하고. 에바니랑 코코가 번갈아 안고.
그냥 인형이 살아 움직이는데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지금 자두 성별로 난리인데, 자두 성별은 코코가 라이브 때 말해 줬잖아요.
비록 머리부터 발끝까지 착용한 옷과 하다못해 쪽쪽이도 모두 핑크핑크했지만, 원래 남자는 핑크잖아요.
핑크가 진리잖아요? 그렇지 않아요?
그리고 실은 저 자두 안아 봤는데……
하아- 그때 진짜 죽는 줄. 팔이 덜덜 떨려 가지고 자두 떨어뜨릴까 봐. 막…….
그러니까 코코가 막 웃으면서 괜찮다고.
아니. 님하 아기 엄마예요. 자두 엄마잖아요!
우리 코코는 역시 강합니다.
……코코가 이거 풀어 줄 것 같기는 한데, 사고로 자두가 빨리 태어나서 인큐베이터에 오래 있어서 속상했다고.
‘파파라치 새끼들. 싹 잡아서 허리를 반대로 꺾어 버려야…….’
‘코코, 자두 있잖아.’
역시 상남자 코코. 그 이야기 하면서 주먹 꼭 쥐고 부들부들. 이 꽉 깨물고 파파라치 욕하는데, 에바니 자두 양쪽 귀 그 큰 손으로 꼭 막고 부드럽게 말함. ㅋㅋㅋㅋ 역시 코코는 상남자입니다.
어쨌거나 자기들 정말 잘 지내고 행복하다고.
아니. 그렇게 말 안 해도 보고 있는데 이미 행복이 넘쳐흘러 가지고.
까르르 웃으면서 자두가 에바니 뺨 찰싹찰싹하고 막.
공식적으로 방송을 하거나 하지는 않을 거지만, 코코가 자기 편집 기술 많이 늘었다고 ㅋㅋㅋㅋ 다시 라이브도 하고, 모습 많이 보여 줄 거라고.
그런데 아직 자두 얼굴 완전 공개는 고민이라고.
어쨌거나 에코랑 자두 무사해서 ㅜㅜ 다행입니다.
참, 지금 저희 카페로 기자들이랑 엄청 오신다는데 ㅋㅋㅋㅋ 한동안 문 안 열어요. 오지 마세요. 에바니가 문 열면 저랑 직원들 고생한다고 대신 유급휴가 넉넉하게 주더군요. 제가 사장인데 에바니가 오너인 줄.
이제 우리 에코단 다시 달려 봅시다!!!!!!! 아, 자두도 있는데 에코자로 가야 하나…….
┗ ㅋㅋㅋㅋㅋㅋㅋㅋㅋ 에코자…… 어쩔…….
┗ 울 홈마님. 전생에 지구를 구하셨…… 자두를 안아 보셨대 ㅜㅜ
┗ 파파라치 새끼들 진짜 허리를 뒤로 꺾어야. 진짜 라이브 할 때 배도 별로 안 불러 보였었는데, 인큐베이터 ㅜㅜ 하…… 진짜 다들 고생했네. 행복하자!! 애두라~!!!
┗ 악…… 상상만 해도…… 코코 눈에 초록 눈동자.
┗ 여기가 내 무덤이군요. 이제 덕질도 대를 이어서 하는 시기가 됐습니다.
┗ 신개념 덕질.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 진심 에코 무사해서 다행이고, 자두도ㅜㅜ 아악. 갑자기 뜬 사진 보고 합성인 줄 알고 우럭우럭했는데. 진짜였ㅜㅜ
┗ 감격의 도미도미 외치고 있습니다. ㅜㅜ
┗ 헐. 방금 코코가 올린 동영상 보신 분. 일단 보고 오세요. 무조건 봐야 합니다.
┗ ……코코가 있어서 진정한 복지가 이룩됩니다.
┗ 우리 자두. 절묘하게 잘 가렸네. 심의 통과 무난함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 미치겠다. 아니. 욕조에 홀딱 벗고 있는 에바니라니요! 그 성난 그뉵그뉵. 어. 무슨 가슴 근육이랑 복근이랑 막 1919191919191919인데 ㅋㅋㅋㅋㅋㅋㅋㅋㅋ 자두야? 우리 자두. 엄빠 닮아서 벌써부터 방송할 줄 아는구나. 목 튜브만 하고 동동 떠 있는 위치가 어쩜 그리 에바니 딱 거기 가려 주는 거니????
┗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역시 수위 조절은 우리 코코.
┗ 동영상에 코코 웃는 소리 너무 맑잖아. 진짜 행복이 그대로 느껴진다. 그 와중에 파닥파닥하는 자두. 아악……. 귀여워. 진짜 절묘하게 에바니 가렸네. 어! 그래 그건 코코 거지.
┗ 진짜 이게 머선 129???? 사진은 합성이라고 우겨도 이 동영상은 절대 못 우기겠다.
┗ 이 와중에 깔린 음악……. 전 세계적인 히트송…… 상어 송. 미치겠다. 그래, 너네 가족이지! 가족.
┗ “엄마 상어는 촬영 중. 아빠 상어는 뭐 하세요?” “너도 들어오지 그래?” 진짜 이 대화. 진짜 순수한 대화인데 나 음마 꼈음?
┗ ㅋㅋㅋㅋㅋㅋㅋ 자두가 꺄~~~~~~~~ 하는 소리 들으면서 안정을 찾읍시다.
┗ 그나저나 저 욕조 어른 한 네 명은 들어가겠네.
┗ 욕조 옆의 창 거기. 잔디밭 쫙 펼쳐진 거랑 정원수 뒤로 흐르는 강……. 가평??
┗ 가평? 가평! 홈마님. 카페 근처에 진짜 예쁘고 좋은 전원주택 개많은 데?
┗…… 가평에서 서울까지 출퇴근 시간이 어찌 되더라?
┗ 오늘부터 가평에 집 알아봐야겠군요.
┗ 가평 집값 오르는 소리가 벌써…….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