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0화
<지고의 미인 등장하다.>
우진이 아프리카에서 크라수스에게 대승을 거둔 시기는 스파르타쿠스가 폼페이우스를 레기움에서 몰아낸 시점하고 비슷했다.
즉, 파라디소스는 한창 상승세를 타고 지중해의 신흥 강자로 자리매김하기 시작한 것이다.
하지만 전쟁이라는 것은 승리한 후에도 할 일이 있는 법이다.
우진은 오늘 아우길라에서 중요한 회담을 하기로 했다.
회담에 참석하는 자는 우진, 주바 왕자, 그리고 아직도 이름을 밝히지 않은 이집트의 협조자다.
크라수스의 죽음 이후에 보급 라인이 끊어지자 전선에 있던 크라수스의 군대는 자멸하기 시작했다.
사막 지대에 넓게 산개한 상태에서 보급이 끊어지자 그 효과는 순식간에 나타난 것이다.
알아서 죽어가는 크라수스의 군대는 더 이상 상대가 아니었다.
누미디아의 주바 왕자는 진격해서 그동안 잃은 국토를 만회하고 역공으로 알렉산드리아까지 쳐들어가려고 했다.
하지만 우진이 그런 그를 만류했다.
잃은 영토를 찾기 위해서는 피를 흘릴 필요가 없다. 이번에 회담을 통해서 찾아 주겠다. 라고 말이다.
동맹관계에 있는 우진이 그렇게 중재를 하자 주바 왕자도 일단은 고집을 접고 회담의 자리에 앉았다.
그리고 오늘.
키레네를 통해서 이집트쪽의 수수깨끼의 협력자도 등장하기로 했다.
“····늦군요.”
“오늘 도착한다는 소식은 들었소. 침착하게 기다리시오. 주바 왕자.”
“············.”
주바 왕자는 팔짱을 끼고 불편한 심기를 드러내고 있었다.
‘감히···. 막판에 숟가락만 얹으려고 그래?’
주바 왕자는 이번에 나타난 수수깨끼의 이집트의 협력자가 괘씸하기 짝이 없었다.
파라디소스와의 동맹은 주바 왕자가 로마의 그늘에서 벗어나서 누미디아가 아프리카의 맹주로 자리 매김하기 위해서 국운을 걸고 행한 도박이다.
다행이도 그 도박의 결과는 현재까지 좋게 나타났다.
이제 파라디소스와의 동맹을 견고히 하면서 북아프리카의 패자로 올라갈 날도 멀지 않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갑자기 이집트가 끼어 들 줄은 몰랐다.
이제까지 쭉 누미디아와 국경을 맞대고 있는 이집트였지만 사실 이렇다 할 분쟁은 없었다.
양국이 국경을 맞대고 있는 지역은 사막 지대로 국토의 가치는 거의 없는 곳이었다.
몇몇 중개 도시가 무역으로서의 가치를 창출할 뿐이지···.
다만 주바 왕자는 내심 이번에 로마를 몰아내면 이집트를 도모할 생각을 하고 있기는 했다.
그는 어디까지나 아프리카의 패자가 되는게 목적이었다.
그런 주바 왕자에게 있어서 동쪽의 이집트는 거슬리는 지역이었다.
동쪽으로 통하는 교두보로 막대한 재산을 축척하고 나일강의 삼각주는 북아프리카에서도 가장 풍요로운 땅이었다.
누미디아의 수도 키르타는 이집트의 수도인 알렉산드리아에 비하면 촌구석이나 다름 없는 취급을 받을 정도로 발전한 땅이었던 것이다.
그것은 나일강의 삼각주가 주는 풍요로움 때문만은 아니었다.
그것 말고도 알렉산드리아는 교역의 요충지였기에 예전부터 그리스의 영향.
그러니까 헬레니즘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그것이 동쪽의 마케도니아나 셀레우코스 같은 나라의 영향을 받아서 독자적이고도 풍요로운 문화를 발전시켜온 나라였다.
주바 왕자 같은 야심가가 탐이 나지 않는다고 하면 거짓말일 것이다.
그런데 그 이집트에서 파라디소스에 접선을 가지려고 하니···.
이렇게 되면 공격을 하는 것도 어려워진다.
로마라는 강대한 적이 아직 강건한데 같은 동맹끼리 전쟁을 했다가는 어떻게 될지 뻔했다.
‘하다 못해서····. 이번 회담에서 최대한 많은 이득을 보는 수밖에···.’
그렇게 생각하는 누미디아의 주바 왕자였다.
그리고 마침내···.
“이집트의 대표께서 도착하셨습니다.”
우진과 주바 왕자가 기다리는 회담의 실로 이집트의 숨겨진 조력자가 도착했다.
문이 열리고 몇 명의 호위 무사의 경호를 받으면서 등장한 것은 얼굴을 베일로 꽁꽁 가리고 있는 한 여성이었다.
그녀는 살짝 고개를 숙이면서 맑은 관악기 같은 청명한 목소리로 말했다.
“클레오파트라 필로파토르 타리아. 라고 합니다.”
“··············.”
“··············.”
그녀의 자태에 넋을 잃어버린 우진과 주바 왕자였다.
클레오파트라 7세.
사실 이집트의 프톨레마이오스 왕조에 클레오파트라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는 여자는 잔뜩 있다.
당시 왕가의 여성 대부분이 물려 받는 이름이 클레오파트라였으니 말이다.
하지만···. 현대의 모두가 클레오파트라. 라는 이름을 말하면 그 대부분은 오직 한 명만을 뜻한다.
이집트의 야심찬 여인.
시저의 정부.
안토니우스의 연인.
인류 역사상 가장 아름다운 여성.
이 모든 수식어가 바로 한명을 가리키는 것이었다. 클레오파트라 7세.
바로 그녀를 말이다.
‘···말도 안 돼···. 이건 정말 말도 안 돼···.’
우진은 넋이 나가 버린 자신의 의식을 간신히 되돌렸다.
클레오파트라가 이 방에 들어와서 살짝 고개를 숙여서 인사를 하고 그리고 자리에 앉기 까지···.
우진과 주바 왕자는 갓난아기가 허공에 멍 때리는 것처럼 그녀에게 시선을 고정시키고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있었다.
특히 주바 왕자보다는 우진의 충격이 더 컸다.
클레오파트라. 우진은 그녀가 이 자리에 나설 것을 대강 예측하고 있었다.
이전에 디아테르를 족 치면서 그의 주군이 여자라는 말을 들었을 때부터 이미 그런 예상은 했던 것이다.
그리고 오늘 그녀가 나타날 것을 예상하면서 우진은 호기심으로 생각했다.
역사상 최대의 미인이라고 평가 받는 그녀의 미모는 과연 어느 정도일까?
라고 말이다.
그러나···. 우진은 어디까지나 궁금해 하기는 했지만 이렇게 쇼크를 받을 것이라고는 생각도 하지 않았다.
그것도 그럴게··. 현대의 인간들이 초상화나 조각품을 보고 복원시킨 클레오파트라의 미모는 그다지 아름답지 않다는 평가가 많았기 때문이다.
그녀의 진정한 가치는 그녀의 뛰어난 지식과 결단력, 그리고 지혜에 있었다고 말하면서 실제로 미모는 그다지 아름답지 않았다. 라는 평가를 내린 학자들이 많았다.
우진은 만약 현대로 돌아갈 수 있다면 그 학자들 싸대기를 날리고 장난 치냐고 말하고 싶었다.
지금 우진의 눈앞에 있는 여성이 아름답지 않다면 세상에 누가 아름답지 않다는 걸까?
현대의 기억에 클레오라트라를 연기했던 명 여배우들··. 비비안 리. 엘리자베스 테일러.
그 외에 그녀를 연기한 수많은 여배우들은 사과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우진이었다.
그녀들은 모두 불합격이다.
베일로 얼굴을 가리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나타나는 이 압도적인 존재감.
미의 결정체 같은 그녀를 보면서 우진은 태어나서 처음으로 여성을 강제로라도 소유하고 싶다는 욕구가 나왔다.
우진의 아내인 세체니와 디도가 그렇게 아름다운데도 불구하고···.
이 클레오파트라에 비해서는 어딘지 모르게 약간 떨어지는 매력이 나타나는 것은 사실이었다.
하지만, 우진은 눈을 질끈 감고 정신을 가다듬었다.
“파라디소스의 진이오.”
“··············.”
“주바 왕자.”
“아···. 아아·· 음···. 주바요. ···누미디아의 왕자요···.”
정신을 차린 우진과 달리 주바 왕자는 아직도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었다.
그 역시 일국의 왕자로 태어나서 여자에게 크게 부족한 남자는 아니었다.
자신의 손짓 하나로 품에 안기는 여자가 본국에 가면 얼마든지 있었다.
하지만 주바 왕자는 지금 눈앞에 있는 여성 한명에 완전히 혼을 빼앗겨 버렸다.
과거 파라디소스에 와서 디도를 봤을 때 이후로 이런 느낌은 처음이었다.
그때 보다 훨씬 더 강력했지만 말이다.
“소개드린 클레오파트라 필로파토르 타리아라고 합니다. 타리아라고 불러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진이오.”
“·····주·· 주바입니다.”
우진은 대화를 하면서 미칠 것 같았다.
‘뭐 이런···. 이거 무슨 마법이나 그런 것 쓰는 것은 아니지?’
마성의 매력이라고 해야 할까?
말 한마디 한마디를 주고받을 때 마다 제 정신을 유지하기가 힘들었다.
옆의 주바 왕자를 보니 거의 넋이 나간 것 같았다.
자신의 필생의 목표인 북아프리카 재패도 그냥 필요 없고 눈앞의 여인 한 명만 있으면 충분할 것 같다는 그런 눈빛이었다.
‘나라도 정신 차리자.’
우진은 스스로 정신을 바싹 가다듬었다.
아름다운 여인이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이 여인 하나에 눈이 멀어서 나라를 망하게 할 수는 없었다.
그런 병신 같은 왕으로 역사에 남는 것은 절대 사양하고 싶은 우진이었다.
클레오파트라가 아무리 아름다워도 우진에게는 사랑하는 아내가 있다.
시저는 자신의 아내가 있어도 클레오파트라를 정부로 뒀다.
안토니우스는 자신의 아내가 있어도 클레오파트라에게 몸과 마음을 다 바쳤다.
우진은 절대로 그 둘의 전례를 따라갈 생각이 없었다.
‘빨리 일 얘기로 넘어가자.’
“우선, 이번 전쟁에서 로마를 물아내기 위해서 힘 써주신 양국에 감사드립니다.”
우진이 그렇게 시작을 열자 주바 왕자도 조금은 정신을 차리기 시작했다.
“우선 중요한 문제는 두 가지. 이 후에 영토의 할양과 앞으로의 반로마 체재를 굳히기 위한 삼국 동맹을 체결 할 것을 제안합니다.”
우진은 파라디소스를 중심으로 누미디아, 이집트의 연합 전선을 제의했다.
만약에 이게 성사된다면 로마로서는 미치고 환장할 일이다.
지중해의 남쪽 해안선이 전부 적으로 돌아서는 것이나 마찬가지니까 말이다.
그 영향력은 과거 카르타고에 필적, 아니 어떤 의미로는 그 이상일지도 몰랐다.
물론 로마의 현재 영향력도 포에니 전쟁 시절의 로마는 아니다.
하지만 동쪽의 폰투스와의 전쟁에서도 힘을 소모하고 있는 와중에 지중해 남쪽의 해안선이 전부 적으로 돌아선다면···.
그때는 로마가 더 이상 지중해의 패자라고 말하기도 어려워질 것이다.
“동맹에는 찬성합니다. 하지만···, 그 전에 지금 이집트가 침략해서 빼앗은 우리 누미디아의 영토를 모두 돌려줘야 겠습니다. 그릭 피해 보상을 요구합니다.”
주바 왕자는 이제 확실히 정신을 차린 것처럼 자신이 할 말을 또박또박 하기 시작했다.
“물론 영토의 할양에 관해서도 이집트의 협조적인 대답을 원합니다. 으음··. 타리아 공주? 거기에 대한 답을 듣고 싶습니다만?”
우진의 말에 클레오파트라는 고개를 끄덕이면서 말했다.
“우선 하고 싶은 말이 있습니다만····.”
“···········.”
“···········.”
우진과 주바 왕자의 이목이 모이자 클레오파트라의 말이 이어졌다.
“여러분들이 말하는 조건은 모두 합당한 것이며 저는 기꺼이 그 조건을 들어주고 싶습니다. 하지만 문제가 있습니다.”
“뭐가 문제란 말입니까?”
“제가 아직 아무 실권도 없는 그저 왕가의 공주의 한명일 뿐이라는 것입니다.”
“아····.”
우진은 잠시 깜빡 했던 사실을 깨달았다.
클레오파트라. 라는 워낙에 유명한 이름값 때문에 잠시 잊어 버렸지만 지금 이집트의 현 국왕은 프톨레마이우스 12세.
즉, 아울레테스인 것이다.
지금 눈앞에 있는 클레오파트라는 그의 딸일 뿐이었다.
“제가 여러분들의 조건을 들어주기 위해서는 제가 이집트의 여왕에 올라야 합니다. 그러나··. 지금 이집트 내부에서 저에게 협조적인 세력이라고 해 봐야. 키프로스 섬의 해군병력 정도입니다.”
“············.”
우진은 침묵했다.
사실 그것만으로도 대단한 것이었다. 지금 우진의 눈앞에 있는 클레오파트라의 나이는 대강 19살 정도?
그 정도로 보였다.
몇 살 때부터 준비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 나이에 그 정도의 기반을 갖췄다는 것이 대단했다.
============================ 작품 후기 ============================
클레오파트라 등장입니다.
예. 알고 있습니다. 클레오파트라가 원래 이 시기에는 4~5살 정도의 꼬마라는 것을.
예. 알고 있습니다. 실제로 클레오파트라의 미모에 관해서는 말이 많다는 것을.
하지만!!!!! 장르 소설인 이 로마의 혁명에서 실제로는 별로 안 예쁜 클레오파트라가 나온다거나. 아니면 꼬꼬마 클레오파트라가 나와서 오빠....
어? 이건 나름 괜찮을 지도?
어쨌든. 저는 안면에 철판 깔고 이렇게 보정을 했습니다.
여기에 역사 고증이니 뭐니 하면서 저를 괴롭히지 말아 주세요.ㅠㅠ항상 응원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더 좋은 글로 보답하기 위해서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즐감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