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3화
3년 후.
시우는 아름다운 빛의 향연 그 가운데 서 있었다.
수많은 사람들의 입에서 오션과 멤버들 및 제 이름이 흘러나왔다.
환호성과 열기. 계속 이어지는 노래와 안무에 심장이 터질 듯 뛰어 댔다.
“니모! 사랑해요!”
마이크를 입에 가져다 댄 예찬이 외치자 그보다 더 큰 사랑해, 라는 말이 물결처럼 밀려들었다.
무대의 끝에 선 시우는 넋을 놓고 이 모든 순간을 가슴에 눌러 담았다.
화려한 무대는 끝나 가고 있었다. 본무대도 끝나고 마지막 앙코르 무대였다.
시우의 눈에서 동그란 눈물방울이 볼을 타고 흘렀다. 하지만 시우는 얼굴을 가릴 수도, 눈을 감을 수도 없었다. 뿌옇게 번졌다가 다시 맑게 보이는 이 광경을 조금도 놓치고 싶지 않았다.
마지막이다. 제가 꿈꾸던 모든 일이 마법처럼 이루어졌다.
그랬기에 이 순간의 무엇 하나 놓치고 싶지 않았다. 큰 소리와 함께 폭죽이 터지고 꽃가루가 눈처럼 떠다녔다.
스물세 살의 시우는 오션의 멤버로 7개월째 해외 투어를 하고 있었다.
그리고 오늘은 길었던 해외 투어의 마지막 날이었다.
해외 투어의 마지막 날이자 매번 반복되는 삶의 끝이자 시작의 날이었다. 오늘 밤 자정. 어떤 변화가 일어날지 알 수 없었다.
배경처럼 깔리는 음악에 맞춰 멤버들은 자유롭게 무대를 오가고 있었다.
울음이 터질 것 같아 시우는 한 손으로 제 입가를 가렸다. 자신과 에반이 함께 가사를 붙인 곡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제 파트였지만 차마 부를 수가 없었다.
제 목소리 대신 팬들이 불러 주는 노래가 공연장을 가득 채웠다.
괜찮아, 울지 마. 다양한 말이 울렸고, 또 한 번 울리는 함성과 함께 시우는 제 뒤로 누군가가 다가오고 있음을 알아챘다.
살짝 고개를 돌리자 커다란 전광판에 우는 제 모습이 그대로 나가고 있었다. 그리고 그 모습을 본 에반이 무대를 가로지르며 뛰어오고 있었다.
그 상황에서도 에반은 제 파트를 완벽하게 소화하고 있었다.
‘이제 우리 사랑만 하자.
It’s our destiny
baby, I love you.’
멋쩍음에 고개를 숙이고, 소매 끝으로 흠뻑 젖은 얼굴을 톡톡 두드렸다.
앙코르에 이 곡이 있는지 몰랐는데. 어쨌거나 이제 정말 무대에서 내려가야 할 시간이었다.
꿈에서 깨어나 현실로 돌아갈 시간이다.
“…….”
손을 흔들고 웃어 주면서 돌아서려던 시우는 뒤에서 저를 끌어안는 에반의 행동에 피식 웃어 버렸다. 동시에 귀를 울리는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이젠 공개도 아니고 비공개도 아니고 모르겠다. 다만 팬들이 이런 모습을 좋아한다는 것만은 확실히 알고 있었다.
“어. 음. 이곳이…….”
다른 멤버들은 다 무대를 내려가는 중이라 같이 내려가자고 온 줄 알았는데, 갑자기 에반이 말을 시작하자 팬들의 소리가 점차 작아졌다.
“저와 시우에겐 추억이 많은 곳이거든요.”
에반이 뜬금없는 말을 꺼내자 시우는 숙이고 있던 고개를 들었다.
“처음 코코랑 여기 왔을 때, 아주 늦은 밤 사람들이 아무도 없을 때 야경을 보고 싶다고 했어요. 은은한 조명을 받는 다리도 건너고 싶다고.”
에반이 무슨 말을 꺼내는지 알아들은 시우는 얼른 몸을 돌려 에반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의 품을 벗어나며 더는 말을 하지 못하게 막으려 했다.
손을 들어 에반의 입을 막으려 했지만, 에반은 마주 보는 것과 동시에 시우의 이마에 가볍게 입을 맞췄다. 그리고 그 상황은 대형 전광판에 그대로 생중계되었다.
이런 작은 행동에도 크게 반응하는 팬들의 함성이 사그라들길 기다린 에반이 다시 말을 이었다.
“그런데 어제 새벽에 그 다리를 같이 건넜거든요. 코코가 그렇게 좋아할 줄 알았으면 그때도 몰래 나왔을 텐데. 조금 아쉽더라고요.”
‘하지 마.’
에반이 하는 말을 막지 못한 시우는 입술을 벙긋거리며 제 의사를 전했다.
“오늘이 마지막 날인데 시우에게 사랑한다고 말해 주세요.”
그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콘서트장 안은 사랑한다는 말로 가득 찼다. 에반의 돌발 행동을 막으려던 시우는 다시금 관객 쪽으로 몸을 틀었다. 응원 봉이 만들어 내는 빛과 제게 사랑한다고 말해 주는 그 목소리에 겨우 멈춘 눈물이 또 흘렀다.
방금 부른 노래에 어떤 의미가 담겨 있는지 그리고 지금 에반이 말한 ‘오늘이 마지막 날인데’ 이 부분의 진정한 뜻 역시 이들은 모른다.
“…….”
에반이 다시금 입을 열었지만, 팬들의 소리에 묻혀 버렸다.
“쉿!”
검지를 세워 입술에 살짝 대는 에반의 작은 행동에 순식간에 콘서트장은 조용해졌다.
“제가 시우 더 사랑해요.”
아주 사귄다고 밝히지 그러냐. 하지만 에반의 이런 말은 이제 흔히 하는 말이 되어 버렸다. 멤버 간에 주고받는 사랑한다 좋아한다는 말은 가벼운 인사말처럼 들리기도 했다.
“……ma…….”
에반의 말이 또 환호성에 먹히자, 금세 또 침묵이 찾아들었다.
“Coco, Would you marry me if I asked?”
지금 제가 들은 말을 다시금 되새기던 시우의 눈이 동그래졌다.
미쳐도 단단히 미쳤구나, 에반 루이스.
이럴 때도 환호성이 나와야 하는 거 아닌가? 콘서트장은 무서울 만큼 조용해졌고 수만 명의 눈이 시우에게 꽂혔다.
무대 아래 있는 스태프까지 당황한 표정으로 이곳을 응시하고 있었다.
슬금슬금 에반의 품에서 벗어난 시우는 흘깃 뒤를 돌아보았다. 제 얼굴이 커다랗게 나오는 전광판을 보고는 싱긋 웃었다. 에반이 만들어 낸 다큐를 예능으로 만드는 방법은 간단했다.
“Not yet.”
짧은 대답을 남긴 시우는 대기실을 향해 있는 힘껏 달렸다.
* * *
커다란 일인용 소파에 앉은 에반이 제 허리를 낚아채자, 시우는 순순히 그의 허벅지 위에 앉았다. 온몸의 힘을 빼고 그의 몸에 기댄 시우는 창밖에 시선을 뒀다.
무대에서 내려오자마자 도끼눈을 뜬 명훈을 마주해야 했다. 모두들 입에 올리지 않았지만, 해명을 요구하는 눈빛을 보냈다.
‘내일 이야기하죠. 피곤해서.’
끈덕지게 달라붙는 눈빛을 덤덤하게 무시한 에반은 자신을 데리고 콘서트장을 벗어났다.
“이제 어떻게 할 거야?”
“어차피 돌아갈 거잖아.”
그 말에 시우는 에반의 왼손을 끌어당겨 그의 손목에 있는 시계를 보았다.
11시 50분.
정해진 운명의 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
“지난번엔 달랐잖아.”
“……내가 말한 거 기억하지?”
시우는 제 머리에 입술을 댄 채 속삭이는 에반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네 휴대전화로 전화를 건다. 혹시나 연결되지 않으면 집사님께 전화한다.”
어느 시간대의 어떤 상황으로 돌아갈지 모른다. 평소와 같다면 열여덟 살 반지하 단칸방이겠지만, 다르다고 해도 만날 방법은 있었다.
“또?”
“네게 연락이 닿지 않아도 일단 내 삶을 열심히 산다. 네가 찾아올 거니까.”
“그래. 그러면 돼.”
맞닿아 있는 두 심장이 같은 속도로 뛰고 있었다.
에반의 페로몬을 느끼며 시우는 눈을 감았다. 여전히 에반은 제 머리에 입술을 대고 있었고, 자신을 꼭 안고 있었다.
“사랑해.”
시간이 멈춘 것 같은 순간 에반의 속삭임이 시우의 가슴을 울렸다. 하지만 시우는 선뜻 눈을 뜰 수 없었다. 눈을 뜨면 정말 사라질 것 같아서.
에반의 손이 턱 끝을 잡았고, 이내 촉촉한 입술이 시우의 입술을 찾아들었다. 가벼운 입맞춤도 짙은 열기를 품은 키스도 아니었다.
부드럽게 숨결이 섞여 들었고, 둘의 페로몬이 하나가 되듯 어우러졌다.
모든 것을 잊게 만드는 키스에 빠져들었던 시우는 묘한 느낌에 눈을 번쩍 뜨고 다시금 에반의 왼손을 잡아끌었다.
“12시 8분.”
“12시 10분.”
“12시 16분.”
계속되는 침묵 속에서 시간이 흐르고 가끔 시우가 시계를 읽는 소리가 공간을 울렸다.
에반의 품에서 벗어난 시우는 거칠게 제 머리를 쓸어 넘기며 여전히 소파에 앉아 있는 그를 노려보았다.
“……미친. 좆 됐네.”
에반이 저지른 일을 수습할 시간이었다.
-f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