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7화
로마군 6만의 개입.
이것은 우진의 귀에도 들어갔다.
“6만? 그럼 적의 총 병력 규모가 얼마나 되는 거지?”
우진의 말에 오우메니우스가 대답했다.
“서 마우레타니아 부족들도 총력을 기울여서 무기만 들려서 싸울 수 있는 남자는 다 모으고 있다고 합니다. 그 규모는····.”
“규모는?”
약간 망설이던 오우메니우스는 우진의 재촉에 어쩔 수 없다는 듯이 말을 이었다.
“단순히 규모일 뿐이지만···. 20만이 넘는다고 합니다.”
“·············.”
“·············.”
“·············.”
오우메니우스의 보고에 막사 안에 있던 지휘관들은 모두 할 말을 잃었다.
20만이라는 숫자는 장난이 아니다.
전성기 시절의 카르타고와 로마의 전쟁이었던 포에니 전쟁에서 동원되었던 대국간의 전쟁에서나 볼 수 있었던 병력 규모였던 것이다.
순간 모두들 가슴까지 숨이 턱 막히는 기분이 들었다.
다만 우진 혼자만이 곰곰이 생각하더니 빙긋 웃으면서 말했다.
“별 것 아니군.”
“전하···.”
“20만입니다. 그런데 별것 아니라니···.”
우진의 말에 파라디소스의 지휘관들은 크게 동요했다. 그런 그들에게 우진이 말했다.
“귀관들은 잊어 버렸나 본데···. 우리도 10만 이상은 된다. 그것도 파라디소스의 정예 병력과 누미디아 정예 병력의 연합군으로 말이다.”
“그래도 적의 반입니다.”
“반이라도 그냥 반이 아니다. 적들 중에 정예라고 할 수 있는 병력이 얼마나 되나?”
“예? 그건······?”
망설이는 지휘관에게 우진이 말을 이어갔다.
“서 마우레타니아 부족의 병력이라고 해 봐야 오합지졸이다. 개개인의 용맹함은 높이 살만 하지만 전쟁터에서는 엉망진창으로 행동하고 있었지. 그대들도 봤을 텐데?”
“그거야·····.”
“확실히 그렇습니다.”
우진의 설명에 지휘관들은 이제까지 이 아프리카 워정에서 겪었던 서 마우레타니아 부족의 전투를 상기해 냈다.
유목민족 특유의 사나움과 용맹함은 있었다.
척박한 환경의 유목 민족들의 경우 남자는 모두 전사로 자란다고 해야 할 정도니 말이다.
하지만 전쟁터에서는 용맹한 전사 100명 보다는 충실한 병사 100명이 더 도움이 될 때가 많은 것이다.
단체와 단체의 격돌에서 중요한 것은 지휘관의 명령에 한 점의 의문도 가지지 않고 신앙 수준의 맹목적인 믿음으로 충성스럽게 행동하는 병사들이었다.
그래서 강군은 군율이 강하고 병사들의 훈련에 신경을 많이 쓰는 군대를 말하는 것이다.
부족민들의 전사를 끌어 모아서 결성해 놓은 서 마우레타니아 부족의 전사들은 그게 되지 않고 있었다.
확고한 중심을 잡아주는 지휘관이 없고 각각 부족이 족장들의 말들만 듣고 있으니···.
제대로 지휘를 할 수 있을리가 없었다.
그런 군대에게 가능한 전투라고 해 봐야 무작정 돌격해서 숫자로 밀어붙이는 것 뿐이다.
제대로 대형을 갖추고 냉정하게 대응하면 그런 닥돌 기마부대는 호구 중에 상호구였다.
“그리고 로마군 6만도 마찬가지다. 시저와의 권력 다투에서 패하고 도망친 공화정이 에스파냐에서 간신히 권력을 추스린 모양인데···. 그들에게 어느 정도 여력이 있다고 생각하나?”
“그건·····? 잘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6만의 병력을 움직일 정도면···.”
“그래도 어느 정도는 정예라고 생각하는 편이 옳은 판단일 것 같습니다.”
지휘관들의 말에 우진은 고개를 설레설레 저으면서 말했다.
“원래 에스파냐 지역 자체가 일전에 폼페이우스에게 크게 당한 지역이었다. 은과 자원이 풍부한 곳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아직 그 여파가 남아 있을것이 틀림없다. 그런 지역에서 시저에게 밀려난 공화정의 찌끄러기 같은 존재들. 그런 자들이 이끄는 6만이 두렵나?”
우진의 말에 지휘관들의 얼굴에 투쟁심이 끓어오르기 시작했다.
“두렵지 않습니다.”
“저희는 전하와 함께 파라디소스를 건국하기 위해서 싸워온 전사들입니다.”
“20만이 아니라 200만이라도 상관 없습니다.”
분연하게 일어나는 부하들을 보면서 우진은 속으로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이거지. 이거거든····.’
요즘···, 좀 더 정확하게 얘기하면 나라를 건국하고 나서부터 부하들 사이에서 신중함이 늘어나고 저돌성이 줄어드는 기분이 들었다.
그 통제하기 힘들었던 크릭서스 조차도 요즘은 우진의 말에 절대적으로 통제가 되고 있었다.
뭐···, 사실 나쁜 일은 아니다.
오히려 나라를 만들었는데 이전처럼 천방지축 개기면 그게 좀 이상한 거지···.
하지만 하나를 얻으면 하나를 잃는다고···.
그렇게 복종심이 강해지고 신중함이 늘면서 없어진 것도 있다.
우진과 그 부하들 최대의 강점.
이른바 악바리 정신이라고 할까?
맨주먹으로 시작해서 거대한 로마에 도전하는 무모한 행동을 하면서도 누구 하나 의심을 가지지 않고 악바리처럼 달려들었었다.
아마도 그때는 잃을게 없다는 생각으로 인해서 저마다 배수의 진을 치고 싸운다는 느낌이 강했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나라를 세우고 나서 얘기가 변했다.
파라디소스는 로마를 쓰러트리기 위한 도구로 만든 나라가 아니었다.
로마의 박해에서 벗어나서 새롭게 만들어진 자신들의 소중한 보금자리였다.
그런 소중한 것이 생기다 보니 다소 신중해지기 시작했고···, 대로는 그 신중함이 지나쳐서 소심함으로 보일 때도 있었다.
우진은 최근 들어서 부하들 사이에서 그런 분위기가 은근히 번져 가는 것이 영 마음에 안 들었다.
그래서 로마의 20만 전력을 깎아 내리면서 부하들의 자존심을 긁었던 것이다.
“내가 그대들의 가장 앞에 있겠다. 뒤처지지 말고 따라와라. 그렇게만 하면 승리는 우리의 것이다. 알겠나!!?”
“예!!!”
“예!!!”
“예!!!”
파라디소스의 군기는 하늘을 찌를 정도였다.
전장으로 선택된 곳은 틴기스의 가는 길목에 있는 커다란 호수 근처였다.
이름 모를 호수였지만 북아프리카 대부분의 영토가 사막인 이 지대에서 이 호수의 존재는 주변에 녹음을 제공하는 귀중한 장소였다.
녹음이 있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울창한 숲이 있는 것은 아니었다.
초원과 황무지의 중간 정도의 토질?
대강 그 정도의 지대였다.
작은 구릉도 몸을 숨길만한 숲도 없는···.
그야말로 정면 대결 말고는 어떠한 방식도 허용하지 않는 그런 지형이었다.
그런 지형에 파라디소스 10만의 군세와 로마군 20만이 서로 진형을 마주하고 있었다.
엄밀히 말해서 양쪽의 전력은 서 마우레타니아 부족과 로마의 연합군대, 파라디소스, 누미디아, 그리고 동 마우레타니아 연합군이었지만···.
그래도 군의 주축을 이루고 있는 것은 파라디소스와 로마 공화정 마지막의 수호자. 카토였다.
그가 직접 우진의 목을 노리고 이 자리에 온 것이었다.
“왜 성벽을 이용하지 않고 밖으로 나온 걸까요?”
로마군의 진형을 보면서 마시르가 우진에게 물었다.
“아마도 20만이라는 대군을 주제하기에는 틴기스의 성벽이 좋지 못했을 것이다.”
우진의 말은 정답이었다.
성벽은 1만의 병력을 3만으로 불려 주기도 하지만 때때로는 10만의 병력을 그냥 2만 정도로 축소 시켜 버리기도 한다.
성벽이 작으면 작을수록 더욱더 그랬다.
상식적으로···.
성벽이라는 것에는 올려둘 수 있는 전력에 한계가 있는 법이다.
성벽의 공간이 한정 되어 있으니 당연했다.
그러니 성벽위에 미처 다 올리지 못한 병력은 예비대로 구성하거나 성벽의 밖에서 요격전을 하는게 보통이지만···.
아무리 그래도 20만은 너무 많았다.
한 5만 정도라면 틴기스에서 수성을 하는게 바람직 했을지 모르지만 20만을 수용하기에는 틴기스는 너무 작은 성이었다.
예당초 군사적인 목적보다는 상업적인 목적으로 만들어진 성이었으니 당연한 결과였다.
결국 카토는 숫자의 유리함을 살리기 위해서 이 평원을 택했다.
우진이 자신을 무시하고 바로 틴기스로 진격 할 수도 있었지만 상관 없었다.
그때는 바로 이 대병력을 누미디아의 수도인 키르타로 진격 시켜 버릴 생각이었다.
아프리카의 틴기스와 에스파냐의 가데스는 아프리카와 에스파냐의 물류를 잇는 중요한 해양 거점이었지만···.
누미디아의 심장을 밖을 수 있는 대가로 넘겨준다면 상관 없었다.
그런 카도의 계획을 알았는지 몰랐는지 우진은 승부를 피하지 않고 평원에 마주 진형을 차렸다.
20만 대 10만.
누가 봐도 불리한 것은 우진이었지만 우진은 자신이 있었다.
“병사들을 푹 쉬게 해라. 아마도 본격적인 전투는 내일일 것이다.”
“예. 알겠습니다.”
우진은 그렇게 마시르에게 지시하고 로마군의 진형을 지그시 노려봤다.
아련히 보이는 적의 진지는 진형은 제대로 보이지 않았지만 역시 숫자 하나는 많아 보였다.
그때···.
따가닥! 따가닥!
말이 달리는 소리와 함께 로마군에서 한기의 기마가 뛰쳐 나왔다.
“전령일까요?”
“그렇겠지.”
우진의 예상대로 일정 거리까지 다가온 기마는 말을 멈추더니 크게 외쳤다.
“파라디소스의 국왕은 들어라. 난 로마 공화정의 콘술, 마르쿠스 포르키우스 카토의 전령을 가지고···.”
핏!!!
크게 외치던 전령은 그대로 자신의 뺨을 지나고 스치는 창날에 뺨이 찢어져 버렸다.
그런 전령에게 마시르가 쩌렁쩌렁하게 외쳤다.
“한 번만 더 말을 그따위로 짧게 해봐라. 네놈 대가리를 답신으로 보내겠다.”
“···········.”
우진을 보고 말을 짧게하는 순간 마시르가 던지 창이 이미 허공을 갈랐던 것이다.
“···전령으로 왔다. 서신을 받아라!!!”
전령은 살짝 누그러진 말투로 말했다.
그러자 파라디소스의 병사들 중에 한명이 가서 서신을 받아서 우진에게 가지고 왔다.
“이리 다오.”
“예. 여기 있습니다.”
우진은 부하가 공손하게 내미는 서신을 받아서 그대로 내용을 읽어갔다.
“······그렇군. 편지를 돌려주며 알겠다고 전하라.”
“예? 그렇게만 말하면 됩니까?”
답장도 없이 그냥 말로 전하라는 우진의 말에 부하는 살짝 놀랬다.
“그래. 그렇게만 하면 된다.”
“예. 알겠습니다.”
부하가 가고 나자 마시르가 우진에게 말했다.
“뭐라고 온 것입니까?”
“한 번 만나나 보자는군.”
“·····호위를 준비하겠습니다.”
“너하고 오우메니우스는 빠져라. 나 혼자 갔다 오겠다.”
“전하. 위험···. 하지는 않겠지만 체면을 생각해 주십시오.”
“그놈의 체면은···.”
“전하····. 알았다. 너 하나만 따라와라.”
“그렇게 하겠습니다.”
“··············.”
마시르의 징징거림이 점점 마누라 바가지 같아진다는 느낌이 드는 우진이었다.
‘정작 내 마누라들은 순종적이라서 바가지 안 긁는데 말이야.’
그건 마누라들이 순종적이라서 그런게 아니라 우진의 직위가 왕이라서 그렇다고 생각하지만···.
뭐, 중요한 것은 그게 아니다.
우진은 마시르 한 명을 대동하고 나왔고, 로마쪽에서도 카토가 몇몇 호위를 이끌고 나왔다.
“저 남자가 카토인가?”
“그렇겠군요.”
우진은 척 봐도 고집 있게 생긴 얼굴에 다부진 체격을 하고 있는 짧은 금발 곱슬 머리를 하고 있는 남자를 지그시 바라봤다.
‘으음···. 사실 봐도 잘 모르겠다. 역사적으로 아는게 없어서····.’
카토는 로마의 역사에서 상징적으로 중요한 역할을 한 남자다.
그의 이름 그 자체가 로마인들에게는 청렴결백의 상징처럼 남았으니 말이다.
우리나라로 치면 최영 장군정도 되는 인상이랄까?
사실 시저나 폼페이우스에 비하면 이름값이 처지는게 사실이다.
최영 장군만 해도 우리 나라에어야 (황금 = 돌) 수식으로 유명하신 분이지만 다른 나라에서는 잘 모르지 않는가?
어쨌든 역사적으로 카토가 어떤 인물인지는 몰라도 적어도 지금 이 시대에서 그가 어떤 인물인지는 알고 있는 우진이었다.
로마 공화정의 마지막 수호자.
라는 이름으로 불리면서 시저와 유일하게 대립하고 있는 로마의 마지막 저항 세력의 총아가 이 남자였다.
“그대가 파라디소스의 국왕인가?”
“그렇다. 그대가 카토?”
“그렇다.”
============================ 작품 후기 ============================
레벨 70의 카토 VS 만렙 우진.
둘의 회담은 다음편으로 넘어가겠습니다.
항상 응원해 주시는 분들에게 감사드립니다.
즐감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