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화
갑작스럽게 누미디아 왕국의 수도에 모습을 드러낸 오우메니우스.
상황이 이렇게 된 것을 설명하기 위해서는 먼저 시간으 살짝 돌려 봐야 한다.
파라디소스의 수도 시라쿠사.
거기에 우진을 비롯해서 파라디소스의 주역들이 모두 모여서 비밀리에 회의를 가졌다.
“아무리 생각해도···. 아프리카로 무작정 상륙을 하는 것은 자살행위에 가깝습니다.”
스파르타쿠스의 말에 우진을 포함한 모두가 동의하고 있었다.
“하지만 아프리카에 우리의 아군이 있다면 얘기는 달라질 지도 모릅니다.”
스파르타쿠스는 그렇게 말하면서 한명의 남자를 회의실로 들어오게 했다.
그 남자는 들어오자 마자 우진에게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시스쿠네라고 합니다. 누미디아 출신입니다.”
우진은 들어온 남자의 소개를 듣고 눈을 반짝였다.
“이 친구는 제 부하로 있던 자로 원래는 누미디아의 자유민이었지만 빚을 져서 노예가 되었던 자입니다.”
스파르타쿠스의 소개를 듣고 우진은 고개를 끄덕이면서 말했다.
“누미디아의 사정을 잘 알겠군.”
“그렇습니다. 시스쿠네. 지금부터 우리가 묻는 질문에 성실하게 대답해 주게.”
“예. 알겠습니다.”
“현제 누미디아의 군사력은 어느 정도인가? 북아프리카의 로마 속주를 상대할 만 한가?”
스파르타쿠스의 질문에 시스쿠네는 고개를 저으면서 말했다.
“군사력을 운운하기 이전에···. 누미디아의 왕실은 로마에 맞선다는 생각 자체를 하지 않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이 전의 유쿠르스의 전쟁에서 패배가 컷기 때문입니다. 현 국왕 역시 로마가 쉬운 인물을 꼭두각시로 세웠을 뿐. 누미디아의 백성들은 로마에 착취당하면서도 아무 말도 못하고 있습니다.”
설명을 들은 우진은 아련하게 한줄기 희망을 본 것 같았다.
‘듣고 보니 일제에 식민지로 떨어진 조선 같은 취급인건가? 그렇다면 저항 세력이 있을 지도···.’
비록 지금은 로마의 세력이 너무 커서 드러나지 않고 있겠지만 저항 세력은 틀림없이 있다고 생각하는 우진이었다.
“시스쿠네. 하나만 더 물어 보겠네. 만약 인간을 몰래 보네서 누미디아의 왕국과 접선하려고 한다면 그게 가능하겠나?”
“·····몇 명 정도를 생각하시는 겁니까?”
“상선 하나에 태울 정도면 충분해. 사신으로 보내는 것이니 말이야.”
“············.”
망설이는 시스쿠네를 보면서 우진이 말을 이었다.
“만약 자네가 원한다면 그 일행 속에 자네를 포함시켜 주지. 원한다면 얼마간의 재산을 줄 테니 자네의 고향으로 돌아가도 좋아.”
우진의 말에 시스쿠네는 잠시 흔들리는 눈동자를 하고 있다가 말을 이었다.
“·····제 고향에 가면 제 아들과 아내가 있습니다.”
“떠난다고 해도 비난은 하지 않아. 내가 한 말은 지키겠네.”
우진의 말에 시스쿠네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가능하면···. 그 둘을 데리고 이 파라디소스에서 살 수 있게 해 주시지 않겠습니까?”
시스쿠네의 말은 뜻 밖에도 가족이 있는 고향으로 가는게 아니라 가족을 제2의 나라가 된 이 파라디소스로 데리고 오고 싶다는 것이었다.
그 말을 들은 우진과 다른 간부들은 고개를 끄덕이며 미소를 지었다.
“전폭적으로 협력해 주지. 그럼. 자네에게 뱃길을 맡기면 누미디아의 왕가와 접선을 하는것에 도움이 되겠나?”
“맡겨 주십시오. 전 수도인 키르타 출신입니다. 거기에 가면 제가 아는 사람들도 충분히 있습니다.”
“고맙군. 일단 물러나 있게.”
“예. 알겠습니다.”
우진은 시스쿠네를 뒤로 물리고 간부들과 다시 토론했다.
“자, 이제 대강의 길은 보이는 것 같군. 좀 좁고 희미한 길이지만 말이야.”
우진의 말에 스파르타쿠스는 고개를 끄덕이면서 말했다.
“누미디아를 끌어 들여서 우리들의 상륙을 돕는다면···. 아프리카에서 로마인들을 몰아내는 것도 불가능은 아닙니다.”
“그렇지····. 그럼 사신으로 누구를 보내느냐 하는것인데····. 역시 가장 성의를 보이기 위해서는 그만큼 비중있는···.”
“안 됩니다.”
“안 됩니다.”
“안 됩니다.”
“···········.”
우진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모든 신하들이 입을 모아서 안된다고 말했다.
“······나 아직 말 다하지도 않았는데?”
무엄하게도 일국의 국왕의 말 허리를 댕강 잘라버린 신하들을 향해서 우진이 눈을 가늘게 뜨고 바라보면서 말했다.
그러자 크릭서스가 입을 열었다.
“단순한 제가 생각해도 그 뒤에 무슨 말이 나올지는 뻔합니다. 보나마나 국왕 전하 스스로가 사신으로 가겠다는 말 아닙니까?”
“·····뭐, 그렇지.”
파라디소스 최고의 저돌성과 단순함을 보이는 크릭서스가 눈치 챌 정도라는 사실에 우진은 조금 풀이 죽었다.
“전하는 이제 일국의 국왕입니다. 예전처럼 혼자서 멋대로 움직이면 안 된단 말입니다.”
“전하의 옥체에 무슨 일이 생기면 그게 얼마나 큰 파장을 일으킬 줄 아십니까?”
“얌전히 왕궁에서 왕비님들과 후사 만들기에 집중해 주십시오. 농담 아닙니다. 현 단계에서 그게 왕의 업무(?)중에 가장 중요하단 말입니다.”
아무래도 신흥국가이고 대부분의 간부들도 어린 시절부터 예절 교육을 받은 귀족들도 아니다 보니···.
회의 중간 중간에 예의 보다는 과격함과 진솔함이 고개를 불쑥 불쑥 내밀고는 했다.
하지만 신하들 대부분이 우진을 중요하게 생각?고 있다는 것은 확실히 알수 있었다.
“그럼····. 사신으로는 누가 살 텐가?”
우진의 말에 오우메니우스가 앞으로 나왔다.
“가능하면 제가 가서 얘기를 해 보겠습니다.”
“오우메니우스 백작이·····?”
우진은 살짝 눈을 반짝였다.
오우메니우스, 역사적으로 이름은 남아 있다. 하지만 원래 그의 역사적으로 남아있는 진실은 스파르타쿠스 반란군의 간부였고, 초중반에 죽었다는 사실 정도가 다였다.
그 죽은 시점도 기록이 뒤죽박죽이기는 하지만 어쨌든 가장 오랫동안 살아 남았다는 기록이라고 해 봐야 크릭서스와 함께 죽었다. 라는 기록이 다였다.
하지만 그런 그가 아직까지 살아남아서 파라디소스에서 병력을 이끄는 간부로 남아 있는 것은 역시 우진 때문에 변한 역사의 결과가 아닐까 한다.
어쨌든···, 우진이 백작의 위에 올려 놓은 것을 봐서도 알다 시피 오우메니우스를 제법 유능한 인간이었다.
무력도 제법 있었고, 부하들에게 인망도 두터웠다. 무엇보다 우진이 높게 평가한 것은 그의 부동심이었다.
이번 회의장에서 오우메니우스가 입을 연 것은 처음이었다. 하지만 그게 놀랍지는 않았다.
원래 오우메니우스는 입이 무겁고 과묵하며, 주어진 일을 묵묵하고 안정감 있게 수행하는 그런 남자였다.
화려하게 눈에 띄는 남자는 아니지만 그래도 묵묵하게 제 몫을 다하는 남자.
우진은 속으로 그를 돌부처라고 불렀다.
“흠····, 백작이 사신이라···, 임무의 내용은 대강 들어서 알겠지만 누미디아를 우리 편으로 끌어 들이는 것이오. 할 수 있겠소?”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
우진은 눈을 지그시 감고 생각했다.
오우메니우스의 능력은 믿을 수 있다. 하지만 약간 불안한 것은 그가 상대적으로 무명인 것이다.
지금 파라디소스에서 대외적으로 유명한 것은 우진을 빼고는···.
스파르타쿠스.
디오클레이우스.
그리고 크릭서스.
이 정도가 다였다.
나머지 사람들은 상대적으로 지명도가 약했다.
동맹의 제의를 위해서 보내는 사신을 그 나름대로 이름의 값이 없으면 상대에게 가볍게 보이기 쉬운 법이다.
‘오우메니우스로는 좀 약하지 않을까?’
우진은 그 점이 약간 망설여졌다. 그때 고민하는 우진에게 스파르타쿠스가 말했다.
“전하, 오우메니우스에게 한 번 맡겨 보시죠?”
“········괜찮다고 보나?”
“어차피 다른 사람도 없지 않습니까?”
“끄응·····.”
스파르타쿠스의 말 대로였다.
우진은 국왕이라서 안 되고, 디오클레이우스는 레기움을 지켜야 했다.
그리고 스파르타쿠스와 크릭서스는 자신들의 군단을 정예화 시키기 위한 훈련에 박차를 가하고 있었다.
간니쿠스나 카스투스를 보내자니 아직 그 둘에게 신뢰가 가지 않았다.
결국 시점을 바꿔서 하나하나 소거법으로 지워가고 나니··.
‘남는건 이 돌부처 친구 뿐이군. 어쩔 수 없지.’
우진은 오우메니우스에게 정식으로 명령을 내렸다.
“오우메니우스.”
“예. 전하.”
“그대에게 누미디아의 사신으로 가서 그들을 아군으로 만들 임무를 내리겠다. 자세한 조건의 제시는 현장에서 그대의 재량에 따라서 일임하겠다.”
“예. 알겠습니다. 전하.”
그렇게 해서 오우메니우스는 상선을 위장한 배 한척에 의지해서 누미디아로 향하게 된 것이다.
로마의 시저도, 그리고 파라디소스의 우진도···.
아프리카 공략을 위해서는 누미디아를 자신의 편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것을 똑바로 자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렇게 누미디아에 도착한 오우메니우스는 상당한 뇌물을 써서 누미디아의 국왕을 만나는 것에는 성공했다.
중요한 것은 이제부터의 일인 것이다.
“파라디소스의 오우메니우스라····. 처음 듣는 이름이군.”
히엠프살 2세는 일단 오우메니우스라는 이름에 생소함을 느꼈다.
그리고 별로 유명하지 않은 인물이라는 생각이 들자 자연스럽게 자신의 밑으로 바라보는 시선이 생겨난 것이다.
거기에 오우메니우스는 동요하지 않고 자신의 위치를 설명했다.
“일단은 백작의 위치를 가지고 있으며 제 개인의 독단으로도 5,000의 병력은 움직일 수 있습니다.”
“···흐음····.”
백작의 작위에 관해서는 알 길이 없는 히엠프살2세였다.
하지만 독단으로 5,000의 군사를 움직일 수 있다는 얘기는 조금 귀에 강하게 들어왔다.
그만한 병력이면 그냥 단순 보병이라고 생각해도 상당한 현재 누미디아 전체 병력의 4분의1정도에 해당하는 전력인 것이다.
“그래, 그럼 부를 때는 뭐라고 부르면 되는가?”
“오우메니우스 백작, 혹은 그냥 백작이라고 작위를 불러 주십시오.”
“알겠네. 그럼 백작, 우리 나라에 비밀리에 온 이유는 뭔가?”
“로마를 아프리카에서 밀어내기 위해서 누미디아의 힘을 빌리고자 왔습니다.”
“·····로마를 몰아낸다라고·····.”
히엠프살 2세는 쓴웃음을 절로 지었다.
그에게 있어서 지금 오우메니우스가 하는 말은 꿈속의 꿈으로 밖에는 들리지 않았다.
저 거대한 강대국인 로마와 싸운다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었다.
카르타고의 한니발 이후로 북아프리카의 국가들은 더 이상 로마에 반항하는 것을 그만뒀다.
그만두고 로마에서 주는 작은 안식과 최소한의 권리에 길들여져 버린 것이다.
일국의 국왕인 히엠프살2세 마저도 거기에 예외는 아니었다.
“못 들은 걸로 하겠네. 자네들의 몽상에 우리 누미디아의 국운을 걸 수는 없어.”
“몽상·····. 이라고 하셨습니까?”
오우메니우스의 목소리는 가늘게 떨리고 있었다. 그 점을 눈치채지 못한 히엠프살2세는 오우메니우스에게 푸념하듯이 말을 늘어놨다.
“로마를 쓰러트린다? 말은 쉽지····. 말로는 저 올리푸스의 신들도 굽어 볼 수 있을 걸세.”
“···········.”
“하지만, 결국에는 불가능한 것은 불가능 한 것이야. 그걸 인정하지 않으면 세상을 살 수 없어.”
“···········.”
“로마는 쓰러트릴 수 없네. 설령 그 광대한 토지와 그 토지에서 나오는 인구, 물자. 그리고 그 징글 맞은 나라는 항상 마리우스나 술라 같은 괴물들이 태어나서 득실거리지····. 자네는 그들이 얼마나 무서운지 알기는 아는가?”
“··········.”
“우리 누미디아는 지금의 작은 평화에 만족하고 있네. 그러니 우리를 전란으로 끌어들이지 말게.”
“·········.”
“자네를 그냥 얌전히 돌려보내는 것이····. 그것이 내가 로마에 무모하게 맞서고 있는 자네들에게 할 수 있는 유일한 지원이 될 걸세.”
“·········.”
“그럼 돌아가게.”
이제까지 얌전히 말을 듣고만 있던 오우메니우스를 향해서 히엠프살2세는 축객령을 내렸다.
그런 헤임프살2세의 축객령에 오우메니우스는 주저없이 등을 돌리고 발길을 돌렸다.
“···········?”
인사조차 하지 않고 그대로 등을 돌리고 떠나는 오우메니수의 모습에 히엠프살2세는 되려 어리둥절해 졌다.
인사도 하지 않고 돌아가는 무례는 둘째 치고···. 일국의 사신이라면 자신의 목적을 위해서 최선을 다해서 혓바닥을 놀리는게 정상이다.
그런데 오우메니우스는 마치 이 자리에 더 있기도 싫다는 듯이 불쾌한 기색으로 돌아가려고 하고 있다.
이건 히엠프살2세가 알고 있는 사신들하고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잠깐!! 거기 서보게.”
“····부르셨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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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우메니우스 : 짜증나게 왜 불러?
항상 응원해 주시는 분들에게 감사드립니다.
즐감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