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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스타트(Restart)-14화 (14/187)

14화

해가 지고 밤이 깊도록, 채팅방은 죽지 않고 오히려 더 뜨겁게 타올랐다. 그리고 그 일을 주도하고 있던 ‘코코이쁜거세상이모르게해주세요’라는 아이디를 쓰는 미경은 한 코코맘께 다이렉트 쪽지를 받았다.

‘코코내꺼’라는 아이디를 쓰시는 분이셨다. 자주 나타나지는 않았지만, 코코맘이면 누구나 아는 분. 코코와 관련된 행사에 항상 거액을 투척하는 것으로 유명했다.

반면 미경은 코코맘 모두가 인정하는 찐팬이었다. 여유로운 가정에서 자라 카페를 운영하는 그녀에게 넘치는 건 시간이었다.

그랬기에 코코의 라이브를 거의 풀로 보았다고 할 수 있을 만큼 그녀에겐 코코와 관련된 정보가 많았다.

[코코내꺼 : 오늘 라이브 영상 공유 부탁드립니다.]

미경은 조금의 고민도 없이 에반이 나오기 전까지의 장면을 보내 드렸다. 코코맘들과 자료를 공유하는 것에는 거리낌이 없었다. 그리고 많은 코코맘이 자료 공유를 신청했기에 이런 일은 그녀에겐 매우 흔했다.

[코코내꺼 : 에반 나온 장면까지 풀 영상으로 부탁드립니다.]

오늘 라이브에 참여하지 않으신 분이었다. 아니. 라이브에서 한 번도 뵌 적이 없는 분이었는데, 어떻게 에반이 나온 걸 아는 거지? 미경의 동공이 파르르 떨렸다. 이미 에반이 나온 것을 알고 콕 찍어서 하는 요청이었다. 없다는 거짓말을 할 상황이 아니었다.

한참을 고민하던 미경은 웃으면서 협박하던 에반을 떠올리고는 그런 영상은 없다고 정중하게 답을 보냈다.

풀 영상을 보내 주고 보내 주지 않고를 떠나서 혹시라도 우리 코코에게 조금이라도 문제가 될 만한 일을 만들지 않겠다는 의지였다. 우리 애 이쁜 거 세상에 널리 알리고 싶은 마음도 참고 사는 마당에 사서 분란을 만들 필요는 없었다.

더군다나 상대는 팬덤이 어마무시한 오션의 리더 에반이었다.

바로 답이 오지 않았기에 미경은 오늘 라이브를 다시 핥기 위해 영상을 클릭했다. 킬링 포인트가 너무나도 많아서 어디서부터 어떻게 감상을 해야 할지 감이 오지 않았다. 일단 나노 단위로 진득하게 핥고 난 뒤에 코코맘들과 토론의 장을 열 생각이었다.

그때 알람이 울리고 메시지가 들어왔다.

[코코내꺼 : 본인이니 주시죠.]

오해를 살 만한 멘트 아래로 사진이 한 장 첨부되어 있었다.

방금 에반의 SNS에 올라온, 누군지 알 수 없는 사람이 데이베드에 있는 사진.

그런데 방금 자신에게 온 사진은 확연히 달랐다.

에반이 업데이트한 사진의 주인공은 코코였다.

데이베드에 편하게 기대앉아서 한쪽 허벅지 위에 책을 둔 최애 코코가 카메라를 향해 손을 내밀며 환하게 웃고 있었다.

이건 놓칠 수 없는 거래 제안이었다. 상대는 딜을 하는 것이 아니라 그저 통보한 것이었다. 사진을 먼저 넘겼고 미경은 그것을 확인했기에 상대가 원하는 영상을 보내야 했다.

문제는 영상을 보내고 말고가 아니었다.

‘코코내꺼’님이 혹시 코코인 걸까? 하지만 코코의 경우 자신의 앱에서 라이브로 했던 방송을 볼 수 있었다. 코코맘들이야 라이브 하는 걸 녹화 뜨고 공유하지만, 코코는 그럴 필요가 없다.

그럼 이 사진을 줄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현재 촬영 중인 현장에서 찍은 사진. 거기다 코코는 사진이 찍히는 걸 알고 있었다.

지금 촬영 현장에 있는 사람. 그리고 그의 사진을 마음대로 찍어도 오해받지 않는 사람. 코코의 이런 미소를 볼 수 있을 만큼 제법 가까운 사람.

방금 메신저에 적혀 있는 멘트로 시선을 옮겼다. 그리고 적혀 있는 문장을 천천히 읽었다.

“대박. 미친.”

지금껏 큰손으로 돈을 펑펑 뿌리던 ‘코코내꺼’님이 에반이라는 결론이 나왔다.

그렇다면 좀 전에 시우를 코코라 부른 것도 코코맘이라고 칭한 것도 그에겐 너무 자연스러운 일일 것이다.

오늘 몇 번이나 놀란 심장은 지금도 감당하기 힘든 현실에 미친 듯이 폭주하기 시작했다.

내가 지금 에반이랑 다이렉트 메시지를 주고받고 있다고? 그리고 에반은 그 누구도 가지고 있지 않은, 자신이 직접 찍은 코코의 사진을 준 것이다.

[코코이쁜거세상이모르게해주세요 : 에반 님?]

미경은 덜덜 떨리는 손으로 잡고 있던 휴대전화를 던져 버렸다. 일단 질렀지만, 답을 볼 용기가 나지 않았다. 진짜 미쳤고요, 노답이고요. 이 상황에 전 어떻게 해야 하는 거냐고요. 심호흡 후 휴대전화를 집어 들었다.

하지만 곧바로 휴대전화를 놓쳤다.

한 장의 사진이 더 있었다.

우리 애 왜 쫄딱 젖었을까요? 게다가 제 것이 아닌 것이 확실한 커다란 반소매 티셔츠를 입고 수건을 들고는 어딘가를 보며 웃고 있었다. 구름 한 점 없이 푸른 하늘과 방금 젖은 이유를 말해 주는 야외 수영장이 배경이었다.

미경은 덜덜 떨리는 손으로 휴대전화를 들고 그가 원하는 풀 버전 영상을 보냈다.

[코코내꺼 :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그리고 방금 보낸 사진은 본방송 나간 후 공유해 주세요.]

미경은 돌아온 대답을 보며 급히 숨을 들이켰다. 엄청난 사람과 말할 수 없는 비밀이 생겨 버렸다. 오늘 본 것들은 그때 같이 보던 코코맘들과 공유할 수 있었지만, 방금 일어난 일은 왠지 무덤까지 갖고 가야 할 것 같았다.

미경은 아직 마음대로 나대는 심장을 감당할 수 없었지만, 방금 에반이 보낸 사진을 보았다. 우리 애 왜 이렇게 이뻐요?

우리 애 이렇게 청초한데. 와, 왜 방송에서는 이렇게 안 웃어? 하긴 우리 애가 방송에 제대로 나온 적이 있어야 말이지.

눈꼬리 접힌 거 어떡하지? 애 입술 하트 됐어.

그래서 지금 촬영하시는 프로그램 이름이 어떻게 되는데요? 방송은 언제 하는 건데요? 이 은혜로운 방송 언제 하냐고요?

그날 미경은 미친 듯한 화력으로 타오르는 채팅방에 들어갈 수 없었다. 지금 이런 기분으로 접속했다가는 엄청난 비밀을 누설할 것 같아서였다.

* * *

“시우. 혹시 못 먹는 거 있어?”

에반의 말에 방에서 나온 시우는 자신을 보자마자 말을 거는 메인 작가님의 질문에 고개를 가로저었다. 호불호는 있지만, 딱히 못 먹거나 트러블이 나는 음식은 없었다.

“놀이기구 같은 건?”

“그것도 괜찮아요. 우리 놀이공원 가요?”

놀이기구라는 말을 듣는 순간 시우의 두 눈이 반짝였다. 대표적인 스케줄은 다 들어서 알고 있었지만, 놀이공원에 간다는 말은 전혀 듣지 못했다.

“섭외가 안 돼서 확정 못 했었거든. 그런데 될 것 같네. 그래도 아직 확정은 아니고. 내일 아침은 9시까지 기상, 10시에 출발. 알겠지?”

“놀이공원 간다면 언제 가요?”

솔직히 이곳에 오면서 사전 조사 같은 건 하지 않았다. 못 한 것이 아니라 하지 않은 것이다. 어차피 출발하는 날이 다시 회귀하는 날이었기에 기대조차 하지 않았다. 그리고 벌써 3일째. 세상은 정상적으로 돌아갔다. 시간도 많았기에 찾아보던 중 유명한 놀이공원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

“위치라든가 그런 걸 다 고려해서 가게 된다면 출국 이틀 전쯤 될 것 같아. 그리고 출국 전 개인 자유 시간에 하고 싶은 거 왜 안 적었어? 진짜 혼자 보낼 생각이야?”

시우는 고개를 돌려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 누구도 이쪽을 보고 있지 않았다. 시우는 자신을 보고 있는 메인 작가님의 귀에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작게 속삭였다.

솔직하게 하고 싶은 걸 말하긴 했지만,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랬기에 작게 속삭이듯 말한 것인데, 오히려 자신의 어깨를 두드려 주는 따뜻한 손길에 시우는 머리를 긁적였다. 가능하다 불가능하다, 이런 대답이 아니었다.

“애들 다 자? 아직 안 자나?”

어슬렁거리며 나타난 이 피디는 집을 돌아다니며 흩어져 있는 멤버를 모았다. 오늘 밤엔 특별한 일정이 없었기에 다들 자유롭게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거실에선 루이와 예찬이 게임을 하고 있었고, 현수는 한잔 더 한다며 루카, 안과 함께 정원 벤치에 있었다.

밤 10시가 다 되어 가는 이 시간, 갑자기 모인 멤버들의 시선은 이 피디에게 꽂혀 있었다.

오늘 일정 없다면서요.

“현수 촬영할 수 있겠어?”

“피디님. 오늘 일정 없다면서요. 방금 맥주 땄는데, 진짜 한 모금밖에 못 마셨거든요? 이럴 줄 알았으면 한 캔 다 먹고 올걸.”

말로는 투덜거리지만, 이들은 자연스레 거실로 나왔다. 거실에 카메라가 세팅되어 있고, 모든 스태프가 준비를 끝낸 것을 확인한 순간, 이미 방송에 들어갈 준비는 끝났다고 봐도 무방했다. 안은 헤어밴드를 가지러 갔고, 루이는 입고 있던 후드 티셔츠의 후드를 느슨하게 썼다.

“뭐 하시려고요?”

어디서 뭘 하다가 온 것인지 가장 늦게 나오면서도 서두르지 않는 에반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내일 쉬지 않고 달린다는 조건으로 걸리는 이동 시간은 여섯 시간. 우리는 중간에 점심도 먹어야 하고 휴식도 해야 하니까 아무래도 돈이 많이 필요하겠지?”

“아. 진짜 너무하다. 밥이랑 간식은 무상으로 제공해 주셔야죠.”

예찬이 또 거실 한가운데 드러누우려 하자 현수는 재빨리 그의 목덜미를 낚아챘다. 피곤한데 우리 뭐가 됐든 빨리하고 쉬는 게 좋지 않겠니?

“자! 간단히 설명할게. 종이 옮기기. 여기 시우에서 시작해서 마지막 에반이 끝내는 거로 다섯 번 성공하면 원하는 거 다 해 준다.”

모두의 시선이 이 피디가 들고 있는 작은 손바닥만 한 종이에 닿았다. 그리고 제일 먼저 시작해야 하는 시우의 눈동자가 방향을 잃고 마구 흔들렸다. 이거 엄청 친한 사이에 해도 이상해지는데, 이제 겨우 안면 튼 사람과 하라고요?

일단 이 피디가 시우에게 종이를 내밀고 있었기에 시우는 파르르 떨리는 손으로 종이를 잡았다. 그리고 바로 옆에 있는 예찬을 바라보았다. 우리 진짜 이거 해야 하는 거야?

내가 그룹 생활을 할 때도 해 보지 못한 거야.

“에반. 너 화나면 말로 해. 페로몬으로 찍어 누르냐! 거기다 피디님은 베타라서 네가 얼마나 화났는지 모른다고!”

거실 입구에 서 있는 에반을 향해 버럭 소리를 지른 현수는 급히 루이를 자신의 뒤로 끌어당겼다. 안은 이 공간에 없었기에 큰 문제가 없겠지만, 루이에겐 위협적인 페로몬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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