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4화
<로마의 변화>
원래의 역사에서도 시저와 원로원의 대립은 필연적인 것이었다.
로마의 공화정이라는 정치체계의 목적은 권력의 분산화에 있었다.
술라나 마리우스 같은 걸물이 나타나서 잠간 딕타토르(독재관)의 자리에 오르기는 했지만 이것은 임시직이었다.
기본적으로 로마의 최고 직위는 콘술(집정관)이었고 그것도 보통은 1년의 짧은 임기로 제한했다.
짧은 임기 대신에 여러 번 중임하는 것을 허락했고, 그 결과 마리우스는 7번이나 콘술을 하기도 했지만···. 그 최고 직위인 콘술도 항상 두명 이상을 둬서 권력을 철저하게 분산 시켰다.
시저가 이런 분산된 권력을 좋아할 리가 없다.
그는 술라가 스스로 딕타토르의 자리에서 물러났을 때 술라는 정치를 눈꼽 만큼도 모르는 자다. 라고 비웃었을 정도다.
자신이 정점에 서서 군림하면서 원로원을 아래에 두고 지시를 내려야 직성이 풀리는 것이 시저의 취향이었다.
실제로 그는 실질적으로 초대 황제는 아니지만 후일 로마인들에게 신군이라는 칭호를 받을 정도로 확고한 위치에 올랐었다.
그런 시저가 원로원과 충돌하게 된 원인은 최근 거듭된 패전과 로마의 줄어든 영향력이었다.
원로원은 시저와 죽은 크라수스에게 그 원인을 돌렸다.
실제로 시저의 계책이야 크게 드러나지 않았지만 크라수스의 패배는 겉으로 드러난게 컸다.
그 패배 때문에 이집트가 통째로 로마에서 파라디소스의 품으로 넘어가지 않았는가?
뭐···. 포톨레마이오스 왕조의 집안 싸움이라던가? 누미지아의 개입이라던가?
다소 복잡한 속사정이 많았지만 그래도 겉으로 보기에 가장 큰 역할을 한 것은 크라수스의 패전이었다.
원로원은 크라수스와 시저에게 책임을 씌웠고···. 시저는 애당초 사태를 이렇게 되 도록 방관한 원로원을 맹비난 했다.
거기에 소아시아에서 귀환한 폼페이우스까지 끼어들면서 사태는 나날이 험악해 졌다.
원래의 역사에서 폼페이우스는 시저가 원로원에 반기를 들었을 때 반대 편에서 시저와 싸웠으나··.
지금에 와서는 시저와 손을 잡고 원로원에 대응하고 있었다.
그는 예전에 술라를 상대로 마그누스의 칭호를 손에 넣었을 때와 같은 방식으로 원로원을 압박하고 있었다.
소아시아에서 돌아온 폼페이우스는 아직 자신의 군대를 해산하지 않고 군사 훈련이라는 미명 아래에 로마 외부에 주둔 시키고 있었다.
예전에 술라도 깜작 놀랐을 정도로 무지막지한 방식을 또 사용한 것이다.
거기다 이번에는 상황이 더 심각했다.
로마 내부에서 시저가 로마 시민들을 부추기고 있기까지 한 것이다.
시저는 로마 민중에게서 인기가 높았다.
예전에 폼페이우스의 깃발 하나만으로 로마를 구원했다는 전설(?)도 그렇고··.
그리고 그 전에도 보통 시민들과 같은 거주구에 집을 두고 살면서 부패한 관료들을 꾸짖어서 크게 인기를 끌었다.
거기에 로마의 명사인 키케로까지 원로원 보다 시저와 폼페이우스 쪽에 정의가 있다고 힘을 실었다.
로마에는 없는 말이지만··. 이쯤 되면 원로원의 처지는 그야말로 사면초가(四面楚歌)라고 해야 할 것이다.
실제의 역사에서는 그나마 원로원의 편에 서주는 폼페이우스라도 있었다.
비록 폼페이우스가 원로원을 위해서 라기 보다는 시저에 대한 대항감에 앞서서 그랬던 것이긴 했지만···.
그래도 원로원에게 있어서는 그것이 그나마 유일한 구원줄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우진 때문에 역사가 틀어진 지금은 폼페이우스까지 원로원의 무용설을 지지하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원로원은 자기 힘으로 어떻게든 하는 수밖에 없었지만···.
시저나 폼페이우스를 상대로 어떻게 해보기에는 원로원에 인재가 너무 없었다.
그들 대부분은 오랫동안 로마에 계속 되어온 낡은 관행과 예전에 자신들의 선조가 세웠던 공적에만 기대오고 있었다.
그런 것으로 민중들의 지지를 한 몸에 받고 있는 시저나 폼페이우스를 상대로 어떻게 해 보기에는 무리였다.
그나마 그들의 편을 들어주는 것은 이제까지 원로원과 유착 관계에 있으면서 자신들의 재산을 불려온 상류층 가문들 뿐이었다.
로마는 풍요로웠지만 위로 가면 갈수록 빈부 격차가 컸다.
크라수스가 국가도 뒤흔들 수 있을 정도로 어마어마한 재산을 가지고 있었던 것 처럼···.
로마의 재산가들도 크라수스 정도는 아니었지만 민중들에 비해서는 막대한 재산을 가지고 있었고, 그것으로 그나마 원로원을 어느 정도 지지해주고 있었다.
다만 아무리 돈의 힘이 커도 정치판에서 돈의 힘만으로 사람을 모으는 것은 무리다.
더구나 시저나 폼페이우스는 물론이고 웅변가인 카레로 조차도 돈으로 움직이는 인간들도 아니었다.
그들이야 말로 로마 민중들을 이끌 수 있는 명성이 있는 자들인데 말이다.
결국 시저의 원로원 무용설에 대응하기 위해서 원로원은 실적이 필요했다.
그 필요한 실적중에 하나로 원로원은 파라디소스의 침공 전쟁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정전 기간이 아직 10개월 정도 남아있는 와중이었지만···.
시저가 독단으로 처리한 정전 기간은 무시해도 상관 없다는 명분을 앞세워서 파라디소스를 정벌하겠다는 의견이었다.
원로원이 북부 방위군까지 모두 모아서 군세를 모으면 20만 정도는 모을 수 있었다.
그 군세를 총 동원하면 파라디소스라도 충분히 징벌 할 수 있다는 주장을 앞세워서 원로원은 시저를 강하게 압박하기 시작했다.
그 주장을 들은 시저는 기겁을 하면서 손에 쥐고 있던 양피지를 집어 던져 버리면서 화를 냈다.
“그 미친 늙은이들····. 확 다 죽여 버릴까 보다.”
시저는 원로원의 늙은이들이 진심으로 답답하고 짜증이 났다.
그들은 머릿속으로 아직도 로마가 지중해 최강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파라디소스의 건국을 치욕이라고만 생각할 뿐이지 그것을 진정한 위기라고 생각하는 의식이 부족했다.
오히려 로마의 평범한 시민들이 그런 위기감을 더 절실하게 느꼈다.
‘쯧, 지금 원로원에 이름을 올린 가문들 대부분은 한때 우수한 인물들이 이끈 가문일 텐데···. 후손들은 대가리가 다 병신들 밖에 없으니···.’
시저는 그저 답답하고 또 답답했다.
20만의 병력은 큰 병력이다.
큰 병력이지만 한편으로는 그 병력은 최호의 보루이기도 했다.
시정의 첩보에 의하면 파라디소스는 지난 정전 기간 동안 군사력 증진을 위해서 최선을 다했다고 했다.
사르디니아와 시칠리아 사이의 해적들도 깔끔하게 일소하고 오히려 해군력도 자국의 해역을 커버 할 수 있을 정도로 강해졌다고 했다.
그런 파라디소스를 상대로 20만의 대군이 반드시 통한다고 보장 할 수는 없었다.
만약에 그 병력이 무작정 파라디소스를 공격했다가 실패라도 한다면···.
그때는 더 이상 로마의 명망이 꿈속의 망상이 아니라 잔혹한 현실로 다가오기 시작할 것이다.
‘더 이상 망설이고 있을 틈이 없어. 해야 할 때는 지금이다.’
“안토니우스!!”
“예. 부르셨습니까? 형님.”
“음, 지금 당장 폼페이우스에게 내 서신을 전해라.”
“····하시려는 겁니까?”
“그래. 로마가 살아남기 위해서는 지금 변해야 한다.”
“···폼페이우스님은 어떻게 하실 생각입니까?”
“폼페이우스 님이라····.”
“죄송합니다. 형님하고 경쟁 상대인 것은 알고 잇지만 저에게는 스승입니다.”
“······네가 걱정할 일은 없을 것이다. 가서 안심하고 서신을 전해라.”
“알겠습니다. 형님.”
안토니우는 안심했다는 듯한 진한 미소를 짓고는 시저의 서신을 받아서 밖으로 나갔다.
시저는 밖으로 나간 안토니우스의 발 자취를 바라보면서 중얼 거렸다.
“적어도 아직은 폼페이우스가 필요해. 아직은····.”
늦은 밤.
로마의 시민들은 공포에 휩싸였다.
갑작스럽게 일단의 군단이 로마를 저거했기 때문이다.
지금 로마를 무력으로 강제 점거한 무리는 외적이나 야만인은 아니었다.
엄격한 군율로 일반인들에게는 손을 대지 않고 있었지만 그들은 대신이 원로원의 귀족들의 집을 닥치는 대로 습격해서 원로원들을 체포하고 있었다.
“큭··. 네놈들은 누구냐!!?”
“이 놈들!! 감히 이러고도 무사 할 줄 아느냐!!?”
원로원들은 병사들을 상대로 으름장을 놓고 직위를 이용한 협박을 했지만 병사들은 전혀 흔들림이 없었다.
그들은 바로 로마 성벽의 밖에서 대기 중이던 폼페이우스의 군단이었다.
그들은 시저의 부하들이 내부에서 성벽을 열자 마자 밀물처럼 밀어 닥쳐서 지금 원로원들을 닥치는 대로 체포구금하고 있었다.
시저는 그런 병사들을 일일이 감독하면서 말했다.
“이런 조무래기는 됐다. 카토는 어디에 있느냐!!?”
“아직 찾지 못했습니다.”
“쳇···, 무조건 찾아. 절대로 이 로마를 빠져 나가게 하지 마라!!!”
“옛!!!”
“옛!!!”
“옛!!!”
“다른 인간들은 몰라도···. 카토는 잡아야하는데···.”
현재 원로원의 의원들 중에서 시저가 유일하게 신경쓰는 인물이 한 명 있었다.
호적수···, 정도 까지는 아니지만 약간 꺼림칙한 상대라고 해야 할까?
어쨌든 놓치면 두고두고 피곤할 것은 틀림없는 인물이었다.
그 인물의 이름은 바로 마르쿠스 포르키우스 카토. 라고 하는 자였다.
카토, 그는 아직 40대 초반이지만 당시에 이미 콘술의 직위에 올랐다.
사실··. 원래의 역사에서 그는 콘술에 오른적이 없었다.
시도한 적은 있었지만 실패 했었다.
그도 그럴것이 그의 정적이 바로 시저였기 때문이다.
카토.
그는 시저만큼 정치적 역량이 뛰어나거나 모략에 능한 인물은 아니었다.
다만···. 그의 정치적 성향 자체가 시저에게 있어서는 골치 아픈 천적이었다.
카토는 철저하게 원칙 주의자였고, 청렴결백의 도가 지나친 인간이었다.
그와 친구로서 친분을 유지하던 몇 안되는 남자중에 한명이 깐깐하기로 유명한 키케로였다는 것만 봐도 알 수 있을 것이다.
심지어 그 키케로 조차도 카토의 꼬장꼬장함에 진저리를 내면서···.
[“그 친구는 로물루스의 시궁창이 아니라 플라톤의 공화국에 살고 있다고 착각하고 있다.”]
라고 말한 적이 있다고 한다.
원래의 역사에서 로마 최대의 비평가로 유명한 키케로가 이렇게 한 숨을 돌리면 적당히 하자는 식으로 말할 수 있는 인물은 카토 뿐이었다.
그런 카토의 성격은 유년 시절부터 특별했다고 한다.
그는 어린 시절 일찍 잃고 외삼촌ㅇ니 마르쿠스 리비우스 드루수스의 집에서 자랐다.
그러나 그 외삼촌도 카토가 4살 때 암살당하고 그는 홀로 자랐다.
어린 시절부터 완고하고 강직함으로 유명했는데··. 당대 최고의 걸물이었던 술라는 어린 카토를 불러서 함께 얘기를 하는 것을 좋아했다고 할 저도였다.
그가 자라서 유산을 상속 받고 가장 먼저 한 일은 정든 외삼촌의 집을 떠나서 스토아 철학과 정치학을 공부하는 것이었다.
그는 당시 로마인들이 최고 미덕이라 여겼지만 지배층들이 실제로 거의 실천은 하지 않던 검소함과 근면함을 최고의 가치로 여겼다.
춥고 비오는 날에도 최소한의 옷만 걸쳤고, 보통의 평민들보다도 더 못한 소박한 식사를 했다고 한다. 또한 술을 마셔도 항상 가장 저렴한 술만을 마셨다고 한다.
그런 그가 실제로 가난해서 그랬을까?
아니다. 그와 이름이 같은 증조부. 소위 대 카토(지금 설명하고 있는 카토는 소 카토라고 한다.)는 3차 포에니 전쟁에까지 이름을 날린 대권력자였다.
그런 그가 부모의 유산에 외삼촌의 유산까지 한 몸에 받고 있었다.
크라수스 정도는 아니더라도 그의 재산은 원로원의 누구와 비교해도 꿀리지 않을 정도였다.
하지만 그저 검소하고 무조건 청렴하게···.
그렇게 살아온 그는 시간이 흘러서도 로마인들에게 청렴함의 상징으로 남을 정도였다.
============================ 작품 후기 ============================
로마에서도 시저의 반대편 하나 정도는 있어야죠.
원래는 카케로를 시키려고 했지만... 역사상으로 카케로는 시저와 사이가 나쁘지 않았다고 하더군요.
다만 정치적 견해만 달랐을 뿐.
여러분들의 응원은 작가에게 큰 힘이 됩니다.
그럼 즐감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