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화
“라이브 하라면서요.”
저녁 식사가 끝나고 모두의 휴식 시간이 시작되었지만, 에반과 시우에겐 라이브가 남아 있었다. 평소처럼 씻고 나와서 노트북과 카메라를 가지고 하려던 시우의 계획은 완전히 어긋나 있었다.
왜 조명이 세팅되어 있고, 자신의 저화질 카메라가 아닌 방송용 카메라가 연결되어 있는 것일까?
잠옷으로 챙겨 온 연보라색 후드 티를 입고 있던 시우는 작가님까지 계시는 걸 보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시우가 평소처럼 시작하고 중간에 에반이 자연스럽게 참여하는 것으로 하자. 알겠지?”
라이브에도 대본이 있어요? 라이브에도 설정이 있었어요? 스타의 세계는 참으로 심오하네요.
대본이라고 말하기는 그렇지만 꼭 했으면 하는 말과 절대 누설하지 말아야 하는 내용이 적힌 A4 용지 한 장이 테이블 위에 올려져 있었다.
라이브를 시작하는 방은 4번 방이 아닌 1번 방이었다.
이거 다 짜고 치는 고스톱이고 시청자들 농락하는 거예요, 를 외치고 싶었지만, 시우는 얌전히 의자에 앉았다.
그래, 메이크업하고 의상까지 정해 준 건 아니니까 긍정적으로 생각하자, 긍정적으로.
늘 그랬던 것처럼 시우는 배경 음악을 깔아 두었다. 평소처럼 그냥 우리 코코맘들이랑 수다 떨고 나오자.
시우는 참으로 엄청난 착각을 한 채, 흘러나오는 팝송을 흥얼거리며 라이브를 시작했다.
“빰빠바바……. 빰빠…….”
코코맘님들 들어오는 걸 조금 기다릴 생각으로 모니터를 보고 생긋 웃던 시우의 눈이 빠르게 깜빡였다. 갑자기 미친 듯이 올라가는 채팅창을 따라갈 수가 없었다. 그와 함께 라이브를 보는 사람의 수가 늘어나는 것도 믿을 수 없었다.
“아, 어…….”
시우의 눈동자가 살짝 떨리면서 불안하게 모니터 여기저기를 보고 확인하는 것이 실시간으로 나갔다.
“안녕하세요.”
일단 인사를 하며 내리고 있던 손이 슬금슬금 올라와 시우의 입을 가렸다. 역시나 헐렁하고 큰 후드 티셔츠를 입고 있었기에 손등은 소매에 들어가 있었고 빼꼼히 나와 있는 손끝이 시청자의 눈에 들어갔다.
“진짜 많이 들어오셨다.”
올라가는 채팅을 따라가기 힘들어 차마 무수히 쏟아지는 질문에 답을 할 수가 없었다.
[코코이쁜거세상이모르게해주세요 : 코코야. 오늘도 귀엽구나.]
[시우는코코 : 우리 코코 놀랬어요. 눈 똥그래져써. 너도 이제 인싸. 우리가 영업 제대로 할게.]
[S코코♡미아S : 코코 손끝 또 빨개졌어.]
무수히 올라가는 글의 홍수 속에서도 코코맘들의 글은 시우의 눈에 정확히 들어왔다. 이미 익숙한 아이디였기에 그랬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역시나 지금까지의 라이브처럼 채팅창이 클린한 것은 아니었다.
“자기소개부터 해야 할 것 같네요. 3년 전에 솔로로 데뷔하긴 했는데……. 아, 코코맘님들 감사합니다. 저 대신 소개해 주시고 계시네요.”
거친 말이 올라오는 것 같으면 미친 듯이 글을 올려 버리는 코코맘님들의 노력에 시우는 얼굴을 가리고 있던 손을 내렸다.
“코코. 왜 혼자 해?”
자기소개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머뭇거리는 사이 옆에서 들려오는 에반의 목소리에 시우는 속으로 한숨을 삼켰다. 이 위기를 벗어나게 해 줄 구세주가 온 것이다.
이미 밖에서 모니터링하고 있던 에반은 라이브가 시작되자마자 쏟아져 나온 불편한 말들에 표정을 굳혔다. 예상은 했지만, 추측성 발언부터 도를 넘는 말들이 많았던 것이었다. 처음 계획은 시우가 어느 정도 진행을 한 후에 합류하는 것이었지만, 그걸 기다릴 여유가 없었다.
“응?”
“안녕하세요. 오션의 에반입니다. 코코 라이브에 무단 침입 좀 할게요.”
방송 중간에 들어가는 일이 허다했던 에반은 태연스럽게 말하면서 시우의 뒤에 있는 침대에 걸터앉았다.
지금까지 올라갔던 속도도 따라가지 못했는데, 에반이 등장하는 순간 또 한 번 요동치는 어마어마하게 변하는 숫자에 시우는 몸을 뒤로 조금 물렸다.
“보자. 코코, 시우에 관한 질문이 많네요. 음……. 이쁜 말 써 주시고요. 코코는 시우 별명이에요.”
침대에 다리를 꼬고 앉아 유심히 모니터를 보던 에반이 부드럽게 미소를 지었다.
“전부 코코에 관한 질문뿐이네. 그럼 내가 대답해야지.”
“응? 뭐?”
“자, 한 번만 말할 테니까 집중해서 잘 들으세요. 이름 김시우, 나이 23세. 서울 출생이고, 가족 관계는 부모님과 누나 한 명. 혈액형은 AB형. 174cm에 57kg. 별명은 코코, 이유는 쿼카를 닮아서. 한국대학교 국문학과 재학 중. 생일은 12월 2일. 데뷔 일은 4월 10일이고요. 개인적으로 데뷔곡보다 3번 트랙에 있는 ‘Liar’를 더 좋아하고. 아, 코코 발레도 거의 10년 해서 춤 선 진짜 이뻐요.”
랩 하듯이 빠르게 쏟아져 나오는 자신의 신상을 듣는 시우의 입술이 점차 벌어졌다. 누가 랩 라인 아니랄까 봐 딕션 정확한 것 보소.
“아! 맞다. 그리고 코코 왼쪽 허리 척추 근처에 점 두 개 있음.”
“네가 그걸 어떻게 알아?”
쉬는 시간에 에반에 대해서 좀 검색해 본 시우는 그가 무척 똑똑하다는 것과 기억력이 좋다는 것을 떠올렸다. 어쩌면 자신에 대한 정보를 미리 알고 외웠을 수도 있었다. 그래서 그렇게 이해하려고 했는데, 왼쪽 허리 뒤에 점 두 개 있는 것 따위는 검색으로 알 수 없는 것이었다.
시우가 당황한 것보다 라이브를 시청 중이던 팬들의 멘탈이 나가는 것이 더 빨랐다.
“나 코코맘 1기야. 네 직캠 중에 춤출 때 보인 적 있어.”
정말 상상할 수 없는 그의 대답에 시우는 두 손을 들어 얼굴을 가려 버렸다. 처음에 팬이라고 말할 때 진지하게 이야기를 나눠 볼걸.
에반이 자신의 프로필을 읊는 순간부터 나타났던 부정맥이 사라졌다. 며칠간 부정맥으로 생각했던 것이 아마도 그게 아니었던 것 같았다. 지금까지 그가 그렇게 행동했던 것은 정말 순수하게 팬이어서 그랬던 것이었다.
호기롭게 시작했던 라이브는 그리 오래 하지 못했다. 오늘 라이브의 목적은 김시우를 알리는 것이었다. 한껏 긴장한 시우와 다르게 모든 이야기는 에반이 주도했다.
카메라가 꺼지고 자리에서 일어난 시우는 스태프를 향해 꾸벅 인사를 하고 자신의 방으로 향했다. 조금, 아니 조금 많이 가슴이 답답했다. 머릿속은 복잡했고, 이 기분을 뭐라고 표현할 방법이 없었다.
피디는 방을 옮기라는 말을 하지 않았다. 잠들기 위해 침대에 누웠지만, 노력할수록 잠은 멀리 달아났다. 온갖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라이브 이후에 지인들로부터 쏟아지는 연락에 휴대전화 전원은 아예 꺼 버렸다.
분주하게 움직이던 사람들도 모두 잠이 들었는지 적막이 감돌자, 자리에서 일어난 시우는 조심스럽게 옷을 챙겨 입고 밖으로 나갔다. 한적한 교외에 있는 주택. 관리가 잘된 넓은 정원의 끝엔 흔들의자가 있었다.
지금은 비가 그쳤지만, 온종일 내린 비로 공기는 축축하고 싸늘했다. 짙은 구름 사이로 반달이 간간이 고개를 내밀었다.
흔들의자에 편히 기대앉았다가 싸한 바람에 두 다리를 끌어 올려 품에 안았다. 짧은 시간 많은 일이 일어나서 어디부터 어떻게 정리를 해야 할지 감이 오지 않았다. 무한 회귀가 멈춘 이후부터 모든 것이 바뀌었다.
늘 부러워만 하던 사람들과 같은 공간에서 웃고 떠들고 함께 지내고 있었다. 처음부터 강하게 호감을 보이고 자신을 이끌던 에반은 자신의 팬이었다. 그런 걸 성덕이라고 하던가? 그리고 그와 함께하면서 절로 사람들의 시선이 자신에게로 쏠렸다.
조금 전 라이브에서 다양한 욕을 먹기도 했지만, 어쨌거나 그건 관심의 표현이었다. 이런 과한 관심의 대상이 되어 본 적이 없었다. 하긴 첫 그룹의 멤버가 사회면을 장식했을 때도 그 사건은 다른 무수한 뉴스에 묻혀서 댓글조차 제대로 달리지 않았었다.
울고 싶은 걸까? 아니면 웃고 싶은 것일까?
자신은 정말 인기가 싫은 걸까? 이렇게 한 줌의 적은 팬들과 소통하면서 지내는 것이 정말 행복했을까? 아예 이 세계를 떠나서 살아도 되는데 계속 얼쩡거리고 있었다.
미련일까? 후회일까? 부러움일까?
나도 어쩌면 한 번은 날아오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희망?
무섭다, 두렵다. 아마 이 원초적인 기분이 가장 적합한 단어일 것이다. 인기를 얻었다. 그리고 그 맛을 알아 버린다면 다시 회귀했을 때 버틸 수 있을까? 다음번 회귀에서 또 이름 모를 누군가로 남아서 살 확률이 높았다. 가지지 못한 것을 동경하면서 노력하고 사는 건 잘할 자신 있었다.
그 맛을 알아 버린 뒤 두 번 다시 그 자리에 가지 못한다면 그 상실감을 견딜 수 있을까?
목 끝까지 차오른 답답함에 시우는 길게 한숨을 쉬었다. 기온이 많이 떨어지긴 했는지 하얀 김이 몽글몽글 올라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