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2화
오우메니우스는 자신의 무력을 증명하기 위해서 제법 넓은 투기장에 나왔다.
투기장이라고 해도 관객석이 쭉 늘어져 있는 로마의 콜로세움하고는 달랐다.
50명 정도 밖에 앉을 자리가 없는 좁은 관객석.
그리고 통상의 아레나보다 반도 되지 않는 좁은 공간.
‘처형장이군.’
오우메니우스는 이 공간의 용도를 순식간에 파악했다.
실제 로마인들도 아레나를 투기장이나 경기장으로만 이용하는 것은 아니었다.
때로는 죄인을 검투사들의 앞에 집어 던져서 그가 살아남으면 무죄. 죽으면 유죄라는 식으로 심판을 하기도 했다.
명목이야. 신께서 굽어 살펴 진실이 올바른 자는 살아 남을 것이다···. 라는 개소리가 명분이었지만 그건 문자 그대로 그냥 명분일 뿐이었다.
진짜 이유는 그냥 죄인의 비참한 죽음을 보고 싶었던 것 뿐이었다.
아마 이 장소도 평소에는 비슷한 용도로 사용되고 있는 처형장일 것이다.
그때 관객석에서 주바 왕자가 일어나서 말했다.
“자, 오우메니우스. 파라디소스의 전사여. 지금부터 그대를 시험하겠네. 돌아가려면 지금뿐인데 어떻게 하겠나?”
“시간 낭비일 뿐입니다. 시작하시죠.”
“좋은 배짱이다. 그럼 선택권을 주지. 무기를 가지고 여럿을 상대하겠나? 아니면 맨손으로 하나를 상대하겠나?”
“····그게 무슨 말입니까?”
“자네의 선택을 물어보는 걸세. 자 대답은?”
“·············맨손으로 하겠습니다.”
오우메니우스는 맨손으로 하나를 상대하겠다고 골랐다.
그렇게 선택한 이유는 무기를 가지고 상대한다고 했을 때 주최측이 지급하는 무기에 장난이 섞여 있을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날이 없는 검을 준다거나, 썩은 나무로 만든 창을 준다거나···.
그런 식으로 무기에 장난을 쳐서 처형자의 승률을 한없이 낮추는 짓은 종종 있었다.
검투사들끼리의 시합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죄인을 처형하기 위한 방법일 뿐이었기 때문에 그런 수작을 부린 것이다.
여기서도 그런 방식을 쓰지 않는다는 보장은 없었다.
그래서 오우메니우스가 맨손을 고른 것이다.
하지만···.
“잘못된 선택이지····.”
“·········.”
주바 왕자는 오우메니우스를 보면서 고개를 저었다.
이 시험의 생존률은 최초의 선택지에서 갈린다.
차라리 날 없는 단검 하나라도 드는게 이득이었다.
‘이 시험을 맨손으로 살아남은 인간은 이제까지 다섯 명도 되지 않았다. 선택도 그대의 운이니 원망하지 마라.’
“들어오게 하라!!”
주바 왕자의 명령에 따라서 문이 열리고 오우메니우스의 상대가 들어오기 시작했다.
‘····이런.’
오우메니우스는 투기장에 나타난 자신의 상대를 보고 살짝 식은땀이 흘렀다.
이렇게 긴장하는 것은 실로 오랜만인 것 같았다.
사실···. 이제까지 별로 눈에 띄는 역할을 하지는 않았지만 오우메니우스는 우수한 전사였다.
한때 카퓨아에서는 적수가 없는 무적의 검투사였고, 스파르타쿠스의 반란 이후에도 간부로서 혁혁한 공을 세웠다.
스파르타쿠스가 작전을 짤 때, 크릭서스나 자신이 스페이스 에이스나 킹 같은 존재였다면 오우메니우스는 조커였다.
어느 역할에 가져다 놔도 일정 이상의 성과를 충분히 올리는 훌륭한 만능의 카드.
그게 오우메니우스라는 남자였다.
그가 이제까지 눈에 띄지 않은 것은 본인 스스로가 칸니쿠스타 카스투스처럼 전면에 나서서 마찰을 일으키는 성격이 아니었기 때문일 뿐이다.
오우메니우스라는 남자는 순수한 무력으로도 평범한 검투사 10명의 몫은 하는 그런 남자였다.
하지만····.
지금 눈앞에 있는 상대를 맨몸으로 상대한 것은 좀 그랬다.
300kg은 넘을 것 같은 거대한 덩치.
한 대 맞으면 인간의 두개골 정도는 우지직 하고 부서져 버릴 것 같은 육중한 앞발.
한번 물리면 그 순간 숨통이 끊어질게 확실한 날카로운 어금니.
“크르르르····.”
심지어 낮게 으르렁 거리는 소리를 들어보니 아무래도 상대는 많이 굶주린 것 같았다.
‘심기 불편하다 이거지····. 제길.’
지금 오우메니우스의 눈앞에 나타난 상대는 커다란 숫사자였다.
“크아아앙!!!”
“·········.”
숫사자의 포요에 오우메니우스는 전신에 짜릿하게 닭살이 돋았다.
사자, 더구나 지금 눈앞에 있는 것은 그냥 그런 사자도 아니다.
지금 오우메니우스의 앞에 나타난 것은 보통의 숫사자들 보다 훨씬 더 커다란 몸을 가지고 있고, 갈기도 전신의 반 이상을 뒤덮은 아종이었다.
현대에는 야생종이 완전히 전멸된 동물.
이른바 바버리 사자라는 놈이다.
호랑이 중에서 시베리아 호랑이가 가장 크고 용맹하다고 한다.
그럼 사자 중에는?
그 물음에 대한 답이 바로 이 놈이다.
사자 중에서도 최고로 큰 덩치와 강한 힘을 가지고 있는 사자.
그게 바로 바버리 사자였다.
“············.”
긴장하는 오우메니우스를 보고 주바 왕자는 속으로 생각했다.
‘네놈이 선택한 운명이다. 원망하려면 스스로를 원망해라.’
만약 오우메니우스가 검을 들고 여럿을 상대한다고 했다면 사자가 아니라 늑대 여러 마리를 풀어 놓을 생각이었다.
하지만 맨손으로 하나를 상대한다고 하면···.
그럼 이렇게 바버리 사자가 떡하니 나타난 것이다.
과거에 저 사자를 상대로 살아남은 자들은 네 명 뿐이었다.
하지만 그들은 모두 실력으로 살아 남은게 아니라 사자의 변덕으로 살아남은 자들이었다.
사자가 마침 사냥할 기분이 아니라서 그냥 흥미를 보이지 않았던 자.
혹은 여러 명을 집어 넣었는데 운이 좋아서 홀로 사자의 관심에서 벗어난 자도 있었다.
이제까지 저 사자를 상대로 살아남은 자들은 그런 자들뿐이었다.
죽고 살고가 오로지 사자의 변덕에만 달렸을 뿐.
실력으로 당당하게 저 사자를 이겨낸 인간은 아무도 없었다.
그리고····.
“크르르르르······.”
아무리 생각해도 이번에는 사자가 무척 배가 고픈 것 같았다.
‘끝났군. 운명에 버림 받았어.’
주바 왕자는 오우메니우스가 신에게 버림 받았다고 생각했다.
“후우우우·····.”
그때, 오우메니우스가 자세를 낮추면서 사자의 주변을 슬금슬금 맴돌기 시작했다.
‘호오···. 할 생각인건가?’
저 사자를 눈 앞에 두고도 전의를 잃지 않은것만 해도 놀랍다고 생각하는 주바 왕자였다.
주바왕자가 그런 생각을 하건 말건 오우메니우스의 집중력은 최고조로 올랐다.
‘맨손으로 상대하는 이상 정면으로는 절대 안된다···. 저 육중한 체중에 깔리는 순간 끝이야.’
오우메니우스는 차분하게 상황을 파악했다.
상대는 자신보다 체격도 크고 자신에게 없는 날카로운 이빨과 발톱이라는 무기도 가지고 있었다.
‘그나마 내가 우위에 서 있는 것은 속도 뿐인가?’
오우메니우스는 어떻게든 활로를 찾기 위해서 사자의 주변을 빙빙 맴돌았다.
하지만 그때···.
“크아아앙!!!”
바버리 사자가 크게 포효하면서 한걸음에 날아올랐다.
“크윽!!!”
오우메니우스는 재빨리 옆으로 굴러서 몸을 피했다.
재빨리 피했다고 생각했지만 화끈한 어깨의 통증이 느껴졌다.
날카로운 발톱의 자국과 함께 붉은 피가 그의 검은 피부를 타고 흘렀다.
사자의 발톱이 그의 살점을 한 움쿰 떼어낸 것이다. 거기다 아직 공격이 끝난 것도 아니었다.
“커허엉!!!”
사자는 그대로 허리를 휙 틀어서 다시 한번 오우메니우스에게 달려 들었다.
“칫!!”
오우메니우스는 바닥에 떨어져 있는 모래를 한움쿰 집어서 사자의 눈을 노리고 던졌다.
“카항!!”
사자는 이게 무슨 개수작이냐는 듯이 신경질을 내면서 몸을 날렸다.
그 순간.
오우메니우스는 몸을 낮추고 야구 선수가 헤드 슬라이딩을 하듯이 사자의 밑으로 파고 들어갔다.
촤아악!!
거친 모래와 자갈에 피부가 다 쓸렸지만 거기에 신경 쓸 시간이 없었다.
아슬아슬하게 사자의 공격을 머리위로 피한 오우메니우스는 그대로 몸을 일으켰다.
누워 있다가 사자가 또 달려들면 진짜 끝이었다.
“크르르···.”
자신의 공격이 두 번이나 빗나가자 사자는 아무래도 짜증이 난 것 같았다.
‘제길···. 이렇게 빠르단 말인가?’
오우메니우스는 착각하고 있었다.
그거야 그는 한 번도 사자를 상대로 싸워본 적이 없고 사자에 대한 상식도 없으니 한 착각이겠지만···.
저 거대한 동물은 고양이과의 맹수다.
흔히 사자하면 무겁고 난폭하다. 라는 이미지가 강하다.
하지만 덩치가 큰 사자라도 고양이과 특유의 운동신경이 어디로 가는 것은 아니다.
포유류 중에서 고양이과의 운동 신경은 거의 사기급이다.
탄력 있는 허리근육, 인간의 수십배에 달하는 순발력, 개과보다 훨씬 더 부드럽게 움직이는 관절의 유동성.
오우메니우스는 아프리카 출신의 흑인이었고 그의 몸 역시 인류라는 동물 중에는 최고 클래스의 명품이었다.
하지만, 아무리 그래봤자 인간.
사자와 운동 신경을 겨룬다는 것 자체가 무리였다.
우진이나 폼페이우스처럼 인간의 한계를 초월한 신체능력을 지니고 있다면 혹 모를까···.
오우메니우스에게 아직 그 정도의 능력은 없었다.
“후우우···. 후우우···.”
백전연마의 노련함을 가지고 있는 오우메니우스이기에 알았다.
자신은 맨손으로는 저 사자를 절대로 이길 수 없다는 것을 말이다.
승률은 아마도 5%미만일 것이다.
‘그렇지만····. 할 수밖에···.’
저 사자를 이겨야 누미디아를 아군으로 끌어 들일 수 있었다.
그리고 아까 자신이 한 말도 여기서 포기하는 것을 용납하지 않았다.
저까짓 사자 한 마리를 이기지 못하고 어떻게 거대한 로마를 이긴단 말인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딱 한번··. 딱 한번만이 기회다.’
포기를 모르는 오우메니우스는 유능한 전사였다.
그래서 핀치 속에서도 저 사자를 이길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을 생각했다.
“크르르르····.”
사자는 자신의 공격을 두 번이나 피한 상대를 다시 한 번 잡기 위해서 이번에는 서서히 거리를 좁혔다.
사자는 여유만만 했다.
저 눈앞에 있는 인간이라는 종류의 먹잇감은 몇 번이고 사냥해 봤다.
자신을 상처 입힐 이빨도 발톱도 없는 연약한 생물일 뿐이다.
발톱을 한 번 휘두르고 어금니를 밖아 넣기만 하면 된다.
적에게는 자신을 공격할 수단이 없으니까 말이다.
“크아앙!!!”
사자는 다시 한 번 거칠게 포효하면서 오우메니우스를 좁혔다.
오우메니우스는 그런 사자의 공격을 이번에는 옆으로 피하지 않았다.
아래로 슬라이딩 하면서 빠져 나가지도 않았다.
이번에 그가 선택한 방향은····.
“핫!!!”
위로 있는 힘껏 점프한 오우메니우스는 그대로 사자의 머리위를 점했다.
이제 그 상태로 사자의 등에··, 더 정확하게 말하면 목위에 올라타는 것에 성공한 것이다.
“크아아앙!!!”
사자는 자신의 몸위에 올라탄 오우메니우스를 공격하려고 했지만 그 전에 오우메니우스의 공격이 먼저였다.
확실히··.
오우메니우스에게는 사자를 물어뜯을 이빨도, 날카로운 발톱도 없다.
하지만 인간의 지혜는 인간의 몸을 무기로 바꾸는 기술을 연구해냈다.
예를 들면 이런····.
“잡았다!!!”
조르기를 말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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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우메니우스 : 사자 네 이놈!!!
사자 : 안 내려? 네가 매미냐?
항상 응원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즐감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