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화
손목시계를 확인한 시우는 창밖을 보던 시선을 돌려 옆에 앉은 에반을 바라보았다. 참으로 그를 부러워했다. 솔직히 말하면 긴 시간 계속해서 그를 부러워하고 있었다. 또 회귀한다고 해도 부러워할 것이다.
처음에도 두 번째도 시우가 가수라는 직업으로 데뷔할 때 매번 그도 오션이라는 그룹의 멤버로 데뷔했다. 연예인을 하지 않고 대학 생활을 할 때도 그는 스타였다.
암흑기가 있던 것도 아니고, 데뷔하는 순간부터 세상의 시선을 모은 오션은 굳건히 최고의 자리를 지켰다. 활동 시기가 겹친 적이 단 한 번도 없었기에 이렇게 실제로 본 것은 처음이다.
많은 연예인을 만날 수 있는 각종 연말 시상식에 초대받은 적이 단 한 번도 없었으니까.
시우는 테이블을 내리고 턱을 괸 채, 본격적으로 그의 옆모습을 바라보았다.
역시 알파구나.
제일 먼저 떠오른 생각은 그것이었다. 방송국을 들락거리며 알파와 오메가는 그에게 익숙한 존재였다. 하지만 에반에겐 또 다른 느낌이 있었다.
짙은 회색으로 염색한 머리카락과 선이 굵은 옆모습, 숍에 다녀온 듯 깔끔하면서도 자연스러운 메이크업.
이것도 방송인데, 어차피 삶의 끝이라는 생각에 아무것도 하지 않은 자신이 부끄러웠다.
밝은색으로 염색도 하고, 숍에는 못 가더라도 비비크림이라도 좀 바를걸. 메마른 입술에 립밤이라도.
그래도 이번 회귀는 좀 괜찮았던 것 같다. 경제적인 여유도 있었고, 여러 나라를 돌아다니며 아름답고 멋진 것도 많이 보았다. 에반이 그림이라도 되는 것처럼 그의 얼굴에 시선을 둔 채 시우의 머릿속은 이런저런 생각들로 가득 찼다. 무엇보다 제발 비행기 사고만은 아니길 바랐다.
순간 에반이 고개를 돌렸고, 정확히 시선이 마주쳤다. 그 사실을 깨닫고 바로 시선을 돌려야 했지만 그러지 못했다. 그가 살짝 미간을 찌푸리더니 손을 들어 부드럽게 웨이브 진 머리를 쓸어 넘겼다.
시우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잘생긴 사람은 정말 뭘 해도 멋있구나. 알파, 오메가, 베타,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눈이 마주치면 3초 안에 홀려 버린다는 소문이 거짓이 아니었다.
그의 얼굴에서 시선을 옮길 수가 없었다.
“코코.”
“응?”
“내 얼굴이 마음에 들어?”
턱을 괴고 시선이 마주쳐도 피하지 않고 그를 감상하던 시우는 피식 웃는 그 모습에 눈을 빠르게 깜박였다.
겨우 얽혔던 시선에서 벗어나자 얼른 눈동자를 돌려 자신의 왼쪽 손목을 보았다.
12시 1분.
마법이 풀렸다. 자신이 죽지 않았고, 일단은 자신이 아는 누군가가 죽지도 않았다. 비행기에 문제가 생긴 것도 아니었다. 시계를 보는 사이 마지막 숫자가 2로 바뀌었다.
시우는 덜덜 떨리는 아랫입술을 꾹 깨물었다. 아무 생각도 할 수 없었고, 심장이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그와 함께 왼쪽 가슴이 뻐근했고, 숨이 편히 쉬어지지 않았다.
시계 위로 물방울 하나가 툭 떨어졌다. 한 방울이 떨어지는 것에는 제법 긴 시간이 걸렸지만, 한번 떨어지기 시작한 물방울은 계속해서 시계와 손등, 팔에 떨어졌다.
얼굴이 축축해지자, 오른손으로 아무렇게나 얼굴을 훑었다.
그사이 마지막 숫자는 3으로 바뀌었다.
끔찍한 악몽에서 깨어났다. 그 사실을 깨닫는 순간 기쁨과 희열보다는 불안감이 휘몰아쳤다. 시우는 반복되는 시간은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지만, 미래는 처음이었다.
“코코.”
“오늘…… 며칠이야?”
여전히 시계를 보고 있었지만, 시우는 깨물고 있던 입술을 놓고 떨리는 목소리로 질문을 던졌다. 혹시나 시계가 고장이 난 것일지도 모른다.
“11월 12일.”
“정말?”
“그래. 11월 12일. 0시 4분.”
“다행이다. 정말 다행이야.”
시우는 두 손에 얼굴을 묻었다. 그리고 흘러나오는 눈물을 참지 않았다. 우는 소리를 내지 않으려 아랫입술을 꾹 깨물었다. 슬퍼서 우는 것도 기뻐서 우는 것도 아니었다. 누군가가 왜 우냐고 묻는다면 이유를 댈 수 없었다.
그냥 눈물이 넘쳐 났다.
“맞아. 다행이야.”
자신의 감정에 빠진 시우는 에반이 하는 말을 듣지 못했다. 그가 어떤 목소리로 무슨 말을 했는지 시우는 몰랐다.
얼마나 울었을까? 시우는 훌쩍거리며 백팩을 뒤적여 손수건을 꺼냈다. 눈물로 흠뻑 젖어 버린 얼굴을 대충 닦고 승무원을 호출했다.
따뜻한 물과 편히 쉴 수 있도록 자신의 좌석을 펼쳐 달라는 부탁을 하고는 화장실로 들어갔다. 울어서 붉어진 코끝과 퉁퉁 부은 눈을 보고 이내 차가운 물에 세수했다. 정신을 놓고 있을 시간이 없다.
새로운 현실이 펼쳐졌다. 언제 또 돌아갈지 모르지만, 이 순간에 최선을 다할 생각이었다. 수없이 회귀하면서 지금까지 버틸 수 있던 건 낙천적인 성격 덕분이었다.
차가운 물 때문에 더 붉어진 얼굴을 손수건으로 닦고는 크게 심호흡했다.
괜히 사람들의 시선을 끌고 싶지 않다. 손수건으로 얼굴을 닦는 척하며 자리로 돌아왔다.
작은 체구 덕분에 제법 편히 쉴 수 있는, 일등석의 펼쳐진 좌석에 걸터앉아 신발부터 벗었다.
승무원이 가져다준 따뜻한 물을 마시고 가습 마스크를 제대로 착용한 후 부은 눈을 달래 줄 온열 안대를 썼다. 편히 몸을 눕히고 담요를 머리 위까지 끌어 올렸다. 갑자기 참을 수 없을 만큼 잠이 몰려왔다. 많은 것이 머릿속을 어지럽혔지만, 시우는 눈을 감고 자신을 끌어당기는 잠 속으로 빠져드는 걸 선택했다.
“코코.”
낮고 작은 목소리에 시우는 손을 들어 자신의 귀를 만지작거렸다. 자신의 애칭을 부르는 목소리와 함께 어깨를 조심스럽게 건드는 손길은 온몸에 잠식했던 잠을 물려 버렸다. 천천히 눈을 뜨려다 갑갑함이 느껴지자 손을 더듬어 온열 안대부터 벗었다.
“일어났어?”
침침한 눈을 몇 번 깜박이자 바로 코앞에 보이는 훤칠한 얼굴에 저도 모르게 흠칫 몸을 뒤로 물렸다.
에반.
그 얼굴이 누구인지 인식하는 것과 동시에 잠들기 전 일어났던 모든 일이 생생히 떠올랐다.
“더 자게 두려고 했는데, 배고플 것 같아서.”
자리를 편안하게 넓게 펼치고 누워서 자는 자신의 눈높이에 맞추기 위해 몸을 숙여 앉은 에반은 참으로 다정하게 말했다.
“응?”
“첫 기내식은 그냥 넘겼는데, 지금은 먹는 게 좋을 것 같아.”
시우는 멍한 표정을 감추지 못한 채 일어나 앉았다. 시계를 보며 손등으로 입가를 가리고는 늘어지게 하품했다. 비행시간 중 벌써 절반 이상이 지나 있었다. 그건 자신이 꽤 긴 시간을 잤다는 것이고, 역시나 자신은 과거로 돌아가지 않았다는 것을 증명했다.
자신이 완전히 깬 걸 확인한 에반은 제자리로 돌아갔다.
기내식이 맛있는 항공사로 유명했지만, 입맛이 없어 포크로 끄적이기만 했다. 그러다 옆에서 들리는 말소리에 놀란 토끼처럼 그쪽을 바라보았다.
역시 슈퍼스타, 아이돌은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니었다. 셀프 캠을 완전히 잊고 있던 시우와 다르게 에반은 작은 목소리로 말하고 있었다.
지금 비행시간이 얼마나 지났는지, 두 번째 식사와 관련된 이야기 중이었다.
“전 괜찮은 것 같은데, 시우는 맛이 없나 봐요.”
갑자기 그의 입에서 자신의 이름이 툭 튀어나오자, 시우는 동그란 눈을 더 동그랗게 뜨고 그를 바라보았다.
“아. 진짜 시우 별명 코코 찰떡인 것 같아. 눈 크게 뜨니까 더 쿼카 닮은 것 같아요. 볼도 통통해서. 시우야, 한마디 해 줘.”
이내 그가 들고 있는 카메라 앵글에 자신이 보였지만, 시우는 여전히 숟가락의 끝을 살짝 문 채로 눈을 깜박였다.
“실은 시우가 일어난 지 얼마 안 됐거든요. 피곤했는지 비행기 이륙하자마자 잠들어서 방금 제가 깨웠어요. 밥 먹고 자라고. 그런데 얼마 먹지도 않고 저러고 있어요.”
시우가 제때 대답하지 않자, 에반은 보기 좋은 미소를 지으며 사운드가 비지 않게 말을 이었다.
“오늘 촬영이 설레서 어제 잠을 못 잤거든요. 노트북에 영화 잔뜩 넣어 왔는데, 하나도 못 봤어요.”
넋을 놓고 있던 것도 잠시, 시우는 얼른 물고 있던 숟가락을 입에서 빼고는 말했다. 제가 혼자 찍은 것은 방송에 나올 확률이 극악하지만, 에반이 찍은 것은 에피소드라도 꼭 나올 것이다. 열심히 말하는 사이 자신의 테이블 위로 아이스홍시가 담긴 접시가 놓였다. 방금 제 것으로 나온 것을 다 먹었는데.
“시우가 아이스홍시 좋아한대요. 아시죠? 저 감 안 좋아하는 거.”
이미 하나를 다 먹었기에 괜찮다는 말을 하려던 시우는 에반이 하는 말에 벙긋거리던 입술을 다물었다. 제가 아이스홍시 좋아하는 건 어찌 알기에, 그것보다 뒤이어 감을 좋아하지 않는다는 말에 거절할 수 없었다.
시우는 내려놓았던 숟가락을 다시 들었다. 완전히 녹아서 흐물흐물해지기 전 적당히 아삭할 때 먹어야 했다. 계속 자신과 같이 찍을 것인지 어쩔 것인지 몰라 그의 셀프 캠을 흘깃거렸다.
“고마워. 잘 먹을게.”
몇 마디 더 하고 카메라를 끄는 에반에게 작게 말하고는 어서 먹어 달라 아우성치는 아이스홍시를 한 입 먹었다.
에반을 따라다니는 수식어는 참 많았다. 알파라는 것부터 그의 뛰어난 외모라든가 랩과 보컬을 자유롭게 넘나드는 음악적 능력. 빠지지 않는 춤 실력까지 칭찬 일색이었다. 성격까지 최고라더니 그 모든 것이 거짓이 아닌 것 같았다.
방금 만나 겨우 몇 마디 나눈 자신을 마치 몇 년을 알고 지낸 친한 친구처럼 대하고 있었다. 그의 뛰어난 친화력 덕분에 시우는 그가 무척이나 편하게 느껴졌다. 무엇보다 어떻게 자신에 대해 잘 알고 있는지 궁금했지만, 굳이 제 입으로 할 질문이 아닌 것 같아서 입을 꾹 다물었다.
식사를 끝낸 에반이 잠들고 나서야 시우는 노트북을 켜고 이어폰을 꼈다. 화끈한 액션 영화를 보던 시우는 몇 번이나 잠든 에반을 힐긋거렸다. 좀처럼 영화에 집중할 수 없었다.
이제 자신은 네 명의 알파와 두 명의 오메가를 모시는 하인이 되었다. 8박 10일이 무척이나 길 것 같다. 이 촬영이 끝났을 때, 자신이 어떨 것인지 좀처럼 예상할 수 없다. 그리고 방송이 나간 후도 예측할 수 없었다.
이 방송이 자신을 스타덤에 올려 줄지도 모른다. 비록 최고 인기 스타들의 인기에 비비는 것일지라도 짧게라도 높게 올라간다면, 그들의 삶을 조금 엿볼지도 모른다.
하지만 반대로 그들의 발닦개 정도로 이슈 한번 되지 못하고 묻힐 확률도 높았다.
“망하면, 군대나 가지 뭐.”
시우는 별거 아니라는 듯 중얼거리고 눈을 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