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5화
“전하. 적들이 물러났다고 합니다.”
“·····규모는?”
“10만 이상이라고 합니다.”
‘·····그런데도 물러갔다고? 누군지 몰라도 전쟁을 아는 놈이군.’
테무진은 아그리파를 속으로 칭찬했다.
전쟁의 기본.
그건 아무리 힘들어도 이길 수 없을 때는 절대 싸우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지극히 당연한 말이고 무척 쉬워 보이지만 막상 전쟁터에 나오면 이 쉬운 말을 지키는 것이 참 어렵다.
아그리파는 승산이 없다고 생각한 순간 바로 군세를 물렸다.
100만에 달하는 거대한 대군인 테무진으로서는 함부로 추적을 할 수도 없었다.
인간이던 군대건 헤비급이 되면 움직임이 다소 무거워 지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대신이 그 무거워 지는 움직임을 대신할 정도로 막대한 파괴력을 지니게 되기는 하지만 말이다.
“전 군을 움직여라. 자잘한 것은 무시하고 바로 마케도니아로 진군하라고.”
“예. 전하.”
전령이 막사의 밖으로 나가자 테무진은 중얼 거렸다.
“누가 상대가 되건···. 내 복수는 그 누구도 막을 수 없다.”
그렇게 말하는 테무진의 눈빛은 마치 더러워진 유리구슬처럼 탁한 광채가 났다.
그것은 마치 망가진 영웅의 흔적 같았다.
“100만? 지금 장난 하는 거냐?‘
파라디소스는 보고를 받고 경악했다.
“어느 안전이라고 감히···.”
“로마는 본국을 기만하는 것인가?”
파라디소스의 국무 회의장의 의원들은 단체로 분개했다.
거기에 로마의 사신은 식은땀을 흘리면서 고개를 숙였다.
불과 몇 년 사이에 상당히 변해버린 파라디소스와 로마의 상관 관계를 한 번에 알 수 있는 광경이었다.
“모두 조용히 하라.”
우진은 손을 들어서 의원들을 조용히 시켰다.
그리고 로마의 사신을 보면서 말했다.
“일단 일국의 사신으로 와서 거짓을 고할 생각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사실 나 역시 믿기지 않는군. 100만이라니?”
“저·····. 저는 전해진 사실을 말 그대로 전하는 것 뿐입니다. 전하. 저를 믿어 주십시오.”
필사적이기까지 한 사신의 태도를 보아하니 거짓은 아닌 것 같았다.
‘····뭐가 어찌 되었던 우리는 만반의 준비를 하고 가야 할 뿐이긴 하지만···. 100만이라니?’
우진은 한국인이고 예전의 중국의 고사에 보면 가끔씩 100만 단위의 대군이 나오는 장면도 몇 번인가 알고 있었다.
하지만 넓고 비옥한 중원과 지중해는 그 생산력에서 차원이 달랐다.
원래 인류사에서 19세기 산업 혁명이 일어나기 전에는 인류사의 중심이 중국을 위주로 해서 돌아갔다.
그만큼 기본적인 생산력에서 치아가 났다.
‘우리 파라디소스에서도 20만 정도의 상비군 뿐인데····. 그렇게 나왔단 말이지. 테무진···.’
어째 3년 정도 조용하다 싶더라니 준비하고 있었던게 이것이었던 모양이다.
어쨌든 이제는 싸워야 할 시간이었다.
자신의 인생 마지막 숙적과 전쟁이었다.
“어차피 우리가 할 일은 하나 뿐이다. 디오클레이우스 공작과 스파르타쿠스 공작, 그리고 오우메니우스 후작과 마시르 후작에게 연락해라. 총력전을 준비하라고.”
“예. 알겠습니다.”
“예. 알겠습니다.”
“예. 알겠습니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100만이라는 숫자에 당황해서 죄 없는 전령을 쪼고 있던 파라디소스의 의원들이었지만 일단 우진의 명령이 떨어지자 거기서 끝이었다.
언 듯 의회제라서 공평해 보이는 파라디소스였지만 우진의 명령은 절대적이었다.
우진은 로마의 사신에게 말했다.
“우리 파라디소스의 전 군을 모아서 로마에 간다고 가정하면····. 아무리 빨라도 3개월은 걸릴 것이오. 그동안 버틸수 있겠소?”
“본국에 최선을 다하라 전하겠습니다.”
“음···.”
우진은 로마가 무너지면 바로 파라디소스의 전력 만으로 테무진을 상대해야 한다는 것을 알았다.
그런 사태는 우진도 원하지 않았다.
‘서둘어야 한다. 최대한 빨리····.’
로마의 디오클레이우스, 남 갈리아의 스파르타쿠스, 에스파냐의 오우메니우스, 이집트 방위군의 마시르.
파라디소스의 맹자들이 모두 모이고 있었다.
이 시대 마지막 전쟁을 위해서····.
한 곳에 모여서 가는 것 보다는 일단 현지에서 집결하는게 빠르기 때문에 우진은 먼저 시칠리아 본토의 전력을 모두 모아서 출발했다.
그리고 출발하는 우진을 가족이 마지막까지 배웅했다.
사랑하는 아내들과 이제 제법 똘망똘망한 티가 나는 유리와 유진은 어린 동생들의 손을 잡고는 아버지를 배웅하러 나왔다.
우진은 아내들에게 한번씩 키스를 하면서 한동안의 작별을 고했다.
“갔다 올게.”
“조심해서 다녀 오세요.”
“이기고 오세요.”
“믿을게요.”
세체니와 디도, 클레오파트라는 자신들의 남편을 믿었다. 하지만 벌써 몇 번을 겪는 일인데도 이런 상황은 적응이 되지 않았다.
결국 마음이 약한 세체네가 먼저 눈물을 보이고 디도도 살짝 눈시울을 붉혔다.
우진은 그런 아내들을 보고 유리에게 가서 말했다.
“엄마 말씀 잘 듣고 있어야 한다.”
“····빨리 안 오면 나 미시헤르발 왕자하고 결혼 할 거에요.”
“하하···. 그럼 빨리 와야 겠네.”
아빠 다루는 법이 많이 익숙해진 유리 공주였다.
그리고 우진은 유진에게 가서 주먹을 내밀자 유진은 자신의 작은 주먹을 내밀어서 우진과 부딪혔다.
우진은 그런 아들에게 말했다.
“아빠 없으면 가족은 누가 지킨다?”
“내가.”
“그래···. 갔다 올게. 그동안 잘 부탁한다.”
“예. 갔다 오세요.”
아버지를 웃으면서 보내는 유진은 장난끼는 다소 많았지만 밝은 천성 덕분에 항상 우진을 안심 시키고 있었다.
이 아이가 어떤 왕이 될지는 잘 모르지만 적어도 터무니 없는 폭군을 절대 되지 않을 것이다.
“그럼····. 이제 가 볼까.”
우진은 마지막으로 아직 아빠의 낮을 가리는 두 딸의 얼굴에 억지로 뽀뽀까지 해준 다음에 말 위에 올랐다.
“출진이다!!!”
“와아아아아!!!!”
파라디소스 건국왕이자 영웅왕이라고 불린 우진.
역사에는 이 전투가 그가 출전한 마지막 전쟁으로 기록된다.
“와아아아아!!!!”
“막아랏!!! 궁병대 좌익으로 이동!! 서쪽 능선을 타고 오는 자들을 견제하라!!!”
“옛!!!”
트리키아의 로도피 산맥.
거기서는 아그리파가 이끄는 15만의 로마군이 100만의 테무진군을 상대로 발목을 있는 힘껏 잡아 끌고 있었다.
전쟁에서 물량이 의미하는 것은 절대였다.
실제 역사에 기록된 고대의 전투에서 10중 9는 물량에서 우위에 있는 자들이 이기는 겨우가 대부분이다.
보통 3배만 되어도 정면 대결에서 절대적 우위를 점할 수 있다고 한다.
그런데 물경 10배에 가까운 전력을 보유한 테무진의 군세를 상대로 아그리파가 벌써 1달이 넘게 시간을 끌고 있었다.
그렇게 할 수 있는 것은 철저하게 준비된 로도피 산맥에서의 전투를 하고 있는 것과, 또 하나는 아그리파가 절대로 무리를 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었다.
로도피 산맥에는 거의 백개에 가까운 요새들이 지어져 있었는데 아그리파는 이 요새들을 100% 활용하고 있었다.
요새를 적극적으로 활용해서 적들을 상대하는 한편 그 요새 자체를 적극적으로 지키려고 하지 않았다.
보통은 아니지만 형 상황에서는 요새 몇 개가 넘어가는 것 보다는 군사적 로스가 크게 발생하는 편이 더 뼈 아팠다.
어차피 100만에 달하는 인구가 로도피 산맥을 넘어가려면 한 두군데의 길목만 뚫어서는 무리였다.
테무진의 군세는 이 로도피 산맥에서 아그리파의 군세를 완벽하게 밀어내기 전에는 절대로 산맥을 넘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아그리파 본인이 잘 알고 있었다.
만약 테무진의 군대가 그렇게 자신의 군세를 무시하고 산맥을 넘어가려고 한다면··.
그때는 아그리파가 전략적으로 잘 준비해서 100만 중에 30만 정도는 저 세상으로 데려가 줄 자신이 있었다.
그거면 충분히 남는 장사였다.
하지만 총기가 흐려졌다고 해도 테무진은 테무진.
그런 무리수는 베레스나 브루투스 같은 머저리들이 하는 것이다.
테무진이 그런 실수를 할 리는 없었다.
어디까지나 차근차근 적을 물리쳐 가는 것이면 충분했다.
산악전에서는 대규모 병력 동원의 전투가 힘들지만 그만큼 병력의 소실도 적었다.
시간이 소모되고 있기는 했지만 이러니 저러니 해도 전쟁이 지속되면 지속 될수록 유리한 것은 테무진의 쪽이었다.
“모두들 상황을 보고하라.”
전투가 끝나고 야밤의 막사에서 테무진은 전서구를 통해서 연락 받은 수많은 전선의 지휘관들의 보고를 받았다.
“······이로써 요새의 60%가 무너졌군. 드디어 반 이상의 영역을 빼앗겼어.”
“····적이 무리해서 넘을 것이라고 생각하십니까?”
“더 이상은 무리하는 것도 아니지. 그들은 확보된 루트를 통해서 충분히 군을 움직일 수 있을 것이다.”
“그렇군요···.”
“다만. 전 군을 모두 움직일 수는 없을 것이다. 아마도 선두 병력으로 20만 정도의 병력을 움직이이는 것이 고작일 것이다.”
아그리파는 부하들을 보면서 강한 어조로 말했다.
“승부는 그 시점이다. 20만대 10만이면 충분히 해 볼만 하다.”
아그리파의 말을 들은 한 지휘관이 말했다.
“하지만 사령관님. 저희 군세를 다 동원하기 위해서는 모든 요새의 군을 철수해야 합니다.”
“나도 안다.”
“···그래서는 이 산맥을 방어지로 정한 이유가 없지 않습니까?”
“어차피 적을 막지 못하면 거기서 끝이다. 산맥을 활용한 우리에게 유리한 방어전은 이제 끝이라고 봐야 할 것이다.”
“·············.”
“·············.”
“·············.”
아그리파의 부하들은 그 말의 의미를 깨달았다.
산맥을 활용한 방어전을 포기한다는 것은 이제 커다란 희생을 무릅 쓸 수밖에 없는 전투를 한다는 것이다.
“운이 좋으면 거기서 유다이아의 왕인 테무진을 잡을 것이다. 그렇지 못한다고 해도 20만은 커다란 전과다. 어차피 우리에게 선택권이란 없다. 모두들 각오를 다져라.”
“옛!!!”
“옛!!!”
“옛!!!”
아그리파의 말에 모든 지휘관들이 크게 대답했다.
그의 말대로 이제는 각오를 다지는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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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상 응원해 주시는 분들에게 감사드립니다.
즐감하십시오.^^
PS. 신작인 '욕망의 대가' 잘 부탁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