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1화
오우메니우스는 고개를 돌려서 인상을 찌푸리면서 헤임프살2세에게 말했다.
그러자 히엠프살2세가 오우메니우스를 보면서 말했다.
“이상한게 있어서 묻겠네? 자제는 우리 누미디아의 힘을 빌리기 위해서 찾아왔던 것이지? 아닌가?”
“아니요. 틀리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어째서 한마디 설득도 없이 그대로 등을 돌리는 건가? 무슨 다른 꿍꿍이라도 있는건가?”
히엠프살2세의 말을 들은 오우메니우스는 한숨을 내쉬면서 말했다.
“확실히···, 저는 저희 국왕전하의 명령을 받고 누미디아의 힘을 빌리기 위해서 왔습니다.”
“그런데?”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누미디아의 국왕이시라는 분이 이렇게까지 뼈속 깊이 패배감에 물든 패배자 나부랭이라고는 생각도 못했습니다.”
“뭐라고!!?”
히엠프살2세는 두 눈을 부릅떴다.
그런 히엠프살2세를 보면서 오우메니우스는 차가운 눈으로 말했다.
“잘 못들으신 모양입니다만···. 그렇다면 다시 한 번 말씀 드리겠습니다. 전 누미디아의 국왕 전하이신 히엠프살2세께서 이런 패배자에 열등감에 물든 로마의 개에 불과한 줄은 꿈에도 몰랐습니다.”
“···········.”
히엠프살2세는 수염이 부들부들 떨릴 정도로 분노에 몸을 떨고 있었다.
아무리 약소국이라고 해도 엄연한 일국의 국왕이다. 로마의 총독이라고 할지라도 그에게 면전에서 이런 모독을 주지는 못했다.
그런데 저 신흥국가의 일개 사신이 자신에게 패배자라는 모독을 할 것이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오우메니우스는 자기 할 말을 다 했다.
“본국에 가서 전하겠습니다. 아쉽게도, 누미디아는 전력적으로 아무 쓸모가 없는 패배자일 뿐이다. 라고 말입니다.”
“감히····. 감히 그따위로 지껄이고 여기서 살아서 돌아 갈 수 있을 것 같으냐?”
히엠프살2세가 손을 들어 올리자 주변에 숨어있던 누미디아 왕실의 근위병들이 나타났다.
“감히····. 일국의 국왕을 그렇게 모독하고 살아 남을 수 있다고 생각했나? 간도 크군.”
“모독이라? 사실을 말하는 것도 모독이 될 수 있는 줄은 몰랐습니다.”
오우메니우스는 작정을 한 것처럼 빈정 거렸다.
평소 파라디소스에서 보여주던 과묵하고 존재감이 희박한 인물과 동일 인물이 맞는지 의심 스러울 정도로 과격한 발언을 연발한 것이다.
아무리 히엠프살2세가 죽어 지내는 왕이라고 해도 면전에서 이런 모독을 당하고 그냥 있을수는 없었다.
“여봐라!! 지금 당장 저 무례한을 꿇어 엎드리게 하라!!!”
히엠프살2세의 명령에 근위병들이 오우메니우스와 그 일행을 잡아서 무릎을 꿇이려고 했다.
하지만 그 전에 오우메니우스의 움직임이 더 빨랐다.
한걸음에 적에게 달려간 오우메니우스는 능숙하게 상대의 창의 날잡이 부분을 잡았다.
“어···? 어어?”
“어리버리 하기는····.”
오우메니우스는 그대로 당황하는 적의 창을 빼앗아서 역으로 창의 자루 부분으로 목을 찍어 버렸다.
“커억···.”
그리고 그대로 창을 빙글 휘둘러서 좌우에 있던 이들의 손목을 쳐서 검을 떨어 트렸다.
오우메니우스는 그 중에 한 자루는 자신이 줍고 나머지는 뒤로 던져서 부하들에게 줬다.
부하들 역시 오우메니우스가 던진 칼과 창을 잡고 능숙하게 자세를 잡았다.
다른 부하들 역시 맨손이었지만 전혀 기죽지 않고 근위병들을 보면서 몸을 풀고 있었다.
“네···. 네놈들···. 보통 사신단이 아니구나?”
당황하는 히엠프살2세를 보고 오우메니우스가 말했다.
“예전에는 저 역시 카퓨아에서 100전 무패를 자랑하던 검투사였습니다. 그리고 저 친구들 역시 최소 50전 이상씩은 사선을 넘어온 아레나의 전사들이죠.”
“·····그거 대단하군. 하지만···.”
히엠프살2세가 손을 들자 근위병들이 빼곡하게 오우메니우스를 둘러쌌다.
그 상태로 히엠프살2세가 말했다.
“하지만 아무리 용맹한 검투사들이라고 해도 이 숫자에는 어떻게 할 텐가? 이길 수 있다는 말인가?”
오우메니우스가 언 듯 둘러보니 적들은 못해도 200이 넘어 보였다.
그리고 대답했다.
“무리군요. 아마 죽겠죠. 저도 제 부하들도 아마 죽음을 면치 못할 겁니다.”
“그렇다면 왜 아직도 손에 무기를 들고 있나?”
히엠프살2세의 물음에 오우메니우스는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
“우리 파라디소스의 전사들은 이길 수 없다고 꽁무늬를 빼는 패배자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오우메니우스의 말에 그의 부하들은 당연하다는 듯이 당당하게 가슴을 폈다.
그리고 거기에 비례해서 히엠프살2세는 눈살을 찌푸렸다.
로마를 향한 도전이 무모하다고 말한 자신에게 비꼬면서 말하는 것이나 다름 없었기 때문이다.
오우메니우스는 거기에 그치지 않고 계속해서 말했다.
“국왕 전하에게는 이렇게 용맹한 병사들이 있고, 또 광대한 토지와 신명을 다하는 백성들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신께서는 로마를 두려워 하고 있습니다. 그걸 패배자라고 하지 않으면 뭐라고 할까요?”
“알지도 못하면서 멋대로 지껄이지 마라!! 로마는···.”
“로마는 강대하다.”
“··········.”
“입니까?”
“··········.”
아무 말도 하지 못하는 히엠프살2세에게 오우메니우스의 매도가 이어졌다.
“전 그저 검투사 노예 80여명과 함께 시작해서 2년이 넘는 시간동안 로마 본토를 휘저은 남자를 알고 있습니다.”
스파르타쿠스를 말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역시 소수의 동료만 가지고 시칠리아를 재패하고 로마까지 진격했던 남자도 알고 있습니다.”
우진을 말하는 것이었다.
“그 둘은 히엠프살2세 당신에 비해서 아무것도···. 아무것도 없이 시작했습니다. 그야말로 맨주먹 하나로 시작해서 로마를 공포에 떨게 했습니다.”
“··············.”
히엠프살2세의 얼굴은 사정없이 일그러 졌다.
오우메니우스의 말 한 마디 한 마디가 그의 자존심을 사정없이 긁었기 때문이다.
“하려고 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법. 승산이 없다. 적이 너무 강하다. 보통 그런식으로 생각하는 머저리들은 아레나에서 가장 먼저 죽어나가는 병신들이죠.”
“·····감히····. 감히, 진정, 살아서 돌아갈 생각은 없단 말이지····.”
이를 갈면서 말하는 히엠프살2세에게 오우메니우스가 무기를 고쳐 잡으면서 말했다.
“해 보시죠. 제 부하들과 함께라면 지금 여기 있는 근위병들 중에·····.”
오우메니우스는 주변을 스윽 둘러 보면서 말했다.
“반 이상은 저승길 동무로 데리고 가 드리죠.”
그렇게 말하는 오우메니우스의 눈은 살기로 번뜩였다.
순간 그를 보고 있던 히엠프살2세의 눈에 한 마리의 굶주린 흑표범의 잔상이 보이는 것 같았다.
오우메니우스의 부하들 역시 숙일 생각은 조금도 없는 것처럼 단호하게 싸울 태세를 갖췄다.
“····칫, 죽여···.”
“잠깐!!!”
히엠프살2세가 병사들에게 명령을 내리려는 순간.
한명의 남자가 대전의 안으로 들어왔다.
“아버지. 아무리 상대가 무례하다고 해도 일국의 사신을 이렇게 죽이는 것은 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만····.”
안으로 들어온 남자는 이제 막 18? 아니 17살 정도 되었을까 싶은 어린 청년이었다.
“주바. 네가 여기에는 어떻게····.”
“근위병들이 한곳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는 말을 듣고 찾아왔습니다. 아버지···. 군사를 물리시지요.”
“으음····. 사정은 잘 알고 그러는 것이냐?”
“알고 있습니다. 처음부터 숨어 있었으니까요.”
“그렇다면···.”
“아버지!!!”
“·········.”
“일국의 국왕이라면 체면을 목숨보다 중요하게 여겨야 하는 것은 맞습니다. 하지만, 지금 저들의 손을 쳐내지 못하면 우리는 영원히 로마의 그늘에서 살아야 할 것입니다.”
“···········.”
두 부자의 대화를 들으면서 오우메니우스는 뜻밖이라는 듯한 얼굴을 했다.
‘저 아들 쪽이 훨씬 더 기골이 있군. 그리고···. 기세에서도 현 국왕인 아버지가 밀리고 있어. 어느 정도 실권이 있다는 말이군.’
오우메니우스의 말대로였다.
지금 나타난 히엠프살2세의 아들이야 말로 주바1세.
실제의 역사에서 누미디아 왕국에서 로마를 향한 마지막 반격의 불꽃을 태워낸 국왕이었다.
비록 그의 뜻은 시저라는 거물을 넘지 못해서 좌절 되었고, 그의 아들은 로마의 충실한 추종자로 자라서 나라를 로마에 바쳤지만····.
그래도 마지막으로 누미디아의 왕다운 왕이었던 남자가 바로 지금 이 청년이었던 것이다.
“오우메니우스라고 했지? 내가 이 누미디아의 후계자 주바라고 한다.”
“처음 뵙겠습니다.”
“처음부터 봤는데 제법 배짱이 좋더군. 일국의 왕을 앞에 두고 그렇게 나불거리는 것도 배짱은 배짱이지.”
“············.”
오우메니우스는 섣불리 대답하지 않았다.
이 어린 청년은 이제까지 상대하고 있던 히엠프살2세보다 훨씬 더 그릇이 커 보였다.
섣불리 빈틈을 보였다가는 크게 손해를 볼 것만 같은···. 그런 느낌이 강하게 드는 남자였다.
“확실히···. 이제 슬슬 로마의 그늘에서 벗어나기게 적당한 시기인지도 모르지.”
“주바야!!”
아들의 청천벽력 같은 말에 히엠프살2세는 크게 소리쳤다.
하지만 아버지의 심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아들은 계속해서 말을 이어갔다.
“아버지···, 지금이 가장 큰 기회입니다. 우리 나라의 서쪽에 있는 마우리타니아는 동서로 갈라져서 서로 견제하고 있고, 동쪽의 이집트 역시 왕가의 알력 다툼으로 로마에 아부하기 바쁩니다.”
“············.”
오우메니우스는 살짝 놀랐다.
로마의 속국으로 전락한 지금의 누미디아에서···. 국왕도 아닌 그저 왕자일 뿐이 주바가 저렇게 주변의 정세를 눈여겨보고 있었다는 것은····.
‘이미 로마에 싸울 생각을 하고 있었던 것이구나.’
오우메니우스의 말대로 주바는 자신의 어린 시절부터 로마에 착취당하는 조국을 못마땅하게 여겼다.
그리고 언젠가는 로마를 몰아내고 북아프리카의 패자로 군림하겠다는 야망을 품으면서 자라났다.
그런 아들을 보는 히엠프살2세의 눈은 물가에 내 놓은 아이를 보는 것처럼 불안감이 가득했다.
그는 자신의 아들이 로마에 맞서서 대항하다가 유구르타의 전철을 밟지 않을까 걱정되는 것이었다.
“하지만 아들아. 아무리 북 아프리카의 다른 나라들이 혼란스럽다고 해도, 우리 나라 역시 그리 안정적인 상황은 아니다.”
“그거야 그렇지요···. 로마에 직접적으로 가장 많은 갈취를 당하고 있는게 우리 누미디아니까요.”
그렇게 말하는 주바 왕자의 눈에는 아버지를 향한 질책이 살짝 섞여 있었다.
로마의 충실한 꼭두각시 노릇을 하면서 국력을 하루하루 쇄하게 하고 있는 원흉이 바로 자신의 아버지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미우나 고우나 자신의 아버지였다.
그를 책망하는 것은 주바 왕자에게도 불가능 했다.
“아버지, 정 그러면 저 남자를 한 번 시험해 보는게 어떻겠습니까?”
주바 왕자의 말에 히엠프살2세는 눈살을 찌푸리면서 말했다.
“시험이라니? 뭘 어떻게 말이냐?”
“저 남자는 스스로 마음 먹으면 5,000정도의 군대는 움직일 수 있는 장군이라고 했습니다. 그 말은 틀림 없는가?”
“저희 나라와 국왕 전하의 이름을 걸고 저에게 내려진 권한은 진실입니다.”
“좋아···. 그렇다면 그대를 시험함으로서 파라디소스라는 나라의 국력의 척도를 슬쩍 눈여겨 볼 수 있겠군. 아닌가?”
“······저희 나라에 저 보다 용맹한 전사는 얼마든지 있습니다.”
“그래서?”
“하지만 시험해 보신다면 피하지는 않겠습니다.”
“····좋군. 미리 말해두겠는데··. 실패하면 죽음은 당연한 시험이네.”
“받아 들이죠.”
그렇게 해서···.
얘기가 이상야릇하게 꼬여서 파라디소스와 누미디아의 동맹이 성사되느냐 마느냐는 오우메니우스가 주바 왕자의 시험을 통과 하느냐? 마느냐?로 갈리게 되었다.
·····좀 이상하기는 하지만 고대 그리스 시대에만 해도 이런 일들은 종종 있었다고 한다.
============================ 작품 후기 ============================
히엠프살2세와 주바1세에 관한 부자 관계는 100%제 상상입니다.
사실 자료가 미약하게 남아 있을뿐. 이들의 성격에 관해서는 남아있는게 아무것도 없습니다. 하지만 제 작품의 성격상.
로마에 고분고분했던 히엠프살2세 보다는 로마에 반란을 일으켜서 시저에게 도전했던 주바1세가 더 진취적이고 뛰어난 인물로 설정했습니다.
사실 결과론으로만 보면 실제 역사에서는 히엠프살2세가 더 현명했을 수도 있습니다.
여러분들의 응원은 작가에게 큰 힘이 됩니다.
그럼 즐감하십시오.^^
PS. 복귀 이후로 순위가 떨어졌어요.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