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로마의 혁명-184화 (184/220)

184화

<서전>

정전 기간이 끝난 상황에서 먼저 군을 움직이기 시작한 것은 로마군이었다.

폼페이우스와 그의 군단을 총 동원해서 콘센티아로 출전 시켰다.

동시에 시저는 또 하나의 부대를 움직여서 코르시카 섬에 주둔 시켰다.

그 부대를 이끄는 것은 바로 시저가 총애하는 부관인 안토니우스였다.

그리고 그런 안토니우스의 곁에는 세 명의 남자가 있었다.

바로 로마의 다음 세대라고 평가 받는 인물들로 부르투스, 옥타비아누스 그리고 또 한명의 인물은 마르쿠스 빕사니우스 아그리파라는 인물이었다.

역사적으로 크게 알려져 있지 않은 인물인 아그리파는 사실 로마 역사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었다.

썩 이름난 가문의 출신이 아니라서 그렇게 높이 평가 받고 있지는 않았지만 원래의 역사에서 그는 옥타비아누스의 오른팔로 전쟁터에서 혁혁한 공을 세운다.

옥타비아누스는 정치가로서는 로마 역사를 다 뒤져봐도 그런 인간이 있을까? 싶을 정도의 불세출의 천재였다.

하지만 시저처럼 정치와 전쟁 모두에 유능한 인간은 아니었다.

대국을 읽는 눈이 뛰어나서 전략에는 우수함을 보이고는 했다.

하지만 전략과 전쟁터에서의 전술은 엄연히 다른 것이었다.

산술적인 사고가 강한 옥타비아누스였기에 전쟁터에서의 활약은 썩 뛰어나지 못했다고 한다.

그런 그의 단점을 보완해준 오른팔이자 친구가 바로 아그리파였다.

사실 역사가 원래의 역사와 변한 지금에 와서 아그리파와 옥타비아누스는 그다지 좋은 사이는 아니었다.

아그리파는 카토가 로마를 빠져나가갈 때 그 카토를 따라가서 공화정을 지지했다.

그리고 카토가 마우레타니아에서 우진과 맞서 싸우다 장렬하게 전사 할 때.

그는 그때 에스파냐에서 후방을 관리하고 있었다.

카토는 당시 어린 아그리파를 중요한 전쟁터에 데려가는 것을 꺼려서 후방을 맡긴 것이었는데···.

차라리 카토가 아그리파를 마우레타니아에 데리고 갔으면 좀 더 다른 결과가 나왔을지 모른다.

이기고 지고를 떠나서 적어도 그렇게 단 한 번의 전투에 모두 무너지는 비참한 패배는 없었을 것이다.

폼페이우스나 안토니우스 같은 괴물들과 동시대에 태어나서 상대적으로 가려져서 그다지 표는 나지 않았지만 이 아그리파라는 남자의 군사적 재능은 결코 허접이 아니었다.

그리고 그는 카토가 망한 후에 에스파냐에서 옥타비아누스에게 잡혀서 그대로 로마로 압송되었다.

잡히는 과정에서도 그는 저항하지도 않고 당당하게 스스로 출두했고, 로마로 가서도 그 당당함은 기죽지 않았다.

자신은 틀리지 않았고 양심에 거리낄 것도 없다는 주장을 당당하게 관철 시켰다.

시저와 폼페이우스의 쿠데타 이전에는 집안 이름이나 들먹이면서 거들먹거리던 놈들이 정작 자기 목숨이 경각의 위기에 처하자 태도를 싹 바꾸는 놈들이 부지기수였다.

그런데 아직 젊은 아그리파의 당당한 태도를 보고 시저는 그가 마음에 들었다.

그리고 아그리파를 설득 시켜서 그를 자신의 부하로 만들었다.

아그리파는 생각보다 흔쾌하게 시저의 제안을 받아 들였다.

아직 피어나지도 못하고 죽어 버리기에는 가슴 속에 품고 있는 뜻이 큰 남자였다.

이렇게 세 명의 젊은 신성들을 이끌고 코르시카로 향하는 안토니우스는 슬슬 시저가 자신을 중심 세력으로 부상 시키려고 한다는 것을 알았다.

원래 시저의 밑에서 함께 해 오다가 자신의 뜻도 있어서 폼페이우스의 밑에서 전쟁을 배우고 있었던 안토니우스였다.

이번에 소아시아와의 전쟁에서는 이제 완숙한 지휘관이 되어서 충분히 제 몫을 다하고 있었디.

킬리키아와 크레사 섬의 해적들을 싹 전멸 시키다 시피 소탕해서 해안선을 통한 보급을 원활하게 진행 한 것은 순전히 안토니우스의 공이었다.

덕분에 시저는 청야전술을 펼치는 폰투스의 미트리다테스 6세에게 있어서도 후퇴하지 않고 느리게나마 전진 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렇게 완숙한 지휘관으로 변한 안토니우스는 날카로운 안광으로 사르디니아에 있을 누군가를 생각하고 있었다.

‘그 시절에는 내가 아직 어렸지···. 이제 그때 나를 죽이지 못한 것을 뼈 저리에 후회하게 해 주겠다.’

안토니우스가 이를 갈면서 기다리고 있는 상대.

그는 바로 디오클레이우스였다.

그리고 이 둘의 전투는 로마 대 파라디소스의 3차 전쟁의 최초의 전투가 되고 만다.

폼페이우스는 콘센티아에서 계속해서 병력을 차곡차곡 증강 시키면서 무력 시위를 하고 있었다.

그 병력은 무려 20만.

원래 폼페이우스가 가지고 있던 군단 7만에 시저가 작정하고 소집해서 전력 시킨 지원군이 더해져서 20만에 달하는 대 병력이 생긴 것이다.

이 전의 마우레타니아에서도 20마에 달하는 군세가 만들어졌지만 그 군세의 태반은 그냥 오합지졸이었다.

하지만 이번에 모인 20만은 다르다.

시저가 파라디소스의 숨통을 끊어 버리기 위해서 만든 회심의 20만이었던 것이다.

폼페이우스는 그 병력을 한 번에 집중 시키지 않고 차츰차츰 늘려가는 방식으로 군사를 콘센티아의 앞에 집결 시키고 있었다.

적에게 압박감을 주기 위해서 였다.

하루 지나고 또 하루가 지날 때 마다 쑥쑥 늘어있는 병력이 계속해서 성벽 앞에 있다고 생각해 보라.

스파르타쿠스는 몰라도 그의 밑에 있는 병사들이 받는 압박감은 상당할 것이 틀림 없었다.

스파르타쿠스는 폼페이우스의 수작이 뻔히 보였지만 그래도 함부로 나서지 않고 있었다.

성벽 안에서 아군을 다독이고 성벽의 방비를 튼튼하게 하고는 우진의 지원군을 기다렸다.

콘센티아의 총 주둔 병력은 3만 명.

후방의 부르티움 지역의 방위군 까지 다 끌어 모으면 5만까지 가능하지만 일단은 3만이었다.

그리고 여기에 우진의 지원군 5만이 오고 있었다.

성벽의 유리함을 생각하면 이것만으로도 승산은 충분했다.

‘무엇보다 전하께서 직접 오신다는 것이 병사들의 사기에 가장 크게 영향을 주고 있지.’

폼페이우스가 아무리 압박을 가하려고 해도 스파르타쿠스는 병사들이 흔들리지 않을 것이라고 자신했다.

로마의 군신 따위는 파라디소스의 영웅왕이 나서기만 하면 엉덩이를 걷어차서 알프스 산맥 너머러 날려 버릴 것이다.

라는 농담 반 진담 반 같은 말을 아군에 퍼트리는 것 만으로도 군의 사기는 충분했다.

그만큼 파라디소스의 병사들에게 우진의 위상이 확고했던 것이다.

반면에 비슷한 소식이 로마쪽에서도 들리고 있었지만 말이다.

한 번도 부딪히지 않았던 폼페이우스와 우진.

이 둘에 대한 각 군단의 신뢰는 확고했다.

하지만 앞에서도 말했지만 전쟁의 서전을 연 것은 이들이 아니었다.

“공격하라!!!!”

“우오오오!!!”

파라디소스와 로마의 3차전.

그 첫 시작은 바로 해전이었다.

전투에 앞서서 왜 이렇게 되었는지를 설명하겠다.

원래 안토니우스는 코르시카 섬에서 사르디니아 북쪽에 상륙해서 육지를 통해서 침공할 생각이었다.

하지만 그 생각에 반대를 표한 사람이 있었으니··. 그게 바로 아그리파였다.

“반대라고?”

안토니우스는 눈앞에 보이는 새파란 애송이가 자신의 의견에 반대를 표하자 한쪽 눈썹을 꿈틀 거렸다.

옥타비아누스는 그걸 보고 조용히 침묵했고, 부르투스는 살짝 두려운 듯이 식은땀을 흘렸다.

그에게 있어서 안토니우스는 시저의 총애가 통하지 않는 몇 안 되는 어려운 인물이었다.

그리고 아그리파는 안토니우스가 뭐라고 하건 간에 자신의 의견을 강하게 주장했다.

“그쪽은 이미 적들이 만전의 준비를 하고 있을 것이 뻔합니다. 적이 원하는 대로 움직이는 전쟁에서는 승리를 거두기 어려운 법입니다.”

“이제는 네가 날 가르치는 구나?”

“당연한 말을 했을 뿐입니다. 불쾌하셔도 별 수 없습니다.”

아그리파는 안토니우스의 안광을 똑바로 쳐다보면서 기죽지 않고 말했다.

안토니우스는 그런 아그리파의 눈을 똑바로 마주하다가 입꼬리가 슬며시 올라갔다.

“싹이 있는 놈이군.”

“···감사합니다.”

“내 의견을 반대 했으니 네 생각을 말해 봐라.”

“예. 알겠습니다.”

안토니우스는 아직 시전 경험도 전무한 아그리파에게 작전에 대한 발언권을 줬다.

시저가 보낸 브루투스가 약간 까불기만 해도 한 대 갈겨서 침묵하게 하는 그로서는 파격적인 대우였다.

기본적으로 천상 군인 출신인 안토니우스는 아그리파처럼 배짱 있는 타입을 좋아핬다.

옥타비아누스도 유능하다는 것은 알겠지만 어째 정이 가는 타입은 아니었다.

브루투스는 말 할 것도 없었다.

‘엄마 치마폭에 싸여있는 젖먹이.’

그게 안토니우스의 안에서 부르투스에 대한 정의였다.

사실, 원래의 역사에서 안토니우스에게 패망의 길을 가져다준 악티움 해전.

거기서 승리했던 것이 바로 아그리파였다.

아그리파는 그 전쟁에서 승리하여 국방장관에 버금가는 자리를 손에 넣었고 나중에는 자기 딸 뻘인 율리아 아우구스투스와 재혼에 성공하기 까지 했다.

참고로 이름으로 대강 짐작하겠지만 이 율리아 아우구스투스는 바로 옥타비아누스의 딸이다.

그가 얼마나 옥타비아누스에게 총애 받았는지를 잘 알 수 있는 대목일 것이다.

어쨌든 원래 역사에서의 천적.

그리고 현재의 부하인 아그리파의 조언에 따르면 지금 안토니우스의 군대가 가야 할 길은···.

“바로 여기입니다.”

“칼리아리? 바로 적의 중심부를 치자고?”

시칠리아의 수도가 시라쿠사라면 사르디니아의 최고 주도시는 칼리아리였다.

해상 무역을 위해서 사르디니아의 물자 80%가 이 지역에 몰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런 중심부를 바로 노린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웠다.

“바보 같은 소리를 하는군.”

브루투스는 바로 꼬투리 하나 잡았다는 표정을 하고는 아그리파를 비난했다.

그런 브루투스에게 안토니우스가 싸늘한 표정으로 말했다.

“조용히 해라. 꼬마야.”

“꼬·····.”

“또 쳐 맞고 싶나?”

“···········.”

브루투스는 그대로 눈을 깔고는 이만 바득바득 갈았다.

보통 시저의 총애 때문에 브루투스에게 이렇게 말하는 사람은 드물다.

아니 거의 없다고 봐야 한다.

하지만 이 안토니우스는 달랐다.

브루투스와는 다른 의미로 시저의 오른팔로서 진한 총애를 받고 있는 핵심인사였다.

실제로 브루투스는 몇 번이나 자기를 무시하는 안토니우의 태도 때문에 자신의 필살기. ‘엄마, 쟤가 나 괴롭혀요.’를 쓰기도 했다.

그래서 세르빌리아가 시저에게 몇 번인가 배갯 머리에서 송사를 하기도 했지만···.

아무리 시저가 세르빌리아를 아낀다고 해도 안토니우스를 쳐낼 수는 없었다.

시저의 오른팔이자 시저의 라이벌이기도 한 폼페이우스와의 중요한 연결 고리이기도 했다.

애인이 아무리 예뻐도 들어 줄 수 있는 한계라는 것이 있는 법이다.

그때 시저는 처음으로 세르빌리아에게 화를 냈고, 세르빌리아는 자신의 실수를 깨닫고 시저에게 애원하면서 용서를 빌었다.

그리고 그 후에 간신히 시저의 마음을 푼 세르빌리아는 브루투스에게 어지간하면 안토니우스를 거스르지 말라고 했다.

결국 그녀도 어떻게 못할 정도로 시저의 신뢰를 한 몸에 받고 있는 남자인 것이다.

============================ 작품 후기 ============================

시저가 아무리 애인을 아껴도 최후의 마지노선이라는게 있는 법이죠.

여러분들의 응원은 작가에게 큰 힘이 됩니다.

즐감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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