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8화
<만렙의 딸 바보>
서신을 다 읽은 미트리다테스 6세는 분연하게 일어나서 외쳤다.
“제노비오스와 드로미키아이테스를 불러라!!!”
“전하. 그 둘은 지금 폼페이우스와의 전선에서 싸우고 있습니다.”
“전선은 당분간 아르겔라오스와 다른 동맹국의 지휘관에게 맡긴다. 이들에게 중요한 임무가 있으니 당장 소환하라!!”
“옛. 알겠습니다.”
말을 마친 미트리다테스 6세는 파라디소스의 전령을 보고 말했다.
“좋은 소식을 가지고 왔군. 충분히 쉬었다가 가도록 하라.”
“배려에 감사합니다.”
“그래··. 음? 그런데 이 뒤의 이 문자는 뭐지?”
미트리다테스는 뒤 늦게 발견한 문자열을 발견하고 전령에게 물었다.
그리스어로 써진 앞의 서신의 내용과는 다르게 뒤의 내용은 그가 읽을 수 없는 문자였다.
“저희 전하께서 말하기를 그것은 미트리다테스 6세 전하를 칭속하기 위한 축문이라고 합니다.”
“흠····. 알았다.”
미트리다테스 6세는 흡족하게 웃으면서 전령을 돌려 보냈다.
참고로 그가 궁금해 하고 있는 문자열은 한글이었다. 그리고 그 내용은····.
[너 낚인 거임. ㅋㅋㅋ]
이상이었다.
당연한 얘기지만 애당초 우진은 미트리다테스 6세와 동맹을 맺고 로마를 협공할 생각은 없었다.
우진이 부추기지 않아도 어차피 로마와 박 터지게 싸우고 있는 폰투스였다.
거기에 우진이 힘을 실어주면 좋을 것 같지만 사실 그렇지도 않았다.
우선 첫 번째 문제로 파라디소스에서 소아시아까지는 너무 멀었다.
멀 뿐만이 아니라 가는 길도 거의 꽉꽉 막혀 있었다.
육로는 말 할 것도 없고, 해로도 로마의 해역을 지나가야 했다.
이번처럼 사신 한 명 정도를 보내는 것은 몰라도 군사를 보내서 서로 협조를 하는 것은 절대 무리다.
두 번째로···. 클레오파트라의 경우는 좀 예외였지만 헬레니즘 왕조들은 너무 오만해서 손을 잡아도 대등한 대우를 바란다는 것은 무리다.
클레오파트라가 현실 적인 성격이었기에 다행이지 그녀의 언니인 베레니케 4세를 생각해 보면 헬레니즘 왕조들의 오만함을 잘 알 수 있다.
그들은 자신들이 보통 인간들을 지배하는게 당연한 우월한 일족이라고 생각하고 있었으며 이미 지나간 그리스의 전성시대를 아직도 그리고 있었다.
과거의 망령이랄까? 소아시아에서 헬레니즘의 수호자를 자처하고 있는 미트리다테스 6세의 경우 그 대표격이라고 해도 좋았다.
그런 자와 동맹을 맺어봤자 좋을 일은 하나도 없을 것이다.
그러니 우진은 이제까지 폰투스의 전쟁을 강 건너 불구경 하듯이 방관만 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번에 처음으로 테무진의 발목을 잡기 위해서 폰투스에 사신을 넣었다.
“어떤 결과가 나올 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래도 밑져야 본 전이니까.”
“뭐가요?”
“아니···. 아무것도 아니야. 그 보다 편하게 쉬고 있으라니까···.”
“이 정도는 괜찮아요.”
우진에게 행복한 미소를 지으며 과일과 와인잔을 가지고 온 것은 우진이 사랑하는 아내인 세체니였다.
그녀의 모습은 우진이 아프리카로 원정을 갔던 시절과는 많이 달라져 있었다.
미모는 여전했고, 미소도 여전히 환했다.
그런데 배가 만삭이 되어 있었던 것이다.
바로 우진의 아이였다.
“많이 힘들지 않아?”
“괜찮아요. 그보다 전하가 일찍 돌아와서 다행이에요. 아이가 나오기 전에 못 오시면 어쩌나 했는데···.”
세체니는 수줍게 웃으면서 우진의 옆에 편하게 앉았다.
그녀는 우진이 원정에 가고 얼마후에 임신 사실을 알았지만 그 사실을 외부에 철저하게 비밀로 했다.
만에 하나라도 전쟁터에 있는 우진이 자신의 임신 소식에 마음이 흔들릴 까봐 자제한 것이다.
임신으로 인해서 자기 몸이 힘들고 불편한 와중에도 전쟁터에서 싸우고 있을 남편을 생각해서 그녀는 스스로 꾹 참고 있었다.
그런 그녀를 옆에서 보살펴 주는 것은 디도 뿐이었다.
“디도가 많이 도와줘서 정말 다행이에요. 자기도 아기 키우느라 힘든데···.”
“둘 다 싸우지 않고 잘 지내줘서 고마워.”
우진은 진심으로 둘에게 고마웠다.
평범한 왕조의 경우 왕의 부재중에 다른 여자의 임신 사실을 알았다면 무슨 해꼬지를 해도 이상하지 않았다.
실제로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왕의 아이라는 존재는 모친의 뱃 속에 있는 그 순간부터 이미 견제의 대상이 되는 경우가 허다했다.
이미 우진의 장녀를 낳은 디도의 입장에서 봤을 때 세체니가 아들이라도 낳으면 입지가 크게 좁아질 것이 뻔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체니는 조금도 그런 티는 내지 않고 세체니를 헌신적으로 보살폈다.
우진이 돌아 왔을 때 그 사실을 알고는 두 아내가 진심으로 사랑스러웠다.
‘이런 아내들을 내버려 두고 한국으로 돌아갔다면··. 천벌 받아 마땅하지.’
마르스와 거래를 하고 난 후에도 사실 고향 생각이 몇 번이고 났었다.
오히려 이제는 절대 갈 수 없다고 생각하자 한 층 더 그리움이 사묻쳤다.
하지만 이제는 고향에 대한 미련을 확실하게 끊어 버릴 수 있을 것 같았다.
사랑하는 가족이 있는 곳.
여기도 이제는 고향이었다.
우진이 사랑하는 아내의 황금빛 머리카락을 쓰다듬으면서 오랜만에 행복에 취해 있을 때.
전령이 오더니 우진에게 말했다.
“전하. 누미디아에서 사신이 왔습니다.”
“응? 누미디아에서?”
전쟁도 다 끝났고 누미디아는 마우레타니아 부족원들을 복속 시키고 달래기에 바쁘다고 알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왜 서신이 왔다는 걸까?
‘더 이상 아프리카에 문제가 생길 일은 없을 텐데····.’
우진은 일단 만나서 사정을 들어 보기로 했다.
대전에 향하니 익숙한 인물인 오우메니우스와 함께 누미디아의 사신이 와 있었다.
“파라디소스의 영웅왕을 뵙습니다.”
사신은 우진이 대전에 등장하가 극도의 예를 표하면서 정중하게 인사했다.
“일어나시오.”
우진은 나이 지긋한 노인으로 보이는 사신이 정중하게 예의를 차리자 좋게좋게 나가기 시작했다.
“먼 길을 오느라고 수고가 많았소. 어쩐 일로 본국을 찾았는지 말해 보시오.”
우진의 말에 사신은 먼저 뒤의 시종들에게 말해서 한가지 물건을 가져오게 했다.
“우선 이것을 받아 주십시오.”
“···그건? 뭐요?”
사신이 가져온 것은 다큰 장정의 몸통 정도는 되는 커달나 상자가 여러개 였다.
그 상자를 시종이 가져와서 열자 그 안에는····.
“호오····.”
그 안에는 막대한 보물이 들어 있었다.
황금, 보석, 상아, 실크.
이 시대에는 모두 귀하고 귀한 물건들이었다.
‘누미디아가 최근 사정이 나아지기는 했지만 그렇게 부자 나라는 아닌데···. 무슨 부탁을 하려고 이렇게 선물 공세를 하는 걸까?’
우진은 보물에는 별 관심이 없었다.
하지만 누미디아가 무슨 속셈으로 이런 로비를 하는 건지에는 흥미가 있었다.
“주바 국왕의 호의는 반가우나 이것은 무슨 의미인지 말해 주겠소?”
“양국의 우호와 평화를 바라오며 바치는 순수한 선물입니다. 또한 밖에 나가시면 다른 선물도 있습니다.”
“다른 선물?”
“늙은 소신의 입으로 듣는 것 보다는 전하께서 직접 보시는 편이 즐거울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
우진은 이상하게 생가하면서 밖으로 나가봤다. 그리고 살짝 놀랬다.
“이건····? 코끼리?”
“그렇습니다. 전하에게 도움이 되기를 바라는 본 국의 마음입니다.”
“호오···.”
확실히 보물 보다는 눈앞의 코끼리들이 마음에 들었다.
이 시대의 선박기술로 코끼리를 배로 옮겨 오는 것은 절대 무리다.
하지만, 지금 눈앞에 있는 것은 태어난지 얼마 되지도 않은 것 같은 새끼 코끼리들이었다.
“암컷, 3마리. 수컷 2마리입니다. 사실 총 20마리를 준비했으나 배로 옮기는 와중에 항해의 고단함을 견디지 못했는지 그만···.”
사신의 말에 우진은 피식 웃으면서 말했다.
“다섯 마리라도 용케 옮긴 것이 대단하오. 그런데···. 이제 그만 속내를 밝혀 주겠소? 이런 선물들을 주면서 주바 국왕은 본인에게 무엇을 원하는 것이오?”
우진이 알기로 국가와 국가의 거래라면 이런 로비를 쓸 주바 국왕이 아니었다.
애당초 자신이 그런 것으로 국가의 행방을 결정할 인간이 아니라는 것은 주바 국왕도 알고 있었으니 말이다.
즉, 이렇게 개인적인 선물을 막대하게 찔러 준다는 것은 왕 대 왕의 거래가 아니라 개인 대 개인의 거래를 원하고 있다는 말이었다.
‘재깍 속내를 까놓지 못할까?’
우진도 이제는 눈치가 생겨서 그 정도의 의미는 잘 알고 있었다.
“크흠···. 전하. 저희 누미디아는 파라디소스와의 공고한 동맹을 위해서 국혼을 진행하려고 합니다.”
우진은 사신의 말을 듣고는 피식 웃어 버렸다.
‘결국 그런 건가?’
우진은 고개를 설래설래 저으면서 웃는 얼굴로 말했다.
“좋은 생각이라고는 생각하지만···. 난 이미 세 명의 아내가 있고 그녀들 말고 다른 여자를 내 팔 안에 안을 생각은 없소.”
우진의 말에 사신은 헛 기침을 하면서 말을 이어갔다.
“저기···. 크흠. 전하를 말씀하는게 아닙니다.”
“····무슨···? 말이오?”
이맛살을 살짝 찌푸리는 우진에게 사신이 한 명의 어린 소년을 소개했다.
이제 다섯 살 정도 되었을까?
제법 똘망똘망한 얼굴을 하고 있는 소년을 앞으로 내밀면서 사신이 소개했다.
“저희 주바 국왕의 조카이자 저희 누미디아 왕족의 일원인 미시헤르발 왕자 전하이십니다.”
“···지금? ···혹시? 설마···?”
“저희 누미디아는 귀국의 유리 공주님과 미시헤르발 왕자 전하의 국혼을····.”
“꺼져!!!!!”
우진이 쩌렁쩌렁하게 외쳤다.
우진이 나이 지긋한 사신의 멱살을 잡고 짤짤짤 흔들면서 ‘지금 장난하는 거지? 장난이라고 말해.’ 라고 족치고 있는 것을 마침 지나가던 크릭서스가 간신히 말렸다.
“전하!! 고정하십시오.”
“이게 고정할 일이냐!!!?”
우진은 자기 딸에게 국혼이 들어온 사실에 광분했다.
유리는 이제 한국으로 치면 막 2살이 된 어린 아기였다.
그 아기가 아장아자 걸음마를 하면서 ‘빠빠··.’ 하면서 달려오는 것이 우진에게 있어서 가장 큰 행복인데 그 행복을 뺏어가려고 하니 이성을 잃어 버린 것이다.
그나마 크릭서스가 말리니 어느 정도 냉정은 되찾은 우진은 일단 사신의 멱살을 놨다.
‘···확, 누미디아하고 한 판 붙어?’
아니 아직 냉정은 못 찾은 모양이다.
“전하. 그렇게 화 낼 일은 아니지 않습니까?”
“왜 아니야!!? 내 딸을 데리고 가려고 하는데?”
“아니 그거야···.”
“내 딸은 내가 평생 데리고 살 거다. 시집 가려면 나 보다 강한 놈 아니면 안 보내.”
“···········.”
큰소리 탕탕 치면서 억지를 부리는 우진을 보고 크릭서스는 어이가 없었다.
‘오랜 세월 동안 지켜 봐 왔지만 이런 진상 부리는 모습은 처음이네.’
크릭서스가 보기에 우진은 훌륭한 왕이었고, 항생 냉정 침착하게 일을 처리하는 인간이었다.
그런데 자기 딸이 걸리자 만렙 팔불출 티를 팍팍 내고 있는 것이었다.
‘못 말리겠군····.’
한참이 걸려서 날뛰던 우진이 안정된 것은 소식들 듣고 디도가 달려온 이후였다.
뭐··. 진정 되었다고 해야 할지. 일단 진정한 척이라도 하고 있다고 해야 할지는 구분하기 어려운 모습이었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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