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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스타트(Restart)-124화 (124/187)

124화

빠르게 뛰는 심장 소리가 머릿속에서 울리는 것 같았다. 몸 안 깊은 곳에서 시작된 열기는 발끝까지 퍼져 나갔고, 두통이 가득했던 머릿속은 강한 쾌감이 휩쓸고 있었다.

바스락거리는 시트가 스치기만 해도 아린 피부 위로 에반의 뜨거운 손길이 닿을 때면 시우는 헐떡이며 거친 숨을 내뱉었다. 에반의 입술이 모든 곳에 내려앉았다. 얼굴을 맴돌기도 했고, 어느 순간 쇄골과 가슴을 훑어내렸다.

“에바나…….”

그러려고 그러는 것이 아닌데 계속 말끝이 늘어졌다. 제 가슴을 간지럽히는 검은 머리카락을 손끝으로 건들던 시우의 몸이 파드득 튀었다. 몸을 들끓게 하는 감각과 함께 뜨거운 에반의 혀와 입술이 집요하게 물고 빨아 대자 시우의 허리가 절로 들썩였다.

“응?”

자신의 부름이 그에게 닿았는지 슬쩍 고개를 드는 그의 얼굴을 보는 순간 시우는 할 말을 잃었다. 동시에 잡아먹을 것처럼 덮쳐 오는 음란한 페로몬에 아래가 젖어 들었다.

뜨거운 아래에서 시작된 열기에 아랫배가 당겨 왔다.

상체를 훑어내리던 에반의 손이 슬랙스 버클에 닿았고, 이내 시우의 몸에는 어떤 실오라기 하나 남아 있지 않았다.

하얀 도화지 같던 시우의 몸 위로 에반의 손이 검은 먹물을 잔뜩 머금은 붓인 양 마음껏 누비고 다녔다. 손에 이어 입술이 내려앉는 곳엔 어김없이 붉디붉은 자국이 새겨졌다.

부드러운 물결처럼 움직이던 손은 어떨 땐 강하게 움켜쥐었고, 때로는 뭉근하게 문질러 더한 자극을 불러일으켰다. 몰아치는 감각에 시우의 두 손은 시트를 한껏 움켜쥐었다. 지금 제가 할 수 있는 것은 그가 가져다주는 쾌락에 숨을 몰아쉬며 헐떡이는 것이 전부였다.

“하읏…….”

아랫입술을 물어 보아도, 숨을 몰아쉬어 보아도 한번 달아오른 몸은 더한 것을 원했다. 조금 더, 조금 더. 에반의 손이 곧게 뻗은 다리를 쓸었다. 지금껏 누구의 손도 닿지 않았을 보드라운 피부를 따라 진득하게 움직인 그의 손끝이 시우의 은밀한 곳에 닿았다.

강한 쾌락으로 이성을 모두 날려 버리는 히트 사이클에 취한 오메가의 몸은 알파를 받아들일 준비를 이미 끝낸 상태였다. 다른 곳보다 유독 짙은 유혹의 페로몬을 품은 곳을 건드리자 시우의 입에서 숨기지 못한 신음이 터져 나왔다.

낯선 감각에 놀란 시우를 달래듯 에반은 가슴을 맞대며 시우에게 입을 맞췄다. 놀라고 당황한 시우를 달래듯 부드럽게 살짝 벌어진 입술 사이로 혀를 밀어 넣으며, 에반의 손가락은 그 어떤 것도 품어 본 적 없는 은밀한 곳으로 파고들었다.

“아……흣. 흐……. 에반……. 에바나…….”

불안정한 호흡과 떨림 가득한 목소리에 에반은 시우의 귓불에 입을 맞췄다.

“코코, 나 여기 있어.”

“……뜨거……워. 이상…… 이상해.”

귀를 기울이지 않는다면 들리지 않을 정도로 작게 웅얼거리는 시우의 투정은 고스란히 에반의 귓가에 녹아들었다.

“쉬, 괜찮아. 이상한 거 아니야. 이러지 않으면 네가 힘들어.”

바르작거리며 시트를 움켜쥐고 있던 시우의 손이 에반의 어깨에 닿았다. 뜨거운 체온과 자신만큼이나 숨이 가쁜 에반의 몸을 느끼자 시우의 입가에 흐릿한 미소가 피어났다. 하지만 이내 몸을 가르며 파고드는 것이 늘어나자, 에반의 어깨를 잡은 손에 절로 힘이 들어갔다.

지금껏 그와 끌어안고 잠들고 수없이 나누었던 입맞춤은 머릿속에서 싹 잊혔다. 느릿하게 움직이는 에반의 손이 만들어 낸 감각은 이루 설명할 수 없는 것이었다. 낯설고 생소한 그 행동에 발끝이 움츠러들었다. 느리게 때로는 빠르게 움직이던 손끝이 한 지점을 스치는 순간 결국 시우는 울음을 터트렸다.

이미 감당할 수 없는 감각에 도망가려 해도 에반의 손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제가 느끼는 부위를 알아 버린 에반이 그곳을 건드릴 때마다 눈앞이 하얗게 변했다.

예민하게 달아올라 짜릿하게 파고드는 감각에 속수무책 흔들리던 시우의 손끝이 에반의 셔츠를 긁어내렸다.

“하아. 하읏……흐. 에바나……. 이거 말고…… 응?”

젖은 얼굴로 애원하는 시우의 목소리를 듣는 순간, 눈곱만큼 남아 있던 에반의 이성이 모두 무너져 내렸다. 거추장스럽게 제 몸에 들러붙어 있는 옷을 벗어 던진 에반이 시우 위로 몸을 겹쳤다.

부드럽게 맞닿은 모든 부위가 감당할 수 없는 열기에 휘말렸다.

“코코.”

애칭으로 자신을 부르는 에반의 목소리에 시우는 감고 있던 눈을 천천히 떴다. 목소리는 다정했고, 또다시 제 얼굴에 키스를 퍼붓는 그의 입술 또한 다정했지만, 시우는 선뜻 대답할 수가 없었다.

어떤 생각도 할 수 없게 몰아치는 쾌감 사이에 익숙지 않은 고통이 스며들었다. 울컥 올라오는 감정을 억누르려 시우는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시우, 시우야.”

한껏 낮아진 목소리로 저를 재차 부르는 그와 시선을 맞추는 시우는 두 팔을 뻗어 에반을 끌어안았다. 히트 사이클? 페로몬? 그런 것에 휘둘리는 것이 아니었다.

“사랑해.”

단 한 번도 그에게 해 보지 않은 말이었다. 시간만 나면 수시로 장난처럼 아니면 진지하게 늘 그가 제게 속삭이던 말이었지만, 지금껏 입 밖으로 내뱉지 못한 단어였다.

“……내가 더 사랑해.”

에반을 향해, 숨겨진 자신을 찾아낸 알파를 향해 열린 곳으로 강한 압박감이 밀려들었다.

“사랑해…… 사랑해…… 나의 페어.”

끊임없이 울리는 속삭임에 시우의 입술이 다시금 에반의 입술을 찾았다.

생소한 아픔. 하지만 그 안에 더 깊은 감정이 녹아 있었다. 조금씩 천천히, 하지만 거대한 존재감을 드러낸 것이 시우의 안으로 파고들었다.

“흐으…….”

서로에게 자극제가 되는 페로몬이 뒤엉키고, 때마침 터진 히트 사이클이 모든 것을 완화시켜 준다고 해도 그를 완전히 품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끊임없이 밀려드는 것이 몸 안을 가득 채웠다.

모든 것이 처음이었다. 누군가를 이렇게 좋아하는 것도,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것도, 감정을 공유하는 것도. 에반이 제게 주는 모든 것이 낯설었다. 하지만 그건 그 어떤 것보다 강하게 시우를 뒤흔들었다.

“더……. 나…… 괜찮아.”

살짝 미간을 찌푸린 에반의 볼을 만지며 시우는 나지막이 읊조렸다. 그가 제게 주는 것만큼 저도 그에게 주고 싶었다. 느릿하게 에반이 움직이기 시작하자 시우의 몸이 파르르 떨렸다. 지금까지와는 비교도 할 수 없는 강한 감각이 혈관을 타고 온몸으로 퍼져 나갔다.

에반의 움직임에 시우의 몸이 덩달아 흔들리고, 그가 빠르게 움직이자 그의 얼굴을 감싸고 있던 시우의 두 손이 그의 어깨를 쥐었다.

끊임없이 밀려들어 가득 쌓이는 쾌락에 시우의 입에선 연이어 신음이 터져 나왔다.

깊은 곳까지 강하게 치고 들어왔다가 빠르게 빠져나가는 그 움직임에 시우의 손끝이 에반의 어깨와 팔뚝에 박혔다.

미칠 듯이 달콤하고 자극적인 감각에 시우는 에반의 품에서 울고 또 울어야 했다. 방 안을 가득 채운 공기가 모두 에반의 페로몬같이 여겨졌다. 시우의 모든 세상을 에반이 채워 버렸다.

“흡. 흐윽. 흣…….”

정신없이 몰아치는 쾌락이 척추를 타고 오르내리고, 제 몸을 묵직하게 누르는 그의 무게감이 땀에 젖은 살결과 뜨거운 체온과 뒤엉켰다.

“코코……. 하아…… 미안해.”

에반의 움직임을 힘겹게 따라가던 시우는 긴 한숨과 함께 들리는 미안하다는 말에 흠칫 몸을 떨었다. 그리고 그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분위기가 완전히 바뀌어 버렸다.

“……!”

붉게 달아오른 시우의 입술이 벌어졌지만, 어떤 말도 흘러나오지 않았다. 지금까지와는 다르게 한계까지 거칠게 몰아가는 에반의 움직임에 시우는 그에게 매달릴 수밖에 없었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아니 시우가 내뱉는 모든 숨결까지 에반에게 먹혀 버렸다.

흉포하게 날뛰는 에반을 품기 급급했다. 끝없이 몰아치는 거친 폭풍우에 휘말린 것 같았다. 고통과 쾌락, 불편함과 흥분감. 감당할 수 없는 감각이 온몸을 지배했다.

미칠 것같이 강한 자극에 숨이 막히고, 등 뒤에 쓸리는 시트의 촉감과 그에게서 전해지는 열기에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고요함만이 가득한 어두운 밤의 끝은 둘이 만들어 내는 은밀한 소리로 가득 찼다.

곧이어 뜨거운 무언가가 잔뜩 밀려드는 감각에 턱, 하니 막혔던 숨이 트였다. 에반의 어깨를 틀어쥐고 있던 손에서 힘이 빠지며 그의 팔뚝을 따라 시우의 손끝이 타고 흘렀다.

에반이 안겨 주는 복합적인 감각에 시달리던 몸에서 힘이 쭉 빠져나갔다. 그와 살결을 맞대고 있는 모든 부분이 저릿저릿했다. 빠르게 뛰는 심장 소리가 제 것인지 에반의 것인지 구분이 되지 않았다.

에반 역시 몸의 힘을 조금 뺐는지 침대에 파묻을 기세로 묵직하게 누르는 그 무게에 시우의 입꼬리가 흐릿하게 올라갔다. 충만함과 행복함. 격한 감정이 몰아쳤다.

손가락 하나 까딱할 힘도 없는 시우와 다르게 에반은 시우의 목덜미에 얼굴을 묻고 있었다. 장난을 치듯 킁킁거리는 행동에 시우의 입에서 바람 빠진 듯한 웃음이 흘러나왔다.

“달아.”

“뭐가?”

“너. 달아서 미칠 것 같아. 먹어도 먹어도 먹고 싶어.”

간질거리는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하는 에반의 혀끝이 목덜미를 핥자, 시우는 어깨를 움츠렸다.

“먹는 거 아니야.”

“내 페로몬이 뭐야?”

귓불에 귀 뒤에 목에 어깨에 쇄골에 에반은 입술을 문지르고 혀로 핥았으며, 가끔은 이를 세워 잘근거리며 살결을 씹었다.

“박하.”

이제는 잠결에도 선명하게 기억할 향을 솔직하게 말했다. 지금껏 에반이 제게 몇 번이나 물었지만 대답해 본 기억이 없었다.

“그래. 넌 자두야. 그건 알아?”

“진짜 후발현이 아니야?”

끔찍한 고통을 가져다주던 두통도 온몸을 잠식하던 열기도 한층 가신 시우가 떠올린 건 그것이었다. 분명 영어로 대화할 때 후발현이 아니라고 했고, 제 페로몬도 나지 않는다고 말했다. 하지만 지금 에반은 제 페로몬이 자두라고 말했다.

그리고 지금껏 생각 없이 숨을 쉬던 시우의 코끝에 낯선 향이 걸렸다. 차에서도 스치듯 느꼈다. 달다는 것을. 분명 시원한 박하 향이 가득해야 할 공간에 달달한 것이 숨어 있었다. 굳이 그 향을 찾는다면, 에반의 말대로 자두 향 같았다.

“아니야.”

단호하게 후발현이 아니라고 자르는 에반의 말에 시우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그리고 이 부분에 대해 정확히 하기 위해 여전히 자신의 목덜미에 장난을 치는 에반의 머리를 손으로 천천히 쓸었다.

“우리 이야기…….”

이야기 좀 하자는 말을 하려고 했지만, 시우는 그 말을 제대로 끝맺지 못했다.

“이야기는 앞으로 얼마든지 할 수 있어.”

잠시 긴장을 푼 제 탓이었다. 둘은 여전히 깊게 이어져 있었고, 슬쩍 에반이 움직이는 것만으로도 사그라들던 불씨는 순식간에 활활 타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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