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7화
“·············.”
“·············.”
“·············.”
여자 셋이 모이면 쟁반이 깨진다는 말이 있다. 뭐··. 그만큼 여자들이 수다를 좋아하고 셋이나 모이면 시끄럽다는 말이다.
하지만 그 말은 근거없는 편견이다.
그 증거로 여기를 보라.
여자 세 명이 모였는데 기도 중인 신전이라도 되는 것처럼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하긴···. 말을 조심하는 것은 당연했다.
클레오파트라의 입장은 말 할 것도 없었고 세체니와 디도도 그녀에게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망설여 졌다.
기본적으로···.
자기 남자에게 들이대는 여자를 좋아할 아내는 없다.
몇몇 특수한 취향을 가지고 있는 이레귤러가 있기는 하지만 그것은 논외로 치자···.
아무리 세체니가 착하고 디도가 합리적인 사고 방식을 가지고 있다고 해도···.
클레오파트라는 부담이었다.
차라리 우진이 그냥 파라디소스의 백성들 중에서 아리따운 미녀 한명을 발견해서 아내로 받아 들인다고 하면 이렇게 까지 부담은 아니었을 것이다.
하지만 클레오파트라는 파라디소스의 중요 동맹국인 이집트의 파라오다.
그녀가 우진과 결혼해서 아이라도 낳으면···.
그 아이는 어마어마한 백을 등에 업고 있는 것이나 다름 없었다.
자칫 잘못 하면 클레오파트라의 아이가 우진의 후계자가 되어서 파라디소스와 이집트를 동시에 지배하는 제왕이 될 수도 있었다.
뭐···. 나라의 입장에서 봤을 때는 그것도 꼭 나쁜 일만은 아니기는 했다.
하지만 그것과 별개로 앞으로 태어날 자신들의 아이가 찬밥 신세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이 그녀들은 반갑지 않았다.
특히 아이를 임신하고 있는 디도의 경우는 그 정도가 더 심했다.
하지만·····.
그것과 별개로 오늘 그녀에게 있었던 일을 들은 세체니와 디도는 여자로서의 동정심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만약 자신들이 우진에게 그런 식으로 거절을 당하면 어떤 심정일까?
라는 생각이 드니···.
그녀들은 최초로 클레오파트라에게 동질감이 들기 시작했다.
“후우···. 클레오파트라님.”
먼저 입을 연 것은 아무래도 이 셋 중에 가장 순수한 세체니였다.
하긴 순수하다기 보다는 순하다는 말이 더 잘 어울리는 여자였지만 말이다.
“오늘··, 저와 디도는 당신과 함께 마음을 터 놓고 대화를 하고 싶어서 온 것입니다.”
“············.”
“정치적인 연류는 일절 없고, 그냥 여자 대 여자로 말을 하고 싶을 뿐입니다. 그러니, 당신도 허물을 벗고 솔직하게 대화에 어울려 주시지 않겠습니까?”
세체니의 말을 듣고 나자 클레오파트라는 곰곰이 생각하다가 말했다.
“솔직한 대화라····. 그런다고 뭐가 변하나요? 당신들은 어쨌든 제가 싫을 텐데요?”
클레오파트라의 말은 정확하게 직구를 던지고 있었다.
“그거야···. 남편한테 찝쩍대는 여자, 그것도 그 여자가 나 보다 더 예쁜 상황이면 화가 나는게 당연하죠.”
디도가 클레오파트라의 직구를 받았다.
“제가 더 예쁜거야 사실인데 어쩌겠어요.”
“···········.”
“···········.”
순간 디도는 물론이고 착하디착한 세체니까지···.
그녀들 둘 다 동시에 뭔가 속에서 울컥하는 것을 느꼈다.
하지만 이내 마음을 다 잡고 말했다.
“어쨌든···. 어쩔 거에요. 이번에 아주 비참하게 차였다고 왕궁 내에 소문이 파다 하던데?”
디도의 비꼼에 클레오파트라는 조심 스럽게 얼굴을 붉히고 물어봤다.
“····어떻게 소문이 났는데요?”
“알렉산드리아의 지고의 보석이라고 칭송 받는 클레오파트라 파라오께서 국왕 전하에게 차이고 징징 거리면서 쫓겨 났다고 전해지고 있죠.”
“············.”
이번에는 클레오파트라가 울컥 했다.
딱히 틀린 말은 아니지만 디도의 입에서 나오니 한층 더 열받게 들렸다.
“자자···, 디도, 이제 그만해요. 클레오파트라님도요.”
“··············.”
“··············.”
세체니는 디도와 클레오파트라의 기 싸움을 말리고 자신이 대화를 주도하기 시작했다.
“저는 어려운 정치는 몰라요. 하지만 그런 저 조차도 이집트가 우리 파라디소스에게 중요한 맹방이라는 것 정도는 알아요.”
당연했다.
이집트가 없으면 아프리카의 세력권의 절반이 나가떨어진다고 봐야 한다.
거기다 해군력.
최근에 해적들을 영입하기는 했지만 아직도 파라디소스의 해군력은 취약했다.
누미디아 역시 기병이 주력인 국가였고, 해상 무역은 오랜 세월동안 로마에 억눌려있는 상태였고···.
결국 파라디소스와 누미디아의 해군력을 다 합친다고 해도 이집트 하나 만큼의 전력이 되지 않았다.
지중해에서 로마의 해군력을 어느정도 견제 할 수 있는 유일한 전력이 등을 돌리면 그 피해는 실로 어마어마한 것이었다.
“···그래서···. 어쩌자는 거죠? 제가 강대국의 군주니까 당신들과 같은 위치에 있어도 괜찮다는 건가요?”
“그것은 전하께서 판단하실 일입니다.”
“무책임 하군요.”
“그런가요? 저로서는 제 선을 정확하게 지키는 것입니다만····.”
“············.”
“전 전하가 아무것도 없던 시절···, 발에는 족쇄가 달려있고 로마인들의 향락을 위해서 아레나에서 검을 휘두르고 피를 뿌려야 했던 시절부터 함께 해 왔습니다. 그 분이 일개 노예에서 로마를 위협할 정도의 거대한 국가를 건설하는 왕이 되는 것까지 지켜본 것이죠.”
“자랑하는 건가요?”
“예. 자랑입니다. 아니 저의 긍지입니다.”
“············.”
“저는 전하를 믿습니다. 이집트가 국가에 필요하건 필요하지 않건···. 원래 맨주먹으로 시작하셨던 분입니다. 무엇이 두려울 까요?”
“···········.”
‘이 여자···. 이렇게 강했나?’
클레오파트라는 우진의 여자 중에서 디도는 영리하고 독한 여자로···.
그리고 세체니의 경우는 순진하고 착한 여자로 기억하고 있었다.
예전에 세체니의 저 순진함을 모르고 자폭한 적이 있기는 했지만···.
그 후에 몇 번인가 만날 기회가 있어서 보니 자신의 착각이었다는 것을 알았다.
이 세체니라는 여자는 정말 대책 없이 착하고 또 착한 순둥이였던 것이다.
노예 출신에서 일국의 왕비가 되었으면 그 나름 독기나 깡 같은 것이 있을 법 한데···.
오히려 곱게 곱게 자란 온실속의 화초라도 되는 것처럼 순해 보였다.
어떻게 이런 성격으로 살 수 있는지 궁금할 정도였다.
하지만 지금 클레오파트라의 눈에 보이는 세체니의 모습은 다른 것이었다.
우진에게 절대적인 순종을 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 순종의 뒤에는 절대적인 믿음이 있었다.
우진이 내일 태양이 서쪽에서 뜰 거라고 말하면 한치의 의심도 없이 그럴것이라고 믿는 절대적인 믿음.
이것은 거의 신을 향한 사제의 신앙에 버금갈 정도로 확고한 신념이었다.
‘이 여자···. 생각보다 훨씬 만만치 않다.’
클레오파트라는 자신의 안에서 세체니의 평가를 대폭 수정했다.
그리고 디도는 클레오파트라의 얼굴을 보고 대강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것 같았다.
‘과거에 나도 당신하고 같은 느낌을 겪었지.’
세체니가 마냥 착하고 착하기만 한 여자라면 디도가 진작에 찍어 눌렀을 것이다.
그렇게 하지 못한 것은 그만큼 세체니를 인정했기 때문이었다.
결국···. 천하의 클레오파트라가 먼저 항복을 했다.
“후우···. 제가 뭘 어떻게 하면 되나요?”
“전하를 사랑하나요?”
“····제 목숨보다 더요.”
“그럼···. 그냥 솔직하게 전하에게 그 마음을 정하세요. 술책도 거래도 없이···. 그냥 그 솔직한 마음을 전하세요.”
클레오파트라는 순간 자신이 그렇게 해본적이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온갖 조작과 연출을 다하고 화술을 부렸지만····.
그저 솔직하게 사랑을 표현한 적은 없었다는 것을 이제야 깨다은 것이다.
“····그래도 거절 당하면요?”
“그때는···. 저희가 위로해 줄게요.”
세체니의 말을 듣고 디도가 말을 이었다.
“그리고, 한 번 차였다고 포기하지 마요. 근성 없이···. 괜찮은 남자다 싶으면 물고 늘어져요. 나도 우리 전하 공략하는데 시간이 좀 많이 걸렸다고요.”
“훗, 그러고 보니 그랬죠?”
“아아···. 그 목석···. 보통 나 같은 미인이 안기려 하면 그냥 하룻밤 유흥으로라도 안으려 할 텐데···.”
“쿡···.”
이제야 좀 친해졌는지 여자들의 사이에서 웃음꽃이 피기 시작했다.
그때···.
툭··. 투툭···.
“어···?”
갑자기 디도의 다리 사이로 물이 뚝뚝 떨어지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아···. 아아·····.”
디도가 자신의 배를 부여잡고 이마를 찡그리면서 통증을 호소했다.
“아··. 아파···. 세체니··. 이건···.”
“아기가··. 아기가 나오려는 거에요. 밖에 아무도 없느냐!!!?”
세체니가 급하게 시녀들을 찾았고 클레오파트라도 이 급작스런 상황에 당황했다.
역사에서는 그녀가 출산한 아이만 해도 네 명이나 있다.
하지만 그것은 원래의 역사에서의 일이고···.
지금 그녀는 아이는 고사하고 초야도 치러보지 못한 16살 짜리 소녀일 뿐이었다.
아이의 출산은 언제든지 부산스러운 일이었다.
시녀들이 아이를 받기 위해서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남편.
의학의 기술이 빈약한 이 시대에 있어서 아내의 산고에 유일한 진통제가 있다면 남편의 존재일 것이다.
출산 소식을 들은 우진이 한 걸음에···. 달려 와야 하지만······.
그러지를 못했다.
마침 이때 우진은 시내로 치안 감찰이라는 핑계로 암행을 갔었기에 오지 못했다.
참고로··· 무진장 바보 같은 행동이다.
출산 때에 자리 못 지키면 부부 관계에서 두고두고 잔소리 듣기 십상이다.
뭐···, 그나마 디도에게 다행이라면 우진은 없어도 자매 같은 세체니가 자리를 지키고 있어 줬다는 얘기다.
“아···. 아아아아!!!!”
고통이 본격적으로 심해지기 시작하자 디도는 비명을 질렀다.
스스로 근성 있는 편이라고 생각했지만 그래도 초산의 고통은 역시 상상은 넘어서는 것이다.
이 자리에 우진이 있다면 왕이고 뭐고 간에 머리끄댕이를 잡고 다 뜯어 버리고 싶었다.
“힘내요. 디도···. 힘내요.”
“으윽····. 윽·····.”
디도는 세체니의 손을 꼭 잡고 눈물을 글썽 거리고 있었다.
그리고 남는 한쪽 손으로는···.
“저기···. 제가 잡아줘도 될까요?”
클레오파트라가 그렇게 말하면서 조심 스럽게 그녀의 손을 마주 잡았다.
“으윽··. 괜찮아아아아!!!!”
“그냥 꽉 잡아 줘요.”
제 정신이 아닌 디도를 대신해서 세체니가 클레오파트라에게 허락을 해 줬다.
“아기님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으으으···. 왜 빨리 안 나오는 거야!!!! 아아아!!!!!”
디도는 온몸에서 식은땀을 줄줄 흘리면서 고통에 외쳤다.
빨리 나오지 않는 아이가 야속할 정도였다.
“왕비님. 다시 한 번 힘을 주십시오. 숨을 깊게 쉬고····.”
“아아아··· 아으으윽·····.”
디도는 평소의 쿨함은 온데간데 없이 있는대로 비명을 지르면서 힘을 줬다.
그리고···.
“응애···. 응애에에!!!”
우렁찬 아이의 울음 소리가 들렸다.
우진의 아이가 태어난 것이다.
“축하합니다. 왕비님. 예쁜 공주님이십니다.”
“아아···. 이리로···. 이리로 좀····.”
디도는 태어난 아이를 자신의 품안에 안고 싶어서 아이를 달라고 말했다.
산파는 아이를 따뜻한 물에 씻기고 깨끗한 천에 감싼 다음 디도의 옆에 조심 스럽게 눕혔다.
“아아···. 내 아이····. 예쁜 내 딸···.”
디도는 꼬물꼬물 거리는 사랑스런 아이를 보면서 환하게 미소 지었다.
============================ 작품 후기 ============================
우진 : 첫 애는 딸. 무조건 딸.
작가 : 왜?
우진 : 첫 애로 딸이 나왔으니까.....
대부분의 부모는 이런 걸지도...
여러분들의 응원은 작가에게 큰 힘이 됩니다.
즐감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