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화
[그러고 보니 시우 씨는 말이 없으신데. 어디 가셨나요? 지금 차 안이라고 하지 않으셨나요? 아니. 뭡니까. 지금 채팅창 난리 났어요. 두 분 정말 사귀세요? 라는 질문이 들어왔네요. ]
사귀냐는 현수의 질문에 시우는 손으로 자신의 입을 턱 막았다. 짧은 침묵이 흘렀다. 이렇게 방송에서 대놓고 물어본다고? 거기다 지금 예찬이까지, 상황이 제멋대로 이상하게 돌아가고 있었다.
시우는 커다란 눈을 도록도록 굴리며 에반을 바라보았다. 이럴 때 어떻게 말하면 되더라. 그냥 적당히 웃으면서 아니라고 해야 하나? 그냥 친구라고 말하면 될까?
그 짧은 시간 시우의 머릿속엔 수많은 말이 떠다녔다.
3초 이상 아무 말도 나가지 않는다면 방송 사고로 이어질 것이 뻔했다.
“우리 관계는…… 방송에서 확인해 주세요.”
시우보다 방송에 능숙한 에반은 현수의 질문을 돌림과 동시에 방송 홍보까지 자연스럽게 했다.
[아, 에반 씨. 이런 식으로 ‘Journey’ 프로그램 홍보하는 겁니까? 홍보하실 거면 본방 전에 한번 출연해 주시죠. 지금 목격담이 올라오고 있는데, 예찬 씨와 시우 씨를 어제 루프톱에서 보셨다고. 이건 예찬 씨가 답해 보세요.]
산 너머 산이라고 에반과의 관계를 묻는 질문을 에반이 능숙하게 처리하자마자, 바로 이어진 것이 예찬과의 이야기였다. 스타에겐 사생활이 없다더니 바로 어제저녁에 있었던 일이 회자가 되었다.
[현수 형, 그렇게 말하면 안 되죠. 어제 다 같이 촬영하고 스케줄 없는 사람끼리 저녁 먹었잖아요. 현수 형과 시우 형, 팬텀의 안이랑 넷이서 저녁 먹었어요. 현수 형은 라디오 하러 갔고, 안은 다른 스케줄 있다고 갔잖아요. 그래서 남은 저랑 시우 형, 둘이서 한잔하러 간 거죠.]
[흐음. 다음에 다 같이 한잔하자고요. 그래서 에반 씨와 시우 씨, 오늘 저녁 메뉴는 뭔가요? 저도 방송 끝나고 먹어야 하는데, 메뉴 참고 좀 하겠습니다.]
“저희 저녁 메뉴를 왜 그렇게 궁금해하세요? 계속 그것만 물어보시는 것 같아요. 저녁 메뉴는 아직 정하지 않았어요.”
예찬이 능수능란하게 이야기를 흘리는 걸 듣던 시우는 눈동자만 도르륵 굴리며 조심스럽게 대답했다. 목소리만 나가는 상황이라 평소보다 더 긴장되었다. 괜한 말실수로 입방아에 오르고 싶지 않았다.
[그랬나요? 개인적으로 전 곱창 추천하고요. 이쯤에서 묻겠습니다. 이거 계속 올라오고 있는 질문이에요. 시우 씨, 예찬 씨가 좋아요? 에반 씨가 좋아요?]
웃음기가 가득 묻어나는 현수의 질문과 함께 예찬의 웃음소리가 튀어나왔다. 진짜 이걸 계속 묻는 분이 계세요, 라고 예찬이 말을 이었다. 퇴근 시간과 맞물린 도로는 정체로 이어졌고, 정체로 인해 차가 멈추자 에반의 시선이 시우에게 꽂혔다.
마치 정말 예찬이야? 나야? 이렇게 눈으로 묻는 것 같았다.
“‘Journey’ 촬영으로 지금 전화 연결 중인 현수 씨도 그렇고 많은 분을 만났는데요. 다들 좋으신 분이시고 너무 잘해 주셔서 친해졌어요. 누가 더 좋고 그런 게 어디 있어요.”
엄마가 좋아, 아빠가 좋아도 아니고. 에반의 시선을 피하려 고개를 살짝 돌린 시우는 가장 대중적인 답을 찾았다.
[그러니까 예찬이가 좋아서 루프톱에 가신 거 아닙니까?]
현수가 장난스럽게 심문하듯 말하자 시우는 결국 웃어 버렸다.
“루프톱, 저도 갔었습니다. 여러분.”
예찬과 둘이 루프톱에 간 것이 비밀도 아니라 웃으며 대충 얼버무리려던 시우는 불쑥 옆에서 한마디 거드는 에반을 바라보았다.
[그럼 예찬 씨, 에반 씨, 시우 씨 같이 계셨다는 거군요.]
[아!! 루이한테서 방금 메시지 왔어요. 고기 먹으러 갈 때 자기도 못 갔다고 또 먹으러 가재요. 그리고 지금 라디오 듣고 있다고.]
예찬은 루이에게 온 메시지를 읽었다.
어떤 이유로 에반에게 전화 연결을 했는지 그런 이유도 없이 두서없는 질문이 오가던 통화의 결론은 시우와 에반에게 언제 한번 라디오 방송에 나와 달라는 것으로 끝났다.
그와 동시에 둘의 휴대전화가 울렸다. 방금 전화 연결을 확인한 매니저들의 전화였다.
“안 받아도 돼. 뭐 별 이야기 한 것도 없는데, 바로 전화들이야.”
에반의 말에 시우는 휴대전화를 엎어 진욱 형의 전화를 받지 않았다. 천천히 방금 했던 대화를 떠올렸다. 딱히 문제가 될 멘트는 하지 않은 것 같았다.
“나야? 예찬이야?”
검색창을 열어 에반의 이름을 적던 시우는 그의 말을 단번에 알아듣지 못했다. 제가 저녁을 살 생각에 그가 좋아하는 음식을 찾으려 한 것이다.
“코코. 나야? 예찬이야?”
“응? 뭐가?”
에반이 육류를 좋아한다는 걸 확인하고 괜찮은 고깃집을 찾던 시우는 검색하던 손을 멈췄다.
“당연히 나라고 해야지.”
지금 설마 조금 전에 현수 형이 장난으로 물은 그것 가지고 이러는 것인가? 시우는 어이없는 표정으로 에반을 바라보았다. 앞을 보고 운전하는 그의 잘난 옆모습과 하는 말은 전혀 매치가 되지 않았다.
조금 과장해서 마치 자동차 CF를 찍는 것 같은 외모로 에반은 투덜거리고 있었다. 이런 식의 행동과 말이면, 어제 예찬이 한 말이 사실처럼 느껴진다. 에반이 자신을 좋아해서 질투하는 것 같았다.
“아니 방송에서 그런 말을 어떻게 해? 진짜 너라고 해도 방송에서는 절대 그렇게 말 못 하지.”
“그냥 말하면 되지. 왜 못 해?”
“사람들이 오해하잖아. 그러잖아도 촬영 동안 SNS에 내 사진이랑 그런 것만 올리고 다른 멤버들 사진은 안 올렸다며. 다들 이상하다 그러잖아. 그러니까 우리 관계는 방송으로 보라는 말보다 확실하게 친구다, 이런 식으로 말하는 게 나았을 것 같아.”
“사귈 수도 있잖아.”
“응?”
차분하게 조금 전 그가 확실하게 밝히지 않은 부분을 꺼내던 시우는 눈을 빠르게 깜박였다. 친구잖아. 우리 친구잖아. 갑자기 사귄다는 말이 왜 나와?
“너 나 싫어?”
“내가 언제 싫댔어? 조금 전에도 말했잖아.”
싫어하지 않아. 오히려 좋아하지. 이상하게 에반과 길게 대화를 하면 항상 분위기가 이상해졌다. 시우는 성격상 누군가와 문제가 생기는 걸 원치 않았다. 그래서 늘 한발 뒤로 뺐다.
그리고 지금은 자신이 입을 다물 때였다.
더 말을 할 것 같던 에반 역시 대화를 멈추는 걸 선택했는지 긴 한숨을 쉬었다. 차 안의 분위기가 다시 무거워졌다.
방금 현수의 라디오와 통화 연결 전에도 같은 주제로 투덕거렸다. 창밖에 시선을 둔 채 시우는 모자를 살짝 벗고 머리를 쓸어 넘긴 후 다시 썼다.
“에반.”
시우가 먼저 말을 꺼냈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다.
“너 잘생겼고 능력도 좋고 인기도 많고 거기다 알파고. 어쨌거나. 음, 진짜 진짜 멋지잖아. 그런데 우리 지금 같은 주제로 계속 문제가 있는 거 같아서. 그러니까 확실하게 말할게. 나 너 좋아해. 친구로 네 옆에서 계속 쭉 친하게 지내고 싶어. 그리고 네가 나 좋게 생각하는 것도 알고 있어. 우리 잘 지낼 수 있지?”
이런 불편한 상황을 못 견뎌 하는 사람이 지고 들어가야 했다. 이런 말까지 대놓고 해야 하나? 웅얼거리듯 말하는 시우의 시선은 여전히 창밖에 닿아 있었다.
“내가 문제인 거 알아. 이제 좀 알 때도 되지 않았어?”
한껏 낮아진 에반의 목소리에 시우는 눈썹을 찌푸렸다. 지금 잘 지내자고 말했는데, 그의 말투엔 아직 날이 서 있었다. 자신이 뭘 알아야 하는지 도무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내 페로몬 알잖아.”
쉽게 이해하지 못하던 시우는 에반이 덧붙인 말에 그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내가 네 페로몬을 어떻게 알아? 베타인 자신은 죽었다 깨어나도 그의 페로몬을 맡을 수 없었다. 이런 형질과 관련된 것은 시우가 어떻게 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이렇게까지 묻는다면 예찬이 설명해 준 대로 대답해야 할 것 같았다. 그 시원하고 싸한 향. 그렇게 설명해 줬으니 자신이 아는 건 그것이었다. 어차피 페로몬을 한 가지 향으로 단정 지을 수 없다고 설명해 준 말까지 덧붙여야 하나 고민이 됐다.
“됐다. 방금 그 말은 못 들은 거로 해. 그리고 내가 이상하게 굴어서 미안해. 우리 잘 지낼 수 있을 거야. 내가 더 노력해 볼게.”
적당한 답을 고르는 사이 에반이 대화를 끝냈다. 조금 전 촬영장에서 아주 잠깐 느꼈던 향이 떠올라 시우는 코 아래를 검지로 문질렀다.
표정으로 그의 감정을 읽고 싶었지만, 운전에 집중한 옆모습으로는 어떤 것도 알 수 없었다. 단지 차 안에 무겁게 깔렸던 기운이 사라졌다. 계속해서 틀어 놓은 라디오에서는 여전히 예찬과 현수가 웃으며 떠들고 있었다.
“고기 먹을래?”
시우는 다시 휴대전화로 고깃집을 검색하며 물었다. 미묘한 상황을 해결하는 방법이었다. 가장 평범한 이야기를 아무렇지 않게 꺼내기.
“초밥 어때?”
고기를 먹자는 뜻으로 말했는데, 돌아온 건 초밥이었다. 날이 섰던 에반의 목소리도 평소와 같은 부드러운 따뜻함을 담고 있었다.
“왜? 너 고기 좋아하잖아.”
생각지도 못한 초밥이라는 메뉴에 반문하면서도 시우는 검색창에 초밥이라는 단어를 입력했다.
“너 어제 소고기 먹었잖아.”
“에반. 난 정말 널 모르겠다. 마치 날 배려하는 게 연인한테 하는 거 같은데?”
어제 제가 소고기를 먹어서 오늘 초밥이라니,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시우는 실없는 말을 꺼냈다. 그러면서도 검색을 멈추진 않았다.
“아마도?”
민망할 수 있는 시우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에반의 대답이 들리자 작게 웃는 시우의 목소리가 차 안에 울렸다.
“그래서 초밥 먹자는 거지? 여기 어때?”
“뭐? 음식점 찾고 있었어?”
계속 휴대전화만 들여다보고 있던 시우는 에반의 말에 자신이 검색하던 창을 보여 줬다.
“됐어. 내가 생각 없이 밥 먹으러 가자고 했을까. 다 왔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