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0화
<클레오파트라의 마음>
클레오파트라가 찾아온 그날 밤.
파라디소스에는 화려한 연회가 열렸다.
왕궁의 행사는 그 왕궁의 국왕의 성격에 따라서 많이 바뀐다.
프랑스의 루이 왕조에서 그렇게 화려한 여회를 많이 연 것은 사교성의 필요성도 있었지만 그 이상으로 루이 왕조의 취향도 한 몫 했다고 할 수 있었다.
그리고 지금까지 우진은 별로 크게 화려하게 연회를 연 적은 없었다.
비옥한 시칠리아를 차지하고 왕국을 세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진은 크게 사치를 하지 않았었다.
애당초 그런 행사를 번거롭게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평소의 우진 답지 않게 정말로 성대한 연회를 열었다.
왜냐 하면 그게 필요했기 때문이다.
연회에는 두 가지 목적이 있다.
하나는 순수하게 뭔가를 축하하고 연회의 참가자들을 즐겁게 하기 위한 연회.
그리고 또 하나의 연회는 중요한 정치적인 인물을 대접하기 위한 이른바 접대 연회.
이 연회의 목적은 단연 후자였다.
클레오파트라는 지금 우진이 간절하게 원하는 것을 가지고 있는 상대였다.
이집트에서 쫓겨난 공주에 불과한 그녀가 뭐 그렇게 중요한 것을 가지고 있겠냐? 라고 말할지 모르겠지만···.
그녀가 가지고 있는 것은 바로 해군력이었다.
이 지중해에서 패권을 쥐기 위해서는 꼭 가지고 있어야 하는 해군력.
클레오파트라는 그것을 가지고 있는 여성이었다.
우진은 이 파라디소스를 건국하고 나서 해군력을 증강시키기 위해서 수도 여러 가지 시도를 해 보려 했다.
하지만···. 번번이 실패만 할 뿐이었다.
기술자들에게 거북선을 만들게 하려고 해 본 일은···. 그래 허공에 삽질이었다.
아무리 설명해도 기술자들은 왜 배에 거북이 모양의 철갑을 씌워야 하는지, 그리고 어떻게 하면 그렇게 할 수 있는지 전혀 알지 못했다.
애당초 우진 스스로가 이 시대의 배와 조선시대의 판옥선의 차이를 전혀 모르고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 거북선?
중세로 타임슬립하고 스마트 폰을 만드는 것 만큼이나 어려운 것일 것이다.
둘다 불가능 할테니 말이다.
그런 상황에서 지중해 NO.2의 해군력을 지닌 이집트의 해군 사단은 우진에게 있어서 탐나는 전력이었다.
힘없이 쫓겨나서 아무것도 없는 비운의 공주?
어림도 없다.
지금 그녀가 가지고 있는 해군력을 가지고 몸을 맡기면 어디에 가도 그녀를 홀대 하지는 못할 것이다.
해군이라는 것이 그렇게 쉽게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생각하면 더욱더 그랬다.
그래서 그녀를 위한다고 이렇게 익숙하지도 않은 화려한 연회를 열었다.
음악이 흐르고 음식과 와인이 사방에 넘치고··.
그리고 21세기의 지구에서 연예인들이 이렇게 입었다가는 방송통신 위원회에서 거품 물고 따질만큼 선정적인 옷차림을 하고 춤추는 무희들 까지···.
사실 연회에 관해서는 그저 지시만 했지 이런 종류의 이벤트까지 동원될 것이라고는 생각도 하지 못했다.
‘거의 나체잖아? 가린게 아니고 가린 척만 한 것 같은데···.’
음악에 맞춰서 추는 춤은 나긋나긋하고 서정적인 것이었지만 의상의 노출도가 너무 높아서 눈 둘곳이 곤란한 우진이었다.
원래··. 이런 아름다운 무희들의 춤과 무대는 남자들의 시선을 한 몸에 사로 잡지만···.
이번 만큼은 얘기가 달랐다.
“예. 말씀은 많이 들었습니다. 예 물론···.”
요령 좋게 자신의 말 상대를 상대하고 있는 클레오파트라 때문이었다.
얼굴을 베일로 가리고는 있었지만 그럼에도 그녀의 미모는 그 누구보다 빛을 발하고 있었다.
파라디소스의 관료들은 한 번이라도 그녀에게 말을 걸어보기 위해서 다가갔다.
그녀는 그런 사람들을 귀찮아 할 법도 한데 조금도 그런 기색을 보이지 않고 사근사근하게 웃으면서 대응하고 있었다.
누가 봐도 이 세상에서 제일 아름다운 여성이 착하기까지 하다니···. 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방심하면 안 돼. 아직 어리기는 하지만 경국지색의 룰 모델 같은 여성이니까····.’
그나마 우진의 경우는 클레오파트라가 실제 역사에서 벌인 실적(?)을 알고 있으니 방심하지 않으려고 마음을 다 잡고 있을 뿐이었다.
그때····.
“안녕하세요. 타리아 공주님.”
“어머? 두 분은 혹시···.”
“디도 바르카스 파라디소스라고 합니다.”
“세체니 파라디소스라고 합니다. 만나서 반갑습니다.”
클레오파트라에게 세체니와 디도가 다가갔다.
용건은···. 말 안해도 뻔하지만 말이다.
“두 분이 왕비님이시군요. 말씀은 많이 들었습니다. 소문대로 아름다우시군요.”
“····감사합니다. 하지만 아프로디테도 고개를 숙이실 공주님이 그렇게 말씀 하시니 어색하네요.”
“칭찬 감사합니다.”
디도와 클레오파트라의 사이에서는 불꽃이 튀겼다.
‘이 여자 보통 내기가 아니다.’
‘이 여자가 디도 바르카스란 말이지? 듣던대로 만만한 여자가 아니네.’
디도와 클레오파트라의 사이에서 보이지 않는 불꽃이 튀었다.
클레오파트라는 디도를 웃는 얼굴로 물끄러미 바라봤다.
사실 그녀는 디도를 상당히 견제하고 있었다.
미리 사람들을 보내서 여론을 생성하는 꼼수를 쓰는 것은 클레오파트라의 본의는 아니었다.
그녀는 자신의 미모에 자각이 있었다.
몰락하고 부패한 왕가의 공주로 태어난 그녀는 어려서부터 자신이 처한 상황에서 살아남을 무기를 찾아야 했고···.
자신의 미모가 그 무기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철 들고 나서부터 그녀가 무언가를 말하기만 하면 남자들은 무슨 신탁이라도 받은 헤라클레스처럼 충실하게 움직였다.
그것이 그녀를 미모 때문이라는 것을 그녀도 커가면서 알게 되었다.
그것을 자각할 무렵 그녀가 느낀 감정은 불쾌감도 우월감도 아니었다.
그녀가 느낀 것은 안도감과 신에 대한 감사함이었다.
이것이다.
이것으로 나는 살아 갈 활로를 열 수 있다.
아버지처럼 로마에 아부하면서 나라를 팔아가는 파라오는 딱 질색이었다.
배다른 이복 언니처럼 그저 하루하루를 향락과 쾌락으로 지내는 것도 그녀는 바라지 않았다.
그녀는···. 자신의 의지로 자신의 선택대로 스스로의 인생을 헤쳐 나가고 싶었다.
그녀의 미모는 그녀가 그런 인생을 살 수 있는 작은 무기가 되어 줄 것이라고 그녀는 생각했다.
처음 누미디아의 주바 왕자와 우진을 만나기 전에 클레오파트라는 이미 정했다.
왕가의 계율대로 어린 동생하고 결혼을 하느니 차라리 이 둘 중에 한명과 결혼을 하겠다고 말이다.
그때까지 그녀는 둘 중에 좀 더 다루기 쉬운 남자를 선택할 생각이었다.
어차피 남자들은 자신의 미모만 있다면 쉽게 다룰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좀 더 다루기 쉬운 남자를 남편으로 맞이하고 그 그늘에서 자신의 야망을 이루겠다.
그게 그녀의 목적이었다.
하지만···.
처음 주바 왕자와 우진을 만났을 때 그녀의 결심은 변했다.
둘 중에 다루기 쉬운 남자?
그것은 한 눈에 알 수 있었다.
주바 왕자가 다루기 훨씬 더 쉬워 보였다.
사실 둘을 만나기 전에는 주바 왕자를 더 경계했다.
야심만만하고 왕가에서 자라서 자존심이 강할 것 같았기에 그녀도 경계를 한 것이다.
하지만···. 첫 만남에서 그녀를 보면서 어쩔줄을 몰라 하는 주바 왕자의 모습에서 그녀는 속으로 피식 한숨을 내쉬었다.
‘고작 이런건가?’
이 정도의 남자라면 자신의 손바닥 위에서 충분히 춤추게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클레오파트라는 그렇게 생각하면서 다음 품평 대상인 우진을 바라봤다.
그리고···. 그녀는 내심 크게 놀랐다.
자신의 미모를 보고 감탄하는 기색은 있었다.
갈등하는 면모도 보였다.
하지만···. 절대로 그걸로 중심이 흔들리는 모습은 조금도 보이지 않았다.
순간 클레오파트라의 가슴 깊숙한 곳에서 어떤 감정이 생겼다.
이 세상에 태어나서 처음으로 자신의 미모에 흔들리지 않는 남자.
자신의 가족들 조차고 그녀를 바라볼 때는 종종 수컷의 눈빛을 하고는 하는데···.
이 남자는 자신의 아름다움에 감탄을 하면서도 그것을 멀리 하려고 하는 경계심이 보였다.
정복욕.
남의 떡이 더 커보인다거나 자신의 손에 닿지 않는 절벽위의 꽃이 더 아름다워 보인다거나···.
그런 감정은 남자들만의 전유물이 아니다.
여자들도 그런 도전욕구는 충분히 존재한다.
클레오파트라는 즉석에서 계획을 바꿨다. 우진을 자신의 남편으로, 그리고 누미디아의 주바 왕자에게는 성격은 개판이지만 미모는 쓸만한 언니를 주겠다고···.
그렇게 마음먹고 우진을 본격적으로 유혹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밤에 우진의 방으로 찾아가서 자신의 맨얼굴을 보여주고 우진을 유혹하는 것에 거의 성공할 뻔 했다.
그래···. 그런데 그때 갑자기 낭보다 날아든 것이다.
파라디소스에 반란이 일어났다는 낭보가 말이다.
클레오파트라는 순간 이것을 기회라고 여겼다.
본국의 지지기반이 약해진 지금이야 말로 외부에 든든한 조력자가 필요로 하는 것은 상식.
우진이 자신의 구애를 받아 들일 것이라는 확신이 드는 순간이었다.
그러나 우진이 택한 방법은 정반대였다.
“부탁드립니다. 타리아 공주님. 공주가 가지고 있는 해군 전력을 빌려 주십시오.”
“····예?”
우진은 클레오파트라에게 간청해서 해군 병력을 빌려 달라고 했다.
자신의 본국을 구하러 가는 최단거리 해로를 돌파하기 위해서 말이다.
물론 그걸 단번에 허락 할 수는 없었다.
로마의 해상 봉쇄에 걸리기라도 하면 전투는 피할 수 없고, 이기든 지든 간에 자신의 존재가 걸릴 것이 분명했으니 말이다.
그녀는 내심 거절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우진은 정중하게 머리를 숙이면서 클레오파트라에게 말했다.
“부탁드립니다. 타리아 공주. 나라가. 제 백성들이 위험합니다.”
“읏···. 아니 하지만····.”
클레오파트라는 뜨거운 우진의 눈을 보면서 뭐라고 대꾸를 하지 못하고 있었다.
같은 왕이라고 해도 자신의 아버지인 프톨레마이오스 12세하고는 전혀 달랐다.
그런 썩은 생선 눈하고 비교하는 것 자체가 모독이라고 느껴질 정도로 우진의 두 눈은 뜨겁고 진지했다.
이제까지 이런 눈빛을 하고 있는 남자를 만나 본적이 없었던 그녀였다.
자신을 바라보는 남자의 눈빛에서 이런 정렬과 진지함을 느껴 본적은 처음이었다.
그래서 딱 잘라 거절하지 못하는 클레오파트라에게 우진이 다시 한 번 말했다.
“부탁 드립니다. 이 일에 관해서 제가 들어 드릴 수 있는 보답은 뭐든지 들어 드리겠습니다.”
“·····그··· 그러시다면···.”
클레오파트라는 작은 목소리로 은근히 허락을 했고 우진은 바로 그녀에게 고개를 숙이며 정중하게 감사를 표했다.
“감사합니다. 이 은혜는 반드시 갚겠습니다.”
우진은 그렇게 말하고는 바로 밖으로 몸을 날려서 부하들에게 시끄럽게 지시를 했다.
지금 바로 본국으로 돌아간다고 말이다.
그 후에는 모두가 알고 있는 대로다.
극적인 타이밍에 가까스로 도착한 우진은 시라쿠사의 시민들을 구하고 나라를 굳건하게 다졌다.
비 온 뒤에 굳어지는 땅처럼 카스투스와 칸니투스의 반란은 파라디소스에게 경각심을 불러 일으켰다.
어느 나라건 그 나라가 굳건하게 체제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일종의 국민의식 이라는 것이 필요했다.
이것은 시대를 불문하고 강대국들의 공통점이라고 할 만한 것이었다.
로마만 해도 로마인의 의무, 로마인의 긍지.
라는 것을 내세워서 자국민들의 결속력을 강하게 하고 있었다.
그게 상당히 인종 차별 주의이기는 하지만 고대 시대이니 만큼 인종 차별이라기 보다는 자국 제일 주의 정도가 맞는 말일 것이다.
그리고 그 정도는 이 시대의 모든 나라에서 주장하는 공통점이기도 했다.
자국 이외의 모든 민족을 서로서로 오랑캐라고 불렀던 아시아인들을 생각하면 알기 쉬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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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 어째서 다루기 쉬운 주바왕자 보다 우진에 끌렸나요?
클레오파트라 : 전 아무래도 밀었을 때보다 당겼을때 더 흔들리는 여자인가봐요.
작가 : 현대에 태어났으면 만렙 어장관리녀 되었을 클레오파트라 양의 인터뷰였습니다.
항상 응원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더 좋은 글로 보답하기 위해서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그럼 즐감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