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0화
어쨌든 우진이 싫건 좋건 간에 누미디아의 사신의 입에서는 기어코 우진이 듣기 싫은 말이 나왔다.
“가능하면 당분간 저희 왕자님의 견문을 넓히기 위해서 파라디소스에서 유학을 시켰으면 합니다.”
사신의 말에 디도는 아름답고 환한 미소를 지으면서 진정으로 기쁘다는 듯이 말했다.
“그거 좋은 생각이군요.”
“좋은 생각은 무슨····.”
우진은 누미디아의 사신과 디도가 쿵짝이 잘 맞는 것을 보고 영 못마땅 했다.
‘저 꼬맹이도 고작해야 다섯 살인데···.’
“미시헤르발 왕자의 부모의 의향도 여쭤 봐야 하지 않겠소? 먼 타국에 어린 아들을 남기고 있으면 부모의 마음이 편하지 않을 것이오.”
우진은 최후의 수단으로 미시헤르발 왕자의 부모를 들먹였다.
보통 동맹국의 왕족이라면 하다 못해 인질의 가능성을 남겨두기 위해서라도 자국에 머무는 것을 환영하는 법이다.
그런데 우진은 저 어린 왕자를 못 보내서 안달이었다.
“미시헤르발 왕자 전하의 친 부모님은 돌아가셨습니다. 그 후에 숙부뻘이 되는 주바 전하께서 양자로 들이셨습니다.”
“끄응······.”
우진은 영 못마땅 했다.
하지만 결국은 저 꼬맹이의 조기 유학을 막을 핑계가 딱히 떠 오르지 않았다.
결국 디도와 누미디아 측의 적극적인 주장에 의해서 미시헤르발 왕자의 유학이 결정 되었다.
‘젠장···. 애가 유학이라고 뭘 안다고···.’
우진은 영 못마땅 했지만 어쩔 도리가 없었다.
“유리. 이리 오렴. 네 친구가 생겼단다.”
“···찐구····?”
유리는 아장아장 걸어와서 자기 보다 약간 키가 큰 미시헤르발 왕자를 갸웃 거리면서 올려다 봤다.
이제까지 또래의 아이들을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유리 공주였기에 친구라는 말은 생소했다.
“··찐구가 뭐야?”
유리의 질문에 디도는 웃으면서 대답했다.
“함께 놀아주는 사람을 말하는 거야.”
“····유리랑 노라 쭐 꺼야?”
유리의 혀 짧은 발음에 미시헤르발 왕자는 알아 들었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유리는 환하게 웃으면서 처음으로 생긴 친구의 손을 덥썩 잡았다.
“찐구····.”
“좋은가 보구나···.”
“유리야····.”
디도는 흐뭇해했고, 우진은 그저 울고 싶었다.
이날은 우진이 이 세계에 와서 나라를 세우고 나서 유일하게 자기 뜻대로 나라를 움직이지 못한 날로 기억에 남는다.
“깐다····.”
“응.”
넓은 정원에 아이들 두명이 작은 콩 주머니를 던졌다 받으면서 놀고 있었다.
우진이 유리를 위해서 만들어준 장난감이었는데 유리는 그것을 가지고 자신의 친구이자 예비 신랑감일지도 모를 미시헤르발하고 같이 놀고 있었다.
콩!!
“아얏···. 히잉···.”
미시헤르발이 던진 콩 주머니를 받지 못한 유리는 자기 코로 콩주머니를 받았다.
“으으····. 히잉···.”
유리는 코에서 느껴지는 고통에 울먹 거리기 시작했다. 귀여운 어린 아이의 얼굴이 울상으로 일그러지기 시작했다.
“괜찮아. 자··. 이제 안 아프지?”
하지만 유리가 울기 전에 다다다 달려온 미시헤르발이 유리의 이마를 호호 불면서 유리를 달랬다.
그러자 신기하게도 유리가 정말로 안 울고 뚝 그쳤다.
“착하다. 유리···.”
“헤헤····.”
아이들은 금방 친해진다고 했던가?
3살이라는 나이 차이를 넘어서 유리와 미시헤르발은 금새 친해졌다.
미시헤르발은 왕가의 엄격한 교육을 받으면서 자란 아이였다.
그래서 기본적으로 의젓해 보이지만 사실 의젓한게 아니라 감정이 많이 절제되어 있는 것이다.
애 다운 구석이 없다고 해야 할까?
하지만 같은 왕가의 아이라고 해도 유리는 자유롭게 자라난 아이다.
국왕인 아빠의 무릎에 올라가서 아빠에게 마음껏 응석을 부려도 아무도 뭐라고 하지 않는 그런 귀중한 공주님이었다.
그런 유리의 천진함을 접하자 미시헤르발 왕자도 서서히 어린애다운 면모를 되찾아 가고 있었다.
그리고 유리는 유리대로 인생에 처음으로 생긴 친구를 보고 좋아서 연신 미소 짓고 있었다.
둘 다 나라의 사정이라던가? 미래에 자신들이 부부가 될 수 있는 가능성 따위는 생각도 하지 않고 있었다.
그냥 서로 친한 친구 정도로만 여기고 있는 것이었다.
누가 봐도 흐뭇한 이 광경을·····.
“저 놈이 감히···. 내 딸을 때리고, 거기다 성희롱 까지? 아청법으로 응징해 버릴까 보다.”
그 흐뭇한 광경을 굉장히 삐뚤어진 시각으로 바라보는 썩은 어른이 있었다.
바로 유리의 아버지이자 파라디소스의 국왕이며 심지어는 전 지중해에서 시대의 영웅이라는 소리까지 듣고 있는 우진이었다.
“앗, 또 손을 잡았어. 허락도 안 받고··. 저걸 그냥 확····.”
머리에 나뭇가지를 들고 마치 최전선의 육군 수색대들이 하는 위장 같은 모습을 하고 있는 우진의 모습은 일국의 왕이라기 보다는 궁극의 딸 바보에 가까웠다.
그런 우진을 보고 한 명의 전령이 살금살금 다가왔다.
이러고 있을때 대 놓고 다가가면 우진이 싫어한다는 것을 몇 번 경험한 후에 이러고 있었다.
“전하···. 중요한 보고 사항이 있다고 이집트의 마시르 자작에게서 전령이 왔습니다.”
“그래. 기다리라고 그래.”
“두 시간전에 그렇게 말씀 하셨습니다.”
“그럼 세 시간 후에 다시 와.”
“···········.”
국무 조차도 딸 사랑 앞에서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한 우진의 태도에 전령은 붕어처럼 입만 뻥긋뻥긋 거렸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자기는 일개 전령이고 지금 딸 스토킹에 여념없는 바보는 일국의 왕이다.
기다리라면 기다릴 수밖에 없는····.
다만, 다행이도··. 지금 이 딸 바보를 말릴 수 있는 사람이 이 나라에 없는 것은 아니었다.
“지금 뭐 하는 거에요?”
“앗!! 아니 디도··. 이건····.”
갑자기 들려온 아내의 목소리에 우진은 크게 당황했다.
그런 우진을 보고 디도는 눈을 가늘게 뜨고 말했다.
“대전에서 보고 하려고 온 전령이 기다리고 있다고 하는데···. 전하께서는 여기서 뭐 하고 있는 거죠?”
“·······산책?”
“그 꼴로요?”
“·············.”
“당장 대전으로 가요. 지금!!”
“앗, 디도··. 하지만 저기 쟤가··. 이건 불공평해!!”
아무리 따져 봤자 아내의 손을 뿌리치지 못하고 그대로 대전으로 끌려가는 우진이었다.
투덜 거리면서 대전으로 끌려간 우진은 대전에서 이미 기다리고 있던 마시르의 전령을 만났다.
“오래 기다리게 해서 미안하네.”
“아닙니다. 공사가 다망하신데 이 정도는···.”
“············.”
다망한 공사가 아니라 딸내미 스토킹 하다가 늦었다는 진실은 차마 말 할 수 없는 우진이었다.
어쨌든 이제 딸 바보의 모습은 버리고 일국의 왕으로서의 업무를 봐야 할 순간이었다.
“그래. 마시르의 보고 사항은 뭔가?”
“유다이아의 테무진에 대한 보고 사항입니다. 자세한 내용은 이 서신에 들어 있습니다.”
“음·····.”
우진은 서신을 받아서 읽어 봤다. 전체적인 내용은 상당히 공을 들여서 적은 꼼꼼한 보고서였다.
우진이 폰투스의 미트리다테스 6세를 통해서 모략을 펼친 후에 테무진에게 일어난 일을 전체적으로 적어 놓고 있었다.
이집트와의 전쟁 이후 테무진은 내정을 추스르는 것에 주력했다.
사실 유다이아의 내정은 현재 엉망이었다.
원래 헤로데 1세의 착취는 말 할 것도 없었고, 거기에 내전에 가까운 테무진의 전쟁에 이집트와의 전쟁까지···.
경제적 군사적으로 국가의 피해가 보통 큰게 아니었다. 특히 그 중에서도 고대 국가에서 가장 중요한 국력의 척도.
인구수의 로스가 너무나 컸다.
그나마 테무진에 대한 지지력만큼은 압도적으로 높은 상황이었으니 반란의 우려가 없는게 그나마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테무진이 다시 돌아오는 과정에서 보인 기적.
그 기적 때문에 유다이아의 시민들은 모두 테무진을 아훼의 사도라고 여기면서 존경하고 경배했다.
테무진으로서는 정말 다행이었다.
그는 그 틈을 타서 나라를 추스렸다.
일단 지금은 쉬어가야 할 때였다.
다만 쉴 틈이 없는 것은 테무진이 유다이아에서 자신의 나라를 만들었다는 소식을 들은 미트리다테스 6세가 테무진을 공격하려고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것도 쉬운 일은 아니었다.
폰투스를 비롯해서 소아시아 일대의 대부분의 국가들은 미트리다테스 6세의 동맹이었지만, 그 밑에 있는 시리아는 로마의 속주였다.
유다이로 가기 위해서는 시리아를 거쳐가는 수밖에 없었다.
해로로 가는 방법도 있기는 하지만 크레타 섬을 기점으로 안토니우스가 철저하게 해적을 토벌하면서 로마의 해상 방어라인이 더욱더 튼튼해진 지금 군사를 움직이는 것은 무리였다.
결국 육군을 움직여서 시이라를 뚫고 유다이아를 침공하는 수밖에 없었다.
상식적으로···. 트리키아를 통해서 비티니아 땅으로 쳐들어오고 있는 폼페이우슬 상대하기도 벅찬 이 시점에서 전선을 늘리는 것은 정말 득책이 아니다.
상식있는 왕이라면 절대로 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테무진에 대한 집착, 두려움, 혹은 열등감? 그 무엇이 되었든 미트리다테스 6세가 테무진에 가지고 있는 집념은 보통이 아니었다.
결국 그는 무리해서 시리아의 속주를 침공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시리아의 로마 속주군과 정면으로 충돌하기 시작한 것이다.
“흠····. 테무진의 국력이 소진되기를 원했는데 로마의 국력이 소진 되겠는걸?”
모략을 꾸몄을 때 결과가 항상 바라는대로 나온다는 보장은 할 수 없었다.
그나만 좀 나은 것은 로마의 국력이 소진되는 것도 우진의 입장에서는 나쁘지 않다는 것이었다.
‘시저 그 놈이 속 좀 쓰리겠군.’
우진은 서신을 접으며 전령에게 말했다.
“마시르 자작에게 계속해서 정보를 수집하라고 말하라. 그리고 독단으로 군을 움직이는 것을 허락하겠다고도.”
“예. 알겠습니다.”
만약에 미트리다테스 6세가 시리아를 돌파하고 유다이아에 진군하는게 가능해 진다면 그대는 마시르에게 말해서 이집트의 군을 북상 시켜 버릴 생각인 우진이었다.
‘어째 약간 사악한 생각 같기도 한데···. 나 혹시 시저 놈 닮아가는 건가?’
은근히 자기가 걱정되는 우진이었다.
지중해의 역사는 이제 원래의 역사하고는 완전히 틀어져 버렸다.
더 이상 로마의 압도적인 지배는 사라졌고, 세계는 거대한 세 개의 축을 중심으로 팽팽한 힘겨루기에 들어갔다.
로마, 파라디소스, 소아시아.
세 개의 세력중에 가장 힘이 약한 곳은 소아시아였다.
물자가 풍부하고 국력도 강성한 나라들의 집합체였지만···. 어디까지나 집합체이지 하나의 나라가 아니었다.
미트리다테스가 나름 공포와 반로마 감정을 잘 이용해서 하나로 묶어두고는 있었지만 언제 어디서 어떤 트러블이 생길지는 아무도 몰랐다.
아슬아슬하게 휘청 거리며 굴러가고 있는 외발 자전거 같은 상태였던 것이다.
그리고 파라디소스와 로마의 전력은 어디가 더 강하다고 말하기 힘들 정도였다.
아니 엄밀히 말해서 순수하게 국가의 영토와 인구수로 인해서 발생하는 국가의 종합적인 힘은 아직도 로마가 압도적으로 우위에 있었다.
하지만 파라디소스는 누미디아와 이집트와 돈독한 동맹 관계에 있었다.
그 말은 북아프리카 전부를 손에 넣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비록 비옥한 이탈리아 본토와 에스파냐와 갈리아 지방을 관리하고 있는 로마에 비해서는 부족했지만 국가의 경쟁력은 충분했다.
무엇보다 시칠리아 역시 충분한 곡창지대였고, 소금 광산이 있어서 나라의 기틀을 잡기는 쉬운 지역이었다.
이렇게 변화한 역사 속에서 가장 손해를 본 사람은 누구일까?
답은 정해져 있다.
바로 로마의 최대 권력자인 시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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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슬 다음 편 부터 다시 스토리 진행에 들어갑니다.
항상 응원해 주시는 분들에게 감사드립니다.
즐감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