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로마의 혁명-94화 (94/220)

94화

<전쟁의 준비.>

백성들에게 화답을 하고 주바 왕자는 바로 우진과 함께 그 부하들이 기다리는 밀실로 향했다.

밀실에는 우진의 최고 측근이라고 할 수 있는 스파르타쿠스와 크릭서스, 그리고 아내이자 행정관인 디도가 함께 있었다.

디오클레이우스가 레기움의 방어를 위해서 여기 없으니 사실상 모일 수 있는 핵심 인물은 다 모였다고 봐도 좋았다.

“큼···. 전하, 우선 동맹에 관해서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저희 누미디아는···.”

“잠깐, 내가 먼저 말하지.”

백성들의 시선이 사라지자마자 우진은 재빨리 말을 놔버렸다.

“············.”

주바 왕자는 그 점에 관해서 지적은 하지 않았지만 그래도 기분이 좋아 보이지는 않았다.

우진은 우선 여기까지 따라온 오우메니우스를 보고 말했다.

“수고가 많았소 백작.”

“감사합니다. 전하.”

“큰 포상이 있을테니 자택에서 편히 쉬면서 기다리시··. 그 팔의 상처는 뭐요? 뭔가의 발톱 자국 같은데?”

우진은 문득 오우메니우스의 팔에 있는 사자의 발톱 자국을 보면서 말했다.

“아···, 이건 사자의 발톱 자국입니다. 이번에 좀 생겼습니다.”

“··············.”

“··············.”

“··············.”

‘동맹을 위한 사신으로 보냈는데 사자 발톱?’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어떻게 하면 저렇게 되는 건데?’

우진을 비롯한 스파르타쿠스와 크릭서스가 자신의 팔을 빤히 바라보자 오우메니우스는 그냥 피식 웃으면서 말했다.

“말하자면 깁니다. 그럼 전 이만····.”

남들 같으면 사자를 맨손으로 잡은 무용담을 자랑스럽게 말했을 것이다.

하지만 말을 길게 하는 성격이 아닌 오우메니우스였기에 그냥 그대로 물러나 버렸다.

“큼···. 어쨌든··. 주바 왕자. 우리 나라와의 동맹을 맺을 생각은 있소?”

우진의 말에 주바 왕자는 한숨을 쉬면서 말했다.

“·····이미 맺을 수 밖에 없게 만드시지 않았습니까?”

“음, 잘 됐군. 자세한 세부 사항은 우리가 이미 준비한 것이 있소. 읽고 마음에 들면 사인하시오.”

“···········.”

우진은 미리 디도가 준비한 동맹의 초안을 가져왔다.

1. 파라디소스와 누미디아는 앞으로 있을 로마와의 전쟁에서 서로 군사력을 합쳐서 공동으로 대응한다.

2. 현재 북아프리카의 로마 속주의 땅은 반으로 갈라서 반은 파라디소스가 반은 누미디아가 통치한다. (카르타고는 파라디소스가 소유한다.)

3. 파라디소스는 누미디아의 영토에 대한 통치권을 적극적으로 인정하고 절대로 내정에 간섭하지 않는다.

4. 누미디아는 파라디소스와의 교역에 있어서 세금을 완화 시켜서 활발한 상무역을 돕는다.

5. 두 국가 중에 한 국가가 먼저 위의 조약을 어기지 않는 이상 양국의 동맹은 영원히 지켜진다.

조약서를 다 읽은 주바 왕자는 곰곰이 생각하다가 말했다.

“········나쁘지는 않군요. 나쁘지는 않은데····.”

“뭔가 걸리는 것이라도 있소?”

“···다른건 상관 없습니다. 하지만. 두 번째 영토 분할에 관해서·····. 카르타고를 파라디소스가 소유한다는 것은 좀 지금 정하기에는 시기 상조가 아닙니까?”

로마의 경우도 그랬지만 카르타고라는 것은 나라의 이름이기도 했지만 도시의 이름이기도 했다.

로마의 수도가 로마인 것처럼 카르타고의 수도 역시 카르타고였던 것이다원래 도시국가에서 무역을 이용한 해상 제국이었던 카르타고의 도시는 지금도 북아프리카 최대의 도시였다.

거기를 파라디소스가 차지한다는 것은 역시 온전하게 북아프리카에서 손을 때지는 않겠다는 반증이었다.

누미디아의 입장에서는 자칫 잘못하면 또 다른 로마를 만들수도 있었다.

‘원래 카르타고의 지배를 받다가 로마의 지배를 받고, 이제는 다시 파라디소스? 절대 안 되지.’

시간이 촉박한 것은 알고 있지만 주바 왕자는 이 대목은 꼭 짚고 넘어가야 한다고 생각했다.

“거기에 관해서 불안하게 생각하는 이유는 대강 짐작이 가오. 아마도 우리가 또 북아프리카에서 당신들과 마찰을 일으킬 것을 경계하는 것이겠지.”

“·····사실 그렇습니다.”

우진의 직설적인 말에 살짝 당황했던 누바 왕자였지만 이내 정신 차리고 솔직하게 대답했다.

‘이왕 이렇게 된것····.’

주바 왕자는 이렇게 된 이상 애둘러 말하는 것 보다는 차라리 솔까말 모드로 들어가서 정면 돌파를 하기로 했다.

“우리 누미디아는 오랜 세월동안 북아프리카 전체에 퍼져 살면서도 강대국에 올라가지 못했습니다. 그 이유는 항상 카르타고나 로마가 북아프리카 전체를 컨트롤 하려고 했기 때문입니다.”

“···········.”

“우리는 더 이상 아프리카의 패권을 어딘가와 나눌 생각이 없습니다. 그러니 우리를 북 아프리카의 패자로 인정하려는 것이 아니라면···.”

“현재 로마 속령지 중에 남부. 그러니까 옛 카르타고의 곡창 지대는 모두 양보하겠소.”

갑작스럽게 말을 끊고 폭탄을 집어 던지는 우진을 보고 주바 왕자는 두 눈을 휘둥그레 뜨고 말했다.

“···········그게 정말입니까?”

“물론. 애당초···. 그대가 착각하고 있는게 있소.”

“····뭘 말입니까?”

“우리가 카르타고를 비롯한 북아프리카 일대의 영토를 원하는 것은 그 땅이 탐나서도, 아프리카 진출의 교두보를 원해서도 아니오.”

“그럼 무엇 때문입니까?”

“명분!!”

“·············?”

짧고 강하게 말하는 우진의 말에 주바 왕자는 그게 무슨 말이냐는 듯한 얼굴을 했다.

“간단하게 말해서···. 우리가 아프리카에서 로마를 몰아내고 누미디아를 우방으로 얻는 것은 좋은 일이지만···. 그것만 가지고는 군대를 움직이는 것에 백성들과 신하들이 납득하기 어려운 구석이 있소.”

“으음····.”

주바 왕자는 생각해 보니 그럴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파라디소스의 사정을 잘 모르는 주바 왕자의 오해였다.

기본적으로 파라디소스는 우진을 향한 절대적인 우상황가 이뤄져 있는 나라였다.

그래서 우진이 하자. 라고 하면 대부분의 사안은 좋다. 하자. 라고 따라온다.

물론 때로는 스파르타쿠스나 크릭서스등이 진언을 올리기는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우진을 염려하는 충심에서 나오는 진짜 진언이었다.

우진을 향해서 무조건 삐딱하게 반대만 하는 인간은 이 파라디소스에는 없었다.

함부로 그랬다가는 설사 작위를 가진 귀족이라고 해도 길에서 돌 맞기 딱 십상일 것이다.

어쨌든 주바 왕자가 납득을 한 것 같자 우진의 진실과 거짓이 교묘하게 믹스된 말이 흘러나왔다.

“알고 있겠지만 여기 내 아내를 포함해서 우리 파라디소스의 고위층의 상당수는 과거 카르타고의 후예들이오.”

“아···. 과연··. 아내셨군요.”

주바 왕자는 안 그래도 아까부터 조약서를 전해준 디도에게서 눈을 때기 어려웠다.

왕자로 태어나서 여자라면 부족하지 않은 인생을 살아온 주바 왕자로서도 이런 미인은 처음이었다.

하긴, 그 점을 알고 눈 깔아라. 라는 의미도 있는 우진이었지만 말이다.

“그렇게 카르타고의 후예들이 많은 우리 나라이기에 과거의 고토를 되찾기 위한 전쟁. 이라는 명분이 없으면 군을 움직이기가 힘드오.”

“·············.”

주바 왕자가 생각해 보니 우진의 주장에 빈틈이 없었다.

자신이 생각해도 충분히 그럴 것 같았다.

주바 왕자가 슬쩍 넘어간 것처럼 보이자 우진이 거기에 쇄기를 박기 시작했다.

“북 아프리카의 넓은 영토 전부를 원하는 것은 아니오. 우리 백성들을 납득시키기 위한 명분으로 카르타고의 고토를 원할 뿐이오.”

“·····남쪽의 곡창지대는 포기하는 겁니까?”

“우리 파라디소스도 식량이 아쉽지는 않소.”

“알겠습니다. 그렇다면···. 받아 들이겠습니다.”

결국 주바 왕자는 우진의 제안을 받아 들였다.

‘좋아···. 목줄은 달았군.’

우진은 그런 주바 왕자를 보면서 속으로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분명 우진은 북 아프리카의 영토는 별로 관심 없다.

애당초 북 아프리카는 그 넓은 면적에 비해서 비옥한 곡창지대는 일부에 불과하다.

과거 카르타고가 자연스럽게 해상제국으로 발달한 것도 외부로 뻗어나가지 않고는 국가의 발전을 꿰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니 우진도 북아프리카를 직접 통치하는 것 보다는 교역권을 확충 시키는 것 만으로도 이익은 충분했다.

하지만 굳이 카르타고를 포함한 북 아프리카 일부의 영토를 원한 것은···.

일종의 보험의 의미였다.

북 아프리카에서 로마를 몰아내고 그 후에 누미디아가 북 아프리카의 강대국이 된다고 해도···.

그 나라에게 휘둘리지 않으려며 최소한 북 아프리카에 연결된 거점을 가지고 있어야 했다.

만에 하나 적들이 시칠리아의 바닷길을 막아서 아프리카를 봉쇄하려고 하면 곤란하니 그때를 대비해서 상륙의 교두보가 될 지점이 필요한 것이다.

즉, 카르타고를 포함한 일분 땅을 원하는 것은 그런 의미였다.

개에게 달린 목줄, 만에 하나를 대비한 보험.

배신을 당했을 때는 100배로 갚아주기 위한···. 그런 만에 하나의 사태를 대비한 한 수일 뿐이었다.

“자, 그럼 조약은 성사 되었소.”

“감사합니다. 그럼, 지금 당장이라도 전 본국으로 돌아가서 얘기를 전하겠습니다.”

“알겠소. 그리고···, 우리 파라디소스의 군대도 본격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하겠소.”

“알겠습니다.”

그렇게 주바 왕자는 서둘러 뱃길을 이용해서 누미디아로 돌아갔다.

당일에 와서 하루 묵지도 않고 바로 보낸 것이다.

오늘 있었던 일이 로마에 들어가지 않게 하기 위해서 재빨리 움직여야 했다.

‘이제부터는 시간이 중요하다.’

로마군에게 연락이 가기 전에 재빨리 움직이는 것이 중요했다.

주바 왕자가 돌아가는 것을 배웅도 하지 않고 우진은 바로 국무회의를 소집했다.

“본 국무회의의 안건은 아프리카 정벌군의 조직이다. 할 말들이 많겠지만····. 전쟁에 관해서는 본 왕의 명령을 우선해 주기 바란다.”

촌각을 다투면서 움직여야 했다.

그러니 만큼 이럴때는 토론보다는 결단력을 중요하게 취급해야 했다.

“우선 출전자는 나와 오우메니우스 그리고 크릭서스 이렇게 세 명으로 하며 병력 규모는 중앙군 3만, 크릭서스 군단 1만, 오우메니우스 군단 5,000. 총 45,000의 군대로 움직인다.”

우진이 이렇게 말했을 때 스파르타쿠스가 손을 들고 말했다.

“전하. 전하께서 아프리카로 친정을 나가실 생각입니까?”

“그렇다. 무슨 문제라도 있나? 스파르타쿠스.”

스파르타쿠스는 우진의 말에 잠시 생각하다가 한숨을 쉬면서 말했다.

“아직 건국초에 국가의 왕이 없다면 불안해 할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러니···.”

“내가 없는 동안은 로마의 남부를 2년 동안 공포에 떨게 했던 카퓨아의 챔피언. 스파르타쿠스 그대가 이 나라를 다스려라.”

“····전하····?”

우진이 이렇게 파격적인 말을 할 줄은 몰랐던지 스파르타쿠스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스파르타쿠스가 생각하기로는 자신이 아프리카로 원정을 가고 우진은 여기서 로마를 견제하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런 파격적인 인사를 할 줄은 몰랐다.

하지만 놀란 스파르타쿠스가 정신을 차리기도 전에 우진의 말은 계속 되었다.

“또한, 만약에 내가 전쟁터에서 돌아오지 않게 된다면 스파르타쿠스 후작을 본 왕국의 다음 계승자로 임명할 것을 본 회의장에서 선언한다.”

“···············.”

“···············.”

“···············.”

우진의 말에 모두가 입을 쩍 벌렸다.

그 담대한 크릭서스 마저도 눈을 크게 뜨고 아무 말도 못하고 있었다.

지금 우진이 한 말은 실질적으로 자신의 다음 후계자로 스파르타쿠스를 지명한다는 것이다.

“마시르!!”

“예. 전하.”

“당장 나의 군대를 준비해라. 그리고 내가 없는 동안 나머지 중앙군은 스파르타쿠스 후작에게 지휘권을 이양함을 알려라.”

“예. 알겠습니다.”

“오우메니우스, 크릭서스.”

“···예. 전하.”

“부르셨습니까? 전하.”

“둘도 당장 자신들의 군단을 정비하라. 출정이다.”

“옛!! 전하!!”

“옛!! 전하!!”

일사천리로 일방적인 선언을 하고 난 후에 우진은 바로 회의장을 나가 버렸다.

뒤에 남은 자들은 서둘러 뛰쳐 나가서 원정군에게 필요한 배와 군량등을 수배하기 시작했다.

“전하!! 전하!!!”

우진은 한창 자신의 무기를 손질하다가 자신을 애타게 부르는 소리를 듣고 눈살을 찌푸렸다.

그리고 그 애타게 부르짖는 소리는 기어코 대답도 하지 않았는데 우진의 앞에 나타나 버리고 말았다.

“전하!! 아까전의 말씀은 도대체 어떻게 되신 겁니까? 저에게 어째서···?”

황당하다는 듯이 말을 잊지 못하고 있으면서도 뭔가 따지려는 듯이 우진을 찾아온 것은 스파르타쿠스였다.

“진정하지. 후작.”

“지금 진정 할 수 있을 것 같습니까? 아까 하신 말씀들은 도대체 무슨 의미이십니까?”

스파르타쿠스는 국무회의장에서 공식적으로 후계자 선언이나 다름 없는 말을 한 우진을 향한 질책이 다분했다.

“왜? 부담되나?”

“당연하지 않습니까? 무엇보다 경솔하게 그런 말을 한다고 해도 전하의 핏줄이 태어났을 때 지금의 발언이 두고두고 족쇄가 될지 모른다는 것을···.”

“그런 나중의 일 생각해서 뭐 하게?”

“·············.”

“내 핏줄? 아직 생기지도 않았어. 하지만 나라의 시국이 이러니 왕인 나는 수시로 나라를 비워서 전쟁터로 가야하지. 재수 없으면 언제 죽을지도 모르는게 사실이야.”

“·····그건····.”

“이런 상황에서 후계자를 명확하게 해두는 것이야 당연하지. 안 그런가?”

============================ 작품 후기 ============================

우진 : 진정하라고 스파르타쿠스. 그냥 만에 하나의 얘기야. 결코 사망 플레그가 아니야. 그냥 보험이라고 보험. 보험 알지?

스파르타쿠스 : 모르는데요?

우진 : 아... 이 시대에는 없구나.

지중해 전체 세력권 지도를... 아직 완성은 못했지만 그래도 일단 올리겠습니다.

작아서 안 보이시는 분은 제 뜰에 오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항상 응원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즐감하십시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