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1화
“히든 오메가.”
현수는 저도 모르게 에반이 한 말을 따라 했다.
그리고 혼자 입술을 달싹이며 몇 번이나 같은 단어를 반복했다. 들어 본 적은 있다.
지금 에반이 하는 말들은 다 들어 본 적이 있다.
골든 알파나 히든 오메가나. 알파와 오메가들은 필수로 받아야 하는, 그들의 형질과 관련된 수업에서 들어 보았다.
하지만 그건 그러니까.
“차라리 시우가 유니콘이라고 말하지 그래.”
“갑자기 무슨 유니콘이야?”
“히든 오메가라며. 히든 오메가 자체가 환상의 존재 아니냐고. 유니콘이랑 뭐가 달라. 무지개의 끝을 봤다고 말하든지.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고 있어.”
의무적으로 이수하는 수업에서 들은 것을 떠올린 현수는 저도 모르게 혀를 찼다. 공식적으로 골든 알파는 알파의 0.1%이다. 극소수이기는 하지만 수치로 측정할 수 있는 만큼은 된다는 것이다. 하지만 히든 오메가를 설명할 때 선생님은 환상의 존재라고 말했다.
말 그대로 숨겨진 자들.
제게 맞는 알파를 만나지 못한다면 그들은 평생을 숨겨진 채, 베타로 살아가는 존재였다.
하지만 그를 알아보는 알파가 있다면.
갑자기 머릿속이 복잡해진 현수는 두 손으로 제 머리카락을 마구 헤집었다. 그러니까 지금 시우가 히든 오메가인데, 골든 알파인 에반이 그걸 알아냈다고.
그 어떤 오메가의 페로몬도 맡지 못하는 에반이 유일하게 느낄 수 있는 페로몬이 시우의 것이라고.
둘이 페어라고?
“페어.”
혼자 생각에 빠져 혼잣말을 하던 현수는 바짝 마른 아랫입술을 지그시 깨문 채, 에반을 바라보았다.
자신에게 엄청난 말을 한 사람치고 그는 너무 평화로워 보였다. 소파에 편히 앉은 채, 술잔을 든 그는 창밖을 보고 있었다.
“시우가 히든 오메가라고 하자. 그러면…….”
“그러니까 말을 못 하는 거죠. 평생 알파로 살아온 형에게 갑자기 당신은 오메가입니다, 이렇게 말하면 기분이 어떨 것 같아요?”
에반의 손끝이 소파 손잡이를 일정하게 두드리고 있었다. 그리고 그의 목소리에는 어떤 감정도 실려 있지 않았다.
“뭔 헛소리야?”
현수는 에반의 말을 듣자마자 표정을 찌푸리며 반박했다.
“딱 그런 반응일 거 같지 않아요? 넌 히든 오메가야. 그리고 너와 난 페어이고. 이렇게 말해 볼까?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넌 아무렇지 않겠지만 난 네가 아니면 안 돼. 이런 수식어도 달고 말이죠.”
술로 목을 축인 에반은 정말 가벼운 목소리로 다정한 친구에게 말하듯 말했지만, 그 목소리에 담긴 뜻은 엄청난 것이었다. 현수는 한 손으로 자신의 입을 막았다.
“이제 놀랐어요? 그럼 하나 더 말해 줄게요. 처음 발현한 알파와 오메가는 페로몬 조절을 어떻게 하죠?”
“못 하지. 뭐 조금 연습하면…….”
역시나 이번에도 현수는 말을 다 잇지 못했다.
“시우는 페로몬 조절을 안 해. 아니 못 해. 자신이 오메가인 걸 모르니까.”
“너. 이 이야기 나한테 왜 했냐?”
진지한 이야기일 것 같아 냉수만 마시던 현수는 술병을 잡았다. 지금 제가 쉽게 받아들이고 감당하기엔 쉽지 않은 이야기를 연달아 들은 것이다.
페로몬에는 감정이 실린다. 시우는 페로몬 조절을 하지 못한다.
그 말인즉 처음부터 에반은 시우의 페로몬에 노출되었으며, 그와 동시에 시우의 감정을 고스란히 느끼고 있다는 소리였다.
여러 가지 상황들이 뒤죽박죽 엉망으로 섞여 들어 현수의 머릿속에서 둥둥 떠다녔다.
한순간에 지금껏 에반의 이상한 행동들이 이해됐다. 동시에 에반을 보는 그의 시선엔 경악이 묻어났다.
처음부터 에반의 페로몬이 진득하게 묻어 있었던 이유부터 왜 계속 시우의 옆을 맴도는 것인지. 이상하다 느낀 부분이 그런 것들이었다.
베타인 시우를 오메가처럼 대했다. 마치 연인처럼 대했고 순간순간 진득한 소유욕까지 드러냈다.
현수는 긴 한숨과 함께 소파에 기대앉았다. 술에 취해서 어지러운 것인지 자신이 감당하기 벅찬 이야기를 들어 답답한 것인지 구분이 되지 않았다.
“페어에 대한 정보는 너무 없잖아.”
히든 오메가에 대한 정보도 없지만, 페어에 대한 정보는 더더욱 없었다. 그 역시 이론적으로 있는 말들이었지 실제로 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일반적인 각인과 같다고 한 것 같은데. 꼭 육체적인 관계에서만 맺는 각인과는 다르다고 했던가?
현수는 몇 년 전 건성으로 들었던 내용을 떠올리려 애썼다.
에반은 어두운 표정으로 혼자만의 생각에 갇힌 현수를 내버려 두고 테이블에 있는 그의 휴대전화를 집어 들었다. 그리고 시우에게 전화를 걸었다.
수없이 회귀하는 동안 자신이 선택할 수 있는 미래는 무궁무진했다. 하지만 지겹도록 같은 직업을 고수한 것은 단 한 가지 이유 때문이었다. 자신의 페어인 히든 오메가를 찾고 싶었다.
몇 번 반복된 삶에서 제게 내려진 결론은 돌연변이였다. 자신이 오메가의 페로몬을 맡을 수 없는 부분을 파고들다 찾은 것이 히든 오메가와 관련된 것이었다. 히든 오메가를 찾을 수 있는 존재 골든 알파.
대부분은 골든 알파들은 알파와 크게 다를 바가 없었다. 페로몬의 수치를 기준으로 분류했을 뿐이다. 히든 오메가를 찾을 수 있는 것은 골든 알파뿐이라는 수식어가 붙어 있긴 했다.
모래사장에서 바늘 찾기와 다름없었다. 베타 중에 숨어 있는 히든 오메가를 찾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웠다. 그랬기에 사람을 많이 만날 수 있는 직업을 선택했다. 콘서트 한 번이면 수만 명의 사람을 만날 수 있다. 해외 투어까지 생각하면 단시간에 다양한 지역에서 비슷한 나이대의 사람을 만날 수 있다는 면에서 가장 효율적인 직업이었다.
그렇게 수없이 반복하면서 에반이 내린 결론은 히든 오메가는 없다는 것이었다. 시우를 만나기 전까지.
TV에서 그를 처음 보았을 때부터 시우는 자신을 사로잡았다. 그리고 비행기에서 다시 만났을 때, 에반이 느낀 그 감정은 뭐라고 표현할 수 없는 것이었다.
온 세상이 단 한 사람으로 가득 찼으니까, 오메가의 페로몬이 어떤 것인지 여실하게 알아 버렸다.
아무것도 모르는 그를 배려해야 하는 것은 알았지만, 본능을 억누르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리고 어느 순간 깨달았다. 시우가 자신의 페로몬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을.
페로몬을 흘릴 때면 어김없이 그의 시선이 제게 닿았다. 그리고 페로몬을 거둬들이면 머뭇거리는 반응이 이어졌다.
지금껏 어떤 행동도 마음대로 하지 못했던 것은 불안감 때문이었다. 이 모든 상황을 그에게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알지 못했으며, 사실을 알았을 때의 반응 역시 예상할 수 없었다.
마지막으로 그에게 거부당하는 것을 견뎌 낼 자신이 없었다.
충분히 친해졌을 때, 둘의 사이에 안정감이 깃들면 그 언젠가 고백할 생각이었는데.
계속해서 그와의 관계가 비틀렸다.
통화 대기음에 이어 안내 멘트가 나오자, 긴 한숨과 함께 현수의 휴대전화를 테이블에 내려놓았다. 오해할 것이다. 자신이라도 이 상황에선 오해할 것이다.
바로 조금 전 데이트하자고 말한 자신을 어떻게 생각할까? 어이가 없는 상황인지라 나오는 건 헛웃음뿐이었다.
“페어인 건 확실해?”
생각에 잠겨 있던 현수의 말에 에반은 그저 어깨를 으쓱할 뿐이었다.
“지금은 나 혼자 시우가 히든 오메가일 것이라고 확정하고 있을 뿐이죠. 형, 솔직히 나도 몰라. 형 말대로 자료가 없으니까. 아무것도 없으니까. 내가 부딪치고 겪으며 알아내야 할 부분이고. 확실한 건 시우와 가까이 있으면 감정 동화가 일어나. 나는 제법 많이 겪었지만, 시우도 최소 한 번은 겪었을 거야. 자신은 그게 무엇인지 모르겠지만.”
에반은 두 손으로 자신의 얼굴을 쓸었다. 놀이공원.
시우는 아무것도 아니라고, 가끔 그런다는 말로 그 자리를 벗어났지만. 그때 일어난 일은 감정 동화였다. 엉망진창으로 복잡하고 어두운 제 것을 느꼈겠지.
“이제 어떻게 하려고? 이야기를 듣고 보니 스캔들, 지금 큰 문제인 것 같은데.”
“다시 시작해야겠지.”
긴 한숨과 함께 에반은 얼굴을 가리고 있던 손을 천천히 내렸다. 아이돌, 연예인. 이제 이런 건 제게 중요하지 않았다.
당장 내일 아침 10시에 기자회견을 해야 했다.
그들은 유리와의 스캔들을 인정하는 기자회견으로 알겠지. 하지만 내일 10시엔 엄청난 일이 일어날 것이다. 그 자리에서 자신은 오션 탈퇴와 동시에 연예계 은퇴를 선언할 테니.
“어디 가려고.”
겉옷을 챙기던 에반은 자신을 붙잡는 현수의 행동에 피식 웃었다.
“그러게.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겠는데. 이 상태로 찾아갈까 봐? 걱정 마. 그런 짓 안 해. 코코가 싫어할 만한 짓은 안 해. 지금도 미움받는데 더 미움받으면 어떡하라고.”
가슴이 터져 버릴 것 같고 과부하가 걸린 머릿속은 정상적인 사고를 하지 못하고 있다. 집 앞에도 분명 기자들이 잔뜩 몰려 있을 것이다. 에반은 꺼져 있는 자신의 휴대전화를 꺼내 전원 버튼을 눌렀다.
켜짐과 동시에 밀린 메시지와 부재중 전화가 몰려 있는 것을 보니 정말 나오는 건 헛웃음뿐이었다. 자신의 실수도 아닌 타인의 실수를 덮기 위해 자신이 쓰일지 몰랐다. 머리가 제대로 돌아가지 않는 늙은이들은 말 그대로 하나는 알고 둘은 몰랐다.
지금 회사의 지분을 가장 많이 가지고 있는 자가 누구인지. 가장 큰 영향력을 가진 자가 누구인지 모를 리가 없다. 하지만 자신을 이렇게 쓰는 이유가 너무 투명해서 할 말이 없었다.
최고 인기를 누리는 아이돌 그룹의 리더 자리. 아마도 에반이 그 자리를 놓지 않을 것이라 예상했을 것이다.
그에겐 세상 무엇보다 제일 먼저 버릴 수 있는 것이었지만, 대부분은 그 자리를 놓치지 않고 싶어 했으니까.
쓸데없는 연락을 다 무시한 에반의 손끝이 한 곳에서 멈췄다.
[너 일 좀 정리되고 괜찮아지면 그때 밥 먹자. 그리고 축하해.]
“젠장.”
지금껏 누르고 참았던 욕설이 그의 입에서 터져 나왔다. 제발 아니라고 부정해 주길 바란 단 한 사람이 제일 먼저 인정해 버렸다.
모두가 사실이냐고 되물을 때. 그는 축하한다는 메시지를 남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