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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스타트(Restart)-6화 (6/187)

6화

이어 방 정하기 게임은 너무 쉽게 끝나 버렸다. 그냥 방 번호가 적힌 종이 일곱 개를 고르는 것이었다. 그리고 정말 하늘이 내린 운으로 시우는 킹사이즈 침대가 있는 방을 혼자 쓰게 되었다. 무려 욕실까지 딸린 방으로.

방이 마음에 드니 어쩌니 오가는 말을 들으며 시우는 슬쩍 뒤로 몸을 물려 등받이에 편히 기댔다. 그룹이었을 때의 추억이 떠올랐다. 좋으니 싫으니 싸우기도 참 많이 싸우고 정도 많이 든 사람들인데…….

“자자. 차량 팀도 나눴고, 방도 정했으니 장 보러 갑시다.”

루이, 루카와 같은 차를 타게 된 시우는 운전대를 잡겠다는 루카의 말에 자연스럽게 뒷좌석으로 향했다. 그리고 당연하다는 듯 루이는 조수석에 앉았다.

“그런데 나 왜 시우 만난 적이 없지? 루이, 넌 만났다며.”

리얼 버라이어티 쇼는 쉴 틈이 없었다. 차 안에도 잔뜩 설치되어 있는 카메라가 익숙한 듯 루카가 먼저 대화를 이끌었다. 그 옆에서 루이는 제가 잘 나오도록 카메라 각도까지 고쳤다.

“데뷔한 지는 3년 됐는데, 미니 앨범 두 개만 내고 인기가 없어서 활동도 거의 안 했거든요. 루이 아는 건 팬텀과 음악 방송 겹쳐서…….”

“저 시우 형 무대 보고 완전 반했잖아요. 왜 형이 안 뜨는지 진짜 알 수가 없어. 그런데 춤을 그렇게 잘 추면서 왜 메인 곡이 발라드예요?”

“진짜? 시우 춤 잘 춰?”

“아, 아니에요. 그냥 율동 수준이죠. 루카 형이 있는 루미너스에 비하면, 어휴.”

“그러잖아도 춤 때문에 죽을 것 같아. 난 촬영 나와서 도망치기나 했지, 지금 다들 연습실에 감금당해 있어.”

“루카 형은 메인 댄서면서 그런 말 하면 어떡해요?”

“와! 루이가 사람 친다. 여보세요, 루이가 절 막 쳐요.”

까르르 웃으면서 루카의 팔뚝을 툭 치는 루이의 행동에 루카가 오버스럽게 핸들을 꺾는 척 장난을 쳤다.

“내가 언제 쳤다고 그래요? 이게 아파? 이게?”

계속해서 투덕거리는 루카와 루이 덕분에 사운드도 영상도 비지 않자, 시우는 창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팀과 방을 나누는 게임이 끝나고 어수선하던 상황에 했던 에반이 건넨 말이 떠올랐다.

‘손등 내랬잖아.’

불만 가득한 틱틱거리는 그 목소리에 시우는 듣지 못했다고 대답했다. 하지만 그때 그 말이 정확히 자신을 향한 말이었고, 그가 저와 같은 팀이 되고 싶어 했다는 걸 알았다.

카메라가 없는 조용한 공간에서 진지하게 그와 이야기를 좀 나눠야 할 것 같았다. 원래 성격이 그런 것인지 아니면 정말 자신의 팬인 것인지에 대해서.

* * *

“지는 사람 몰아주기!”

“후회하기 없음. 무르기 없음.”

각기 제가 먹고 싶은 것들을 다 사다 보니 엄청난 양의 음식을 샀고, 결국 묵직한 비닐봉지를 하나씩 나눠 들어야 했다. 한 손에는 비닐봉지를, 다른 손에는 취향대로 고른 막대사탕이나 아이스크림을 먹고 있는 그들의 얼굴엔 장난기가 가득했다.

예찬이 제시한 비닐봉지 몰아주기 게임에 다들 희희낙락하면서 가위바위보에 동참했다. 환호성과 함께 한 명씩 빠져나갈 때마다 바닥엔 봉지가 쌓여 갔다.

그리고 마지막 남은 사람은 루이와 시우였다.

“와. 진짜 알파들 다 빠져나가고 오메가랑 베타한테 몰아주기가 어디 있어!”

루이가 빽 소리쳤지만, 다들 배를 잡고 웃느라 정신이 없었다.

“형! 형, 뭐 낼 거야?”

발을 동동 구르던 루이가 눈웃음을 살살 치면서 하는 말에 시우의 입꼬리가 슬며시 올라갔다. 지금 현실의 시간으로 한 살 차이지만, 길게 본다면 삼촌과 조카뻘이라고도 할 수 있었다. 이렇게 예쁘고 귀여운 아이가 형이라고 부르면서 애교를 부리는데 어떻게 안 넘어가?

“가위.”

“좋아! 가위바위보.”

시우는 약속대로 가위를 냈고, 시우를 믿은 루이는 주먹을 내밀었다.

“앗싸!!”

두 팔을 위로 들고 방방 뛰면서 멀어지는 루이를 보고는 시우는 과장되게 어깨를 들썩였다. 이런 일 하라고 섭외했으니, 얼마든지 할 수 있었다. 멀리 가는 것도 아니고 주차장에 있는 차까지 가는 것인데.

상대가 알파였다면 약속대로 내지 않았겠지만, 오메가는 베타와 알파에게 보호해 주고 보살펴야 하는 존재로 인식되어 있었다. 물론 이런 의식이 깊게 뿌리 박혀 있는 사회에서 살아온 시우에게도 오메가는 조심해서 대해야 하는 연약한 사람이었다.

“이런 건 먼저 제안한 사람이 걸린다면서요! 다 거짓말이었어!”

다들 희희낙락 웃는 분위기에 시우는 장난스러운 느낌을 실어 말하고는 잡기 쉽도록 비닐봉지를 양쪽으로 늘어놓았다. 양쪽으로 적당히 무게를 나눠 놓고 한 번에 들 생각이었다.

“에휴. 잘하는 게 뭐냐?”

잡으려던 비닐봉지들이 모두 사라졌다. 사라진 것들은 에반의 양손에 자리 잡고 있었다.

“어. 야!”

“빨리 오기나 해. 말도 안 들어. 가위바위보도 못해.”

“에반! 혼자 멋있는 척이냐?”

에반의 손에 들린 것들을 가져오려 허둥거리는 사이 루카와 예찬이 뛰어왔고, 그들의 손에 균등하게 비닐봉지가 분배되었다.

“이러면 뭣 하러 내기해.”

“뭐야! 내가 든다고요.”

다들 한마디씩 하는 복잡한 상황에서 비닐봉지를 가져올 기회를 놓쳤다.

“진짜 다들 말이 많아. 빨리 가서 밥해 먹자고요. 배고파!”

큰소리치면서 짐을 나눠 들고 앞서 걷는 그의 뒤를 시우는 빈손으로 따라야 했다.

“형. 에반 형이랑 친해요?”

옆으로 다가온 루이의 질문에 시우는 어깨만 으쓱했다. 친하다? 친하다는 기준이 뭘까? 에반은 오늘 처음 본 사람이었다.

“장난 아닌데. 진짜 안 친해요?”

“친하다 안 친하다 이런 말을 하기 그런데. 아까 비행기에서 처음 만나서.”

“오늘 처음 만난 거 맞아요? 나처럼 대기실에서 봤다든가 그런 거 아니고요?”

몇 번이나 확인하는 루이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처음 장난스러운 루이의 포옹 이후로 루이와 안은 시우에게 가까이 오지 않았다. 자신을 싫어하는 건 아닌 것 같은데, 이렇게 대화하고 있는 지금도 둘 사이는 그리 가깝지 않았다.

그랬기에 나지막한 루이의 말은 귀를 기울이지 않는다면 듣기 어려웠다.

“이상하다. 진짜 이상한데.”

루이는 코를 살짝 킁킁거리면서 가까이 다가왔다가 이내 미간을 찌푸리고 다시 멀어졌다.

“뭐가?”

“냄새요.”

“냄새나?”

냄새라는 말에 시우는 얼른 제 팔을 들어 코에 대고 숨을 깊게 들이쉬었다. 딱히 냄새가 날 만한 일은 없었다. 그리고 지금도 늘 제가 사용하는 섬유유연제 향만이 날 뿐이었다.

“형. 진짜 베타 맞는구나.”

“그럼 가짜 베타도 있어?”

“처음 봤을 때 형 오메가인 줄 알았거든요. 하긴 이 정도로 냄새가 나는데, 형이 모른다는 것도 말이 안 되긴 하네요. 어쨌거나 형한테서 에반 형 페로몬 냄새 심하게 나요.”

시우는 불쾌한 냄새가 아니라는 말에 어깨를 으쓱하고 냄새를 맡으려 노력하던 걸 멈췄다. 비행시간 내내 자신의 옆에 있었고, 택시에서는 더 좁은 공간에 붙어 있었다. 방금 팀을 나누는 게임을 할 때도 에반이 자신의 다리에 기대 있었으니 그의 냄새가 충분히 묻을 수 있었다.

“계속 붙어 있어서 묻었나 보지.”

“아닌데.”

“응?”

“충분히 그냥 묻을 수도 있긴 한데. 지금 형한테서 나는 건 에반 형이 좀 화난 거 같아요. 좀이 아니고 좀 많이?”

“고마워. 말해 줘서. 에반이랑 말해 볼게.”

대화가 깊어지거나 이상한 쪽으로 튀기 전에 시우는 부드럽게 대화를 끝냈다.

중고등학교 수업 시간에 알파와 오메가에 대해서 배웠지만, 솔직히 베타인 그가 그들에 대해 아는 것은 거의 없었다. 의무 교육 시간이지만 그 수업을 착실하게 듣는 학생은 없었다.

그저 기본적으로 알파, 오메가가 고유의 페로몬을 가지고 있고, 그들은 그 페로몬에 서로 영향을 받는다는 것 정도가 그가 알고 있는 전부였다.

“아니, 아니야. 형! 에반 형한테 말하지 마요. 페로몬 이야기가 좀 예민한 거라서. 아마 기분 안 좋은 일 있을 때 형이 옆에 있어서 묻었다든가 그럴 수도 있거든요. 에반 형도 알고 있을 거예요. 그냥 형과 에반 형 사이에 혹시 어떤 문제가 있는 건 아닐까 해서 물어봤어요. 우리 열흘은 붙어 지내야 하잖아요.”

대화가 끝날 무렵 차 앞에 도착했기에 루이는 냉큼 다시 조수석에 앉았다. 아무래도 최대한 빨리 에반과 둘이서 조용히 이야기해야 할 것 같았다. 제법 많은 안건을 가지고.

* * *

“그럼. 시우.”

너 진짜 나한테 왜 그러냐.

장 보고 돌아오자마자 바로 이어진 건 저녁 식사 준비 팀과 뒤처리 팀을 나누는 것이었다.

8박 10일 동안 하루에도 몇 번씩 할 일.

팀을 나누고 할 일을 분배하는 등 그건 모두 게임 같은 것으로 이루어졌다.

일찌감치 뒤처리 팀에 들어간 시우는 조금 뒤에서 식사 준비 팀을 정하는 걸 지켜보고 있었다. 식사 당번이 식사 준비를 할 동안 짐도 좀 풀고 쉴 생각이었는데.

두 명이 식사 준비를 하는 것은 버겁다는 안건이 나오고, 식사 당번인 에반과 루이는 같이 하고 싶은 사람으로 시우를 지목했다.

“나?”

너무 당황스러워 시우는 손끝으로 자신을 가리키며 다시 확인했다.

눈을 끔벅이던 시우는 자신의 어깨를 툭툭 치며 웃는 현수의 손길을 벗어나지 못한 채 멍하니 에반을 보았다.

“친구, 이리 오게나. 같이 저녁을 만들어 보세.”

다들 즐거울지 모르겠지만, 시우는 울고 싶었다. 더군다나 양팔을 활짝 벌린 채, 어서 오라고 웃으면서 말하는 에반의 행동에 어떤 리액션도 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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