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리스타트(Restart)-76화 (76/187)

76화

신기하게도 멤버들이 다 같이 움직이는데, 에반과 겹치는 일이 없었다.

촬영 준비를 위해 메이크업을 하거나 옷을 갈아입을 때도 겹치지 않았고, 차를 타고 이동할 때도 같은 차를 타지 않았다.

대기할 때까지 완전히 격리되어 있는 상황이 되고서야 시우는 자신과 에반의 관계에 심각한 문제가 있음을 자각했다.

스태프이고 멤버들이고 대놓고 둘을 격리시켜 놓는 것이다.

“형.”

지금 시우와 같이 있는 이가 찬이었기에 결국 입을 열었다. 조용한 밴 안엔 둘뿐이다.

더군다나 그가 현재 오션의 리더이니 말을 꺼내기도 더 좋았다.

책을 보고 있던 그가 고개를 들어 시선을 마주했지만, 선뜻 말을 꺼낼 수 없었다.

고개를 숙인 채, 손끝을 마주 대고 손장난을 치는 것에 시선을 두었다.

“우리 팀 이대로 괜찮아요?”

고르고 골라 가장 무난할 것 같은 문장을 선택했다.

“그게 무슨 말이야?”

“나랑 에반 때문에 전체적으로 뭐라고 해야 할까. 분위기가 무겁다고 해야 하나. 아니면 음, 좋게 말하면 배려해 주는 거고, 꼬아서 모두 우리 눈치를 보는 것 같다고 말해도 될까요?”

지금 시우가 꺼내는 안건이 그리 어려운 것은 아니라는 듯 찬은 다시 책을 보기 시작했다. 시우 역시 창밖으로 시선을 옮겼다. 그러면서도 꼬물거리며 손끝을 튕기는 것은 멈추지 않았다.

“하루 이틀 그런 것도 아니고. 그래도 이제 좀 친해질 때도 되지 않았냐? 동갑이라 더 그럴 수도 있고, 너나 에반이나 욕심이 많아서 그런 거지.”

욕심이라. 회귀하기 전, 아니 회귀가 시작되고 몇 번은 기를 쓰고 뜨려고 발악하던 시절이 있었다. 그 시절의 자신이라면, 에반과 부딪치는 건 당연할 것이다.

말 그대로 춤에 미쳤고, 노래를 조금이라도 더 부르려고 안달이 났으니까.

곡이 나오면 자신의 분량부터 확인했다.

더 튀기 위해서 격한 안무에 끊임없이 도전했고, 단독 퍼포먼스를 따낸 날엔 설레서 잠도 자지 못했다.

“우리 때문에 다른 멤버들이 피해 보니 그렇죠.”

“아이고. 이제 그런 것이 보이기 시작하셨어요? 한 일주일 떨어져 있다가 다시 만나니 갑자기 이야기가 술술 잘 풀렸어? 어제 촬영할 때도 그렇고, 둘 다 평소보다 훨씬 편해 보이긴 하더라.”

“그랬어요?”

머쓱함에 시우는 머리를 쓸어 넘기며 차창으로 시선을 옮겼다. 에반과 상준이 화보 촬영을 하는 것이 보였다. 예찬은 촬영에 방해가 되지 않을 만한 곳에서 보드를 타고 있었다.

“형. 끝나고 뭐 해요?”

오전엔 시우, 찬, 예찬이 공원에서 스케이트보드를 타는 설정으로 촬영을 했고, 점심 식사 후 이어진 것이 에반과 상준의 남자 친구 콘셉트였다.

그리고 곧 촬영이 끝날 테니, 모두에게 휴식 시간이 주어질 것이다.

“책이나 더 보고 좀 쉬려고. 날도 덥고.”

“상준 형은 곡 작업 한다던데.”

“걔야 늘 곡 작업이지. 너는 뭐 하게?”

“저도 조용히 쉬려고요. 머리도 아프고.”

대화가 이어지지 않자 시우는 의자에 몸을 편히 묻었다. 온종일 근처를 맴도는 카메라를 피하는 것도 일이었다. 공식 일정을 소화하는 것이 아니더라도 이렇게 단체로 움직일 때면 항상 카메라가 따라붙었다.

언제 어디서든 카메라가 설치되어 있던 ‘Journey’와는 달랐지만, 추후 에피소드 형태로 만들어 편집해서 올릴 수 있도록 준비하는 것이었다. 멤버들 중 그 누구도 그 카메라를 의식하는 것 같지 않았다. 가끔 예찬이 일부러 그 앞에서 장난을 치고 노는 것이 보이긴 했지만, 그건 그의 성격 탓이 클 것이다.

장난치기 좋아하고 늘 활기 넘치기에 가능하겠지. 무엇보다 멤버 중 유일한 10대가 아니던가.

“시우 형.”

갑자기 밴의 문이 벌컥 열리고 예찬이 조용한 둘의 시간에 끼어들었다.

“왜?”

“나와요.”

“나?”

“네. 움직이는 거 싫어하는 찬이 형 말고. 지금 나와 이야기 중인 당신이요. 어서 나와요. 보드 같이 타게. 난 형이 그렇게 잘 타는지 진짜 몰랐어.”

대답 대신 시우는 슬쩍 눈을 감고 몸을 돌려 예찬을 등지는 걸 선택했다.

“형!”

예찬의 목소리를 들으면서도 시우는 들리지 않는 척 주머니에서 주섬주섬 무선 이어폰을 꺼냈다.

“형!”

이어폰을 꺼내 양쪽 귀에 끼우고 휴대전화를 풀었다. 무슨 노래를 들어 볼까.

“시! 우! 형!”

눈을 감고 등을 돌렸지만 우렁찬 예찬의 목소리는 계속 이어졌다.

“시우야, 가서 좀 놀아 줘. 쟤 힘이 남아돌아서 적당히 놀아 줘서 힘 빼게 해야지. 아니면 밤에 난리 난다. 나 어제 잡혀서 놀아 주느라. 어휴, 말도 마라. 늦게까지 놀다가 결국 내 침대에서 잤잖아. 내 방 더블베드였는데. 덩치도 큰 놈이 뭘 그렇게 붙어 자는 걸 좋아하는가 몰라.”

넋두리하듯 빠르게 이어지는 찬의 말에 시우는 고개만 쓱 돌려 예찬을 바라보았다. 하긴 하루에 기본 여덟 시간씩 연습실에서 춤 연습을 하는 것이 아이돌의 삶이다. 거기 비하면 촬영은 식은 죽 먹기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다른 부분에서 신경을 써야 하지만, 그래도 육체적으로는 덜 힘들었다.

“예찬아.”

조금만 더 쉬다가 놀아 줄게, 라는 말을 하기도 전에 시우의 몸은 허공에 떴다.

“야!”

시우가 버둥거리는 것보다 앉아 있는 시우를 그대로 안아 든 예찬이 휘파람을 불며 돌아서는 것이 더 빨랐다.

“그래. 어서 가. 둘 다 빨리. 나 좀 쉬자.”

예찬이 시우를 안고 나가든, 시우가 그에게 안기기 싫어서 버둥거리든, 그런 것에는 조금도 관심이 없는 찬은 친히 몸을 움직여 밴의 문을 닫았다.

“강예찬!”

“내가 놀자고 할 때 빨리 놀아 주면 좋았잖아요.”

“놀아 줄게. 놀아 준다고. 그러니까 내려놔.”

내려놓으라고 말하며 시우는 바닥과의 거리를 가늠했다. 높은 것 같긴 하지만 그래도 발부터 떨어지면 괜찮을 것 같다. 그러고는 자신을 내려놓게 하려고 예찬의 어깨를 밀어 댔다.

“내가 형을……. 헉!”

예찬은 시우가 버둥거리자, 쉽게 힘으로 그를 추슬러 안을 수 있었음에도 휘청이는 척하며 팔의 힘을 뺐다.

“야!”

예찬이 힘을 뺌과 동시에 시우는 빽 소리 지르며 언제 그를 밀었냐는 듯 허겁지겁 예찬의 목에 팔을 감으며 매달렸다.

자연스럽게 품에서 벗어나는 것과 바닥에 떨어지는 건 차원이 다르잖아!

“이 미친놈아!”

바짝 예찬에게 매달린 시우는 눈을 부라리며 예찬을 노려보았다.

“용서해 주는 거죠?”

시우가 노려보든 제 목에 매달리든, 예찬의 표정은 일관되었다.

싱글벙글. 정말 신이 난 대형견이 자신의 힘을 주체하지 못하는 것처럼 보였다.

“뭐?”

뜬금없이 용서 타령을 하는 예찬을 보는 시우의 표정이 변했다.

“어젯밤에.”

긴 한숨을 쉬며 한 팔을 푼 시우는 예찬의 이마에 딱밤을 놓았다. 지금 그것 때문에 그런 것인가? 그 일은 자신이 아니라 에반에게 사과를 해야 할 것 같았다. 그리고 잘 수습될 수 있는 자리를 박차고 나와 버린 것은 자신이다.

“야. 번지수가 잘못됐잖아. 왜 나한테 사과해. 내가 아니라 에반에게 해. 그 전에 나부터 좀 내려 줄래?”

분명 딱밤을 때린 사람은 시우인데, 손을 털고 있는 사람도 그였다. 이마를 맞은 예찬보다 때린 시우가 더 아픈 상황이다.

“에반 형. 무섭단 말이에요.”

“일단 날 내려 주고 말하면 안 되겠니?”

넌 내가 무겁지도 않아? 좀 내려 주라, 진짜. 이쪽에서 작은 소동이 나니 대번에 카메라가 붙었다.

“아, 싫어. 형이 용서해 준다고 하면.”

“말 좀 들어라.”

예전의 예찬도 성격이 참 좋긴 했지만, 지금의 그는 말 그대로 막을 자가 없는 것 같다. 거기다 한솥밥을 먹은 것도 오래됐으니 아예 허물없는 사이겠지.

“빨리요. 형~”

높이 들고 흔들면서 말하면 어지럽다. 그냥 용서한다는 말을 하면 되는데, 왜 그 말이 하기 싫을까. 기 싸움 하는 것도 지쳤고, 그냥 몸에서 힘을 쭉 뺀 시우는 대놓고 예찬의 어깨에 머리를 기댔다.

“날 죽여라.”

카메라가 붙은 이상 나중에 어떻게 편집되어 나갈지 아무도 모른다. 그렇다면 아예 코믹하게 설정을 잡아 버리는 것이 나을 것 같았다.

“……뭐 해?”

내려 달라, 용서해 달라. 이런 실랑이가 오가던 둘의 대화를 끊은 건 에반의 목소리였다.

짝다리를 짚고 삐딱하게 선 채, 이곳을 보는 그는 어떤 감정도 담지 않은 얼굴이었다.

“에반 형? 촬영은?”

“코코가 내려 달라잖아. 일단 내려 주고 말해.”

코믹이 스릴러가 되는 건 한순간이다. 정색하고 내리깐 목소리로 에반이 말하자마자, 예찬은 얼른 시우를 내려 주었다.

“촬영 끝났어?”

몸을 바로 한 시우는 옷을 정리하며 말했다.

“응.”

시우에게로 다가간 에반은 몸을 숙여 시우의 어깨에 얼굴을 묻었다. 처음엔 촬영에 집중하느라 알아채지 못했다. 하지만 멀리서 들리는 시우의 높은 목소리에 절로 그리 시선이 향했다.

시우를 안아 든 예찬은 웃고 있었고, 분명 투덜거리고 있긴 했지만 시우의 표정 역시 밝았다.

멀리서 보아도 어떤 상황인지 대번에 알 수 있었다.

예찬은 장난을 칠 테고, 시우는 내려 달라고 하겠지.

그들은 친한 사이이고 카메라 앞이라면 충분히 저런 장난을 칠 수 있었다. 팬들이 좋아하는 영상이 나올 테니까. 하지만 불퉁한 제 마음은 그것조차 질투했다.

촬영이 정확히 끝났다고 말할 수 없다. 그만 찍자고 말한 것은 에반이었다.

그리고 곧장 예찬과 시우에게로 와 기어이 그들을 떼어 놓았다.

몰려오는 자괴감과 함께 시우의 어깨에 얼굴을 묻자, 은은하게 흘러나오는 자연스러운 그의 페로몬에 불안하던 감정이 조금씩 제자리를 찾았다.

“어이, 무겁거든. 하나는 들고, 하나는 누르고. 잘한다.”

장난스러운 목소리로 예찬을 보면서 말을 하면서도 시우는 한 손을 들어 에반의 뒷머리와 목을 몇 번이고 쓸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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