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리스타트(Restart)-177화 (177/187)

외전 2. 16

“솔직히 상준이가 막 재밌고 쾌활하고 텐션 높은 성격은 아니잖아요.”

조곤조곤한 말로 상준에게 팩폭을 날리는 현수의 모습에 시우는 웃음이 터질 것 같아 아랫입술을 꾹 깨물었다. 매번 멤버들에게 팩폭을 날리던 자가 되레 당하다니.

여기서 웃어 버리면 안 될 것 같아 시우는 고개를 숙인 채 반죽해 놓은 밀가루 덩어리를 현수의 앞으로 밀어 주었다.

“상준 형은 두부 으깨고 계세요. 추가 재료 계속 넣어 드릴 테니까. 그리고 현수 형은 이거 만두피 만들면서 토크해요. 원래 요리 방송은 손과 입이 같이 움직여야지 둘 중 하나라도 비면 방송 사고거든요.”

“나는 당신이 나를 그렇게 생각하는지 꿈에도 몰랐소. 미리 언질이라도 해 주지 그랬소. 노잼이라고…….”

오랜 시간을 함께했기에 보지 않아도 상준이 어떤 표정을 하고 있을지 짐작이 갔다. 분명 미간을 찌푸리고 코 아래를 슥- 훔쳤을 것이다. 당황함이 가득한 그의 표정을 보면 정말 웃음이 빵, 하고 터질 것 같아 최대한 상준을 보지 않으려 애쓰면서 둘 사이에서 부추를 잘게 잘라 상준의 볼에 넣었다. 이 형들 부르길 잘했네. 굳이 제가 뭘 하지 않아도 둘이서 주거니 받거니 참으로 잘하고 있었다.

“내가 그리 말했으면 그대가 나를 만나 주지 않았을 것 아니오.”

받아칠 말이 없었던 것인지 상준이 현수가 밀어 놓은 만두피가 두껍니 못생겼니 타박을 하자, 이내 내 팔뚝 근육 키우는 데 그대가 무엇을 보태 주었냐는 말이 현수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아, 형들! 요리를 하라고요. 만담을 하지 말고.”

“그 근육에 내 보탬이 왜 없단 말이요. 지금껏 사 준 고기가 얼만데!”

“내가 사 준 게 더 많은 것 같소만. 지금 입고 있는 그 셔츠 누가 사 준 거요?”

“나 채소 좀 썰자고요. 형들 때문에 웃겨서 야채를 손질할 수가 없잖아요!”

계속되는 둘의 만담에 결국 웃음이 터져 어깨까지 들썩거린 시우는 버럭 소리를 질렀다.

“썰어라. 누가 썰지 말랬나? 이거 두부랑 부추, 고기 다 치댔거든?”

만담과 웃음으로 가득 찬 준비 과정을 거쳐 현수는 계속해서 만두피를 밀고 시우와 상준은 만들어 놓은 반죽으로 만두를 빚기로 했다.

“아, 우리 시우 안 되겠네. 이거 만두 빚어 놓은 거 봐라. 모양이 이래서 되겠냐?”

“형 거랑 내 거랑 그 나물에 그 밥이거든요? 아무도 구분 못 해.”

시우는 상준 쪽으로 몸을 기울이며 그를 장난스럽게 한번 툭 밀고 손에 들고 있는 만두피 위로 속을 올렸다.

“왜 구분이 안 돼? 여러분 구분 안 돼요? 딱 봐도 내 것은 붉은색 도는 김치만두, 시우 것은 고기만두잖아요.”

제가 만든 것이 더 괜찮다고 생각한 것인지 상준은 둘이 빚은 만두를 올려놓은 넓은 접시를 들어 카메라에 가까이 가져다 댔다. 시우가 분명 모양으로 말했지만, 상준은 일부러 색으로 말하는 것 같았다.

그러자 또 한 번 채팅창이 출렁거리고 그 안엔 시우 것이 낫다, 상준 것이 낫다, 둘 다 똑같다. 이런 채팅 글들이 빠르게 올라갔다.

“내게 더 예쁘대.”

“어디? 지금 뭐 비슷하게 말씀해 주시잖아요.”

접시를 바로 놓으면서 하는 말에 시우는 화면을 빤히 쳐다보며 올라가는 채팅을 읽으려 노력했다.

“거기 한번 주물럭거려 놓은 동그란 건 상준이 거. 납작한 데다 속 터져 있는 건 시우 거. 그런데 색을 참고하면 더 빨리 구분할 수 있다는 건 안 비밀.”

둘의 투덕거림을 간단히 정리한 현수는 ‘아니거든!’,‘아니거든요!’라는 말을 동시에 들어야만 했다.

“시우야, 난 그렇다 치고, 넌 좀 예쁘게 빚어 봐. 옛말에 그런 말도 있잖아. 예쁘게 빚어야 예쁜 딸 낳는다고.”

“……만두가 아니라 송편이겠지.”

“괜찮아요. 우리 자두 아들이야.”

상준의 말에 현수와 시우가 동시에 대답을 한 후, 그 뒤로 이어지는 것은 침묵이었다. 그와 함께 채팅창 역시 잠깐 멈췄지만, 이내 지금과는 차원이 다른 빠른 속도로 채팅이 쏟아져 내렸다.

“그쵸! 송편. 송편을 예쁘게 빚어야 한답니다.”

시우의 말을 가장 가까운 자리에서 정확히 들은 상준은 일부러 큰 소리로 말했고, 현수는 둥글게 민 만두피를 시우의 손바닥에 탁 소리 나게 올려 줬다.

“……다 들었죠?”

커다란 눈을 깜박거린 시우가 웅얼거리듯 말하자 현수는 다른 곳으로 시선을 돌렸고, 상준은 다 빚은 만두를 접시에 소리 없이 올려놓았다.

“아, 몰라. 우리 니모님들 혼란스럽고 막 이상한 추측성 기사 나오는 것보다 정확히 말하지 뭐. 우리 자두, 아들이라서 송편이든 만두든 좀 안 이뻐도 돼요. 그리고 에바니 닮으면 못생기려야 못생길 수가 없어. 괜찮아!”

라이브 할 때마다 실수를 한두 번 한 것도 아니고.

예전이면 당황하고 놀라서 라이브를 꺼 버렸을 시우지만, 임신으로 인한 호르몬 변화는 그를 대범하게 만들었다. 이번에도 얼렁뚱땅 넘어가고 어떤 말도 하지 않는다면 남 말 하기 좋아하는 언론은 제멋대로 떠들어 댈 것이 분명했다.

연예계 생활을 하면서 아니 땐 굴뚝에서 연기가 나는 건 수없이 많이 보았다. 그게 제 일이었을 때는 무시해 버리면 그만이지만,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들이 자두를 입에 올리고 제멋대로 왈가왈부하는 건 절대 듣고 싶지 않았다.

언제까지 집에만 갇혀 있을 수도 없고 벌써 2월이었다.

안정기에 접어든 시우는 슬슬 외출도 하고 싶었다. 자두가 쓸 물건들도 직접 보고 싶고, 정기적으로 병원도 다녀야 했다.

“나 지금 들은 말. 굉장히 엄청난 건데……”

“자, 에바니 전화 왔고요. 에바니 방송 보고 있었구나. 괜찮아. 억측하는 것보다 정확히 알려 주지 뭐.”

멀리서 휴대전화가 울리는 소리에 시우는 전화를 확인해 볼 생각도 하지 않고 말을 이었다.

“나나 에바니에 대해서 뭐 이상한 말 하고 그러는 건 그나마 무시하고 그러지만, 우리 자두한테 그러는 건 못 참을 것 같거든요.”

시우는 방금 현수가 손에 올려 준 만두피 위로 속을 올리면서 태평스럽게 말을 이었다. 경악한 표정으로 입을 떡 벌리고 있는 양옆의 사람과 즐겁게 라이브를 보다 당황한 니모들의 머릿속만 굉장히 혼란스러운 상황이었다.

결혼 소식을 전하면서 시우가 히든 오메가인 것을 밝혔다. 그 뒤로 한동안 가십 프로그램은 오메가와 알파, 발현, 골든 알파, 히든 오메가 등 알파, 오메가에 관한 내용으로 가득 채워졌었다. 그런데 지금 결혼한 지 얼마 됐지? 얼마 됐다고. 아기가?

“태명이…… 자두?”

얼떨떨한 현수의 말에 시우는 웃으면서 태명이 자두 맞는다고, 둘에겐 자두와 관련된 추억이 있고 자신보다 에반이 자두를 더 좋아한다는 말까지 덧붙였다.

“아! 그런데 너 괜찮아?”

방금까지 현수와 상준의 만담 같은 토크가 이어졌다면 지금은 모든 이야기가 시우에게로 쏠렸다. 만나서부터 지금까지 시우는 이것저것 계속해서 먹고 있었다. 오렌지주스. 테이블 위에 있는 다양한 디저트에 우유와 멜론도 먹었다. 만두 재료를 비롯해 다양한 군것질거리들이 주위에 있었기에 상준과 현수도 먹었었다.

군것질거리류는 그렇다 치더라도 지금 만들고 있는 음식은 만두였다. 고기만두에 김치만두 두 가지를 만드는지라 적당히 삭힌 김치도 있는데, 너무나도 멀쩡한 시우에게 절로 눈이 갈 수밖에 없었다.

아무리 임신과 출산에 대해 아는 것이 없다고 해도 임신 초기에 입덧을 한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었다.

“음, 전 괜찮아요. 에바니가 안 괜찮아서 그렇지. 출출한데 먼저 만든 것부터 쪄 볼까요?”

시우는 상준의 말에 씩- 웃고는 식탁 앞쪽에 있는 마카롱 하나를 집어 보란 듯이 입에 쏙 집어넣었다. 그래, 이 맛있는 마카롱도 못 먹고 변기통과 수시로 미팅하면서 지내던 때도 있긴 했었지.

“넌 괜찮은데 왜 에바니가 안 괜찮아?”

준비해 둔 찜기를 가져온 시우는 고기만두와 김치만두를 옮겨 담다가 심각한 상준의 표정을 보고는 웃음을 터트리고 말았다. 웃으면 안 되는 상황이긴 한데, 에반만 생각하면 절로 웃음이 나오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아무래도 대리 입덧을 하는 것 같다는 페이든의 말에 시우와 에반은 할 말을 잃었다. 도대체 이런 상태로 어떻게 지냈냐는 그의 말에 시우는 에반을 꼭 안아 주었다. 제가 대신 힘들고 싶다더니 정말 그걸 홀랑 가져가 버리냐.

약 한 달 정도 고생했던 시우와 달리 에반의 입덧은 쉽사리 사그라들지 않았다. 에반은 폭풍우가 쏟아지는 태평양 한가운데에서 일인용 카누를 타고 있는 기분이라고 설명했다. 집에서 푹 쉬었던 시우와 달리 에반은 벌여 놓은 일이 많아 마음껏 쉴 수도 없었다.

마음 같아서는 에반이 먹고 싶다는 음식을 모두 사다 나르고 싶었지만, 집에 감금 아닌 감금을 당한 시우는 그럴 수 없었고, 에반의 비서가 진땀을 빼고 있었다.

“저도 초기엔 좀 힘들었는데, 그래서 한 3kg 빠졌었나? 그랬는데 시간이 약이라고 진짜 괜찮아지더라고요. 그런데 지금 에바니가 못 먹어서 5kg쯤 빠졌어요. 회사 일도 많아서 제대로 쉬지도 못하고 그래서……”

담담하게 말하는 시우를 보며 상준과 현수는 표정 관리를 할 수가 없었다. 일단 축하한다는 말도 해야 하는데, 지금 시우의 말에 따르면 에바니가 입덧을 한다는 것 같고. 싱글 삶을 즐기고 위로 형제가 없는 그들은 임신과 관련된 정보가 없으니 마땅히 할 말이 없었던 것이다.

“우리 코코는 잠시만 혼자 두면 사고 치지. 형들, 잘 지냈어요?”

시우의 돌발 발언에 뒤집혔던 채팅창은 아직 모습이 보이진 않지만, 그들에게 너무나도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오자 또 한 번 난리가 났다.

우리 시우, 그냥 쭉 라이브만 하자.

우리는 네 라이브를 너무 사랑한단다.

에반까지 나타난 상황에서 언제 라이브가 꺼질지 모른다는 불안감에 니모들의 감각이 그 어느 때보다 예민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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