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리스타트(Restart)-21화 (21/187)

21화

“새로운 숙소에 도착했습니다. 여긴 지난 숙소와 다르게 2층이랍니다. 현재 침실은 총 네 개고요. 역시 1인 1실은 꿈 같은 이야기군요. 일단 오늘 방 정하면 여기서 머무는 3일 동안 침실 이동 없답니다.”

진행 담당이라고 할 수 있는 현수가 숙소로 들어가면서 자연스럽게 구조를 설명하기 시작했다. 메인 베드룸엔 킹사이즈 침대와 발코니, 욕실까지 모든 것이 갖추어져 있었다.

“대박. 무조건 저 여기서 잘 거예요. 아무도 오지 마세요!”

방이 마음에 들었는지 안이 먼저 자신의 의견을 피력했지만, 다들 안의 머리를 장난스럽게 쓰다듬으며 웃을 뿐이었다.

다음으로 싱글 베드 두 개와 욕실이 딸린 침실이 이어졌다. 그리고 이층 침대가 있는 침실과 더블베드가 있는 방까지 모두 구경한 멤버들은 거실에 모였다.

“저 진짜 2층 중앙 메인 방 쓰고 싶어요.”

일곱 명이 충분히 배정만 잘 받으면 편하게 지낼 수 있었다.

“솔직히 저희가 오늘 이동만 무려 여섯 시간이 넘게 했거든요. 다들 피곤하고 지금 저녁도 먹어야 하니까, 최대한 간편하게 정하겠습니다. 일단 가위바위보로 순서부터 정할게요.”

어제는 행운의 신이 에반의 편이었다면, 오늘은 그렇지 않았다.

첫 출발은 시우였다. 그리고 제일 마지막이 에반이었다.

“1번 방은 처음 본 메인 룸 제일 좋은 방이죠. 두 분 되겠습니다. 다음으로 2번 방 싱글 베드 두 개에 욕실 있는 곳. 3번은 욕실 없음, 이층 침대. 4번은 제일 구석 끝방, 더블베드. 아시겠죠? 좀 전에 가위바위보 순서로 뽑겠습니다.”

현수가 들고 있는 주머니에서 종이를 뽑은 시우는 바로 펼쳐 보려고 했다.

“아니! 잠깐잠깐. 다 뽑고 한 번에 보는 것으로 하죠.”

예찬의 중재에 시우는 종이를 손에 꼭 쥔 채 기다렸다.

“동시에 하나, 둘, 셋.”

다들 자기 종이를 확인하고는 재빨리 카메라에 잡히게 돌려 보였다.

“악! 나 3번이야. 1번 방 가고 싶었다고요.”

처음부터 1번 방을 외치던 안이 과장된 행동으로 바닥을 굴렀다.

“1번! 1번, 1번 누구야?”

예찬은 두 손을 위로 들고 크게 외쳤고, 곧 같은 1번을 뽑은 현수와 뜨거운 포옹을 했다.

시우는 작게 미소를 지으며 카메라를 향해 V자를 그려 보였다. 누가 뭐라고 하든 독방이 최고 아니던가? 처음 방 정할 때도 운이 따르더니 이번에도 편하게 혼자 지내게 된 것이다.

방으로 들어간 시우는 캐리어를 구석에 두고 창가로 걸어가 무겁게 드리운 커튼을 양쪽으로 펼쳤다. 붉은 노을이 가득한 하늘이 제일 먼저 보였다.

로또 한 번 더 긁고 그냥 이렇게 조용하고 멋진 곳에서 살까? 창문을 열자 시원한 바람이 품으로 안겨 들었다.

“맥주 먹고 싶다. 버터구이오징어랑.”

다들 짐을 옮기고 돌아다니는 발소리가 들리지만, 시우가 있는 방으로 들어올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복도에서 왁자지껄 멤버들이 소리 지르는 소리에 시우는 씩 웃었다. 제일 구석의 작은 방. 더블베드만으로 꽉 차는 작은 방엔 욕실도 없었다.

오히려 아담한 방이 안정감을 주었다.

“시우 형! 시우 형, 어디 있어?”

밖에서 자신을 찾는 예찬의 목소리에 시우는 싱글거리며 방문을 열었다.

“대박. 이번 여행에선 시우 형이 위너다, 위너. 또 혼자야.”

“아~ 너무 외로워.”

마음에도 없는 말을 하며 시우는 침대에 벌러덩 누웠다.

공용 욕실을 써야 하지만 그게 뭐 대수인가? 한 침대에서 누군가와 얽히고설켜서 자지 않는 것만 해도 천국이었다.

“그럼 나랑 방 바꿔요. 나 안이랑 쓴단 말이에요. 안이 2층 싫다고 할 게 뻔해서 2층에서 자야 한단 말이에요.”

“게임은 공평한 거란다.”

촬영 준비도 해야 하고 스태프들도 짐을 정리하는 공식적인 쉬는 시간이었기에 시우는 거실로 내려가 소파에 편히 앉았다. 혼자 쓰는 방이라 늦게 짐을 풀어도 뭐라고 할 사람도 없으니 말 그대로 자유였다.

“완전 부럽다.”

편안한 옷으로 갈아입은 루이가 거실로 나와 시우의 다리를 베고 누웠다. 다들 그룹 생활을 해서 그런 것인지, 붙임성이 좋은 것인지. 그렇다고 딱히 피하거나 치워 낼 것도 아니기에 시우는 그대로 늘어져 있었다.

“형. 나랑 셀카 찍어요. 진짜 하루에 한 장 이상 찍어 올리는 것도 일인 거 같아. 형이랑 찍은 거 한 장도 없더라고요.”

“나 지금 엉망이야.”

시우는 소파 등받이에 푹 기댄 채, 고개를 들지 않고 웅얼거렸다.

“앱으로 찍으면 되잖아요. 참! 형, 쿼카 닮았다고 코코라면서요? 내가 또 검색해 봤지.”

“응.”

시우는 주머니에 넣어 뒀던 휴대전화를 꼬물꼬물 꺼냈다. 촬영 중이라 무음, 무진동으로 해 놓고 지금껏 꺼내지 않았었다.

한데 100% 풀로 충전해서 들고 나왔고, 낮 동안 거의 꺼내지 않은 휴대전화의 배터리가 10% 미만으로 떨어져 있었다.

단지 오늘 한 것이라고는 오후에 잠시 꺼내서 에반과 상의 후 비슷한 사진을 SNS에 업데이트한 것이 전부였다. 소박하던 자신의 팔로워 수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 있었다. 부재중 전화도 많았고, 메시지도 폭주였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에반의 SNS에 접속한 시우는 긴 한숨을 쉬었다.

추노도 아니고, 피쉬들은 자신을 찾는 중이었다. 인싸의 영향력은 어마어마했다.

“형.”

너무 당황스러운 상황이라 아무 말도 못 하고 휴대전화만 보고 있는 시우를 루이가 작게 불렀다.

“축하해요. 인싸의 세계에 들어온 걸.”

시우에게 셀카를 찍자고 말해 놓고 카메라 앱을 켜려던 루이는 메시지가 오자 그걸 확인했을 뿐이었다. 친한 연예인에게 온 메시지 내용은 단 하나였다.

[에반이랑 사진 찍은 애. 누구야?]

“시우야, 셀카 좀 찍자.”

우당탕거리는 소리가 나고 루카 형이 휴대전화를 한 손에 꼭 쥐고 소파 앞에 서 있었다.

“형, 줄 서요. 내가 먼저야.”

사진 몇 장의 힘은 시우가 아는 것보다 더 무서운 것이었다. 시우에 대한 정보가 많았다면 결코 이 정도 상황까지는 되지 않았겠지만, 불행하게도 그는 미지의 인물이었다.

휴식 시간 휴대전화를 본 멤버 모두에게 에반의 SNS에 올라온 사람에 관한 질문이 쏟아져 들어오고 있었다.

그리고 잠시 후.

시우는 이 피디님과 마주 앉아야 했다.

“시우야.”

“네.”

“물 들어왔을 때 노 저어야 한다는 말, 무슨 말인지 알지?”

“네.”

피디의 입에서 무슨 말이 나올지 몰라 시우는 살짝 고개를 숙인 채, 테이블만 쳐다봤다.

“너도 무명 그만하고 떠야지. 이 세계는 타이밍이 생명이야. 네가 이런 상황인 것도 뭐 타이밍 때문이고 운이고 그런 건데. 그러니까 방 쓰는 것 말이다.”

이거 리얼 버라이어티 쇼라면서요. 짜고 치는 고스톱 아니라면서요. 시청자들을 속이는 건 나쁜 거라면서요.

이 피디가 무슨 말을 할지 예상이 되었다.

전 혼자가 좋아요. 무명도 그리 나쁘지 않다고요. 방금 휴대전화 봤는데 아마도 방송될 때쯤 전 해외 도피 중일 거예요. 제가 감당할 수 없는 인기는 제 것이 아닌 겁니다. 다른 팬덤도 아니고 오션이라고요.

“에반이 네 방으로 가는 게 좋을 것 같아.”

킹사이즈도 아니고 퀸사이즈도 아니고 기본 사이즈 더블베드를 누군가와 공유해야 하는 순간이 다가왔다.

“제가 루카 형이랑 바꿀게요.”

시우는 이 피디의 말허리를 잘라먹고 선수 쳤다.

거기 싱글 베드 두 개잖아요. 그럼 괜찮을 거예요. 제가 살 수 있는 구멍은 만들어 주셔야죠. 그렇잖아요. 피디님.

“아냐. 그럼 재미가 없어.”

“우리 방 정하는 거 이미 다 찍었잖아요. 이렇게 바꾸는 거면 또 찍어야 하는데.”

시우는 턱을 만지며 생각에 빠져 있는 피디를 보면서 입 안에 고인 침을 꿀떡 삼켰다.

그냥 원래대로 가자고요. 무슨 조작입니까, 조작이.

“방을 바꾸라니요?”

시우는 등 뒤에서 들리는 익숙한 목소리에 고개를 홱 돌렸다. 이 이야기를 벌써 누군가에게 듣고 온 것 같았다.

“그래, 어서 와서 앉아. 같이 이야기하는 게 편하지.”

“싫습니다.”

에반은 차가운 얼굴로 정색한 채 거절의 말을 뱉었다.

“그 좁은 침대에서 어떻게 둘이 자요.”

시우는 갑자기 나타난 에반의 말에 가슴을 쓸어내렸다. 좁지, 많이 좁아. 옆에 서 있는 에반을 훑어보며 절로 고개를 끄덕였다. 저 어깨에 치여 죽을 일 있어? 조금 과장되게 말하면 예찬이 혼자 누워도 꽉 찰 것 같은 침대였다.

그런데 그게 그렇게 정색하고 목소리 깔고 칼거절할 일인가?

거의 스무 살이나 어린 놈이 정색하고 대드는 상황에서 표정 하나 바뀌지 않은 이 피디는 여전히 턱을 쓸고 있었다.

“그래? 그럼 1번 방이랑 바꿔 줄까?”

“에?”

자신이 아닌 에반을 향해 말을 건네는 피디를 보며 시우는 한 손으로 얼굴을 가렸다.

도대체 왜 그러시냐고요. 홍보는 이미 미친 듯이 잘되고 있는데, 왜 굳이 어그로를 끌려고 하세요. 그 어그로에 저 죽는 거 보고 싶으세요? 피디님까지 거들지 않으셔도 이미 전 물고기 밥이 됐어요.

“그건 좀 고려해 볼게요.”

아니. 왜 또 그건 고려 사항이야. 피디의 은근한 제시에 에반은 한층 누그러진 대답을 내놓았다.

“참. 시우, 너 라이브 그때 제대로 했어?”

하긴 했는데 중간에 급히 꺼 버려 미적지근하게 끝나 버린 라이브가 떠올랐다. 어차피 그때 라이브 봐 주신 분들이 40명 남짓이니 이슈는 전혀 되지 않고 사그라진 라이브였다.

“하긴 했는데, 제 팬클럽분들만 조금 들어와 주셨어요. 딱히 프로그램에 관한 내용은 말 안 했어요.”

“에반이 넌 라이브 안 하잖아.”

또 생각에 빠진 듯 한마디를 건넨 이 피디는 턱을 만지는 걸 계속했다. 에반이 라이브를 하지 않는다기보다 제가 주가 되어서 해 본 적이 없었다. 대부분 그룹 멤버가 라이브 중일 때 가끔 방문하는 정도였다.

“시우, 너 지금 SNS 팔로워 많이 늘었고?”

시우는 눈동자만 데굴데굴 굴리다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그래, 굳이 그 비좁은 침대에서 에반과 자는 것보다 라이브를 하는 게 훨씬 나을 것 같았다.

“그럼 오늘 둘이 라이브부터 해. 시우 너, 인마. 아까 태훈이한테 전화 왔더라. 너 잘 부탁한다고, 이참에 빛 좀 보게 해 주라고. 무슨 말인지 알지?”

방을 바꾸는 것을 안건으로 했던 미팅은 적당히 라이브를 같이 하는 것으로 마무리되었다. 아무래도 몇십 년째 자신을 믿어 주고 밀어주는 기획사 대표 태훈 형을 위해서라도 이번에는 스타 근처에 기웃거리기는 해야 할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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