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0화
<테무진의 운명>
클레오파트라와 우진의 첫날밤이 지난 신방.
거기서 지금 클레오파트라는 우진의 품안에 안겨서 우진의 가슴을 고사리 같은 손으로 투닥투닥 때리고 있었다.
“짐승····. 나쁜 놈.”
“미안···. 하지만 정말 무리였다고···.”
“그래도··. 세 번이나···. 부끄러운 자세까지 시키고···.”
“그 자세는 네가···. 어떻게 안 거야? 그런 자세.”
“묻···· 묻지 마요···. 자세 바꾸면···. 안 아플 줄 알았단 말이에요.”
“하하·····.”
“··········.”
뾰루퉁 하게 입술을 내밀고 있는 클레오파트라는 알렉산드리아로 돌아가면 자신에게 거짓을 고한 무희들을 모두 벌하겠다고 다짐하고 있었다.
어쨌든··, 다 끝나고 나자 우진이 자신을 세체니나 디도를 바라볼 때와 같은 눈을 하고 바라봐 줬다.
내 여자라는 눈빛.
지켜주겠다. 라는 눈빛.
여자를 안심 시켜주는 남자의 눈빛.
‘···뭐 일단 됐어. 다음에는 덜 아프겠지.’
클레오파트라는 그렇게 만족하면서 우진의 팔을 베고 그의 품안에 누웠다.
아까까지만 해도 자기를 괴롭(?)혔지만 그래도 자신의 남편이었다.
“저기··. 일단 저는 알렉산드리아로 돌아갔다가 다시 올게요.”
“파라오 대리라도 세우게.”
“예. 그것도 그래야 하고···. 최근 유다이아와 시리아 지역의 행동도 좀 수상해서요.”
“유다이아? 시리아? 지중해 동쪽의 지역이잖아? 거기가 왜?”
우진의 말에 클레오파트라는 이제 결혼까지 했고 더 이상 감추고 말고 할 것도 없는 사이라는 생각에 솔직하게 대답했다.
“폰투스하고 로마하고의 전쟁 있잖아요?”
“아···. 그 미트리다테스 6세인가 하는 사람이 일으킨 전쟁?”
“예. 그 전쟁요.”
미트리다테스 6세는 폰투스의 최고 전성기를 이끌었고 자국의 후손들에게는 대왕의 칭호를 받을 정도로 뛰어난 인재였지만····.
사실 우진은 잘 몰랐다.
체육계인 우진은 폰투스라는 나라가 이 시대에 있었다는 것도 타임슬립하고 나서야 알았다.
그런데 미트리다테스 6세가 얼마나 영향력이 강한 왕인지 알게 뭐겠는가?
다만 확실하게 알고 있는 것은 아직까지 이 시대에 로마를 쓰러트린 강자는 아무도 없다는 것이다.
그러니 신경을 끄고 있었는데····.
“거기 전쟁이 어쨌다는 거야?”
“폰투스에 새롭게 나타난 장수 한명이 맹활약을 거듭해서···. 이제는 누가 이길지 알 수 없게 되었데요.”
“·····장난이지? 거기 지금 폼페이우스가 갔을 텐데.”
“예···. 그 폼페이우스도 섣불리 군을 움직이지 못하고 있다고 하던걸요?”
“·············.”
우진은 그제서야 뭔가··.
아주 작은 뭔가가 잘못 돌아가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 새롭게 나타난 장수라는 사람 이름은 알아?”
“예. 테무진이라고 했던가? 동양에서 온 노예래요.”
“테무진?”
우진은 테무진이라는 이름을 말하고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리고는····.
‘나하고 비슷한 이름이네.’
그게 다였다.
그래···. 다였던 것이다.
····대한민국 사람 중에···. 보통 칭기스칸의 이름을 모르는 자는 없다.
하지만···. 테무진이라고 하면 그게 누구? 라는 사람은 종종 있었다.
우진은 그 종종 있는 사람중에 하나였다.
······바보 같은 자식.
폼페이우스와 테무진의 서전 이후··.
크게 전진했던 폼페이우스였지만 오히려 그 후에 전쟁의 주도권을 쥐기 시작한 것은 테무진이었다.
위험을 무릅쓰고 아르겔라오스의 목숨을 구해준 것이 효과를 발휘한 것일까?
아르겔라오스는 더 이상 전쟁터에서 테무진에게 공개적으로 면박을 주지 못했고···.
그리고 테무진은 어느 정도 전쟁터에서 발언권을 가지게 되었다.
그렇게 발언권을 얻어낸 테무진은 폰투스의 영토 내에 모든 성벽을 단단히 걸어 잠그고 농성에 빠질 것을 건의했다.
그리고 자신의 직속 기마대를 이끌고 넓은 전쟁터에 자잘하게 퍼져서 폼페이우스 군단을 괴롭히기 시작했다.
2,000기 남짓한 기병을 전쟁터 전반에 넓게 퍼트려서 효과를 발휘하기는 어렵다.
테무진은 정면으로 폼페이우스 군단을 공격한 것이 아니었다.
철저하게 보급 라인을 깨 부수는 것에 주력했다.
로마인이건 폰투스인이건···.
인간은 먹지 않으면 살 수 없다.
군량이 없는 군대는 절대 이뤄질 수 없는 것이다. 더구나 보급 라인의 부재는 수비하는 쪽 보다 타국에서 멀리 원정을 온 로마 군단에게서 더 절실하게 드러났다.
폼페이우스는 섣불리 군단을 움직이지 못했고 결국 여기저기에서 제풀에 지쳐서 떨어지는 전선이 생기기 시작했다.
폼페이우스로서는 한 번 제대로 싸워 보지도 못하고 야금야금 말라 죽어가는 아군을 보면서 분통이 터질 수밖에 없었다.
폼페이우스는 테무진의 기습에 대비해서 보급선의 이동 라인을 최대한 짧게 만들기 시작했다.
여기저기에 보급기지를 만들어서 적의 기습에 최대한 대응하기로 한 것이다.
그 효과가 있어서 조금씩이지만 로마 군단도 자리를 잡아가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런 거북이 걸음으로는 전쟁이 길어질 수밖에 없었다.
지중해, 그것도 로마의 바로 목젖에 칼을 겨누고 있는 파라디소스의 존재를 생각하면 역시 시간은 폼페이우스의 편이 아니었다.
테무진은 그것을 알고 있었기에 점점 견고해지는 폼페이우스 군단의 방어라인을 알고서도 손을 쓰지 않았다.
‘내 손해는 아니니까···.’
철저하게 자신에게 유리한 조건으로 싸울 것.
기억은 없지만 테무진은 왠지 그렇게 싸우는 것이 승리를 위한 왕도라는 확신이 들었다.
그런 테무진의 생각은 옳았다.
파라디소스에 대한 로마의 사정도 사정이었지만···. 그것 이상으로 폼페이우스를 상대로 선전을 하는 폰투스의 모습이 수많은 헬레니즘 국가를 움직이게 한 것이다.
이제까지 마지 못해서 폰투스에 협조하던 헬레니즘 국가들은 물론이고···.
친 로마 성향이었던 시리아아 유다이아도 몰래 미트리다테스 국왕에게 선을 대기 시작했다.
헬레니즘 왕조들은 모두들 그리스의 후예.
알렉산더 대왕의 시대를 그리는 환상이 강했다.
지중해에 강대한 세력을 떨치기 시작한 로마에 눌려서 그 위세가 줄었지만···.
폰투스가 로마를 상대로 선전하는 모습을 보자 조금씩 조금씩 마음을 바꾸기 시작했다.
몇몇 사람들 중에는 미트리다테스 6세가 로마를 무너트리고 알렉산더 대왕 이상가는 거대한 제국을 세울 것이라고 말하는 자들도 있었다.
유일하게 흔들림이 없는 것은 로마가 아니라 파라디소스에 선을데고 있는 프톨레마이오스 왕조.
즉 이집트 정도였다.
그 외의 모든 헬레니즘 왕조들이 폰투스를 상대로 뭉쳐서 대항할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그것은 로마에게 있어서 알렉산더 대왕이 무덤에서 되살아나는 것만큼이나 무서운 일이었다.
그런데····.
그렇게 승승장구하던 테무진에게 갑자기 귀환 명령이 내려졌다.
미트리다테스 6세가 테무진을 수도인 시노페로 호출한 것이다.
한창 전쟁에 주력하고 있던 테무진은 이상함을 느꼈지만 왕명이 내려진 이상 어쩔 수 없었다.
잠시 전선을 비우고 시노페에 귀환하는 수밖에···.
폰투스의 수도인 시노페로 귀환한 테무진은 깜짝 놀랐다.
“테무진 장군 만세!!!”
“폰투스의 용사 만세!!!”
“만세!!! 만세!!!”
수많은 인파들이 누가 시킨것도 아닌데 거리로 나와서 귀환한 테무진을 환영하고 있었던 것이다.
민중들이 꽃잎을 뿌리고 테무진의 이름을 찬양했고, 아이들은 뭐가 그리 좋은지 테무진의 귀환 행렬을 환하게 웃으면서 쫓아 다녔다.
테무진은 얼떨결에 손을 흔들어서 환호하는 민중들에게 답례했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살짝 혼란 스러웠다.
처음 이 땅에 나타났을 때만 해도 자신은 과거도 기억하지 못하는 그저 그런 이방인 노예에 불과했다.
그런 그에게 이 나라의 사람들은 잔혹하고 차가운 자들이었다.
이방인이라는 이유 만으로 마치 더러운 것을 보는듯한 눈을 하고 바라보는 그들을 보면서 테무진은 마음을 강하게 먹었다.
세상 전부가 적이라면 그 적들 속에서 살아가는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래서 죄수와 빈민 출신인 부하들에게 열과 성을 다해서 기마술을 훈련 시켰고···.
이 나라에서 딱 하나 자기 심장을 움직일 정도로 사랑하는 여인이 소중했다.
그런 그에게 나라의 모든 민중들이 자신을 이렇게 반기고 환영하는 모습은 당혹스러운 것이었다.
테무진은 민중들에게 일일이 손을 흔들어서 환영에 답례를 하면서 왕궁으로 행진했다.
“와아!! 방금 나 봤어.”
“아니야. 나 본거야!!!”
“난 나중에 크면 테무진 장군의 기마대에 꼭 들어갈거야.”
“나도··. 나도···.”
“넌 당나귀도 못 타잖아?”
아이들은 자기들의 영웅을 보면서 어린 꿈을 키워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테무진은 이윽고 자신이 섬기는 왕의 앞에까지 도착했다.
“전하. 신 테무진. 지금 도착했습니다.”
“음, 수고가 많았다. 안으로 들어오라.”
미트리다테스 6세는 테무진을 데리고 민중들이 보는 앞에서 함께 왕궁의 안으로 들어갔다.
“와아아아!!!”
“테무진 장군 만세!!! 폰투스 만세!!”
“미트리다테스 대왕 만세!!!”
“테무진 장군 만세!!!”
사람들은 모두 자신들의 영웅들을 보면서 크게 연호했다.
왕궁의 안에 들어간 미트리다테스는 어전이 아니라 왕궁의 호화로운 접대실로 이동했다.
그리고 거기서 테무진을 자신의 맞은편에 앉히고는 술잔에 직접 술을 따라주며 말했다.
“전쟁터에서 그대가 세운 위대한 전과는 여기 왕궁에까지 울리더군. 수고가 많았네.”
“모두 전하께서 저를 발탁해 주신 덕분입니다.”
“훗, 그래. 그럼 그렇다고 치지. 일단 한 잔 받게.”
미트리다테스 6세는 테무진에게 그렇게 말하면서 술잔을 부딪쳤다.
테무진은 정중하게 양손으로 술잔을 잡아서 술을 입에 넣었다.
“훗, 그대를 보면 신기할 때가 많아.”
“그러십니까?”
“그렇다네···. 방금 마신 미주만 해도 그래. 왕가에서도 100년이 넘게 보관해온 최고급의 미주를 마시면 보통은 감격이라도 하기 마련인데···. 자네는 꼭 이런 것 정도는 익숙하다는 듯이 마지고 있지 않은가?”
“·······저 자신이 맛에 둔감한 것인지도 모릅니다.”
“그 뿐만이 아니지. 때때로 자네를 마주하고 있으면 나의 신하라기 보다는 마치 위대한 지도자를 보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들 때가 있어. 자네···. 정말 기억이 없는 것은 확실한가?”
“전하께서 제게 내려준 은혜에 걸고 맹세하건데, 저는 기억이 없습니다. 그리고 제 과거가 무엇이건 간에 전하를 위한 충성에는 변함이 없을 것입니다.”
“하하하···. 그래. 그거 대단하군.”
테무진은 미트리다테스 6세가 자신을 의심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아까 오면서 얼떨결에 받아주기는 했지만··.
민중들이 자신에게 그렇게 열렬하게 환호하는 것은 지배자인 국왕의 입장에서는 위험 할 수도 있었다.
신하는 결코 왕의 자리를 위협하는 대상이 되어서는 아니된다.
하지만 테무진이 너무나 혁혁한 공을 세우고 로마를 상대로 당당하게 맞서고 있자···.
미트리다테스 6세가 위기감을 느끼는 것도 어쩔 수 없을지도 모른다.
다행이도 테무진이 충성을 다시금 맹세하자 미트리다테스의 눈은 다시 부드러워 졌다.
‘다행이군····.’
한숨 돌렸다는 생각을 하고 있는 테무진을 보면서 미트리다테스 6세가 말했다.
“그런데 말이야···. 자네는 정말 나에게 신하로서 충성을 다하고 있나?”
“·····저는 전하를 위해서 목숨을 다 바쳐서 싸우고 있습니다.”
“아···. 그래. 그건 알지. 고맙네.”
“··············.”
“하지만 말이야··. 신하의 충성이라는 것은 그게 다가 아니지. 안 그런가?”
“··············”
“신하된 도리라는 것은 왕의 것을 탐하지 않고 왕에게 자신의 것을 아끼지 않는 것을 말하기도 해. 그렇게 생각하지 않나?”
“··············.”
테무진의 등줄기를 타고 식은땀이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알고···. 알고 있는 것인가? 어떻게? 철저하게 숨겼는데····.’
테무진은 마른 목구목으로 침을 꿀꺽 삼켰다.
이렇게까지 긴장한 적은 없었다.
화살과 창칼이 쏟아지는 전쟁터에서도 담대한 이 남자가 지금은 두려움에 심장이 쿵쾅쿵쾅 거리고 있었다.
============================ 작품 후기 ============================
우진 : 젠장... 나 이제 새신부 얻었으니 알콩달콩한 모습 좀 더 보여주면 안 되나?
테무진 : 이제 내 차례야. 그리고 그런 소설 아니잖아? 그러고 싶거든 '그녀는 나의 애완 동물'이나.'1년이 남은 소년. 8개월이 남은 소녀.'로 가던가?
우진 : 이 와중에 홍보하고 싶냐? 그런다고 뭐 좋은일 있을것...
작가 : 테무진, 너에게 좀 더 많은 출현 분량을 하사하노라."
우진 : 작가 너 이 #$%#@@$#@$!!!!
항상 응원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즐감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