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2화
디오클레이우스의 핵심을 지적한 말에 이제까지 거침 없던 옥타비아누스의 말이 처음으로 멈췄다.
‘쯧, 쓸데 없이 예리하기까지·····.’
“순순히 보내주시지 않겠다면··. 힘으로 통과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옥타비아누스는 강경책을 꺼냈다.
디오클레이우스는 콧 웃음을 치면서 말했다.
“지금 사령관이라는 네가 내 손이 뻗으면 닿는 곳에 있다. 네 목하나 비트는데 내가 몇초나 걸릴 거라고 생각하는 거냐?”
“제 목숨은 상관 없습니다. 제 부하들은 사선을 넘는 것을 두려워 하지 않을 테니까요.”
거짓말이다.
옥타비아누스의 강압적인 명령에 의해서 어쩔 수 없이 움직인 부하들이고 무슨 일이 생기면 도망 가라고 사전에 면죄부도 줬다.
디오클레이우스가 목을 옥타비아우스의 목을 비트는 그 순간 적들은 줄행랑을 칠 것이다.
하지만 옥타비아누스가 이렇게 배짱을 튕기는 것에는 나름 이유가 있었다.
‘직접 겪어보니 알겠다. 이 남자 그냥 어리석은 짐승은 아니야.’
디오클레이우스가 정말 저돌적이기만 한 인간이라면 옥타비아누스의 도발에 그대로 덥썩 물었을 것이다.
하지만 디오클레이우스는 그러지 않았다.
‘쳇, 망할놈의 정전 협정.’
그렇다. 그게 문제였던 것이다. 사실 먼저 해역을 침공한 것은 로마쪽이니 파라디소스에게 책임은 없다.
하지만 전투가 벌어지면 책임론을 따지는 것과 별개로 정전 협정은 깨질 것이다.
그게 문제였다.
우진과 시저가 체결한 정전 협정은 서로 나라를 안정시킬 시간이 필요하다는 두 사람의 암묵적인 동의하에 체결된 것이다.
디오클레이우스가 우진이 가장 신뢰하는 오른팔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독단으로 정전협정에 고춧가루를 뿌려도 되는지 안 되는지를 판단하기는 어려웠다.
물론 그 점은 옥타비아누스도 마찬가지였다.
만약에 여기서 전투가 벌어져서 로마와 파라디소스의 정전 협정이 파기 된다면 더 큰 손해를 보는 것은 로마다.
아직 동방에 원정을 간 폼페이우스가 돌아오지 않은 시점에서 다시 파라디소스와 전쟁에 돌입한다는 것은 재앙이었다.
그것을 알고 있었기에 자신이 죽으면 그대로 로마로 도망다라고 한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옥타비아누스는 배짱을 부리고 있었다.
‘여기서 유리한 고지를 점하기 위해서는 억지를 부리고 도박을 해야 한다.’
상대방을 말로 설득하기에는 명분도 논리도 희박했다.
그런 불리한 상황이기에 옥타비아누스는 논리적인 화법이 아니라 배짱 튕기는 방식으로 적을 압박하고 있는 것이었다.
“··············.”
‘망설이고 있다. 여기서 몰아 붙여야 돼.’
디오클레이우스는 우수한 전사고 이제는 완숙한 장수도 되었다.
하지만 정치가로서의 모략에 관해서는 문외한이나 다름 없었다.
“약속 드리죠. 어디까지나 로마의 배신자를 처벌하기 위해서 가는 길일 뿐. 귀국의 왕과 전투가 벌어질 일은 절대로 없을 겁니다.”
“·········.”
“어차피 귀국의 왕도 카토와 싸우고 계시지 않습니까? 저희의 행동이 도움이 되면 도움이 되었지 해가 되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건···. 그럴지도 모르겠군.”
아니다. 절대 아니다.
여기서 옥타비아누스가 먼저 에스파냐에 입성해 버리면 은근슬쩍 명분을 내세워서 에스파냐를 파라디소스에 편입 시키려던 우진의 계획이 어긋나 버린다.
만약 우진이 이 자리에 있었다면 무슨 수를 써서라도 말렸을 것이다.
하지만 디오클레이우스의 곁에 우진은 없었다.
아지 지금 디오클레이우스에게 조언을 해 줄 수 있는 책사 하나도 없었다.
지략 쪽의 인재가 너무 적은 파라디소스 특유의 약점이 드러난 상황이라고 볼 수 있었다.
망설이고 있는 디오클레이우스에게 옥타비아누스가 결정타를 날렸다.
“정 꺼림칙하시다면··, 저하고 내기를 한 번 해보죠.”
“내기?”
이 판국에 내기라니?“
아무 연관 없는 얘기였다.
하지만 옥타비아누스의 입에서 나오는 내기의 내용은 디오클레이우스의 관심을 끌었다.
“팔씨름을 하죠. 그렇게 해서 제가 당신을 이긴다면 그때는 해로를 열어 주십시오.”
“····제 정신이냐?”
디오클레이우스는 어이가 없었다.
지금 그의 눈 앞에 보이는 애송이는 똘똘해 보이기는 했지만 그래도 힘이 강해 보이지는 않았다.
지극히 평범한 체격을 하고 있었는데 키가 디오클레이우스의 가슴에도 닿지 않았다.
뭐··. 그거야 디오클레이우스가 무식하게 큰 경우지만 어쨌든 팔 씨름으로 질 가능성은 제로 같았다.
“어떻습니까? 일대도 저래도 판단을 하기 힘들다면···, 차라리 팔씨름으로 결정하는게 좋지 않겠습니까? 적어도 군사들 피는 안 흘리겠죠.”
“···그럴지도··. 모르지.”
디오클레이우스는 옥타비아누스의 화술에 완전히 말려 들고 말았다.
상식적으로 봤을때··.
디오클레이우스는 그저 자신의 해역만 완벽하게 지키면 될 일이다.
임무에 충실하기 위해서 그것만 철저하게 지키면 상황이 이렇게 애매한 상황까지 오지도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우진은 측근인 디오클레이우스에게 너무 많은 권한을 줬다.
디오클레이우스의 능력과 둘 사이의 신용을 근거로 해서 준 권한이지만···.
그 권한이 지금 옥타비아누스가 파고 들 수 있는 빈틈을 만들어 준 것이다
“좋다. 팔씨름으로 정하도록 하지.”
결국 디오클레이우스는 낚였다.
낚이고 만 것이다.
바보 같으니라고···.
판은 순식간에 벌려졌다.
두꺼운 나무통을 가지고 와서 거기에 디오클레이우스와 옥타비아누스가 마주 섰다.
‘정말 할 생각인가?’
‘저 팔뚝으로? 나도 이기겠다.’
‘감사합니다. 지름신이시여. 드디어 로마 놈들이 미치기 시작하는 군요.’
디오클레이우스와 마주한 옥타비아누스를 보면서 디오클레이우스의 부하들은 어이없다는 얼굴로 실실 웃고 있었다.
“마지막으로 물어보자. 정말로 할 거냐?”
“겁이라도 납니까?”
“하···. 하하하··. 좋다. 잡아라. 그 팔모가지 썩은 장작처럼 부러트려 주지.”
디오클레이우스는 그렇게 말하면서 팔을 나무통의 위에 올려놨다.
옥타비아누스는 그대로 디오클레이우스의 손을 마주 잡으면서 말했다.
“미리 말해 두겠는데···. 일단 손등이 바닥에 닿으면 바로 지는 겁니다. 뒷 말하지는 않겠죠?”
“물론이지. 빨리 하기나 해라.”
만약 여기서 상대가 우진이었다면···. 아니 우진이었다면 애당초 팔씨름에 응하지도 않았겠지만 어쨌든 우진이 팔씨름을 할 상황에 처했다면?
그렇다면 우진은 이 상황에서 적이 뭔가를 노리고 있다고 의심했을 것이다.
하지만 디오클레이우스는 유감 스럽게도 너무 정직했고, 또 세상 사람들도 모두 자기처럼 정직한 편일 거라고 생각하는 순진한 사람이었다.
그래서 지금 옥타비아누스가 뭘 노리는지는 미처 생각하지 못하고 있었다.
드디어 둘이 손을 잡았다.
‘호오···. 비리비리해 보였는데 생각보다는 제법?’
디오클레이우스는 손을 잡고 보니 옥타비아누스가 생각보다는 완력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생각보다 있다는 것 정도지 자신의 적은 아니었다.
두 사람이 손을 잡고 긴장한 분위기 속에서 부하가 시작 신호를 보냈다.
“시작!!!”
“흣!!!”
“흐읏!!!”
두 사람이 힘을 주고 바로 팔을 한쪽으로 기울었다. 이변 따위는 없이 디오클레이우스의 우세였다. 하지만 그때···.
“흐읏!!!!!”
“엇!!”
옥타비아누스가 두 손으로 디오클레이우스의 팔을 잡고 그대로 있는 힘껏 한쪽으로 재꼈다.
아무리 디오클레이우스라도 이 뜻밖의 상황에는 팔이 접힐 수밖에 없었다.
타앙!!
단번에 넘어가 버린 디오클레이우스의 팔을 보면서 옥타비아누스는 말했다.
“제가 이겼습니다.”
“이건 반칙이야.”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반칙이건 뭐건 이긴 것은 저입니다.”
“····웃기지 마!!”
디오클레이우스는 버럭 소리를 질렀다.
하지만 옥타비아누스는 태연하게 대꾸했다.
“애당초 당신과 제 체격으로 정당하게 힘을 겨룬다는 것이 이상한 거죠. 전 사전에 말했습니다. 무슨 수를 쓰던 일단 손등이 바닥에 닿으면 거기서 승부는 끝이라고요.”
“··············.”
“이제 와서 말을 물릴 생각입니까? 그게 파라디소스 국왕의 오른팔이라는 남자의 방식입니까?”
“·············.”
‘제길, 난 이새끼 싫어.’
디오클레이우스는 짜증이 났다.
사실 옥타비아누스의 말은 다분히 억지였다. 억지였지만 디오클레이우스 같은 고지식한 남자에게는 억지도 설득력 있게만 들리면 어느정도 먹히기 마련이다.
‘제길···. 어쩔 수 없지. 해로를 열어주기만 하는 정도라면···. 혹시 나 실수하는 것은 아니겠지?’
실수하고 있는 것이다.
우진과 함께 행동하기 시작한지 십 수년··.
이제까지 한번도 우진을 실망 시킨적 없는 디오클레이우스였지만 이번에 처음으로 제대로 실망 시킬 건수를 만들어 내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대국을 읽는 안목이 부족한 디오클레이우스는 그것을 몰랐고 옥타비아누스에게 말했다.
“우리 해역을 지나갈 때는 우리가 감시할 것이다.”
“상관 없습니다.”
“그리고 만에 하나 거기서 우리 군과 전투가 벌어지면···. 사르디니아에 있는 내 모든 군대를 이끌고 로마로 진격할 것이다.”
“그럴 일도 없을 것입니다.”
“···제길, 꺼져버려!!!”
결국 디오클레이우스는 옥타비아누스를 통과 시켜 버리고 만다.
후일 역사에는 이 사건을 파라디소스의 삼대 굴욕 사건으로 삼는다.
한 개는 우진이 폼페이우스의 깃발을 보고 도망 갔을 때.
그리고 또 하나는 여기서 디오클레이우스가 옥타비아누스의 화술에 밀려서 해역을 통과 시킨 것.
그리고 또 하나는···. 스포일러니까 자제하도록 하겠다.
“제기랄···. 어떻게 로마군이 여기에···.”
우진은 항구에 가득한 로마군을 보고 망설였다.
여기까지 와서 돌아가면 아군의 사기 전체에 영향을 끼친다.
이전처럼 폼페이우스의 깃발 하나만 보고 뒤로 돌아가는 행동은 하지 않는다.
그것은 우진 스스로 생각하기에도 타임슬립하고 나서 한 행동 중에서 가장 경솔한 행동이었다.
이번에도 같은 어리석음을 반복할 생각은 없었다.
“좋다. 여차하면 전쟁이 난다고 해도 감수하지.”
여기서 에스파냐를 순순히 포기할 정도로 우진의 성질은 좋지 못했다.
무엇보다 그는 지금 화가 좀 나있는 상태였다.
그만큼 상황이 뜻대로 돌아가지 않는다는 말이었다.
“옥타비우스님. 파라디소스의 선단이 멈추지 않고 계속해서 항구로 옵니다.”
“쯧···, 듣기로는 신중한 인간이라고 들었는데···.”
부하의 보고를 들은 옥타비아누스는 혀를 차면서 아까워 했다.
그리고 부하에게 지시했다.
“절대로 우리가 먼저 공격해서는 안 된다. 모두 대기하라.”
“예!!”
부하들에게 지시를 내린 옥타비아누스는 일단 상황이 돌아가는 것을 지켜보기로 했다.
‘에스파냐는 꼭 지켜야 한다. 꼭····.’
옥타비아누스, 로마 역사상 시저를 뛰어 넘는 위대한 정치가로 이름을 남기는 인물이다.
하지만··. 틀어진 역사 때문에 좀 더 일찍 역사의 전면에 나온게 화근이다.
인간의 재능은 꽃과 같아서 피어나려면 시간이 필요한 법인데···.
지금의 우진을 상대하기에 봉오리 상태의 재능을 가지고 있는 옥타비아누스는··· 글쎄? 많이 부족하다고 말 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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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편에서는 우진과 옥타비아누스의 회담입니다.
여러분들의 응원은 작가에게 큰 힘이 됩니다.
즐감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