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1화
<크라수스의 선택>
서쪽의 전쟁도 마찬가지였다.
서쪽에 전선, 에스파냐에서 상대하고 있는 상대는 엄밀히 말해서 외적이 아니라 같은 로마인이었다.
그것도 한때 로마 권력의 중심점에 있었던 퀸투스 세르토리우스라는 자가 적이었다.
그는 술라의 정적이었던 가이우스 마리우스의 부하로 정계에 모습을 드러냈다.
그는 그 후에 군에 복무하면서 그럭저럭의 공을 세웠고 기원전 92년에 벌어진 동맹시 전쟁에서는 한쪽 눈을 잃기도 했을 정도로 로마를 위해서 열심히 일하던 자였다.
그런 그는 전쟁이 끝나고 로마의 호민관이 되기 위해서 출마했는데 당시 마리우스의 정적이었던 술라가 그를 반대해서 출세가도에서 떨어트렸다.
아마도 그가 자신의 정적인 마리우스의 밑에서 군 복무를 했던 것이 술라의 입자에서는 못마땅했던 것으로 보인다.
이때부터 세르토리우스는 술라하고는 사이가 좋지 않게 틀어지기 시작했다.
기원전 87년에 술라와 마리우스파 사이에서 내전이 벌어지고 마리우스는 술라파를 밀어내고 화려하게 정계에 복귀했다.
그리고 이때 세르토리우스는 마리우스를 도와서 다시 권력의 핵심에 부상하는가 싶었다.
하지만 앞에서 말했지만 당시 동쪽에서 폰투스와의 전쟁을 수행중이던 술라가 소위 말하는 개빡침 상태로 복귀했다.
그리고 거기서부터 또 그의 인생은 삐딱선을 그리기 시작했다.
술라가 동방원정에서 돌아와서 마리우스 일파를 몰아냈고, 마리우스 일파들의 사이에서 피바람이 몰아쳤다.
하지만 세르토리우스는 한발 빨리 전직 집정관의 자격으로 에스파냐로 도망갔다.
로마에 있다가는 숙청의 대상이 될 것이라고 생각하고 몸을 피한 것이다.
당연한 얘기지만 다시 정권을 잡은 술라의 정권은 그의 에스파냐에서의 지위를 인정하지 않았다.
할 리가 없었다.
술라의 정권은 그를 인정하지 안았고 세르토리우스는 에스파냐에서 싸울 생각을 했다.
하지만 술라가 2개 군단을 파견해서 공격하자 그는 일단 북아프리카의 마우레타니아로 물러났다.
로마는 그렇게 세르토리우스라는 이름을 서서히 잊어가기 시작했다.
이제 얼마 지나지 않으면 반역자를 토벌했다는 소리가 원로원에 들어올 것이라고 생각하면서 여유만만하게 기다렸던 것이다.
하지만 거기서 세르토리우스의 뒤집기가 시작되었다.
일찍이 마리우스의 밑에서 갈고 닦은 그의 전투 수행 능력은 결코 거짓이 아니었다.
그는 거기서 술라의 장군 하나를 격파하고 이로 인해서 반 술라 세력으로 불리고 있던 마리우스 일파의 잔당들에게 영웅으로 불리웠다.
일신에 위협을 떨쳐내고 에스파냐로 돌아온 그에게는 로마의 많은 망명자들, 주로 마리우스 일파의 병사들이 지지를 보냈다.
그 지지자들 중에는 에스파냐인들도 섞여 있었는데 그들은 세르토리우스를 한니발의 부활이라고 하면서 그를 지지했다.
아마도 그가 한 눈을 잃어서 애꾸눈이 된 것이 원인일 지도 모르겠다.
그는 막대한 지지를 등에 업고 에스파냐의 술라파 총독인 퀸투스 메델루스 피우스를 몰아내고 에스파냐 전역을 지배하에 두었다.
이 후로 세르토리우스라는 이름은 당시 로마에게 있어서는 반 술라파들의 지도자 같은 개념으로 생각되었다.
술라파가 정권을 잡으면서 상대적으로 특권을 박탈당한 마리우스 파벌의 잔재들이 그를 지배했고 그것은 날카로운 로마의 원로원에 있어서 치명적으로 거슬리고 있었다.
지금이야 반으로 갈라져서 싸우고 있지만 여기 있는 원로원들은 일단 모두 술라파의 후예, 혹은 당시 현역들이었다.
당시 로마는 원로원이나 귀족이 아니라 병사들 사이에서도 술라의 휘하에 있었느냐 마리우스의 휘하에 있었으냐로 차등을 두었을 정도로 마리우스의 잔재를 철저하게 배제하고 있었다.
그런 그들에게 있어서 세르토리우스가 로마로 온다는 것은 제 이의 마리우스가 로마로 다시 돌아온다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자신들을 파멸 시키기 위해서 말이다.
그래서 에스파냐 전선에는 로마 최고의 용장인 폼페이우스를 파견한 것이었다.
정적인건 뭐건 간에 시르토리우스의 능력은 진짜였고 로마의 장군들 중에서도 당시 그와 맞상대 할 수 있는 장군은 폼페이우스 정도였으니 어쩔 수 없었다.
결국 이 두 개의 전선에 로마 최고의 군단과 최고의 장수가 집중되어 있는 것이다.
원로원의 입장에서는 이제 반란군을 진압하기 위해서 없는 잇몸으로라도 씹어 삼키는 수밖에 없었다.
다만, 누가? 어떻게? 어디부터?
결국 논쟁을 아무리 벌여도 이 대답이 나오지 않는 이상 원로원에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그때 이제까지 팔짱을 끼고 상황을 지켜보고 있던 한명의 남자가 손을 들고 말했다.
“나에게 전권을 위임하시오. 그러면 두 개의 반란을 진정시켜 보이겠소.”
손을 든 남자의 얼굴을 보고 콘술인 루쿨루스가 눈살을 찌푸렸다.
“크라수스···. 그대가?”
드디어 크라수스가 움직이기 시작한 것이다.
크라수스의 발언은 원로원들의 입장에서는 양날의 칼이었다.
지금 폭탄 취급받고 있는 노예 반란을 크라수스가 떠맡아 준다면 그것은 고마운 일이다.
하지만 저 크라수스가 그냥 무대가로 움직일 리는 절대로 없을 것이다.
저 남자는 언제 어떻게든 반드시 이익을 창출하는 남자였다.
‘무슨 꿍꿍이냐?’
‘저 놈은 믿을 수가 없는데····.’
당시 크라수스는 재산을 중요시하는 기행과 막대한 재산을 모으는 과정에 생긴 원한으로 인해서 원로원들 사이에서 그리 좋은 취급을 받지는 않았다.
돈만 많은 천박한 인간.
아마도 원로원들의 대부분이 크라수스에 관해서 이런 생각을 하고 있었을 것이다.
“크라수스, 그대의 뜻은 고맙네. 하지만 자네에게 일방적으로 전권을 줄 수는 없네.”
“어째서입니까?”
크라수스의 질문에 콘술인 카시우스가 말했다.
“자네에게는 충분한 전쟁 수행능력이 있다고 믿겨지지 않기 때문이네.”
“호오····?”
한쪽 눈썹을 꿈틀 거리는 크라수스를 향해서 카시우스가 말을 이었다.
“하지만 자네가 노예 반란의 토벌에 힘을 제공한다면 일정 부분 자네의 공적을 인정하겠네. 지휘관으로는····.”
주변을 둘러보던 카시우스는 한곳에서 시선을 멈췄다.
“루키우스 겔리우스 그대가 이 영광스런 임무를 맡아 주겠나?”
“명령이라면 따르겠습니다.”
대답을 하면서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 것은 굳건한 인상을 하고 있는 남자였다.
루키우스 겔리우스.
그는 후일 콘솔까지 역임 하지만 이 당시에는 프라이토르중에 한명이었다.
실제 역사에서 스파르타쿠스와 크릭서스가 갈라졌을 때가 있다.
스파르타쿠스에게서 갈라진 크릭서스는 굴족의 동료들을 이끌고 로마를 진격했다.
그때 크릭서스를 막아낸 것이 바로 루키우스 겔리우스였었다.
스파르타쿠스에 비해서 크릭서스의 이름이 그렇게 크지 않기에 상대적으로 유명해지지는 않았지만 그 역시 상당한 능력을 지니고 있는 남자라는 것을 알 수 있는 대목이었다.
“흐음····. 겔리우스라····?”
크라수스는 자신의 무릎을 손가락으로 톡톡 두드리면서 생각에 잠겼다.
“좋소. 그럼 겔리우스의 지휘를 받겠습니다.”
“잘 생각했네.”
크라수스가 평범하게 알겠다고 말하자 콘솔인 카시우스는 얼굴에 미소를 지었다.
그의 입장에서 봤을 때는 다루기 어려운 야생마가 드디어 순순해 진 것 같은 기분일 것이다.
하지만···.
“다만 이번 징벌군의 징발에 나는 한 푼도 내지 않겠소. 그건 사령관과 사령관을 추천한 원로원에서 알아서 해 주시오.”
크라수스의 말에 나머지 원로원 전체가 인상을 찡그렸다.
‘그럼 그러지····.’
‘저 망할 돈 귀신····.’
‘이래서는 써 먹을 구석이 없잖아?’
원로원들이 크라수스에게 바라는 것은 군대를 만들고 유지할 돈을 지원해 주었으면 하는 것이었다.
로마의 원로원이라는 직책은 매우 상류급이었고 당연한 얘기지만 이들은 평생 돈에 아쉬워 할 일 없을 정도로 부유한 자들이었다.
하지만 크라수스를 제외한 나머지 원로원들 전원을 합한다고 해도 그의 재산의 반이나 될까 말까 했다.
그 정도로 크라수스의 재산은 어마어마했던 것이다.
당시 로마 시민들은 그를 두고 플루토스(재물의 신)조차 질투할 정도로 막대한 재화를 가지고 있다고 했을 정도였다.
후세의 연구자들에 따르면 크라수스의 재산 총액은 약 1억 7천 40만 세스테리우스라고 했다.
당시 공화정의 연간 예산이 약 2억 세스테리우스라고 했으니 그의 재산이 어느 정도였는지 짐작하게 하는 대목이다.
여담이지만 2008년에 포프스지라는 매거진에서 선정한 ‘인류 역사상 가장 부유한 75인’에서도 8위에 랭크되었다고 한다.
그런 크라수스였기에 반란군을 상대로 모집한 군대의 보급을 책임져 줬으면 했던 것이다.
그런데 지휘권을 주지 않으면 발을 빼버리겠다고 하니···.
원로원들의 입장에서는 분통이 터질 법 했다.
하지만 정작 분통이 터질 것 같은 것은 크라수스였다.
‘이 머저리들·····. 아직도 상황 파악을 못했군.’
크라수스는 허락만 된다면 지금 원로원에 있는 콘술 두 명과 그 밑에 나머지 얼간이들 까지 싹 다 머리를 깨 부셔 저리고 싶었다.
무려 세 명이나 되는 프라이토르가 패배하고 병력의 로스도 1만에 가깝게 나왔다.
시칠리아의 4분의 1이 넘어가고 거기다 지금 이 로마에서 1주일 거리에 3만으로 추정되는 반란군이 시시각각 세력을 키워가고 있는 형국이다.
이제는 토벌이 아니라 전쟁을 해야 했다.
그런데 아직도 로마의 원로원들은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결국 상황을 최대한 한계까지 지켜보려고 했던 크라수스는 스스로 손을 들고 나서게 되었다.
그는 출세지향적인 인물이다.
자신의 권력을 위해서라면 뭐든지 할 인물이었다.
하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우선 로마가 존재해야 했다.
로마가 존재하지 않으면 자신의 출세도 없으니 말이다.
그래서 자신이 나서주겠다고 하는데 원로원에서는 그냥 돈지랄에만 주력하라고 하니···.
겔리우스가 유능한 실적이 많은 군인이라는 것은 그도 알고 있었다.
하지만 크라수스가 생각하기에 그는 적을 상대로 싸우는 전투에서는 우수한 군인이었지만 요리조리 치고 빠지는 간사한 적을 사냥하는 사냥꾼의 체질은 아니었다.
실제로 크라수스의 생각대로 였다.
겔리우스는 정면 도전을 한 크릭서스에게는 승리를 거두었지만 그 후에 기습과 각개격파로 싸워간 스파르타쿠스에게는 패배했었다.
전형적인 장군.
힘과 힘의 승부에서 강점을 지니는 로마군단의 범용한 장군의 역량을 지닌 남자.
크라수스는 겔리우스의 본질을 정확하게 꿰뚫어 보고 있는 것이었다.
“크흠····. 본 사안에 관해서는 좀 더 생각을 해 봐야 할 것 같소.”
“나도 그렇게 생각하오. 다음 회의까지 모두들 잘 생각해 보도록 합시다.”
카시우스와 루쿨루스.
두 콘술의 대화로 인해서 일단 그날의 회의는 끝났다.
============================ 작품 후기 ============================
미드에서는 크라수스가 직접 크릭서스 형님을 잡은 것 처럼 나오지만 사실 진짜로 크릭서스 형님을 잡은 존재는 겔리우스였다고 합니다.
항상 붙여서 연참하면 추천과 댓글이 줄어서 슬픕니다.^^;;;
그럼 즐감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