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2화
테무진은 혼란에 빠졌다.
그리고 혼란에 빠진 만큼 생각이 많아지기 시작했다.
‘설마하니 내가 군사를 움직일 남김 없이 움직일 것을 알고 되려 야습을 했다는 건가? 아군의 전력을 보전할 생각은 하지도 않고···. 숫자가 열세이고 최후 방어선을 맡고 있는 상태에서 이런 대범한 도박을 확신을 가지고 하다니····.’
테무진은 이제 마시르의 능력이 그 끝이 어딘지 모를 정도로 경악하고 있었다.
하지만··. 실상은 달랐다.
마시르는 딱히 테무진의 생각을 잃고 이런 행동을 한 것은 아니었다.
아무 생각없이 야습을 하면 어째 잘 통하지 않을까? 라는 생각으로 주변에 숨어있다가 무작정 움직였던 것 뿐이었다.
그리고 실제로 야습을 왔을 때 본진이 거의 텅텅 비어 있다는 것을 보고 마시르는 되려 황당할 정도였다.
“이 놈들이 다 어디에 갔지?”
“자작님. 어떻게 할 까요?”
“일단···. 천막이랑 군량에 다 불 질러. 그리고 부술 수 있는 것은 다 부수고.”
“알겠습니다.”
“·····도대체 이 놈들 무슨 정신으로 본진을 다 비워 둔거지?”
테무진의 생각을 읽기는커녕 결과를 보고도 이게 왜 이렇게 되었는지 전혀 짐작을 못하고 있는 마시르였다.
가끔씩 세상 살다 보면··. 아무것도 모르는 초짜들이 숙련된 꾼들을 이기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그 대부분은 꾼들이 생각이 너무 많아서 자기 무덤을 판 경우가 대부분이다.
카드 게임에서 초짜가 자기 패가 뭔지도 잘 모르면서 무작정 밀고 밀어서 타짜가 알아서 죽게 만드는 그런 행운?
사실 행운이라기 보다는 생각이 너무 많은 꾼의 자멸이라고 할 수 있었다.
나중에 카드를 뒤집어 보면 초짜가 쥐고 있는건 고작 원페어인데 말이다.
지금 테무진이 딱 그런 전철을 밟고 있었다.
마시르에 대한 과대평가가 점점 이어져 감에 따라서 이제는 행동이 위축되고 자신을 잃기 시작한 것이다.
이런 웃지 못할 상황이 벌어진 것 자체가 테무진이 너무나 전쟁에 뛰어난 인재이기 때문이다.
천재란 범인이 상상도 하지 못할 터무니없는 업적을 태연하게 이룩하지만 보통 사람이라면 절대 하지 않을 어이없는 실수를 범하기도 한다.
그래서 보통 사람과는 전혀 다른 종류의 인간이라고 하는 것이고 말이다.
“전하···.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바르베르코의 질문에 테무진은 생각에 잠겼다.
군량이 없어져 버린 테무진이 지금 선택 할 수 있는 여지는 두 가지 있다.
전진, 아니면 후퇴였다.
‘어떻게 하면 되지? 아니 그보다···. 이 전쟁 더 한다고 이길 수 있을까?’
망설임이 생긴 지휘관은 무능한 지휘관 보다 더 위험 할 때가 있다.
마시르에 의해서 심각한 대미지를 입은 테무진은 정교한 기계 장치가 작은 돌맹이 하나 때문에 삐걱 거리는 것처럼 무너지기 시작했다.
그는 한참의 생각 끝에 부하에게 말했다.
“········물러난다.”
“전하!!!”
“이미, 되 돌릴 수가 없는 싸움이다.”
“············.”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부하를 보고 테무진이 말했다.
“보급 물자가 없어진 이상 우리에게 남은 것은 이대로 알렉산드리아로 최대한 빨리 진격해서 이집트의 수도를 점령하든가? 그렇지 않으면 물러나서 사태를 추스르는 것 뿐이다.”
“그건···? 그렇다며 어째서 물러나는 겁니까?”
“맞습니다. 전하 답지 않습니다.”
“차라리 전진하죠? 우리가 언제부터 뒤로 물러났다고 몸을 사립니까?”
폰투스 시절부터 테무진을 따라온 부하들은 테무진이, 자신들의 영웅이 뒤로 물러난다는 사실이 영 마음에 들지 않는 것 같았다.
하지만 테무진의 의지는 확고했다.
“무리다. 아마 여기서 전진해 봤자. 마시르라는 남자의 역량을 생각할 때 충분한 방어진을 준비해 놨을 것이다.”
“전하···.”
“크윽······.”
부하들은 입술에서 피가 나도록 깨물면서 분해했다. 물론 마시르의 방어진은 테무진의 망상 속에만 있는 것이다.
마시르는 지금 일단 알렉산드리아로 무작정 돌아가고 있는 길이었다.
뭔가 생각을 한 것은 아니었고 그래도 수도가 가장 중요하니까 수도를 지켜야 한다.
라는 단순한 생각에서 기인한 것이다.
만약 테무진이 그걸 알고 있었다면 주저하지 않고 진격해서 알렉산드리아 주변의 삼각주에서 약탈과 토벌을 겸해서 적을 괴롭혔을 것이다.
하지만···. 알 리가 없는 테무진은 후퇴를 감행했다.
그리고 테무진은 알고 있었다.
그 후퇴도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닐 것이라는 것을 말이다.
“모두 준비해라. 이 전쟁에서 최소한의 보전을 하려면 앞으로 있을 큰 전투에서 승리해야 한다.”
“···알겠습니다.”
“준비에 만전을 기하겠습니다.”
함정과 기책, 행운과 불행.
오고 갈 것은 다 교환 되었다.
이제 중요한 것은 우진과 테무진 둘의 직접적이 부딪힘 뿐이었다.
“···뭐가 어떻게 됐다고?”
“마시르 자작이 적의 군세를 막아냈다고 합니다.”
“···············?”
정신없이 남쪽으로 회군하고 있던 우진은 전령이 가져온 소식에 잠시 말을 잃었다.
‘이게 어떻게 된 거지?’
마시르에게 전쟁 초기에 별도의 명령을 내렸던 것은 기억하고 있다.
그래서 이번에 우진이 깊숙하게 숨어있는 테무진의 가짜 본진을 공격하기 위해서 모집할 때도 마시르와 그가 이끄는 5천의 병력은 모이지 않았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 작은 병력으로 몇 배나 더 많은 테무진의 본진을 막아냈다니?
이제 막 본격적으로 지휘관 좀 시켜 보려고 하기는 했지만 마시르에게 그 정도의 능력이 있을 것이라고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우진이었다.
‘아니···. 아니야. 아무리 그래도 마시르에게 그런 능력은 없어.’
그동안 함께 지낸 세월이 얼마인가?
우진은 고개를 붕붕 흔들어서 마시르 천재설이라는 가정을 지웠다.
테무진과 달리 우진은 마시르에 관해서 잘 알았다. 그가 자신을 동경해서 휘두를 줄도 모르는 태도를 가지고 와서 연습 봐달라고 하다가 자기 발등 찍는 개그를 보여준에 바로 어제 같았다.
다행이 검술은 많이 늘어서 이제 그런 개그는 보여주지 않는다.
하지만 지휘력은?
‘마시르에게 그런 지휘력이나 전략의 깊이가 있을 리가 없어. 적어도 지금은····.’
우진이 알고 있는 마시르는 자신이 시킨 지령을 충실하게 잘 수행하기는 하지만 앞장 서서 뭔가를 자율적으로 하기에는 아직 부족함이 많았다.
그래서 이번 전쟁에서 슬슬 그런면을 키워주기 위해서 따로 일군을 맡기고 비교적 쉬운 임무를 맡겼던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 위급한 상황에 나라를 구할 잭팟을 터트릴 줄은 생각도 못했다.
“···뭐가 어떻게 된 건지···. 생각하기 힘든 변수가 많지만 그래도 기회는 생겼다.”
위기라고 생각한 상황이 이제 기회가 되었다.
적은 후퇴를 위해서 북상하고 있고 남하하고 있는 우진과 정면으로 격돌 할 수밖엥 없게 되었다.
이제는 피할 수도 없고 더 이상 양쪽에서 수작을 부릴 비장의 수도 떨어졌다.
“정면승부····. 조금만 더 기다려라.”
우진은 테무진에게 잔혹하게 죽은 자신의 부하들을 떠 올리면서 스산한 살기를 뿜어내면서 중얼 거렸다.
우진과 테무진의 진형은 중간의 황야지대에서 마주쳤다.
두 진형은 서로가 가시 거리에 들어오자 마자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진형을 차리기 시작했다.
“이번 전투가 중요하다.”
파라디소스의 진형을 바라보는 테무진의 눈은 무척이나 진지했다.
이번 전쟁에서 이제 노리던 것을 얻는 것은 글렀다. 너무 커다란 변수가 연달아 일어나서 전황이 크게 변했기 때문이다.
원래의 계획 대로라면 이집트를 점령해서 그 기반으로 북부의 소아시아를 노릴 계획이었지만···.
아쉽게도 그것은 다음을 기약 할 수밖에 없어졌다.
알렉산드리아로 진격하는 길이 막혀 버렸기 때문이다.
이제 더 이상은 전쟁터를 계속해서 지속할 여력도 없었다.
그렇다면 전쟁을 끝내는 와중에 최대한 유리한 정전의 조건을 가져갈 것이 첫 번째 목적이었다.
‘파라디소스의 국왕을 사로 잡는다. 그게 불가능 하다면 이번 전투에서 승리해서 우리에게 충분한 여력이 남아 있다는 것을 어필하기라도 해야 한다.’
테무진은 이번 전투가 이 전쟁에서 마지막 전투가 될 것이라는 것을 알았다.
이기든 지든 상관없이 말이다.
양군은 진형을 차리고 서로 대치하면서 팽팽한 긴장감에 사로 잡혀 있었다.
“기마대가 주력이라고 했던가? ···후방에 저거군.”
우진은 앞에 보이는 본진의 어설픈 도열과 달리 몇 개의 무리로 나눠져서 짱짱하게 진형을 채우고 있는 기마를 눈여겨봤다.
“전하. 저희도 기마를 준비할 까요?”
“아니···. 일단 기다려 봐라. 함부로 우리 전력을 드러낼 필요는 없지.”
우진이 가지고 있는 군세에서 가장 강력한 조커는 자신을 필두로 한 중장기병이었다.
어설픈 원거리 공격은 무시하고 직선으로 돌파해서 적을 반으로 갈라버리는 중장기병의 돌진력은 우진이 가장 자신하는 무기였다.
하지만···.
그런 중장기병을 만들면서 우진은 한가지 약점을 알았다.
중장기병은 두터운 방어력과 막대한 파괴력을 겸비했지만 기벼으로서의 커다란 단점이 있었다.
바로 느리다는 것이었다.
보병이 상대라면 상관 없다. 아무리 중장기병이 느리다고 해도 보병이 달리는 것 보다 느린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같은 기병을 상대할때는 속도의 차이가 확실한 약점으로 작용한다.
그래서 원래는 마시르가 지휘하게 하는 경기병들과 함께 운용하는 것이었다.
빠른 경기병대로 적의 발목을 잡아 끌면서 묵직한 중장기병으로 적을 돌파한다. 라는 방식으로 사우기 위해서 말이다.
하지만 지금 여기에 마시르의 경기병대는 없었다.
싸움으로 치면 거리를 잴 수 있는 견제 잽 없이 묵직한 스트레이트 하나만 가지고 싸워야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함부로 막 휘두를 수는 없지. 결정적인 순간까지 중장기병은 봉인이다. 대신···.’
“보병 전진!!!”
우진은 우선 가장 포편적인 전투 방식인 보병을 전진 시켰다.
뿌우웅!!!!“
“전진하라!!!”
우진의 명령에 따라서 파라디소스와 이집트의 연합군으로 이뤄진 보병이 정면으로 전진하기 시작했다.
“전하. 적이 옵니다.”
“보병부터라···. 뒤편의 기병대는 장식인가?”
“어떻게 대응 할까요?”
“·····보병은 전원 중지. 궁병은 사거리에 적이 들어오는 순간부터 신호를 기다리지 말고 자율적으로 사격하라. 화살은 아끼지 마라.”
“예. 알겠습니다.”
테무진은 이 전투가 얼마나 중요한 전투인지 알았다.
그래서 화살을 아끼지 말라는 명령을 내린 것이다.
“화살 당겨!!!”
“위로 조준!!!!”
궁병들의 지휘관들은 거리를 가늠하면서 궁병을 준비 시켰다.
척척척 발 맞춰서 걸어오는 적군이 사거리에 들어왔다고 생각한 순가···.
“쏴라!!!”
테무진의 무리에서 화살의 비가 하늘로 거꾸로 솟아났다. 그리고는 긴 포물선을 그리면서 우진의 부대에 꽃히기 시작했다.
퍼퍼퍼퍽!!
“방패 똑바로 들어라!!!”
“서로를 믿어라. 방패를 믿고 옆의 전우를 믿어라!!”
“팔에 화살 꽂혔다고 방패 내리는 새끼는 죽을 줄 알아라!!!”
============================ 작품 후기 ============================
마시르의 초보자 행운은 여기까지.
결국은 대장들 끼리 한 판 붙어야 해결 나는 겁니다.
항상 응원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즐감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