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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의 혁명-124화 (124/220)

124화

“저도 알고 있습니다. 프톨레마이오스 왕조의 정통성에 관해서는 저도 이견이 없습니다. 그렇기에 공주의 아버지인 프톨레마이오스 12세의 결정을 존중해야 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시저의 말을 들은 클레오파트라는 눈을 가늘게 뜨면서 말했다.

“저희 아버지께서 로마와 가깝다고 해서 왕가 전체의 의지가 그렇다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그 분이 대표지요.”

“예. 하지만 그 대표가 바뀐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

시저는 침묵을 지켰다.

시저도 알고 있었다. 지금 파라디소스의 군대가 이 여자를 파라오로 만들기 위해서 이집트에서 전쟁을 하고 있다는 것을···.

그리고 그 전황이 압도적일 정도로 일방적으로 흘러가고 있다는 것도 잘 알고 있었다.

파라디소스가 밀어주는 클레오파트라가 이집트의 파라오로 올라간다는 얘기는 아프리카에서 로마의 흔적이 완전히 사라진다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프톨레마이오스 12세를 밀어주고 있었던 것이다.

누미디아가 적으로 돌아섰다고 해도 아프리카에서의 재기의 발판을 마련 할 수는 있으니 말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어떻게든 여기서 파라디소스의 이집트에서의 개입을 말려야 했다.

정전 협정이라는 카드에는 그것도 엄연히 포함되어 있었던 계획이었기 때문이다.

‘어떻게 한다····. 어떻게 하면 파라디소스의 개입을 무산시킬 수 있는 명분을 만들 수 있을까?’

짧은 순간이었지만 시저는 머리를 굴렸다.

그리고 생각 가능한 모든 방면으로 생각한 나머지 짜증나는 결론이 나왔다.

‘방법이 없군.’

로마가 우위를 점하고 있는 회담이었다면 모를까? 이 회담은 로마에서 먼저 정전협정을 하기 위해서 찾아온 회담이다.

즉, 아쉬운 것이 로마라는 출발점에서 시작하는 회담인 것이다.

거기다 파라디소스가 밀어주고 있는 저 클레오파트라의 존재.

그 존재가 명분 그 자체의 역할을 하고 있었다.

로마에서 프톨레마이오스 12세의 지원이라는 명분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파라디소스 역시 클레오파트라의 지원을 명분으로 삼는 것이다.

결국 방법이 없었다.

현 파라오인 프톨레마이아오스 12세의 이름을 들 먹여도 봤지만 저 아름다운 공주는 눈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오히려 자기 아버지의 결정권을 부정했다.

친척도 아니가 친 딸인 그녀가 자신의 아버지의 파라오서의 권위를 무시한 것이다.

하긴···, 그러니 반란을 일으킨 것이겠지만, 어쨌든 천하의 시저도 이 상황을 외교적으로 해결할 방법은 떠오르지 않았다.

‘그렇다면····. 피해라도 최소화 해야지.’

“좋소. 그렇다면 우리 로마는 이집트의 분쟁에는 관여하지 않겠소.”

“현명한 결정에 감사드립니다.”

“하지만···. 그것과 별개로 현 파라오인 프톨레마이오스 12세의 신병은 우리 로마가 인수 하겠소.”

“···제 아버지입니다만?”

“반란으로 왕좌를 차지한 딸 보다는 우리 로마의 품에서 지내시는게 더 안전할 거요. 그렇지 않소?”

“··············.”

시저의 말에 이번에는 클레오파트라가 입을 다물었다.

사실 시저가 프톨레마이오스 12세의 신병을 인수하려는 이유는 뻔했다.

나중에라도 로마가 이집트를 침공할 때 명분으로 써 먹으려는 것이다.

정당한 지휘에 있는 파라오의 귀환. 이라는 형식을 취해서 말이다.

즉, 프톨레미아오스는 나중에 아프리카로 진출하기 위해서 로마가 가지고 있을 일종의 침략 예약권이었다.

다만···, 마냥 거절 할 수도 없는게 그렇게 했을 시에는 지금 알렉산드리아에 산재해 있을 친 로마파의 인사들도 대거 로마로 빠져 나갈 것 이라는 것이다.

그것은 클레오파트라에게 있어서도 무척이나 매력적인 일이었다.

그녀가 이집트의 파라오에 오른다고 해도 이미 이집트 곳곳에 깊숙이 자리하고 있는 친 로마파의 잔재를 치우려면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

그 시간을 절약할 기회를 준다는 것은 매력적이었다.

클레오파트라는 우진을 슬쩍 바라봤다.

‘···저 남자라면 어떻게 할까?’

한편 우진은 그 시선을 받고 생긋 웃었다.

‘왜 날 봐?’

생각과는 아무런 연관점도 없는 미소였지만 클레오파트라는 순간 생각했다.

저 미소의 의미가 ‘날 믿어라.’가 아닐까 하면서 말이다.

‘좋아. 어차피 올라탄 배다. 세상 끝의 낭떠러지까지 함께 해 주겠어.’

“로마에서 원한다면····. 저희 아버지와 그 아버지의 지인들의 신병은 모두 인수해 가도 좋습니다.”

“이해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하지만 빨리 움직이는게 좋을 겁니다. 저희 군대가 알렉산드리아를 점거하고 난 후면 늦을지도 모르니까요.”

“그 점이라면 걱정하지 마시기를···. 이미 움직이고 있으니까요.”

“············.”

시저의 말에 클레오파트라는 쓴맛을 다셨다.

‘이 남자 고단수군. 만만치 않아.’

결국 결론은 미리 내려 놓고 움직이고 있었다는 것이다.

클레오파트라는 어쩐지 상대방의 손바닥 위에서 춤을 춘 것 같아서 기분이 썩 유쾌하지는 않았다.

“자···, 그럼 이집트의 건은 둘째 치고···. 나머지 정전 협정에 관해서···.”

“잠깐!!”

우진은 시저의 말을 단숨에 자르며 말했다.

“무슨 문제라도 있소?”

“있지.”

“···········.”

“난 아직 정전 협정이라는 것 자체에 OK라는 땁을 하지 않았다. 잊지는 않았겠지?”

‘망할····.’

시저는 속으로 쌍욕이 절로 나왔다.

좀 두리뭉술하게 넘어가려고 했는데 우진이 다시 발목을 잡은 것이다.

“정전협정이라····. 우리 나라 자체가 로마의 멸망을 목적으로 세워진 나라라는 것은 알고 있나?”

“그게 가능할 것 같소?”

“지금 이 상황을 보면 모를까?”

“·············.”

시저는 속으로 한 숨이 절로 나왔다.

어쩌다 보니 로마가 이런 상황에까지 왔을까? 상대는 원래 로마의 노예 검투사였던 자였다.

그런 자가 로마에게서 토지를 빼앗고 그 토지의 안에 나라를 세웠다.

아무 지지기만 없이 맨손으로 시작해서 말이다.

그리고 이제 로마는 그에게 힘겨운 전쟁을 그만 두고 좀 쉬자는 정전 협상을 먼저 청하고 있다.

한니발 이후로 이런 굴욕은 로마사에 없었다.

하지만 시저는 여기서 약세를 보여서는 안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우리 로마를 너무 얕보지 마시오. 우리는 마음만 먹으면 귀국을 충분히 짓눌러 버릴 수 있소.”

“그 마음 먹는게 문제 아니야?”

“·············.”

시저는 움찔 했다.

로마의 막대한 전력은 우진도 시저도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가지 많은 나무에 바람 잘 날이 없다고···.

로마는 광대한 영토를 다스리고 있는 만큼 트러블도 많았다.

“갈리아 지방의 이민족들은 로마에게 있어서 항상 골치지. 그리고 에스파냐 지방도 평정은 했지만 본격적인 안정을 위해서는 힘 좀 빼야 할거야. 그리고 무엇보다 동쪽의 소아시아와의 전쟁···. 그거 너무 오래 끌고 있지 않나?”

“그건·····.”

“크레타 섬의 해적들도 골치라는 말을 들었다. 그런 와중에 어떻게 로마의 ‘전력’으로 우리 파라디소스를 공격하겠다는 거지?”

“··············.”

시저는 등줄기로 식은땀이 줄줄 흐르는 것을 느꼈다.

우진은 로마의 약점을 정확하게 알 고 있었다.

광대한 토지와 인구는 고대 시대 국가의 강력함의 제1이 되는 척도였지만···.

그런 토지와 인구를 유지 시키기 위해서는 그만큼 잡음도 끊이지 않는 법이다.

특히 로마의 영토들 중에 상당수는 속주나 동맹시로 이뤄져 있다.

즉, 독자적인 문화와 토착 지배층이 꾸준히 존재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런 영토를 지배하고 있는 것은 이러니 저러니 해도 힘.

로마의 막대한 군사력과 그 군사력을 최대한 활용할 수 있게 하는 거미줄 같은 교통망이었다.

그런 힘을 파라디소스에 총 집중 시킨다면 아무리 우진이라고 해도 감당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탁상공론이다.

국경이고 동맹시고 다 내버려 두고 군사력을 집결 시키려고 하면 여기 저기서 들 불처럼 반란이 일어날 것이 뻔했다.

그것이야 말로 로마 최대의 약점.

힘으로 찍어 눌러 놨기에 언제 어디서 어떻게 튀어 오를지 모를 수많은 이민족들이었다.

이번에 누미디아가 완전히 로마와 손을 끊은 것도 하나의 예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제길····. 빌어먹게도 잘 아는군.”

푸념을 하는 시저를 보고 파라디소스의 다른 의원들이 또 눈을 부라렸지만 그 전에 우진이 말했다.

“솔직히 말해라. 네놈들이 어째서 우리 파라디소스와 동맹을 맺으려고 하는지···. 지금 당장 말해라.”

“············.”

시저는 한참을 망설였다.

그리고 굳은 눈을 하고는 말했다

“우리는 더 이상의 피를 흘리지 않기 위해서 정전을 제시하는 것 뿐. 다른 용건은 없소.”

시저의 말은 우진의 예측을 정면으로 부정하는 것이었다.

그것은 단순한 부정을 넘어서 난 절대로 네가 원하는 정보를 주지 않겠다는 배짱이었다. 그리고 그 배짱은 파라디소스의 의원들 다수를 빡치게 했다.

“저 놈이····.”

“전하!! 제가 입을 열게 하겠습니다.”

“아니 저에게 맡겨 주십시오.”

시끌벅적해지는 의원들을 보면서 우진은 순간 시저를 정말 고문이라도 해 볼까 싶었다.

하지만 그만 뒀다.

세상에 고문으로 입을 여는 자가 있고 안 여는 자가 있다.

시저의 경우는 아무리 봐도 후자였다.

아니 저 인간이라면 거짓 정보를 누설해서 아군을 혼란에 빠트리는 짓을 할 지도 모른다.

능히 그렇게 하고도 남을 인간이었다.

“그만들 하시오.”

우진의 만류에 의원중에 한명이 분연하게 일어나서 말했다.

“하지만 전하!! 놈의 행동이 너무 괘씸합니다.”

“그렇습니다. 저 놈의 머리를 잘라서 로마에 보내 버리는 것이 좋겠습니다.”

“어차피 우린 나라는 로마와 한 시대에 공존 할 수 없는 나라입니다. 카르타고의 한을 기억해 주십시오.”

의원들의 성토는 활화산의 분화처럼 거칠게 터져 나왔다.

하지만 우진은 그들을 진정 시키고는 말했다.

“여기서 시저의 목을 쳐서 로마에 보낸다면 우리는 이 빌어먹을 로마놈들이 말하는 것처럼 진짜 야만인이 되어 버린다.”

“·············.”

“·············.”

“·············.”

우진의 말에 의원들은 분한 듯이 침묵을 삼켰다.

분통이 터지기는 하지만 우진의 말은 다 옳은 말이었다.

“이 놈이 말을 열지 않는다면 방법은 더 쉽다. 지금 당장 스파르타쿠스에 전서구를 띠워라.”

“설마·········.”

우진의 말에 시저는 안색이 급변했다.

“로마로 진격하라!! 적들에게 문제가 생겼다면 충분하다. 나 역시 바로 따라가겠다.”

쿵!!

시저의 머릿속에서 뭔가 무거운 것이 떨어지는 것 같았다.

‘이건 안 돼.’

지금은 안 된다.

파라디소스가 전군을 움직여서 진격한다고 해도 콘센티아, 못해도 카퓨아 선에서 막아낼 자신이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안 된다.

지금만큼은 절대 안 된다.

시저는 목이 터져라 우진에게 외쳤다.

“잠깐!!! 지금 정전 협정을 하면 로마의 콘센티아 남쪽의 점령된 영토의 영유권을 인정하겠소.”

“그건 이미 우리가 점령한 땅이다.”

“그리고 사르디니아 섬도 넘기겠소.”

“··········.”

“이 조건을 받아 들이지 않는다면···. 설사 공멸을 한다고 할 지라도 끝까지 가는 수밖에····.”

“흠······.”

우진은 일단 자리에 앉았다.

우진 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의원들도 침묵했다.

그만큼 시저가 내민 미끼가 먹음직 스러웠기 때문이다.

사르디니아.

현대에는 사르데냐 섬으로 알려져 있고 이탈리아의 주 중에 하나다.

지중해에서 시칠리아 다음으로 큰 섬이며 그 섬 역시 과거 카르타고의 영향력 아래에 있던 섬이었다.

시칠리아에 이어서 두 번째로 커다란 섬이기는 하지만 기후가 덥고 건조하기 때문에 농작의 성과는 그리 크지 않았다.

대신에 광맥이 제법 있었기에 철을 채취하는게 가능했다.

우진은 예전부터 이 섬을 영역하에 두고 싶었지만 파라디소스의 해군력으로 공격하기에는 방비가 너무 튼튼해서 포기하고 있었다.

그 섬을 무혈로 준다는 것은 거절하기에는 너무나 매력적인 조건이었다.

============================ 작품 후기 ============================

시저 : 이게 내가 줄 수 있는 전부다.

우진 : 진짜? 뒤져서 나오면 10원에 죽빵 한대다.

항상 응원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즐감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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