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리스타트(Restart)-39화 (39/187)

39화

시우는 몸을 뒤척였다. 무거운 몸과 정신은 까무룩 무의식의 세계로 빠져들었다.

하지만 이내 깊은 잠 속으로 빠져들지 못하고 뒤척인 시우는 머리끝까지 이불을 끌어 올렸다.

한없이 아래로 가라앉았다. 온몸에 무거운 추가 달린 듯 끝없이 추락했다.

“하―.”

이불을 덮어썼기에 답답함이 배가 됐다. 강제로 잠에서 깬 시우는 상체를 일으켜 앉았다.

계속해서 머리를 울리는 요란한 소리가 점점 커졌다.

“김시우! 시우야! 문 열어! 너 안에 있는 거 다 알아.”

벨 소리에 이어 문을 부술 듯 두드리는 소리와 자신의 이름을 부르는 소리가 계속 맴돌았다. 자연스럽게 잠이 들었다면 깨어나는 게 힘들지 않았겠지만, 아직 수면제 기운이 남아 있는 시우는 쉽사리 깨어날 수 없었다.

눈이 떠지지 않았고, 몸이 마음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힘이 제대로 들어가지 않는 손으로 몸을 누르고 있는 이불을 치웠다.

천천히 다리를 침대 아래로 내리고 벗어 놓은 슬리퍼에 발을 꿰었다.

머리가 울려 제대로 걸을 수 없었기에 시우는 팔로 벽을 짚었다. 현관으로 갈수록 소리는 더 커졌다. 이제야 지금 문을 미친 듯이 두드리는 사람이 진욱 형이라는 걸 알았다.

“야! 인마. 넌 연락도 꺼 놓고…….”

문을 열자마자 안으로 들어오는 진욱 형의 입에선 걸쭉한 욕이 흘러나왔다.

“시끄러워요.”

시우는 벽에 기대선 채 웅얼거렸다.

“너 왜 이래? 어디 아파?”

자신의 어깨를 잡고 흔드는 진욱의 행동에 뇌까지 흔들렸다.

“아니. 나 수면제, 잠이 안 깨서.”

겨우 손을 들어 진욱 형의 팔을 잡고서야 시우는 하고 싶던 말을 했다.

“그럼 잔다고 말을 하고 자든가. 지금 기획사랑 다 난리 났는데 너만 자면 속 편하냐? 그럼 폰은 왜 꺼 놨는데?”

말은 거칠어도 자신을 부축해서 소파에 앉혀 주는 그의 행동에 시우는 피식 웃었다. 이내 미지근한 물컵까지 내밀기에 바짝 마른 입을 축였다.

“이렇게 전화하고 할까 봐. 아, 그런데 지금 몇 시야? 왜 왔어요?”

암막 커튼까지 치고 잤기에 시간 개념이 잡히지 않은 시우는 눈을 뜨는 걸 포기하고 옆으로 다시 누웠다.

“너 어제 오자마자 잔 거야? 징한 놈. 최소 30시간은 잤겠네. 정신 좀 차려 봐. 힘들어?”

잔소리하며 진욱이 커튼을 걷자 밝은 햇살이 쏟아져 들어왔다. 해를 피하는 좀비처럼 시우는 꾸물거려 몸을 동그랗게 말고 소파에 얼굴을 묻었다. 그냥 자게 두지.

“지금 너 찾는 전화 폭주하고, 너 실검 5위까지 올라갔었어.”

“오, 대박.”

분명 대박이라는 말을 하는 시우의 목소리는 그 어느 때보다 평범하고 무심했다. 어차피 군대 갈 건데 실검 5위가 무슨 소용일까.

“얘 봐라. 진짜 잠이 덜 깼어? 너 실검 5위라고. 지금 기획사 서버 터졌고, 전화는 미친 듯이 와서 일단 대표님이 코드 뽑아 놨어. 그랬더니 아예 찾으러 기획사로 사람들이 오고 있다고.”

작은 일에도 잘 흥분하는 진욱 형은 마치 제 일인 것처럼 입에 침까지 튀기면서 현 상황을 리얼하게 전했다.

“그래서요.”

“그래서는 무슨 그래서야. 너랑 연락이 되어야 뭘 어떻게 하든지 하지. 너 알잖아. 태훈 형.”

시우는 앓는 소리를 내며 과하게 힘든 척 연기를 했다. 왜 모르겠는가? 나태훈, 대표이사인 그를 믿었기에 수면제를 먹고 잘 수 있었다. 어떤 일이 일어나더라도 그는 자신에게 묻지 않고 어떠한 결정도 마음대로 할 사람이 아니었다.

그러니 3년 동안 겨우 미니 앨범 두 개를 내고 최근 10개월 동안 잠수 아닌 잠수를 탄 자신을 지금껏 내버려 둔 것이다. 두 달 전. 군대 가든 학교를 열심히 다니든 원하는 대로 다 해 줄 테니 ‘Journey’만 출연하자고 부탁하던 것이 시우가 기억하는 마지막 모습이었다.

돈을 위해서, 회사를 위해서 미친 듯이 소속 연예인들을 돌리는 그런 사람이 아니었다. 시우가 아니어도 시우 다음에 나온 아이돌이 그럭저럭 수익을 내고 있어서 기획사를 유지할 순 있었다.

“대표님이 뭐라는데요.”

태훈만큼이나 오래 본 진욱이었기에 그는 시우가 약한 부분을 파고들었다. 뭐랄까, 시우와 태훈의 관계는 그런 것이다. 서로에게 어떤 것도 강요하지 않고 서로 배려하는 그런 사이.

“뭐라긴, 네 상태 확인하고 이야기하자는 거지. 밥은 먹고 잔 거야? 하긴 네가 그럴 인간이 아니다. 또 잘 생각 하지 말고. 눈 떠.”

시우는 집 안을 뒤지는 소리를 들으면서도 여전히 동그랗게 말고 있는 몸을 풀지 않았다. 온몸을 잠식했던 잠은 서서히 달아나고 있었다. 그리고 또렷해지는 정신 사이로 가장 먼저 떠오른 건 에반의 얼굴이다.

하필이면 자신이 버럭 화를 낼 때 마주했던 그 얼굴.

그는 그렇게 독하고 기괴하면서도 말도 안 되는 명령을 내려 놓고 오히려 상처받은 표정을 짓고 있었다.

권유도 아니었다. 도와준다는 말이 아니었다. 명령이었다. 조물주라도 되는 것처럼 기세등등했다.

“형.”

“왜 빌어먹을 놈아. 진짜 이슬만 먹고 사냐? 냉장고에 먹을 게 하나도 없어. 쌀도 없냐? 쯧.”

그거야 10일 정도 집을 비우니까 냉장고 비워 둔 거지. 쌀도 뭐 그런 이유고, 과일이 없는 것도 그런 이유고, 김치도 그런 거고.

“그…… 에반 소속사에 간단하게 뭐라도 보내 줘. 비용은 나중에 나한테 청구하고. 나 때문에 소동도 있었고. 여기까지 태워 주고 가셔서. 내가 피해 끼친 거잖아.”

진욱은 빈 냉장고를 닫고 옆에 있는 찬장을 뒤지다 천하태평하게 다른 기획사나 챙기는 그의 말에 혀를 찼다. 그러니 이러고 지내지. 늘 시우는 타인이 먼저였다. 욕심을 내고 이 악물고 덤벼도 살아남기 힘든 이 바닥에서 우아한 선비처럼 굴었다.

“너나 챙기라고, 너나. 나가서 뭐라도 사 올 테니까, 씻고 좀 깨고 그러고 있어.”

에반의 소속사에서 벌써 왔다 갔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 그들은 상상하기 어려울 만큼 파격적인 제안을 해 왔다. 에반이 출연하는 모든 프로그램의 동반 출연, 동반 CF까지. 그들은 ‘Journey’와 관련된 모든 부분은 같이 움직이기를 원했다.

태훈은 이 사실을 시우에게 알리고 싶어 하지 않았다. 소속사 전체에 이 일에 대한 함구령이 내려졌다. 진욱은 벌써 시우의 오피스텔 근처를 서성이는 기자들을 보고 모자를 더 눌러썼다.

걸어가면서 휴대전화를 꺼낸 진욱은 습관적으로 혀를 찼다. 그사이 문자와 부재중 전화가 잔뜩 쌓여 있었다.

“네. 형. 자고 있더라고요. 지금 깨워서 씻으라고 하고, 먹일 것 좀 사러 나왔어요. 또 냉장고 텅텅 비워 놨더만요.”

바깥의 상황은 전하지 말고 그냥 푹 쉬게 두라는 태훈의 말에 진욱은 건성으로 네네, 대답하고 통화를 끝냈다. 어쨌거나 이 모든 일은 태훈과 시우가 결정할 사안이긴 했다.

그리고 지금 자신이 이곳에 온 이유는 두 가지였다. 시우의 상황 확인 및 다음 촬영에 대한 고지였다.

종류별로 소분해서 죽을 사 들고 오던 진욱은 오피스텔 앞에서 웅성거리고 서 있는 사람들 사이를 빠르게 지나쳤다.

“진짜 연락 많이 하긴 했네요.”

미적거리고 있을 줄 알았는데, 시킨 대로 씻었는지 젖은 머리카락을 털면서 휴대전화를 만지고 있는 시우를 본 진욱은 그 앞에 죽을 모두 늘어놓았다.

“오죽하면 태훈 형이 날 보냈겠냐고. 그것 말고도 너한테 개인적인 연락 많이 왔지?”

시우는 리스트를 쭉 올리다 한 곳에 멈췄다.

[미안해]

굳이 들어가 보지 않아도 숫자 1 옆으로 한 단어가 적혀 있었다. 지금으로부터 거의 30시간 전. 아마 헤어지자마자 바로 보낸 듯했다. 잠시 그걸 보던 시우는 다시 손끝으로 화면을 밀어 올렸다.

‘Journey’ 멤버가 모두 있는 채팅방엔 이미 글이 잔뜩 오갔음을 알리는 숫자가 적혀 있었다.

“죽 식는다. 어서 골라. 나머지는 냉동실에 넣어 둘 테니까 찾아서 데워 먹고.”

머뭇거리던 시우는 그의 말에 휴대전화를 엎어 놓고 제일 앞에 있는 죽을 끌어왔다.

“먹으면서 들어. 지금 앞에 기자들 많으니까 나올 생각은 하지 말고, ‘Journey’ 프로그램 타이틀 촬영 일주일 뒤니까 알고 있으라고. 방송 날짜도 원래 뒤로 밀렸었는데, 앞당겨져서 서두른대.”

일주일.

좋든 싫든 일주일 후엔 그를 만나야 했다.

“야! 숟가락 들었으면 퍽퍽 퍼먹어. 지금 분위기상 네가 나오는 건 안 될 거고, 밤늦게라도 태훈 형이 직접 올 거니까 그렇게 알고.”

“태훈 형 안 와도 돼요. ‘Journey’ 공식 일정 외에는 일 안 할 거예요. 그리고 입대 신청 하려고요. 언제든 가야 할 거 일찍 갔다 오는 게 좋을 것 같아서. 그렇게 전해 주세요.”

“미쳤어? 노 들어왔을 때 물 저어야 한다는 말 몰라? 너 지금 핫한 라이징 스타야. 스타 되는 거 일도 아니라고. 에반 측에서도 너랑 같이 하는 거 좋대. 방송 잡자고 먼저 연락도 왔어.”

군대 간다는 시우의 말에 일단 함구하기로 한 내용까지 다 불어 버린 진욱은 얼른 입을 다물었다. 시우는 들고 있던 숟가락을 천천히 내려놓았다.

“뭐라고요?”

“아, 씨. 이거 말하지 말랬는데, 지금 이슈 되고 있으니까 같이 방송 좀 나가자 그런 거. 뭐 다른 애들은 다 방송 잡혀 있으니 자연스럽게 방송 홍보도 하고 그러자고.”

“그쪽에서 먼저 제안했어요?”

“제안이라기보다 다 그런 거지.”

얼버무리는 진욱의 말에 시우는 긴 한숨을 내쉬었다.

“진짜 군대 가야겠다. 방법이 그것뿐이네.”

지금까지 없던 입맛이 돌았다. 뭐든 잘 먹고 힘내서 씩씩하게 아무렇지 않게 쿨하게 시크하게 그렇게. ‘Journey’ 막방 하는 날 입대하고 말리라. 열정 없이 흐릿하고 느리게 끔벅거리던 시우의 눈에 활기가 돌았다.

“누구 맘대로 군대 가!”

앞에서 버럭 하는 진욱을 보며 시우는 최대한 예쁘게 웃었다. 누구 맘대로긴요, 제 맘대로죠. 차마 그 얼굴에 대놓고 그리 대답할 순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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