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3화
파라디소스의 군사들이 도열한 가운데 단 한명의 남자가 서 있었다.
‘제길·····. 심장 떨리는군.’
바로 시저였다.
시저는 지금 우진을 비롯해서 파라디소스의 수많은 장수들이 있는 와중에 홀몸으로 서 있었다.
그것도 비무장인 상태로 말이다.
이렇게 무방비 상태로 파라디소스에 사신으로 온 것은 절대 시저 본인의 뜻이 아니었다.
시저가 여기에 온 것은 원로원의 뜻이었다.
로마 남쪽 지방에서의 파라디소스 영역 확대.
아프리카 원정중에 막대한 손실을 입고 사망한 크라수스.
북아프리카 속령주를 빼앗기고 누미디아를 적으로 만들어 버렸다.
거기다 결정적으로 회심의 한 수로 준비한 파라디소스 내부의 이간계도 두 왕비의 맹활약으로 무위로 돌아가 버렸다.
이 모든 실패와 패착에 누군가는 책임을 져야 했다.
누가 질까?
누가 져야 할까?
처음부터 답은 정해져 있었다.
로마 원로원들은 시저를 까임의 왕자에 등극 시켜 버렸다.
로마의 일반 시민들에게 인기를 끌고 있는 시저였지만 로마 남부 지방에서 파라디소스에게 밀린 것은 컸다.
이간계가 성공했다면 모두 만회 할 수 있었겠지만 그게 실패한 이상 시저는 온전히 책임을 져야 했다.
아무리 부패한 귀족들을 비판하는 정의로운 캐릭터로 인기를 끌던 시저라고 해도 자신들의 안위가 위험에 닥치자 시민들은 시저를 더 이상 지지하지 않기 시작했다.
결국 그 틈을 놓치지 않고 원로원은 시저를 파라디소스에 사신으로 보내 버린 것이다.
이제까지 나라로 취급도 하지 않던 파라디소스에 사신을 보낸다는 것은 리스크가 큰 일이었다.
자칫 잘못 하면 사신의 목만 댕겅 잘려서 돌아올 수도 있었다.
충분히 그럴 수 있었다.
하지만 역설하자면···.
그래도 상관 없었다.
로마 원로원으로서는 자신들을 밀어내고 로마 시민들에게 인기를 끌고 있는 시저는 눈엣가시였다.
사신으로서의 의무를 다해도 좋다.
파라디소스에 가서 죽어도 좋다.
어느 쪽이든 원로원으로서는 손해 볼 것이 없었다.
천하의 시저도 이번만큼은 빠져나갈 도리가 없었다.
그동안 자신이 저지른 전략이 실패해서 로마에 막대한 피해가 발생한 것은 엄연한 사실이었다.
좋든 싫든 책임은 져야 했다.
그런 이유로 인해서···.
지금 시저는 호랑이 아가리에 양념까지 칠하고 이렇게 사신으로 찾아온 것이다.
병사들의 한 가운데 시저를 세워두고 우진은 그 시저를 맞이하러····.
나가지 않았다.
“전하···. 사신을 만나겠다고 한지 시간이 한참 흘렀습니다만····.”
“나도 안다. 하지만 지금 왕비하고 식사를 하고 있으니 기다리라고 해라.”
“····예. 알겠습니다.”
우진은 시저를 가만히 세워두고 자신은 디도, 세체니, 그리고 클레오파트라까지 해서 세명의 여성을 곁에 두고 식사를 하고 있었다.
일종의 심리전을 걸겠다는 것이다.
“괜찮으시겠습니까? 전하···.”
순진한 세체니는 우진이 사신에게 이렇게 대하는 것에 불안해했다.
하지만 우진은 그녀에게 웃으면서 말했다.
“괜찮아. 그보다···. 오랜만에 차나 한잔 하지. 세체니 당신이 타주는 차가 전쟁터에서 몹시 그리웠어.”
“칫, 너무 질투 나게 하는 것 아니에요.”
“하하하····.”
디도의 귀여운 질투에 우진은 그저 웃어 버렸다.
그렇게 시저를 뺑뺑이 세워 놓고 자신은 아리따운 여자들과 평화로운 한때를 보내는 우진이었다.
정식 사신에게 좀 너무한게 아니냐는 생각이 들 수도 있었지만····.
‘예전에 그 자식 때문에 폼페이우스 깃발 하나로 물러났던 일을 생각하면 아직 멀었지’
그렇다. 우진은 시저가 싫었다.
역사적 위인이고 나발이고 지금은 적으로 만났는데 좋아 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그렇게 한참을 기다리게 한 후에야 우진은 어슬렁거리면서 나타났다.
그리고 시저를 만나자 마자 가장 염장 지를 수 있는 말을 했다.
“넌 누구냐?”
“··········.”
순간 시저는 울컥하는 뭔가가 올라왔다.
전쟁터에서 한 번 검을 나눈 적도 있고 사신으로 왔으면 누군지 보고도 되었을 것이다.
그런데 넌 누구?
‘열 받게 하겠다 이거지····.’
시저는 이를 악물고 웃는 얼굴로 말했다.
“가이우스 율리우스 시저라고 하오. 촌구석 왕이시여.”
“저 놈이!!!”
“죽고 싶으냐!!!”
시저의 말에 주변에 도열해 있던 의원들이 불같이 일어났다.
가뜩이나 로마라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날 정도로 싫어하는 파라디소스의 국민들이다.
그런데 그런 로마인이 한 복판까지 와서 자신들의 국왕을 모독했다.
여기서 빡치지 않고 배길 소냐?
“병사들은 뭐 하느냐!!? 저 놈을 당장 끌어내서 목을 쳐라!!!”
“어디서 건방지게 로마놈 따위가!!!”
고성을 지르면서 격하게 화를 내는 의원들과 달리 우진은 그저 담담한 눈으로 시절를 바라보기만 했다.
‘그냥 욱해서 한 말은 아니지? 아닌 거야.’
시저의 태도는 여유만만했다.
마치 자신이 한 무례한 말로 죽지 않을 거라는 확신이 있는 것처럼 말이다.
‘흠···. 역사에 이름을 남길 가치는 있는 인간이란 말이야.’
정말 로마인만 아니면 자기 사람으로 만들고 싶은 인재 1순위였다.
그렇게만 한다면 5년 안에 로마를 무너트릴 자신이 있는데 말이다.
‘쯧, 해 봤자 쓸모 없는 생각이지.’
저 인간과는 숙적으로 만났다.
그렇다면 그 운명을 받아 들이고 적으로 대하는 것이 최선이다.
“모두 조용히 하라.”
시저가 끌려가기 직전에 우진이 손을 들어서 제지하면서 한 마디를 했다.
그리고 병사들을 물리면서 말했다.
“일단 사신으로 온 자다. 무슨 말을 할지는 일단 죽고 말이나 들어보고 나서 정하도록 하지.”
우진의 말에 의원들은 아직도 화가 난 기색이 역력했지만 일단 참았다.
우진이 명령을 한 이상은 절대였다.
그게 이 파라디소스의 최고 우선순위인 불문율이었다.
‘길은 칼 같이 잘 들였군. 쯧, 하여튼 저런 놈이 어디서 갑자기 나타나서····.’
시저는 우진의 말 한마디에 조용해 지는 주변 상황을 보면서 우진의 대단함을 새삼 스럽게 실감했다.
저런 인간이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로마의 노예 검투사로 있었다는 사실이 믿어지지를 않았다.
‘제길, 로마로 돌아가면 검투사라는 종속들부터 싹 죽여 버릴까?’
시저는 잠시 푸념을 하다가 용건을 꺼냈다.
“우리 로마는 파라디소스와 정전 동맹을 맺으려고 하오.”
쿠쿵!!
이 순간 이 자리에 있는 전원의 머릿속에 뭔가 묵직한 것이 떨어진 느낌이 들었다.
“정전 협상?”
“···제정신인가?”
“무슨 꿍꿍이지?”
파라디소스 대부분의 의원들은 로마의 결정에 의문을 가졌다.
정전 협상을 한다는 것은 일단 로마가 지금까지 빼앗긴 영토에 관해서 어느 정도 손을 때겠다는 의지와 같았다.
지금 파라디소스가 로마에게 빼앗은 영토는···.
시칠리아 전역과 로마 남부지방, 그리고 과거 카르타고의 영토였던 북아프리카 지방의 영토도 손에 넣었다.
물론 로마가 가지고 있는 막대한 지중해의 토지에 비하면 아직도 국토 면적에서 따릴는 것은 사실이다.
아프리카의 경우 면적의 상당 부분이 사막이었기에 해양 상업 도시로서의 기능이 더 강했고···.
시칠리아와 이탈리아 남부는 충분히 비옥한 땅이었지만 그래도 로마 전역에 비하면 아직 부족했다.
아직 시저가 갈리아 원정을 하기 전이기는 했지만 알프스 너머의 영토에도 로마의 손길은 분명히 닿아 있었다.
거기다 에스파냐 지방과 소아시아 지역까지 뻗어나간 로마의 영역은 무척 광대했다.
하지만····.
그건 그거고 이건 이거다.
지중해의 패자로 군림하기 위해서 로마는 항상 최강이라는 타이틀을 유지해 와야 했다.
동맹을 돕기 위해서 군대를 보내고 로마에 적대하는 부족은 절대로 살려두지 않았다.
철과 피로 인한 지배.
로마는 절대적인 군사력을 앞장세워서 지중해를 지배해 왔다.
즉, 그런 지배를 계속하기 위해서라도 로마는 최가이어야 했고, 항상 강해야 했다.
하지만 지금 파라디소스에게 먼저 동맹을 신청한다는 것은 사실상 한 걸음 정도 먼저 물러난 다는 말이나 마찬가지였다.
로마의 자존심을 알고 있는 이들이었기에 더욱더 믿을 수가 없었다.
그리고 그것은 우진도 마찬가지였다.
“무슨 생각이지? 정전이라니? 지금가지 흐른 피와 바뀐 국경은 어떻게 할 생각이냐?”
우진의 말에 시저는 굳은 얼굴을 하고 말했다.
“로마는 아프리카에서 손을 때겠소. 그리고 시칠리아의 영토도 인정하겠소. 부루티움의 영토에 관해서는 이번에 내가 조율을 할 것을 허락 받았소.”
“···········.”
묻는 즉시 튀어나오는 즉답을 들어보니 한 두 번 생각한 것 같지는 않았다.
아마도 충분히 생각을 하고 궁경 분쟁에 관해서도 생각한 마지노선이 있을 것이다.
“······아프리카에서 손을 때겠다고 했지? 그건 이집트의 프톨레마이오스 왕조에 관한 관여도 그만두겠다는 건가?”
“프톨레마이오스 왕주는 우리 로마의 맹방이오. 거기에 관해서는 별개로·····.”
“그건 납득하기 어려운 말이군요.”
시저의 말을 중간에 자르고 끼어든 것은 시저가 두 눈을 휘둥그렇게 뜰 정도로 절세의 미모를 가진 여성.
클레오파트라였다.
“····누구··· 시오?”
“클레오파트라 필로파토르 타리아라고 합니다.”
“····타리아 공주? 알렉산드리아의 보석?”
“알아봐 주셔서 영광입니다.”
“·············.”
시저는 클레오파트라에게서 눈을 때지 못하고 있었다. 원래의 역사 대로라면 클레오파트라는 시저의 아이까지 낳아줬다.
클레오파트라의 연인이라고 하면 안토니우스가 가장 유명했지만 역시 시저와도 범상치 않은 인연이 있는 클레오파트라였다.
천하의 시저도 클레오파트라의 미모를 직접 목격하고는 정신이 아찔해 졌다.
하지만 이전의 주바 왕자처럼 넋을 잃어버리지는 않았다.
바로 정신을 차린 시저는 약간 떨림이 남아있기는 하지만 태연한 목소리로 말했다.
“로마에서 들릴기로는····. 이집트에 세계 제일의 미녀가 있다고 했습니다. 과장이라고 생각했는데····. 그렇지도 않았군요.”
“칭찬은 감사합니다. 하지만···. 그 칭찬 이전에 들린 말씀은 인정하기 힘들군요.”
클레오파트라는 날이 선 말투로 시저를 공격했다.
“어떤 말을 지적하시는 겁니까?”
“우리 프톨레마이오스 왕조가 로마의 맹방이라는 말. 그 망언을 거둬 주시겠습니까?”
“·········공주의 아버지께서는 우리 로마와 많은 부분에서 공생 관계에 있습니다. 그 점을 부정하시지는 못할 텐데요?”
시저의 말은 다소 지나칠 정도로 스트레이트하기는 했지만 핵심이기도 했다.
프톨레마이오스 12세가 왕권을 유지하고 있는 가장 큰 이유로는 역시 로마의 원조를 빼 놓을 수가 없었다.
그는 이집트에서 나는 산물을 로마에 바치고 그로 인해서 로마의 지지를 얻어내고 있었다.
그게 아니었다면 진작에 왕권이 뒤집히고도 남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프톨레마이오스 12세 개인의 문제였다.
클레오파트라는 그 점을 파고 들어서 시저의 말을 반박했다.
“우리 프톨레마이오스 왕조는 그 알렉산더 대왕과 함께 세계를 누비던 용맹한 가문이었습니다. 이집트의 통치권은 대왕에게 정식으로 받은 것으로 그 후에 오랜 세월 동안 이집트를 다스려왔습니다.”
============================ 작품 후기 ============================
클레오파트라 : 나 여기 있는줄 몰랐지? 그치?
시저 : 오... 젠장....
여러분들의 응원은 작가에게 큰 힘이 됩니다.
즐감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