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3화
우진의 말에 노인은 한자루의 검을 들어서 우진에게 바치면서 말했다.
“지금 로마는 더 이상 파라디소스와 싸울 여력이 없습니다. 그래서···. 영웅와의 자비를 바라고 그냥 성문을 열었습니다. 만약 여기서 피의 연회를 열려고 하신다면···. 그럼 시민들에게 싸울 기회도 빼앗아 버린 이 어리석은 늙은이의 목부터 취하소서.”
“·············.”
우진은 간언하는 옥시무스라는 노인을 보고 속으로 생각했다.
‘여우군···. 아니 구렁이야···. 슬금슬금 담 타넘듯이 자기 뜻을 관철 시키려고 해.’
옥시무스라는 노인이 바라는 것은 다른게 아니었다. 우진이 더 이상 로마에서 피를 흘리지 않게 하는 것.
그게 다였다.
그러기 위해서 이렇게 자신의 목숨을 담보로 쇼를 하는 것이다.
여기서 항복한 힘없는 노인의 목을 친다면 그때는 우지의 명예에 금이 갈 것이다.
라는 암시를 하면서 자기 목숨을 걸고 로마 시민들의 안전을 지키려고 하는 것이다.
‘뭐···, 어차피 패악질 할 생각은 아니었으니····.’
“전 군에 고한다!!! 도시를 약탈하거나 무고한 포로를 죽이는 행위를 엄금한다. 알겠나!!!?”
“옛!!! 알겠습니다.”
“옛!!! 알겠습니다.”
“옛!!! 알겠습니다.”
쩌렁쩌렁하게 하늘까지 울리는 파라디소스의 군대의 함성에 로마의 시민들은 심장이 철렁 내려앉는 것 같았다.
처음 검투사 노예 동료들과 로마를 탈출한지 어언 16년····.
우진은 드디어 로마로 다시 돌아왔다.
나갈 때는 노예였지만 이제는 정복자가 되어서 말이다.
로마를 점령한 우진은 일단 흐트러진 치안을 바로 잡는 것에 주력했다.
로마인들이 예뻐서 이런 행동을 해주는 것은 아니었다.
다만 기껏 점령한 도시를 더 이상 엉망으로 만들 수는 없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여기서는 이제까지 로마와 파라디소스 사이에 쌓인 원한을 뒤로 하고 앞으로를 위해서 아량을 베풀어야 할 때였다.
엉망이 되었다고 해도 로마는 로마···.
수로와 도로망은 멀쩡했고, 치안을 바로 잡기 시작하자 슬금슬금 사람들도 거리를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자존심 강한 로마인들이었지만 시저의 죽음과 지도층의 도주로 인해서 망가진 도시에서 지옥같은 며칠을 보냈던 시민들은 은연중에 깨달은 것인지도 모른다.
로마니 파라디소스니 하는 것을 따지기 이 전에 일단은 자신들의 안정적인 터전을 유지 할 수 있는게 중요하다고 말이다.
우진이 엄명을 내리기는 했지만 사실 이번 만큼은 우진도 자신의 명령에 불복하는 자들이 나오지 않을까? 라고 내심 걱정 했었다.
그만큼 파라디소스와 로마의 국민감정이 안 좋았기 때문이다.
당연한 것인지도 몰랐다.
파라디소스 자체가 원래 반로마의 깃발을 세우고 탄생한 나라였으니 말이다.
전쟁터에서 제일 많이 듣는 말이 ‘엿 같은 로마’라는 말이었다.
심지어 훈련 구호중에도 ‘로마를 죽이자.’ 라는 구호가 있는 파라디소스였다.
그런 상황에서 우진이 명령을 내리기는 했지만 그래도 어느정도의 문제는 일어날 수도 있다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그것은 우진이 스스로 파라디소스의 군기를 너무 얕잡아 본 것이었다.
우진은 현대의 군대 정도로 파라디소스의 군기를 파악하고 있었지만····.
사실 파라디소스군의 군기는 거의 성군이라는 소리를 들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엄정했다.
다만 차이점이라면 성군이라는 자들은 자신의 신을 위해서 싸우고 순교하지만 파라디소스의 군인들을 자신들의 영웅을 위해서···.
바로 영웅왕인 우진을 위해서 그렇게 한다는 것이다.
우진이 밥 먹지 말라고 하면 어쩌면 굶어죽을 지도 모른다.
그만큼 우진에 대한 맹목적인 충성심이 강한 것이다.
현대의 인간들과 달리 고대의 인간들은 아직 지식의 습득도 전승도 부족한 상황이었다.
그러니 윗사람에 대한 공경 이전에 환상이 강했다.
그것이 시대의 영웅인 우진이라면 더 이상 말할 것도 없었다.
그래서 우진의 명령이 내려진 시점에 거기체 충실해서 로마를 향한 약탈 행위를 일절 하지 않았다.
오히려 치안의 유지에만 열중하고 있었고 그 동안 치안이 무너진 틈을 타서 살인과 약탈에 힘써왔던 무법자들만이 성벽에 그 목을 매달아야 했다.
이렇게 로마를 어느 정도 안정 시켜가자··. 우진은 남몰래 어느 장소로 찾아갔다.
파라디소스의 국왕이라는 신분을 숨긴채로 몰래 움직인 우진이 도착한 곳은····.
“여!! 이제 왔냐? 진.”
“전하. 오셨습니까?”
“전하!!”
거기에는 이미 먼저 도착한 디오클레이우스를 비롯한 동료들 20여명이 함께 있었다.
이들이야 말로 우진과 함께 더불어서 파라디소스를 건국한 초석.
살아있는 전설이라고 칭속 받는 자들이었다.
즉, 초창기에 우진과 함께 로마를 탈출했던 검투사 노예들이었다.
우진을 로마를 점령하자마자 이들을 전원 여기로 불렀다.
시라쿠사의 본국에 있는 자들에게도 배를 보내서 여기에 오게 했다.
그렇게 해서 쾌속선을 타고 바로 도착한 이들과 함께 우진은 이곳에 모였다.
이곳, 모든 것의 시작이라고 할 만한 레마이오스 검투사 양성소로 말이다.
“····많이 변했는걸?”
“그러게 말입니다. 듣기로는 저희들이 빠져나간 이후로 검투사 양성소를 패쇄하고 누군가가 별장으로 쓰고 있었다고 합니다.”
“그런가·····.”
우진은 피식 웃으면서 술자리에 끼어 들었다.
이미 한바탕 하고 있는 형제들의 자리에 자연스럽게 끼어든 우진은 지금 이 순간 왕이 아니라 이들의 동료이고 형제일 뿐이었다.
“정말···. 여기에 이런 형태로 또 올 줄은 몰랐습니다.”
“크하하하하!! 난 알고 있었다고. 진 이 자식이 탈출 하면서 뭐라고 했는지 기억 안 나!!?”
디오클레이우스의 말에 모두는 잠깐 눈을 감고 과거를 회상했다.
로마를 탈출하던 그날··.
우진은 약속했다. 반드시 여기로 돌아와서 로마가 무너지는 것을 보여 주겠다. 라고 말이다.
“설마···. 그 약속 지키실 줄이야.”
“그렇게 말이야····.”
“크하하하하···. 원래 이 새끼가 좀 독했잖아?”
우진에게 유일하게 말을 편하게 하는 디오클레이우스는 그대로 우진의 등짝을 팡팡 내려치면서 호탕하게 말했다.
“아파 새끼야!!”
우진도 그런 디오클레이우스에게 왕으로서의 품위 따위는 벗어 버리고 가식 없는 형제의 모습으로 대했다.
여기 있는 형제들에게는 익숙한 모습들이었다.
그렇게 그들은 추억을 안주 삼아서 떠들고 마셨다. 그리고 밖에서 병사 한명이 우진에게 다가와서 말했다.
“전하··. 말씀 하신 것을 가지고 왔습니다”
“음···. 이리 가지고 와라.”
오랜만에 작정하고 마셔서 취기가 오른 우진으 살짝 붉어진 얼굴을 하고는 그대로 병사에게 지시한 물건을 가지고 오라고 했다.
“뭐야? 뭘 가지고 온 건데? 맛있는 술?”
“오···, 전하께서 쏘시는 겁니까?”
“하하하··. 어떤 명주를 가지고 오신 겁니까?”
김칫국을 단체로 원샷 하는 형제들을 보면서 우진은 피식 웃었다.
“술 아니야. 이 새끼들아!! 뱃 속에 술 거지가 들었나···.”
“뭐? 술 아니면? 여자도 아닌 것 같고 뭔데?”
디오클레이우스의 거칫 항의를 들으면서 우진은 궤짝을 열었다.
그러자 그 안에는 검과 갑옷 투구 등이 나타났다.
“···어이···? 그거 혹시···?”
“몇개는 빠진 것도 있지만···. 챙길 수 있는 만큼 챙겨두고 있었다. 오늘을 위해서····.”
우진은 그렇게 말하면서 궤짝 안에 있는 무구들을 하나씩 하나씩 정성스럽게 꺼냈다.
그리고 형제들은 그런 우진의 행동을 경건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저 무구들은 모두 낮이 익은 물건들이었다.
무구가 다 거기서 거기일지도 모르지만 저것들은 낮이 익은 것들이었다.
이전에 먼저 죽어간 전우들이 사용하던 것이었으니 말이다.
“·······자, 술 가져와 봐.”
우진은 무구를 다 늘어놓고 술을 찾았다.
그러자 디오클레이우스가 술통째로 와인을 가지고 왔다.
“여기!!”
“음······.”
콸콸콸·····.
우진은 술통을 받아서 그대로 무구들에게 뿌리기 시작했다.
술통 하나가 다 비워질 때까지 술을 뿌린 우진은 자신의 잔에 술잔을 채우고 들어올리면서 말했다.
“먼저 간 형제들에게·····.”
“형제들에게!!!”
“형제들에게!!!”
“형제들에게!!!”
우진의 말에 모두가 술잔을 들어서 건배하고는 그 술을 들이켰다.
결국 이들 모두가 돌아왔다.
살아서 온 자들도 있고··. 이제는 무기를 들 수 없을 정도로 지친 자들도 있었고, 그리고 죽어서 그 무구만 돌아온 자들도 있었다.
한 가지 공통점은 이들이 이제 노예가 아니라는 것이다.
이들은 승리자다.
로마를 이기고 자유를 손에 넣고 자신들의 나라를 손에 넣었다.
우진은 이날 처음으로 로마를 이겼다는 승리의 기쁨을 누렸다.
우진은 로마를 점령했지만 그렇다고 로마가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시저의 마지막 안배로 피신한 옥타비아누스는 그대로 동쪽으로 가서 배를 타고 마케도니아 지역으로 도망갔다.
보통 풍요로운 에스파냐나 갈리아 쪽으로 가서 자리를 잡는게 유리할 수도 있었지만··.
거기는 파라디소스가 손을 뻗기도 빠르다.
그리고 사실 이미 에스파냐 지방에는 우진의 요청을 받은 누미디아의 주바 국왕이 군을 보내고 있었었다.
에스파냐를 점령하면 그 땅의 반을 주바 왕자에게 주기로 한 만큼 주바 왕자는 무척이나 적극적이었다.
만약 옥타비아누스가 에스파냐 지방쪽으로 갔다면 누미지아와 마우레타니아 부족의 연합군을 상대해야 했을 것이다.
선견지명으로 그런 최악의 사태를 피한 옥타비아누스는 마케도니아에서 신로마의 깃발을 세우고 자신을 초대 국왕의 자리에 올렸다.
실로 오랜만에 로마에 왕이 탄생한 것이다.
난세인 지금에 와서 강력한 구심점이 필요하다는 것을 자각한 옥타비아누스는 그렇게 스스로를 왕위에 올렸다.
그리고 짧은 시간에 자신의 정치력을 총동원해서 로마를 추스르기 시작했다.
우선은 현재 로마의 영향력을 확고히 했다. 에스파냐는 이미 글렀고 갈리아 지방에서도 그 지방의 속주민들이 로마의 약화를 틈타서 자신들의 나라를 만들 움직임을 보이기 시작했다.
결국 지금 옥타비아누스의 입김이 닿는 땅은 일리리쿰 속주와 에피루스, 마케도니아, 아카이아, 그리고 아테네와 트리키아의 땅까지. 거기다 아직 해군 전력이 남아있는 크레타 섬까지였다.
소아시아 일부도 로마의 땅이기는 했지만 그건 명목상의 일이었고 언제 빼앗길지 모를 불안한 완충지대에 불과했다.
어쨌든···. 지중해 최강 로마라는 말은 이제 사라져 버린 것이다.
남은 영토도 상당히 방대한 것이기도 했지만 이에스파냐보다 약간 큰 크기에 지나지 않았다.
한때 지중해의 모든 땅을 자신의 영토, 혹은 숙주국으로 만들었던 로마의 체면이 말이 아니었다.
이 모든 것이 고작해야 로마의 검투사 노예였던 남자의 손에 빼앗긴 것이었으니···.
옥타비아누스의 체면은 말이 아니었다.
하지만····. 아직 멸망은 하지 않았다.
아무리 궁지에 몰리고 위기에 몰렸다고 해도 아직은 멸망하지 않았다.
우진이 이탈리아 반도를 안정 시키고, 거기에 더해서 에스파냐의 지역을 평정하고 갈리아 지방과 선을 긋는 것에는 못해도 3년은 걸릴 것이다.
옥타비아누스의 정치적 감각은 그 3년이라는 시간 안에 지금의 나라를 공고히 하는 것에 주력한다면···.
그렇게만 되면 언젠가는 로마가 다시 꽃을 피울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건 옥타비아누스가 우진 한 명만을 적으로 간주했을 때 가능한 시나리오였다.
우진과 로마가 박 터지게 싸우는 와중에···. 자신의 세력을 착실하게 날려가고 있던 또 하나의 세력.
테무진이 본격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 작품 후기 ============================
일단 우진은 로마를 이겼습니다.
이제 자신의 최후의 숙적인 테무진 한 명만이 남았을 뿐입니다.
완결까지의 스토리 라인은 대부분 정해졌고 '로마의 혁명' 다음으로 준비할 차기작도 이미 준비 완료입니다.
전 항상 작가가 정체되지 않으려면 여러가지 시도를 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다음 작품은 제가 한 번도 시도해 보지 않은 장르.
바로 게임 소설입니다. 전 원래 판타지 소설 중에서 게임 소설만큼은 엔딩을 제대로 만들수 없고 스토리 라인이 한정 되어 있기 때문에 저하고는 맞지 않는다고 생각해 왔습니다.
하지만 '소드 아트 온라인' 이후로 게임 소설에서도 시리어스함을 추구 할 수 있다는 것을 알았고, 그렇게 해서 저도 게임 소설에 도전해 보게 됐습니다.
아직 로마의 혁명에 주력해야 하니 준비만 하고 있지만 완결이 정해지면 쉬지 않고 바로 연재 시작하겠습니다.
그때는 많은 사랑과 관심 부탁 드립니다.
즐감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