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3화
에반에게 의지한 채 그의 품에 안겨 있던 시우는 그의 가슴을 두 손으로 밀며 둘 사이에 거리를 만들었다. 늦은 밤. 한적한 도로를 빠르게 달리는 차 안은 어두웠기에 에반의 표정을 읽을 수 없었다. 하지만 그 어느 때보다 뚜렷하게 시우는 그를 느낄 수 있었다.
느릿하게 움직인 시우의 입술은 에반의 입술이 아닌 턱에 닿았다. 아슬아슬하게 입술이 닿기 직전 에반이 고개를 틀어 버린 탓이었다. 아래로 시선을 내리깐 시우는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뿌연 안개가 낀 것처럼 모든 사고가 멈춰 버린 머릿속에서 한 가지 사실이 맴돌았다.
분명 괜찮다고 했잖아, 내가 오메가여도. 그런 건 중요치 않다고 했잖아. 우리는 페어라고 했고, 그런 건 상관없다고 했는데.
방금 그가 한 말은 제가 오메가임을 인정하는 말이었다. 베타에게 히트 사이클이 나타날 리가 없으니까.
오늘 아침까지만 해도 침대에서 달콤한 키스를 나누었다. 하지만 지금 그의 행동은 명백한 거절이었다. 에반의 가슴 위에 펼쳐져 있던 시우의 손이 움츠러들어 작은 주먹이 만들어졌다.
계속해서 그에게 닿고 싶은 마음을 추스르며 시우는 그의 품을 벗어나려 했다. 맞닿아 있는 아래가 뜨거웠다. 그리고 자신만 그런 것이 아니었다.
분명 그도 자신을 원하는데. 어떤 말도 하지 못한 채 시우는 바르작거리며 움직였다. 이렇게 떨어져 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힘들었다.
피부가 간지럽다 못해 따가웠고, 제 몸을 감싸고 있는 모든 것들이 저를 불편하게 만들었다. 부드러운 것도 거친 것도 그 모든 것이 단 하나의 자극으로 이어졌다.
“……이대로 있자.”
힘겹게 그의 품을 벗어나려는 시우의 행동은 묵직하게 다가온 에반의 손길에 산산이 흩어졌다.
옴짝달싹도 하지 못하게 만들어 버리는 그 행동에 시우의 아랫입술이 파리하게 떨렸다. 거절을 한 것은 그인데 왜 자신을 잡는 것일까?
“싫어?”
하고 싶은 수많은 말을 한마디 질문으로 표현했다.
“지금은 아니야.”
에반의 목소리가 이렇게 어두웠던 적이 있었을까? 낮게 가라앉은 거친 목소리로 중얼거린 에반은 숨도 쉬지 못할 정도로 강하게 시우를 끌어안았다. 아이러니하게도 숨이 막힘과 동시에 시우의 몸이 옅게 떨렸다.
모든 것을 놓아 버린 시우는 두 눈을 감았다. 숨을 들이마실 때마다 폐 깊숙한 곳까지 가득 들어오는 그의 페로몬이 서서히 퍼져 나갔다. 안에서부터 피어오른 뜨거운 열기와 시원한 그의 페로몬이 부딪치며 온몸이 저릿저릿했다.
하지만 지금 그가 할 수 있는 건 시원한 에반의 목선에 열 오른 제 이마를 비비는 것이 전부였다. 얇은 천 하나를 사이에 두고 에반의 단단한 가슴을 쓰다듬던 시우의 손이 제멋대로 그의 몸을 타고 움직였다.
“……하아-”
그의 얼굴로 올라가던 손은 결국 그의 손안에 들어가고 말았다. 그리고 손바닥에 부드럽고 축축한 것이 닿는 순간, 시우의 입에서 한숨 섞인 비음이 흘러나왔다.
부드럽고 따뜻하며 뭉클거리는 에반의 입술이 시우의 손바닥 안에서 뭉개졌다.
에반은 미간을 찌푸린 채, 창밖으로 시선을 옮겼다.
제 손안에 들어온 작고 부드러운 손은 뜨거웠다. 입술에 닿은 그의 여린 살은 너무나도 달콤했다. 뇌를 절여 버릴 정도로 달콤하고 유혹적인 시우의 페로몬은 질척하게 제게 달라붙었다.
제 계획을 어그러뜨린 것은 그놈이었다. 아슬아슬하고 불안한 상황이 이어졌지만, 시우가 원하는 모든 것은 다 할 수 있었다. 제게는 어떤 감흥도 불러오지 못하는 뮤직 어워드는 시우가 꿈꿔 오던 일이었다.
오늘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시우가 제일 먼저 했던 말은 ‘나 잘할 수 있겠지?’였다. 며칠째 시우의 모든 관심사는 뮤직 어워드에 맞춰져 있었다.
이제는 가물가물하지만 제게도 그런 시절이 있었다. 처음으로 받았던 상이라든가 떨렸던 첫 무대 같은 것들 말이다. 그랬기에 시우에게 그런 기회를 뺏고 싶지 않았다. 제 욕심으로 그것을 망치고 싶지 않았다.
페이든도 한의사도 부정적인 시선을 보냈지만, 에반은 부득불 우겨 싫다는 시우에게 한약을 먹여 왔다. 그렇게 힘들게 버텨 여기까지 왔다.
갈아 마셔도 시원찮을 놈이 정신 나간 짓만 하지 않았다면 시우에게 오늘은 완벽한 추억으로 영원히 남을 그런 날이 될 것이었다.
불안정한 시우의 상태에 제가 가까이 있는 게 오히려 문제가 될까 걱정이 앞섰다. 그래서 시상식 이후 상준에게 그를 맡기고 먼저 자리를 뜬 제 잘못이었다.
베타인 상준은 전혀 몰랐을 테니까, 그리고 시우 역시.
설마 했다. 이런 장소에서 대놓고 그런 짓을 할 미친놈은 없었으니까. 하지만 더럽고 추악한 알파의 페로몬을 뒤집어쓴 시우를 대면하는 순간, 제가 할 수 있는 건 그 자리에서 시우를 데리고 나오는 것이 전부였다.
시우에게 이 상황을 차분히 설명해야 했지만 그럴 정신도 여유도 시간도 없었다. 그리고 확실하게 알게 되었다. 시간이 흐를수록 짙어지는 시우의 페로몬을 느끼는 사람은 확실하게 자신뿐이라는 사실을.
뮤직 어워드와 뒤풀이, 라이브까지가 공식 일정이었다. 시우에게 양해를 구할 시간도 없이 에반은 둘의 숙소를 변경해 버렸다. 일방적인 통보처럼 소속사에 말했고, 지금 그들이 호텔에 가져다 둔 모든 짐은 이 근처에 있는 집안 별장으로 옮겨져 있었다.
숙소를 옮기는 것을 기본으로 소속사 측과 조율해 호텔에서 해야 할 라이브를 대기실로 바꿨다. 호텔에서 있을 뒤풀이는 빠진다고 말했으며, 조금이라도 사람들의 시선을 끌지 않기 위해 뒷문에 차를 대기시켰다. 그리고 다른 멤버들과 함께 나오는 시우를 중간에 빼돌려 이 차에 태운 것이다.
이미 달아오를 만큼 달아오른 시우는 제가 어떤 페로몬을 흘리는지조차 몰랐다. 순진하게도 그는 지금 제가 지독한 열감기에 걸렸다고 착각하고 있었으니까.
조금의 빈틈도 없이 차 안의 공기를 장악한 시우의 페로몬을 페이든은 조금도 느끼지 못했다.
스태프를 통해 시우에게 홍조가 있다는 말을 듣자마자 불안한 마음에 페이든에게 연락을 넣었다. 처음 그에게 이 상황을 설명했을 때, 그가 제시한 건 한 가지였다. 시우와 자신의 혈액.
마침 학회 때문에 그 역시 이곳을 방문한 상태였다. 제 요청에 그는 그 길로 뮤직 어워드 공연장으로 왔고, 제가 부른 개인 경호팀과 차에서 대기한 것이다.
추후 병원에서 정밀 검사를 받겠지만, 가장 간단하게 확인할 수 있는 건 혈액 검사였다.
아직 단 한 번도 히트 사이클을 겪어 보지 않은 시우다. 그리고 이것이 뒤늦은 후발현이라 해도 후발현 자체가 흔하지 않은 케이스였기에 페이든은 주치의가 아닌 학자로서도 이 상황을 놓치고 싶어 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런 페이든에게 에반이 제시한 건 완벽한 보안과 정확한 진료였다.
시우에게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모르기에 괜히 그와 관련된 어떤 허튼 것도 밖으로 새어 나가는 걸 원치 않았다.
히트 사이클.
가장 간단하게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은 하나다. 알파와의 관계. 하지만 약물을 통해 조절할 수 있는 것이기도 했다.
한적한 교외에 있는 별장에 차가 멈춤과 동시에 에반은 시우를 안아 들고 차에서 내렸다.
“내려 줘.”
웅얼거리는 시우의 숨결이 에반의 목덜미에 스며들었다. 시우를 추스른 에반의 발걸음이 빨라졌다. 곧장 침실로 들어간 에반은 시우를 침대에 내려놓자마자 몸을 돌렸다. 밖으로 나가려던 에반은 제 옷 끝을 잡은 손길에 발걸음을 멈췄다.
자신의 움직임에 따라 빠르게 켜졌던 센서 등이 모두 꺼진 침실엔 옅은 달빛만이 주위를 흐릿하게 밝혔다.
“약…….”
제 말에 시우의 손이 제 옷을 움켜쥐는 힘이 강해지는 것이 느껴졌다. 아래를 보고 있던 시우의 작은 머리가 천천히 움직였고, 달빛에 고운 얼굴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촉촉이 젖은 눈으로 온종일 제 시선을 사로잡던 붉은 입술이 느릿하게 열렸다.
“히트라며.”
에반은 한 손으로 제 얼굴을 쓸었다. 저부터 약을 먹고, 그리고 시우에게 급한 대로 한약을 먹일 생각이었다. 하지만 이런 얼굴로 이런 목소리로…….
부스럭거리는 소리와 함께 달콤한 자두가 제게 안겨 들었다. 작은 두 손이 곰실거리며 에반의 얼굴을 감쌌다.
“그럼 나에게 제일 필요한 건 약이 아니라…… 너잖아. 내가 오메가라서 싫은…….”
열기를 가득 품은 작은 몸이 움직였고, 발끝을 세워 제게 다가온 시우의 입술이 제의 입술을 찾는 순간, 지금껏 애써 붙잡고 있던 이성의 끈 하나가 툭, 하고 끊어졌다.
“흐읏…….”
달아오를 만큼 달아오른 둘을 막는 건 그 어떤 것도 없었다. 여유 따위는 사치였다. 에반의 뜨거운 입술이 시우의 입술을 덮쳤고, 제 입 안을 훑는 에반의 혀를 시우는 겁도 없이 먼저 건드렸다.
욕망을 숨기지 않은 혀끝이 뒤엉키며 질척한 소리가 조용한 방 안을 울렸다. 달콤한 사탕이라도 먹듯 이를 세워 물고 빨아 대는 에반의 행동에 시우는 두 팔을 그의 목에 둘렀다.
시우의 등허리를 쓸어내리던 에반의 손이 시우의 엉덩이를 움켜쥐는 순간, 시우의 입에서 헉하는 신음이 터져 나왔다. 잠시 입술이 떨어진 틈도 참지 못한 에반의 입술이 시우의 얼굴에 내려앉았다. 눈, 코끝, 볼 가릴 것 없이 입을 맞추던 에반의 입술은 기어이 가쁜 숨을 내뱉는 시우의 입술로 다시 달려들었다.
여린 입 안을 훑고 입천장을 쓸어내리면서 멈칫거리는 시우의 혀를 집요하게 쫓아가는 에반의 손길이 바빠졌다. 부드러운 니트 안으로 파고든 손은 뜨겁게 달아오른 시우의 부드러운 살결을 쓰다듬었다.
짧은 시간이나마 시우에게 숨 쉴 틈을 만들어 주면서도 수없이 키스를 퍼붓던 에반이 잠시 몸을 물렸다.
“하아, 에바나…….”
잠시 떨어지는 그 시간조차 싫은지 끝을 늘이며 에반을 부르는 소리와 함께 에반의 손이 움직였고, 시우의 몸을 가리고 있던 니트가 바닥으로 떨어졌다.
“괜찮아.”
푸른 달빛이 시우의 몸 위에서 하얗게 부서졌다. 한기가 느껴지는지 가녀린 몸을 살짝 떠는 시우에게로 다가가는 에반의 입에서 부드러운 목소리가 흘러나갔다.
“……흣.”
검은 침구 위, 제 손길에 한껏 흐트러진 시우를 보는 에반의 눈빛엔 어떤 가식도 없었다. 달아오른 볼에 손바닥을 대자 감겨 있던 시우의 눈이 천천히 뜨였다. 칠흑 같은 어둠이 내려앉은 그 눈동자를 마주한 에반의 입에서 긴 한숨이 흘러나왔다.
“안아 줘.”
시우의 작은 속삭임이 도화선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