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화
집으로 돌아간 크라수스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그의 가족과 최근에 알게 된 젊은 친구들이었다.
“오래 기다리게 했군. 지내는 것에 불편함은 없었나? 시저, 안토니우스.”
놀랍게도 크라수스의 집에서 기다리고 있는 손님들은 당시 20 중반이었던 가이우스 율리우스 시저와 이제 막 15살이 된 소년티가 나는 마르쿠스 안토니우스였다.
시저는 말할 것도 없고 안토니우스 역시 역사적으로 커다란 족적을 남긴 걸물이다.
시저의 오른팔로 폼페이우스와의 내전에서 혁혁한 공을 세웠고, 훗날 아우구스투스라고 불리게 되는 옥타비아누스, 레피두스와 함께 2차 삼두정치를 하기도 했다.
비록 그 삼두정치는 기원전 33년에 깨지고 안토니우스와 옥타비아누스는 내전을 벌이기도 했지만 그가 로마의 역사가들 에게 남긴 인상은 강렬한 것이었다.
신군이라고까지 불리던 시저의 오른팔.
초대 황제였던 아우구스투스와의 대립.
그리고 시저와 똑같이 클레오파트라와 뜨거운 사랑을 나눴다는 사실은 역사가들 뿐만 아니라 수많은 문학가들 사이에서도 상상의 나래를 펼치게 했다.
어쨌든 이 두 명의 걸물이 크라수스의 집에 있다는 것은 의외의 일이었다.
원래 이 둘이 역사의 표면에 등장하는 것은 좀 더 후의 일이라는 것을 생각하면···.
그리고 크라수스가 스파르타쿠스의 반란에 대응하기 위해서 무거운 엉덩이를 들었던 것도 좀 더 후의 일이라고 생각하면···.
역시 우진의 등장으로 인해서 역사의 변동이 크게 일어났다고 할 수 있다.
“원로원에서의 회의는 어땠습니까?”
시저의 말에 크라수스는 고개를 저으며 피식 웃었다.
“발등에 불 떨어진 늙은이들이 전전긍긍하는 모습은 여느 광대들 못지 않은 촌극이었지. 자네들에게도 보여 주고 싶었다네.”
“뭐···, 안 봐도 대강 짐작은 갑니다. 그렇지 않으냐? 안토니우스?”
“전, 형님처럼 악취미는 없습니다. 로마의 적을 눈앞에 두고 허둥거리는 원로원이 못 마땅하기는 하지만요.”
“딱딱하기는····. 내 사촌 치고는 넌 좀 딱딱한게 문제야.”
사실 안토니우스의 어머니는 시저의 먼 친척뻘이었고 안토니우스 본인도 혈연으로 봤을 때 시저와 접점이 있는 사이였다.
“그 정도로 뭘 그러나? 난 내 아들이 자네들 반의 반이라도 닮았으면 좋겠는데 말일세.”
크라수스의 말에 시저는 그저 어깨를 으쓱할 뿐이었다.
“어쨌든, 이제 어르신도 본격적으로 나서시겠죠?”
“으음···. 가능하면 좀 더 원로원을 길들이고 싶었지만···. 아무리 그래도 더 이상 문제를 키울 수는 없어.”
크라수스는 원래 스파르타쿠스의 반란이나 시칠리아의 진의 반란을 이용해서 원로원의 무능함을 로마시민들에게 어필하고 자신의 지지층을 만들 생각이었다.
현재 원로원에서 콘술을 역임하기 위해서는 정치라고서의 유능함 보다는 기존의 기득권들과의 연계와 연줄이 더욱더 중요했다.
사방에 적 투성이인 크라수스로서는 출세길이 꽉 막혀 있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자신을 돈줄 취급하면서도 내켜하지 않는 원로원의 귀족들이 자신이 콘술의 자리에 오르는 것을 납득할 리가 없었다.
현재 그의 위치는 프라이토르.
대외적으로 봤을 때는 콘술 바로 아래에 존재하는 위치이지만 파벌이 없는 그로서는 테베강 오리알 신세였다.
그가 로마에 가지고 있는 영향력을 생각하면 결코 만족할 만한 위치라고 할 수는 없었다.
결국 위로 올라가고 싶은 그에게 방해되는 것이 기존의 체제라면··.
그 체제를 부셔 버리는 수밖에 없지 않겠는가?
이미 이 시점에서 크라수스는 공화정의 막을 내릴 시나리오를 구상하고 있었던 것이다.
시저는 눈을 가늘게 뜨고 상황을 파악해 가면서 크라수스에게 말했다.
“어르신이 직접 나선다고 해도 원로원에서 순순히 지휘권을 내줄 리는 없죠. 아마 누구 밑으로 들어가라고 했을 것 같은데·····.”
“자네 보고 있었나?”
시저의 놀라운 추리력에는 천하의 크라수스도 살짝 놀랐다.
“아마도 현 프라이토르 중에 한명일 것 같은데 카시우스파와 루쿨루스파에도 거슬리지 않는 남자····. 혹시 겔리우스 장군입니까?”
“자네 아무래도 지금 죽어야 겠군. 이대로 성장하면 내 강력한 정적이 되겠어?”
“하하하··. 정중히 거절하겠습니다.”
크라수스는 반 농담으로 한 말이지만 사실 반쯤은 진실이기도 했다.
처음 크라수스는 요즘 로마의 젊은 지휘관들 사이에서 가이우스 율리우스 시저라는 이름이 종종 나온다는 얘기를 듣고 호기심에 그를 불렀다.
아직 원로원의 눈에 띠지 않은 유능한 인재라면 자신이 품고 싶었던 것이다.
하지만 직접 만나본 시저라는 인물은 자신이 직접 품고 말고 할 인간이 아니었다.
아직 젊은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시저는 이미 그와 대등, 아니 때때로는 그 이상이 아닌가 하는 기량과 무게감을 보였다.
빨리 태어나서 출발점이 빠른 자기 자신은 어찌어찌 감당한다고 해도 자신의 얼빠진 아들이 이 남자를 상대 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은 도저히 들지 않았다.
‘싹을 뽑아야 하는건지 키워야 하는건지····.’
겉으로는 웃고 있었지만 속으로는 수도 없이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고 있기도 했다.
“원로원은 어지간히도 어르신을 경계하고 있군요. 어쩌실 겁니까?”
“······자네라면 어떻게 하겠나?”
시저의 질문에 크라수스는 오히려 질문으로 받아쳤다.
“흐음······.”
시저는 고민에 빠졌다.
‘아마 크라수스는 자신의 재산을 틀어막고 지휘권을 안 주면 군자금도 없다는 식으로 나왔겠지? 하지만 그 사실이 로마의 시민들 귀에 들어가면 크라수스 본인에게도 좋지 못하다. 그렇다면····.’
“일단 조건을 받아 들이겠습니다.”
“로마 원로원들 비위를 맞추라는 건가? 이 마르커스 리키니우스 크라서스를 보고?”
“원로원들에게 따돌림 당하는 것이야 익숙하시겠죠. 하지만 로마시민들은 어떠할까요?”
“·······으음·····.”
시저의 말에 크라수스는 침음성을 내뱉었다.
확실히 그것은 문제였다.
그의 막대한 재산으로 원로원을 압박하는 것은 가능했다.
하지만 로마의 시민들이 등을 돌리고 여론이 악화되면 그것은 그의 막대한 재산으로도 어떻게 할 수 있는게 아니었다.
고민하는 크라수스에게 시저가 말했다.
“일단 받아 들이십시오. 지휘권은 그 후에 어떻게 하면 되니까 말이죠.”
“그 후라니 한 번 원로원에서·····. 호오, 그런 방법이 있었군.”
“예. 그런 방법도 있습니다.”
입 꼬리를 귀까지 걸어버린 시저와 크라수스를 보면서 옆의 안토니우스는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어느 쪽이 더 너구리인지····. 난 역시 정쟁은 못하겠어.’
자신은 천상 군인이라고 생각하는 안토니우스였다.
일단 토벌을 진행하기로 마음먹자 문제가 되는 것은 원로원들과 같았다.
스파르타쿠스와 시칠리아의 진.
둘 중에 무엇을 선별적으로 토벌하느냐가 중요했다.
“자네가 생각하기에는 어디를 먼저 토벌해야 한다고 생각하나?”
크라수스의 말에 시저는 깊게 생각하다가 입을 열었다.
“머리로는 스파르타쿠스를 먼저 진정시켜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건 그렇지. 놈이 날뛰고 있는 곳은 이 로마에서 일주일이면 닿는 곳이야. 가까운 위험을 먼저 쳐내는 것은 당연해.”
“예. 하지만, 불길하기는 시칠리아의 세력이 더 불리합니다.”
“왜 그렇게 생각하나?”
크라수스의 말에 시저는 차분하게 자신의 의견을 말하기 시작했다.
“원로원에서는 양쪽을 모두 같은 노예반란이라고 생각하고 있지만 제가 생각하기에는 좀 다릅니다.”
시저는 잠시 말을 끊었다가 다시 말을 이었다.
“스파르타쿠스의 반란은 노예 반란입니다. 비록 그 규모가 크고 로마에서 가까운 지역에서 일어났기 때문에 위험한 것은 사실이오나 놈에게는 목적이 보이지 않습니다.”
“목적이라고?”
“그렇습니다. 만약에 놈이 이대로 계속해서 승승장구한다고 해도 놈에게는 그 이후가 보이지 않습니다.”
“승리 이후라······.”
“아마도 계속 승리해 간다면 우리 로마를 파괴하거나 아니면 자신들의 고향으로 돌아가는 것 정도로 만족하겠죠. 그런 적은 그다지 무섭지 않습니다.”
“시칠리아의 진이라는 인간은 다르다는 건가?”
크라수스의 말에 시저는 무겁게 고개를 끄덕이면서 말했다.
“그렇습니다. 그는 이미 시칠리아의 요새 도시를 두 개나 손에 넣고 인근 마을을 자신의 ‘영역’으로 선포하고 있다고 합니다.”
“····야만인이 스스로 왕을 자처한다는 건가?”
“우리 로마의 발길질 아래서 구르던 비천한 노예가 왕을 자처하고 있는 것입니다. 만약에 그런 짓을 하고 있는 놈이 있다면 아마도 미친놈 아니면····.”
“아니면?”
“···········.”
“말해 보게. 솔직하게.”
크라수스의 말에 시저는 잠시 망설이는 듯하다가 말을 이었다.
“····아니면 그 놈은 시대를 거스르는 영웅일 지도 모르죠. 만에 하나 시칠리아의 인간이 그런 인간이라면···. 우리는 커다란 위기를 직면하게 될 것입니다.”
“····알겠네. 자네의 의견을 참고하지. 이만 돌아가서 푹 쉬게.”
“예. 알겠습니다.”
시저가 돌아가고 나서 크라수스는 머릿속으로 차분하게 생각을 정리했다.
‘나 역시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시칠리아의 진이라는 자의 행동은 불길하다고 말이다.’
원로원에서 그런 말을 했다가는 정치적으로 커다란 공격을 받을 것이 뻔해서 말하지 못했지만 시칠리아의 반란군이 릴리바이움을 정복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부터 크라수스는 놈들이 심상치 않다고 생각했다.
파르노무스가 떨어졌다는 소식을 들었을때는 그의 평생 가장 큰 놀라움이기도 했다.
시칠리아에서 일어나고 있는 반란군은 그냥 노예 반란으로 치부해서는 안 되었다.
진 이라고 하는 한명의 구심점을 중심으로 활동하는 것은 스파르타쿠스와 같지만 그들은 스스로를 혁명군이라고 부른다고 했다.
이것은 위험하다.
반란은 반란일 뿐. 민중의 지지를 받아내지는 못한다.
하지만 혁명은 기존의 세력에 불만을 가지고 있던 소외층들에게 달콤한 환상을 던져주기에 충분했다.
이미 시칠리아 서부에서는 상당수의 카르타고인들이 진이라는 자를 따르려고 하고 있다고 했다.
원로원의 두 콘술은 이런 정보를 은폐하고 있었지만 따로 정보망을 구축하고 있던 크라수스는 빈틈없이 정보를 수집하고 있었다.
그래서 그는 붉은 파도의 진을 스파르타쿠스보다 더 위험인물로 취급하고 있었다.
생각 같아서는 시칠리아로 대군을 이끌고 가서 그 진이라는 남자를 물리치고 싶었다.
지금 당장이라도 말이다.
하지만 지금 당장 시칠리아로 대군을 파견한다면 로마에 생기는 로스를 절대로 놓치지 않을 인물이 있었다.
스파르타쿠스.
어디까지나 붉은 파도의 진이라는 남자에 비해서 덜 위험하다는 것 뿐이지 그 역시 충분히 로마를 불살라 버릴 수 있을 정도로 무서운 불꽃을 태우고 있는 남자였다.
결국 순서는 정해졌다.
다만 시칠리아의 진을 상대하기 위해서는 시간을 오래 끄는 것은 금물이었을 뿐.
“어쩔 수 없는 건가? 결국은 스파르타쿠스를 먼저 정리하는 수 밖에는·····.”
그는 그렇게 말하면서 조용히 술잔을 기울였다.
크라서스와 면담을 마치고 돌아가는 시저와 안토니우스는 서로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형님. 언제까지 집으로 가시지 않고 여기 크라수스의 저택이 있을 겁니까?”
“응? 넌 불만이냐? 호오? 네 방에 넣어준 여자는 얼굴이 네 취향이 아니던? 이 형이 바꿔주랴?”
“그게 아니라는 것 알지 않습니까?”
“하하하하···.”
크라수스는 대부호였지만 절대 돈을 아끼는 자는 아니었다.
시저와 안토니우스를 자신의 손님으로 인정하고 극진히 대접하고 있었다.
음식, 술, 여자까지 무엇 하나 부족하지 않게 최고의 향응을 대접하면서 성의를 다했다.
하긴, 아무리 최고에 최고를 대접한다고 해도 크라수스의 입장에서는 별것 아니었겠지만 말이다.
그렇다고 크라수스가 아무에게나 그렇게 극진한 대접을 하는 것은 아니었다.
만약 그가 그런 성격이었다면 원로원에서도 좀 더 친구가 많았을 것이다.
그 오만하고 삐딱한 성격의 크라수스가 로마의 젊은 친구들에게 이런 대접을 하는 것은 시저와 안토니우스 뿐이었다.
다른 사람에게는 절대로 어림도 없는 얘기였던 것이다.
그리고 이런 크라수스의 젊은이들에 대한 적극적인 총예가 못마땅한 자가 있었다.
============================ 작품 후기 ============================
붙여서 연참 할때는 추천이 줄어들어서 문제입니다. 쩝!!
알고 지적하려는 분들도 계시겠지만 이번 화에 등장한 안토니우스에 관해서 할 말이 있습니다.
사실 원래의 역사에서 안토니우스는 이 시기에 10~12살 정도의 어린애였습니다.
하지만 제 소설에서 나이를 5~6세 정도 뻥튀기 했다는 것을 미리 말씀 드리겠습니다.
장르 소설이니 만큼 그 정도의 보정은 관대하게 봐 주셨으면 합니다.
그럼 즐감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