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4화
<모로 가도 도로 가도 로마로 가면 된다.>
크라수스의 얼굴에 어떻게 한 거냐? 라는 표정이 떠 올라 있자 시저는 피식 웃으면서 설명했다.
“최초에 오른편으로 멀리 돌면서 원거리 공격에 주력했던 궁전차 기억하십니까?”
“그래. 기억하고 있네.”
“기병대는 거기서 나온 겁니다.”
“·····설마? 어떻게·····?”
의아해 하는 크라수스에게 시저의 설명이 이어졌다.
“그 궁전차들은 한차례 공격을 퍼부으면서 그대로 오른편으로 사라지는 것처럼 보였지만 사실 그게 아니었습니다. 사륜전차 하나에 말들이 네 마리씩 붙어 있더군요. 거기에 뭔가 이상하다고 느끼더니 아니나 다를까 움직이기 시작하더군요.”
“설마····?”
“예. 그 설마입니다. 우리가 보병간의 전투에 신경을 쓰고 있는 동안 적들은 어느 정도 전쟁터에서 거리를 벌리고 궁전차를 이끄는 말들 중에 두 마리를 풀어서 기마로 장비를 전환시키기 시작했습니다.”
“········그런 무모한···.”
아무리 접전 지대와 거리를 벌렸다고는 해도 전쟁터에서 중간에 장비를 교체한단 말인가?
그 시점에서 적이 습격이라도 하면 피해가 겉잡을수 없을 텐데?
“무모한 전력이기에 사령관님의 허를 찌른 겁니다. 전쟁의 초반 서전에서 사라진 궁전차 부대에서 일단의 기마대가 튀어 나올 것이라고는 그 누구도 생각 못했을 테니까요.”
“····쯧, 완전히 당했었군.”
크라수스는 혀를 차면서 자신을 책망했다.
상대가 야만인이라도 깔보면 안 된다고 스스로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마음 한 구석에서는 자신이 더 뛰어나다고 생각하고 있던 자만이 있었던 모양이다.
하지만 이제는 그런 자만을 싹 지워 버렸다.
‘서전에서 큰 패배를 맛볼 뻔 했지만···. 그래도 시저 덕분에 목숨은 건졌군. 이제는 최선을 다해서 레기움을 되찾아야 겠다.’
크라수스는 불타는 눈으로 레기움의 성벽을 바라봤다.
서전은 우진의 부대가 좀 더 많은 이득을 봤다. 양쪽 다 피해자가 나오기는 했지만 우진의 아군에서 500정도의 피해가 나왔다면 크라수스가 이끄는 군에서는 2,000의 피해가 나왔다.
다만··, 아직도 양군의 전력 차이는 크라수스쪽이 압도적이었다.
애당초 크라수스의 재산이라면 저기서 또 전력을 충원하는 것도 가능할지 모른다.
우진은 그런 점을 알고 있었기에 빨리 저 군을 무찔러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한편으로는 망설임도 생기고 있었다.
“방어에 주력한체로 함부로 성 밖으로 나가지 말도록.”
우진이 첫 서전을 마치고 내린 명령은 이것이었다.
첫 날에 호전적인 전투를 치렀다고 생각하기 힘들 정도로 얌전한 명령이었다.
서전의 전투로부터 사흘.
양군은 진형을 유지하고 서툰 움직임을 보이지 않고 대치하고 있었다.
성벽의 위에서 우진과 함께 있는 디오클레이우스가 지루하다는 듯이 하품을 하면서 말했다.
“진, 적들을 물리치고 이대로 투리로 진격해야 하는 것 아니었어?”
“그러고 싶어. 그러고 싶은데······.”
디오클레이우스의 말을 들으면서도 우진은 눈살을 찌푸리면서 고개를 저었다.
지금 우진이 망설이고 있는 이유는 두 가지였다.
하나는 적의 병력 규모가 아군보다 크다는 것. 그러면서 적들은 무모한 공격을 하지 않고 대치만 하면서 아군을 묶어두고 있었다.
성벽의 유리함을 버릴 수 없는 우진은 그런 적을 먼저 공격할 수는 없었다.
두 번째는 적진에 시저라는 걸물이 있다는 점.
사실 이것은 우진의 장점이자 약점이라고 할 수도 있었다.
예전에 붉은 파도 초창기에도 필요 이상으로 철저함에 집착하는 우진에게 디오클레이우스가 충고한 적이 있었다.
우진은 적을 너무 과대 평가한다고 말이다.
사실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우진은 21세기의 현대에서 온 인물이고 역사에 남아 있는 고대 로마의 뛰어남을 잘 알고 있다.
그랬기에 로마군을 경계하고 또 경계했던 것이다.
역사를 미리 알고 있음으로 인해서 유리함도 있지만 그만큼 마음에 경계심도 커지는 것이다.
시저에 관해서도 마찬가지였다.
지금 시저는 로마의 젊은 신예들 중에 두각을 드러내고 있는 인물이기는 하다.
하지만 같은 로마인들 중에서도 시저의 가치를 우진보다 더 높게 평가하는 인간은 아무도 없었다.
시저를 가장 높이 평가해서 곁에 두고 있는 크라수스 조차도 시저의 가치를 유능하고 경험이 많은 전략가 정도로 파악하고 있었다.
하지만 우진은 알고 있다.
시저라는 인물이 얼마나 괴물인지.
그 폼페이우스 마저도 내전에서 물리치고 로마를 최강의 반석위에 올려 놓은 최고의 전략가.
그런 시저가 자신의 상대로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우진은 신중에 신중을 더하고 있는 것이다.
‘내 비장의 전술인 궁전차 분리 기마대 작전도 간파 당했고 말이야····.’
21세기의 게임에서 유닛이 형태를 바꾸는 것을 보고 착안한 아이디어였지만 결코 장난은 아니었다.
회심의 한수라고 생각한 전략이었다.
그런데 시저는 여유있게 그 전력을 간파하고 거기에 창병을 앞세워서 대응한 것이다.
역사에서 나오는 시저의 평가는 절대로 허황된 것이 아니었다.
하긴 실적이 증명하는 지휘관 중에서 무능한 인간이야 아무도 없겠지만 말이다.
어쨌든 지금 우진의 발걸음을 묶고 있는 것은 실질적으로 가이우스 율리우스 시저라는 남자의 이름값이라고도 할 수 있었다.
‘일단 여기서 멈출까? 사실 이대로도 충분히 이득이기는 하지만····.’
스파르타쿠스가 크라수스의 주의를 끄는 동안 우진은 시칠리아를 손에 넣고 거기에 로마로 향하는 길목이 될 수 있는 레기움까지 손에 넣었다.
당초의 목적에 비하면 좀 소소할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우진의 붉은 파도는 로마의 목덜미 바로 아래에 칼을 쥐고 둥지를 튼 것이다.
로마로 향한 진격의 길이 막힌 이상 잠깐은 뒤를 돌아보면서 내정을 살펴야 할 때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투리의 스파르타쿠스들을 어떻게 하지?’
거기를 버려 둘 수는 없었다.
전투 병력만 해도 3만에 달했고 스파르타쿠스에게 딸린 비전투 병력도 시칠리아로 데리고 가면 훌륭한 인구로서의 역할을 할 수 있게 된다.
무엇보다 우진 스스로 스파르타쿠스들을 거둬 주겠다고 장담하지 않았던가?
“·······디오클레이우스.”
“왜 불러?”
“레기움의 방어를 부탁해도 되겠나?”
“······어디 가게?”
“가야지. 전쟁터로····.”
우진의 그 한마디로 인해서 전쟁터는 다시 한 번 변화를 일으키기 시작했다.
로마군의 진형.
“레기움의 철벽 같은 성벽이 이렇게 아쉬울 수가 없군요.”
“나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네. 이럴 줄 알았으면 레기움에서 방어군을 빼는게 아니었는데····.”
레기움의 방어군을 사재로 고용해서 투리에 집중 시킨 것은 크라수스였다.
스파르타쿠스를 투리에 단단히 묶어두기 위해서 그가 취한 철두철미한 한수였지만··.
지금에 와서는 돌이킬 수 없는 실수가 되어 버린 것이다.
“어쩔 수 없습니다. 베레스 그 머저리가 시칠리아를 지키지 못할 것이라고는 누구도 생각 못했으니까요.”
“끄응···. 살았는지 죽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차라리 죽었기를 원하는게 좋을 것이야.”
살아 있다는 소식이 들리면 산 채로 찢어 죽이기라도 할 것 같은 크라수스였다.
그때 전령이 와서 보고를 올렸다.
“사령관님. 레기움에서 수십척의 배들이 뒤로 움직이고 있다고 합니다.”
“뒤로? 행방은 어디로 가는 것 같은가?”
“메세나로 향하고 있다고 합니다.”
“메사나? ······무슨 꿍꿍이지 이 놈이···? 다른 소식은 없나?”
“비슷한 시기에 메사나에서도 배가 출발한 것으로 확인 되었습니다.”
“목적지는 이 레기움이겠군····. 이놈, 전황을 이 상태에서 고착 시킬 생각인가?”
시저의 예상에 크라수스는 눈살을 찌푸리면서 말했다.
“메사나에서 보급이 오고 그리고 진이라는 놈은 자신의 영토인 시칠리아로 돌아간다는 말인데···. 이대로 지켜만 보고 있어야 하나?”
크라수스의 말에 시저는 턱을 만지작 만지작 거리면서 생각했다.
“일단···, 저 레기움을 무작정 공격하는 것은 안 됩니다. 레기움의 방어는 투리보다 훨씬 더 강력합니다. 그리고 여기서 병력을 소모해서는 안 됩니다. 지금 우리는 로마의 생명줄을 막고 있는 유일한 보루입니다. 이 뒤에는 아무것도 없으니까요.”
“으음····. 그랬지···.”
크라수스와 시저가 레기움을 포위만 하고 섣불리 공격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이런 이유 때문이었다.
투리때와는 상황이 달랐다.
당시에는 10만대 3만 정도의 병력차 였기에 일단 어느 정도의 소모를 무릅쓰고 투리를 공격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 여기서는 5만대 2만 정도다.
병력 차가 7만에 달하는 것과 3만에 달하는 것은 차이가 컸다.
만에 하나라고 공성을 시도하다가 손해를 입어서 이 병력이 패하기라도 하면···.
그때는 정말 로마까지 반란군이 들어가는 것을 막을 수가 없었다.
그러니 어쩔 수 없이 도박을 하지 않고 붉은 파도의 군대를 레기움에 묶어 두는 것에 주력 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하지만···. 그게 아니라고 해도 이번 전쟁에서 이긴 것이 너무 커. 이대로는 원로원의 영감탱이들이 우리를 잡아 먹으려고 하겠지. 제길····.’
크라수스는 자신을 향해서 조소하면서 돈을 뜯어낼 궁리를 하고 있을 원로원을 생각하면서 이를 갈았다.
그는 이미 이 전쟁이 이 상태에서 고착이 될 것이라고 여기고 있는 것이었다.
레기움과 메사나의 뱃길을 봉쇄하는 것은 무리였다.
서로 워낙에 가까웠기 때문이다.
이제 시칠리아의 물자가 꾸준하게 레기움에 들어오는 것으 막을 수 없는 이상···.
레기움을 함락 시키는 것은 큰 희생을 치루지 않고는 어려운 일이 되어 버렸다.
하지만 그때····.
레기움과 메사나를 오가는 배들 중에 약 다섯 여척의 배가 슬쩍 진로를 바꾸는 것을 로마군단은 캐치하지 못했다.
그것이야 말로 우진의 또 다른 한수였던 것이다.
스파르타쿠스가 있는 투리.
전쟁터가 소강 상태로 접어든 것은 이 투리도 마찬가지였다.
크라수스의 거친 공격에 성벽의 여기저기가 무너져 내렸지만 그래도 투리는 아직 함락되지 않았다.
그 이유는 스파르타쿠스와 크라수스의 분전도 있었지만 그 이상으로 푸블리우스가 초안전책으로만 전쟁을 수행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절대 무리하지 말 것.
절대 뚫리지 말 것.
이 두 가지가 이 전쟁터를 맡으면서 푸블리우스가 받은 명령이었다..
사실 물자가 거의 다 떨어져 가고 있는 투리를 보면서 몇 번이고 돌격해서 공성을 하고 싶었지만···.
이번 작전이 절대로 실패해서는 안 될 작전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푸블리우스는 절대 무리수를 두지 않았다.
‘아버지가 남부에서 돌아올 때가지 여기를 완벽하게 봉쇄한다. 내 데뷔전으로는 충분한 성과야.’
이 작전만 제대로 성공하면 이제까지 자신을 인정하지 않던 아버지뿐만 아니라 원로원에서도 자신의 이름을 새겨 볼 것이라는···.
그런 달콤한 꿈을 꾸고 있는 푸블리우스였다.
하지만 이 팔자 좋은 도련님은 모르는 것이 있었다.
세상만사 그렇게 뜻 대로만 돌아가기는 힘든 법이다.
야밤을 틈타서 몰래 투리의 항구에 도착한 다섯척의 배에서 사람이 내렸다는 보고를 들었을 때 스파르타쿠스는 로마인들이라고 생각했다.
“모두 성벽에서 죽여주마.”
투리의 경우는 항구와 도시를 가르는 내성벽이 있을 정도로 항구의 방어가 튼튼했다.
그걸 알았기에 로마군도 무모하게 항구를 통한 공략은 하지 않은 것이다.
하지만 스파르타쿠스는 항구쪽에 도착한 순간 크게 눈을 떴다.
“진!!! 어째서 당신이 여기에···.”
“여, 변경된 계획 때문에 좀 왔다.”
우진이 이곳 투리에 합류한 것이다.
============================ 작품 후기 ============================
우진 : 내가 포기 할 줄 알았지? 두고 보자. 시저.
시저 : 저게 또 뭣 짓을 하려고?
여러분들의 응원은 작가에게 큰 힘이 됩니다.
그럼 즐감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