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6화
지휘관이 없는 이 도시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일단 사기를 진작 시키는 것.
카스투스의 난행을 똑똑히 기억하고 있는 시라쿠사의 시민들에게 디도와 세체니의 말은 정통으로 와 닿았다.
“여러분, 저희를 도와 주십시오.”
“함께 나라와 가족을 지켜 주십시오.”
“부탁 드리겠습니다.”
“부탁 드리겠습니다.”
디도와 세체니는 동시에 허리를 숙여서 눈 앞의 군인들과 시민들에게 부탁을 했다.
일국의 가장 존귀한 여인인 그녀들이 시민들과 병사들에게 허리를 숙이는 광경은 광장에 모여있는 모두에게 커다란 충격을 줬다.
그리고··.
척!! 처처척!!
누가 먼저였는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병사들 하나하나가 무릎을 꿇었다.
그리고 시민들도 모두 따라서 무릎을 꿇었다.
“왕비님을 돕겠습니다.”
“돕게 해 주십시오.”
“싸우게 해 주십시오.”
“나라를 지키겠습니다.”
“파라디소스 만세!!!”
“왕비 전하 만세!!!!!”
“만세!!!”
누군가가 먼저 시작했는지는 모르겠지만··. 한 번 터져 나오기 시작한 만세 소리는 광장을 시작으로 시라쿠사를 가득 메웠다.
민심이 폭발해서 하늘에 닿을 정도로 솟구친 것이다.
“반역도놈들, 올 테면 와라!!”
“우리는 싸운다!!!”
“우오오오!!!!”
“오오오오!!!!!!”
시라쿠사는 결전을 각오했다.
시라쿠사의 성벽에 도착한 칸니쿠스는 눈살을 찌푸렸다.
“다시 한 번 말해봐라. 지금 성벽에 있는 지휘관이 누구라고?”
“·····디도 왕비라고 합니다.”
“하아·····. 사람 우습게 보는군.”
칸니쿠스는 헛웃음이 절로 나왔다.
“계집 주제에 미쳤군.”
칸니쿠스가 생각하기로 전쟁터는 남자들의 세계였다. 여자들 따위는 약탈과 정복의 대상일 뿐.
전쟁의 승자에게 안기는 것 만이 이 고대 시대의 여자들이 전쟁터에서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이었다.
그런데 그런 여자가 자신의 적수로 나와 있다는 소식을 들은 칸니쿠스는 허탈감과 분노가 동시에 들었다.
“·····좋다. 죽고 싶은게 소원이라면 들어 줘야지. 병사들을 준비해라!!”
“옛!!”
칸니쿠스는 병사들을 쭉 모으게 했다.
지금 그의 병사들 중에는 그를 따르는 일족의 골수분자들 5,000정도와 협박에 의해서 어쩔 수 없이 강제로 따르는 병사들 5,000정도.
그리고 나머지는 로마에서 지원해준 병력 2만 가량이었다.
이 중에 가장 의욕이 없는 것은 로마에서 지원해준 지원병들이었다.
협박에 의해서 싸우는 자들조차도 자신들의 가족이 인질로 잡힌 상황이었기에 어쩔 수는 없었지만 싸워야 한다는 자각은 있었다.
하지만 로마에서 보내준 지원군들은 달랐다.
이들은 대부분이 죄인들과 노예들 그리고 뜨내기 용병이나 부랑자들로 구성된 자들이다.
시저는 칸니쿠스의 병력이 적다고 생각해서 일단 머릿수만이라도 맞추게 하기 위해서 그런 쓰레기들을 무장 시켜서 보낸 것이다.
사실 파라디소스의 의원들이 초반에 3만이라는 숫자에 겁먹어서 싸우지도 않고 피난을 가려고 한 것을 생각하면 상당히 쓸모 있는 한수였다.
디도 덕분에 무위로 돌아갔지만 말이다.
어쨌든, 의욕이 없는 이들에게 의욕을 불어 넣기 위해서 칸니쿠스는 병력을 모았다.
“모두들 들어라!!!”
칸니쿠스의 말에 병사들의 이목이 모였다.
“지금 눈앞에 보이는 성벽이 보이는가?”
“············.”
“············.”
“············.”
대답 없는 병사들을 향해서 칸니쿠스는 말을 이어갔다.
“저 성벽의 너머에는 파라디소스의 진이 그동안 모아왔던 재산과 수많은 미녀, 명주, 보물들이 모두 모여있다.”
순간 병사들 중에 상당수가 두 눈을 반짝이기 시작했다.
“저기를 점거하고 승리자가 되어라. 그럼 저 안에 있는 모든 것은 너희들의 것이다. 약탈하라. 빼앗아라. 모두 승자를 위해서 준비된 전리품이다!!!”
“··············.”
“··············.”
“··············.”
여전히 대답은 없었지만 병사들 사이에서는 약간의 웅성거림이 번지기 시작했다.
로마에서 반 강제로 지원군으로 온 로마군들은 눈에 상당히 의욕이 보이기 시작했다.
한편으로 원래 파라디소스의 병력이었던 자들은 같은 동족에게 그런 짓을 해도 되는지에 관해서 고민하는 자들이 반.
그리고 나머지 반들은 오히려 더 눈을 반짝이고 있었다.
칸니쿠스와 그의 골수분자들은 게르만족이다.
당시 고대의 부족민족들이 대부분 그랬지만 그들에게 있어서는 아직 약탈이 죄라는 인식 조차 없었다.
승자가 패자의 것을 빼앗고 유린하는 것은 당연한 권리로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두 부족이 부딪혀서 강한부족은 씨를 남기고 번성하고 약한 부족은 사멸한다.
마치 숫사자들의 번식 원리와 같은 개념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사실 인류는 국가라는 틀을 잡고 나서야 본격적인 발전을 거두는 법이다.
동양도 서양도 부족 국가들의 주력 생존 수단은 항상 약탈이었다.
아시아에서도 오랜 세월동안 북방의 기마 민족이 거란, 흉노, 여진 등의 세력을 이루면서 중국이나 우리 민족의 골칫거리로 자리 잡았던 것을 생각하면 쉽게 알 수 있는 일이다.
어쨌든, 약탈의 허락은 의욕이라고는 눈꼽만큼도 없어 보였던 병사들에게 의욕을 줬다.
“전군 도열!!!!!”
칸니쿠스는 병사들에게 명령을 내렸다.
“돌격하라!!!!”
“우오오오오오오!!!!”
“와아아아아!!!!”
병사들이 돌격하기 시작했고 칸니쿠스의 시라쿠사 공성전이 시작된 것이다.
칸니쿠스의 군대들의 가장 앞열레 돌격하고 있는 것은 사다리 전차.
우진이 고안한 최신식 공성 병기였다.
우진은 자신이 만든 무기가 자신의 국가를 위협할 생각은 꿈에도 하지 못했겠지만···.
변절한 배신자는 태연하게 그 장비를 이용했다.
다행이라는 것은 로마군들과는 달리 시라쿠사의 병사들은 저것이 뭔지 정확하게 알고 있다는 것이다.
“불화살을 날려라!!”
“성벽에 접근하게 하지 말아라!!!”
지금 성벽에 잇는 지휘관들은 부지런히 병사들에게 지시를 했다.
“왕비 전하. 걱정하지 마십시오.”
지휘관 중에 한명이 긴장한 듯이 앙증맞은 주먹을 꼭 쥐고 있는 디도를 안심 시켰다.
“걱정은 안 합니다. 우리가 이길 테니까요.”
“믿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지금 디도를 안심 시키고 있는 자는 흰머리가 살짝 서리 내린 중년과 노년의 경계 사이에 있는 남자였다.
그 외에도 지금 성벽의 여기저기에서 병사들에게 고함을 지르고 있는 자들중에는 팔이 하나 없는 자도 있었고, 도저히 전쟁터에 나설 나이가 아닌 자들도 있었다.
이들의 정체는 우진과 디오클레이우스와 함께 검투사 시절부터 생사를 같이하던 동료들이었다.
그때 우진과 디오클레이우스와 함께 탈주했던 70여인의 검투사들···.
그들 중에 지금 현역으로 있는 자들은 30여명 남짓···.
나머지 40인들은 더 이상 전쟁터를 누비지 못했다.
개중에는 전쟁터에서 용맹하게 싸우다가 목숨을 잃은 자들도 있고, 혹은 심각한 부상을 입었거나 이제는 나이를 먹어서 싸울 수 없게 된 자들도 있었다.
그들은 우진에게 개국 공신의 대우를 받으면서 시라쿠사에서 편안한 삶을 살고 있었다.
그러다가 오늘 디도와 세체니의 부탁을 받고 분연하게 일어난 것이다.
성벽을 직접 지휘할 병사들이 없어서 속으로 안절부절 못하고 있던 디도에게는 정말 감사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이들은 한 동안 전쟁터를 떠나기는 했지만 말 그대로 백전의 노장들.
병사들은 한층 더 든든하게 전투에 임할 수 있었다.
“왔습니다.”
“쏴라!!!”
사다리 전차가 앞으로 나오자 병사들은 앞 다퉈서 불화살을 날렸다.
사다리 전차를 아무리 튼튼하게 만들어도 결국은 나무. 불화살을 계속 맞으면 언젠가는 불이 붙기 마련이다.
“불을 꺼라!!”
“빨리 빨리 움직여!! 불에 타기 전에 사다리를 걸쳐라!!!”
불화살이 사다리 전차에 적중하자 칸니쿠스의 병사들은 서둘러서 대응했다.
그들이라고 바보는 아니었다.
아무리 불 화살을 날려도 목재에 불이 그렇게 바로 붙지는 않으니 침착하게 불을 끄면서 싸울 생각인 것이다.
이윽고 사다리 전차가 몇 개인가 성벽에 사다리를 걸치기 시작했다.
쿵!! 쿵쿵!!!
“돌격!!!”
“올라가라!!!”
완만한 언덕이나 다름없이 변한 사다리를 타고 칸니쿠스의 병사들이 달리기 시작했다.
“모두 침착하게 대응하라!! 올라오는 길목을 창으로 포위해라!!!”
지휘관들은 침착하게 병사들에게 지시를 내렸다.
아무리 불 화살을 날려도 금방 사다리 차를 막을수 없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그러니 사다리가 걸쳐진 곳에는 날카로운 창날을 앞세운 병사들이 포위망을 만들었다.
성벽위에 적군이 올라오는 것을 막을 수 없다면 올라오게 한 다음에 싸울 뿐.
전쟁터란 아무리 질척질척한 진흙탕이 되어도 포기하지 않는 자가 이기는 것이었다.
“죽어랏!!!”
“이 반역자들!!!”
시라쿠사의 병사들의 사기는 하늘을 찌를 것 가았다.
아니 엄밀히 말해서 이걸 사기라고 말하기는 어려웠다.
사기라는 것은 전쟁터의 병사들이 승리를 위해서 고양된 감정의 덩어리를 말하는 것이다.
유능한 장수들은 모두 저마다의 방식으로 아군의 사기를 잘 진작시키는 것을 아주 잘했다.
이것은 명장의 첫 번째 조건이었다.
하지만 지금 이 시라쿠사의 병사들은 좀 달랐다.
이 병사들은 디도와 세체니에게 부탁을 받고 싸우고 있었다.
나라를 지키기 위해서··.
가족을 지키기 위해서···.
자신들의 경애하는 왕비님들을 지키기 위해서··.
이것은 사기와는 달랐다.
굳이 말하자면·····. 결의, 라고 하는게 걸 맞는 표현일 것이다.
“으아아앗!!!”
“죽어랏!!!!”
병사들은 자신의 목숨을 아끼지 않고 싸우고 또 싸웠다.
그리고 그런 거친 저항 때문에 사다리 전차를 쓰고도 공성 병력은 그렇게 큰 효과를 보지 못하고 있었다.
“뭐해!!? 빨리 올라가!!!”
“뒤에서 밀지마 이 미친 새끼·· 커억···.”
“으악!!! 이거 놔!! 놓으란··· 으악!!!”
사다리차를 이용하기 위해서는 선두에 선 병사들이 어떻게든 성벽의 위에 올라가서 아군이 뒤이어 올라 올 수 있는 거점을 만드는게 중요하다.
그래서 예전에 우진은 이 사다리 차를 야밤에 그것도 크릭서스라는 A급 무력을 앞장 세워서 사용한 것이다.
그렇게 해야 성공률이 높아지는 것이다.
칸니쿠스 처럼 뒷짐 쥐고 자신이 구경만 해서는 성공률이 반감될 뿐이었다.
거기다가···.
“이걸 쓰십시오!!”
“빨리 이걸!!!”
병사들의 뒤에서 지원을 맡은 시민들이 앞 다퉈서 뭔가를 가져왔다.
그것은 바로 항아리에 가득 찰랑 거리는 기름이었다.
============================ 작품 후기 ============================
얼씨구!! 풍악을 울리고 기름을 부어라~~~~!!
항상 응원해 주시는 분들에게 감사드립니다.
더 좋은 글로 보답하기 위해서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즐감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