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리스타트(Restart)-155화 (155/187)

외전 1. 그들의 공개 연애 – 팬 미팅 편 (1)

시우의 엄청난 폭로로 끝난 라이브 이후 에반과 시우가 선택한 것은 역시나 침묵이었다.

에반의 공개 프러포즈에 이어 시우의 각인 언급까지 둘을 향한 러브콜과 뒷이야기들이 무성해졌지만, 굳이 해명할 필요를 느끼지 못했다.

둘의 이야기가 가십으로 퍼지는 것이 싫어 에반과 시우는 모든 방송과 인터뷰를 거절했다.

“꼭 그래야겠다고?”

“뭐 어때요. 기자들이 올 것도 아니고.”

“그래서 팬들께는 꼭 그 모습을 보여야겠니?”

찬은 허리에 손을 올린 채, 제 앞에 있는 두 사람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그나마 처음부터 조심하는 모습을 보였던 시우가 두 손으로 제 허리를 감싸고 있는 에반의 손등을 찰싹찰싹 때렸지만, 얼굴에 철판을 깐 에반은 어깨만 으쓱했다.

여기 대기실이잖아. 이미 오랜 시간 같이해 온 스태프들만 있다고 해도.

시우를 꼭 네 다리 위에 앉혀 놓고 어디 가지도 못하게 꼭 끌어안고 있어야 속이 시원하니?

“그냥 옆에 앉는 거잖아요.”

옆에만 앉는 것이긴 하다. 하지만 에반의 돌발 행동과 가끔 필터 따위는 없는 것처럼 엄청난 폭탄 발언을 하는 시우를 생각하면 그건 옳은 선택이 아니었다.

“냅둬요. 떨어뜨려 놓으면 팬들 에반이 옆모습만 보시다가 갈 수도 있잖아요. 쟨 카메라고 관객이고 모두 무시하고 오로지 시우만 보고 있는데.”

상준은 찬과 에반의 실랑이를 지켜보다 결국 한마디 거들었다.

“시우, 이리 와.”

현숙의 부름에 에반의 품에서 겨우 벗어난 시우는 얼른 그녀의 옆으로 갔다. 그는 화려한 액세서리가 가득한 상자 안에서 나비 모양의 귀걸이부터 골랐다.

“나비로 하게? 그럼 팔찌는 이쪽 라인이랑 섞으면 되겠다. 반지는 여기 세 개. 이건 협찬이니까 무조건 해야 해.”

오늘도 취향에 맞춰 액세서리를 주렁주렁 착용한 시우는 거울 앞에 서서 제 모습을 점검했다.

오랜만의 팬 미팅이었다. 니모들이 에반과의 관계에 관해 많은 질문을 할 것 같지만, 기자들 앞에서 심문당하듯 둘 사이를 이야기하는 것보다 이런 자리가 훨씬 편했다.

“아……. 시우 상의 다른 것 없어요?”

시우에 이어 에반에게 착용할 액세서리를 건네주던 현숙은 불만 가득한 그 목소리에 소리 내어 웃어 버렸다.

“왜? 이제 와서 마음에 안 들어? 네가 컨펌한 거야.”

작고 동그란 링 귀걸이를 건네주고는 에반이 이미 착용하고 나온 고급 시계를 확인하고 반지 네 개를 건넸다. 그중 한 개는 조금 전 시우에게 건넸던 것과 같은 것이었다.

“저거 곤란한데. 진짜.”

현숙이 건넨 반지를 양손에 나눠 끼면서도 에반의 시선은 계속 시우에게 닿아 있었다. 산들산들 따스한 바람이 부는 봄. 이번 미니 앨범은 산뜻하고 가벼운 곡이 메인이었다. 덕분에 그들의 의상은 파스텔 톤으로 일명 남친 룩과 비슷한 구성으로 이루어졌다.

시우는 제 취향을 한껏 반영한, 군데군데 찢어져 무릎과 허벅지 여기저기의 속살을 묘하게 드러낸 청바지에 빨간색의 하이 컨버스, 오버핏의 연분홍 크롭 티를 입고 있었다.

팔을 내리고 있을 땐 괜찮았지만, 시우가 두 손을 올리는 순간 늘씬하게 빠진 허리선이 만천하에 드러났다.

“누나, 이것 좀 정리해 주세요.”

조금 뻗쳐 나온 머리카락이 거슬렸는지, 두 손으로 그 머리카락을 가리키며 스타일리스트에게 가는 것을 본 에반의 입에서 결국 한숨이 흘러나왔다.

“준비 끝났지? 올라가자.”

“예쁘기만 하고만. 너 그렇게 단속하면 시우한테 미움받는다.”

무대로 가자는 대환의 말에 상준은 에반의 옆을 지나치면서 그의 어깨를 툭 치고 기어이 한마디 하고 말았다.

공개 아닌 공개 연애가 된 이후 에반은 주위에 누가 있든 어떤 상황이든 제 감정과 표현을 숨기지 않았다. 처음엔 시우도 말리는 것 같았지만, 지금은 그 역시 포기해 버린 것이 분명했다.

“아……. 형~ 그건 아니죠.”

옆에서 들리는, 예찬의 칭얼거리는 소리에 상준은 손을 이마에 대고 속에서부터 우러나오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아니긴 뭐가 아니야. 어린 게 어디서!”

“우와, 한 입으로 두말하기 있어요? 언제는 어려서 좋다며.”

“입 다물어라.”

“입 다물면 허락해 주는 거죠?”

상준은 앞서 나가는 찬과 그 뒤에 강아지처럼 쫄래쫄래 따라붙은 예찬의 대화를 다 알아들은 자신을 저주했다.

“조용히 해라.”

“허락해 주면 조용히 하지.”

봄이네, 봄. 아주 여기저기 꽃밭이여.

나만 외롭지.

팬들의 함성을 들으며 팬 미팅 무대에 올라선 시우는 쑥스러움에 혀끝을 살짝 물고는 작게 웃었다. 제 자리에 서서 오션의 구호를 외치고 반갑게 맞아 주는 니모와 눈인사를 나누고는 자리에 앉으려던 시우는 이상한 느낌에 뒤돌아보았다.

못산다, 진짜.

나란히 있으면 안 된다는 찬이 형의 우려가 벌써부터 실현되고 있었다.

그냥 앉아. 앉으면 되잖아. 의자를 빼 준 에반의 작은 턱짓에 시우는 고개를 흔들면서 앉았고, 에반은 시우가 제대로 앉은 것을 확인하고서야 옆자리에 앉았다. 등장 때보다 더한 환호를 받은 시우는 쉽사리 고개를 들 수 없었다.

“니모~ 저도 여기 있습니다. 여기 에반이랑 시우만 있는 거 아니거든요?”

장난스러운 상준의 말에 모두 웃음을 터트렸고, 화기애애한 분위기에서 팬 미팅의 막이 올랐다.

테이블 제일 끝에 앉은 시우는 스태프가 가져다준 앨범에 사인을 하기 시작했다. 어차피 팬분이 제 앞으로 오시기까지는 어느 정도 시간이 걸릴 테니 그리 서두르진 않아도 될 듯싶었다.

에반 역시 제 옆에서 사인을 하고 있었다.

“시우!”

“코코야!”

“코코!”

제 차례가 오길 기다리던 팬들이 저를 부르자, 시우는 살짝 고개를 들어 관객석을 바라보았다.

“잠시만요. 코코는 저만 부를 수 있는데, 왜 다들 그렇게 부르시는 거죠?”

에반의 말에 웃음소리가 팬 미팅장을 가득 채웠다.

“왜 웃어요. 저 진심인데.”

“에바니가 하는 말 신경 쓰지 마세요.”

결국 시우는 제 앞에 놓인 마이크를 들고는 에반을 흘기며 한마디 건넸다.

“그럼 시우는 에반이 어떻게 불러요?”

팬 미팅 자리여서 그런 것인지 아니면 이곳에 오신 분들의 배려가 깊은 것인지 모르겠지만, 난감하거나 노골적인 질문이 아닌 에두른 질문이 쏟아졌다.

“에바니를 에바니라 부르지 뭐라고 불러요.”

사인을 모두 끝낸 앨범을 옆으로 살짝 밀어 놓자 스태프가 가져갔고, 할 일이 없어진 시우는 테이블에 팔을 올려 턱을 괴고는 손끝으로 제 볼을 두드리며 눈웃음을 지었다.

“에반아! 언제부터였어?”

아무래도 시우에게 말을 해 봤자 큰 소득이 없을 것 같았던지 질문의 대상이 에반으로 바뀌었다.

“처음부터.”

“헐…….”

질문과 동시에 나온 에반의 대답에 아주 짧은 침묵이 공간을 채웠다가 곧 웅성거림으로 바뀌었다. 에반과 팬들이 아슬아슬 선을 넘지 않는 대화를 주고받는 걸 들으면서 물을 마시던 시우는 두 분이 슬며시 꺼내 든 플래카드를 보다 얼른 고개를 푹 숙였다.

[그래서 결혼식은 영국이지?]

[누나 여권 10년짜리로 만들어 놨다!]

콜록. 콜록.

사레 걸린 시우는 스태프가 가져다준 티슈로 앞에 흘린 물을 정리하며 계속 기침을 했다.

나란히 앉은 것도 아니고 팬분의 좌석이 제법 떨어져 있었는데, 묘하게 이어지는 그 문구를 에반 역시 봤는지 옆에서 웃음소리가 들렸다.

“놀랐어?”

계속 기침을 하는 제 등을 쓸어 주며 에반이 웃음이 묻어나는 목소리로 물어 오는 걸 보노라니, 오늘 팬 미팅은 쉽지 않을 것 같았다.

“저건 생각도 못 했는데, 영국에서 할까?”

“조용히 해.”

둘이서만 말하지 말고 우리도 알려 달라는 팬들의 아우성이 빗발쳤지만, 어깨를 으쓱하는 에반의 앞으로 팬분이 앉으셨기에 둘의 대화는 길게 이어지지 않았다.

“감사합니다.”

팬분이 건네는 화관을 머리 위에 올린 시우는 환하게 웃으며 손을 들어 브이를 만들고는 몇 초간 사진을 찍을 시간을 준 후 제 앞에 놓인 포스트잇을 찬찬히 읽었다.

[Q. 에반의 잠버릇은?

-목석처럼 꼿꼿하게 일자로 잔다.

-사방팔방 몸부림이 심하다.

-엎드려 잔다.

-코골이나 이갈이가 있다.

-꼭 끌어안고 잔다.

-기타( )]

잠시 생각에 잠겼던 시우는 과감히 펜을 움직였다. 바로 앞에 계신 분은 시우도 익히 잘 알고 있는 팬이었다. 1집부터 꾸준히 사랑해 주시고, 예쁜 사진도 많이 남겨 주셨다.

[제가 에바니 위에서 자요.]

6번 기타란에 적힌 시우의 멘트를 읽은 팬이 동공 지진을 일으키며 고개를 들었고, 시선이 마주치자 시우는 웃으며 윙크를 날렸다.

[Q. 첫 키스는 어디서?]

가끔 자리에 앉아서 말을 걸 때는 평범한 질문들을 하더니 조용히 내미는 포스트잇은 매운맛이 가득했다. 다시금 포스트잇의 질문은 읽은 시우는 옆에 앉은 에반을 흘깃 훔쳐보았다.

제 머리엔 화관이 있는데, 에반의 머리엔 앙증맞은 새싹 핀 하나가 꽂혀 있었다.

[첫 키스의 기준이 뽀뽀인가요? 확실한 키스인가요?]

“뽀뽀……. 아니, 키스?”

시우가 적는 것을 지켜보던 팬의 입에서 나오는 소리에 시우는 어안이 벙벙한 팬분과 눈이 마주치자 소리는 내지 않고 입만 벙긋거렸다.

‘차 안’

오션을 만난다는 셀렘을 가득 안고 이곳에 온 팬들은 멤버들과 만나 일일이 악수를 하고 짧은 대화를 나누면서 준비해 온 선물을 전해 주며 교감하다가 마지막 시우를 거친 후 다들 얼빠진 얼굴로 무대를 내려가고 있었다.

“에반아! 마지막 콘서트에서 시우한테 뭐라고 했어?”

에반은 팬분들이 이동하는 사이 잠시 짬이 나자 크게 자신을 부르고 건네는 질문에 웃으면서 마이크를 잡았다. 팬분과 손깍지를 끼고 소통을 하던 시우가 고개를 돌려 자신을 보고 있었고 모두의 시선이 제게로 쏠렸다.

“사랑해.”

싱긋 웃은 에반은 나지막한 목소리로 시우를 보면서 말했다.

“나도 사랑해.”

여기서 어쭙잖은 모습을 보였다가는 밀릴 것 같아 냉큼 마이크를 집어 든 시우는 지지 않고 똑같은 대답을 돌려주었다.

“Coco, Would you marry me if I asked?”

한쪽 눈썹을 쓱 올리면서 그윽한 목소리로 에반이 건네는 말에 시우는 고개를 푹 숙였다.

“이 인간아! 그만하라고!!!!! 언제까지 그럴래. 안 해! 안 해! 안 해!!!!!!!”

그러다 이내 고개를 들면서 아주 확실한 대답을 버럭 내질렀다.

“그래. 시우 너 말 잘했다. 이것들아! 여기가 팬 미팅장이냐. 너네 연애장이냐. 내 진즉에 저것들 떼 놔야 한다고 했지?”

결국 지금까지 팬들과 소통하고 작은 소란이 나는 와중에도 꾹 참고 있던 찬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소리를 지르는 것과 함께 팬 미팅은 본격적으로 대환장의 늪에 빠져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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