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6화
원래 시체를 훼손하는 것이 야만적이라는 것을 알고 있는 우진이었다.
하지만 현대적인 관점을 이 시기에 일방적으로 강요 할 수 없다는 것을 이제 슬슬 인정하고 있었다.
그렇다고 현대인의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는 우진이 완벽하게 고대의 사고방식에 자신을 맞추는 것은 불가능 하겠지만 말이다.
지금은 서서히 현대와 고대의 사고방식에서 접점을 찾아서 타협하고 있는 시기였다.
지금은 일단 아군에게 유리하니 오케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이 놈들!! 싸워라 맞서 싸우란 말이다.”
추풍낙엽처럼 쓰러지는 로마군들 사이에서 한 명이 그래도 글라디우스를 맹렬하게 휘두르면서 고함을 지르고 있었다.
그런 모습을 보고 우진은 눈을 반짝였다.
‘저 놈이 대가리군.’
“이럇!!”
우진은 단번에 말을 몰아서 놈에게로 달렸다.
고대의 전투에서 지휘관의 목을 취하는 것은 가장 효과적인 승리의 지름길었다.
“진? 네 이놈!!!”
적은 진을 보고도 겁 먹지 않고 싸우기 위해서 검을 쥐고 달려 들었다.
“으아아아!!!!”
“용맹하고 기세도 좋군. 하지만···.”
우진은 달려드는 적을 보고 눈을 가늘게 떴다. 그리고 족이 자신의 간격 안에 들어온 순간···.
서걱!!
한 줄기의 섬광이 번뜩이고 두 사람이 그대로 교차했다.
그리고 우진이 하던 말을 이었다.
“··············하지만 무모해.”
푸확!!!
우진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상대의 목이 바닥에 굴러 떨어지고 몸뚱에서는 피분수가 솟구쳤다.
“우오오오오!!!!”
“남은 놈들은 대장 손을 빌리지 마라!!!”
“다 죽여라!!!!”
우진이 순식간에 적을 처리하고 다른 부하들도 용맹하게 로마의 징발병을 처리했다.
전투는 30분도 걸리지 않아서 순식간에 끝나 버렸다.
“진님, 적들이 놓고간 식량은 어떻게 할 까요?”
부하중에 한 명이 우진에게 말했다.
“식량이라····.”
우진은 슬쩍 식량을 보고 뒤편의 마을을 봤다. 아마도 인정사정 없이 약탈했겠지만 그래도 생존자가 있을 수도 있었다.
“식량을 가지고 저 마을로 가자. 생존자가 있다면 구해준다.”
“알겠습니다.”
진의 말에 부하들은 토를 달지 않았다.
사실 아깝다고 생각하는 자들도 있었겠지만 우진의 말에 절대 복종한 것이다.
물론 우진도 한편으로는 아깝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지금은 게릴라전에 주력해야 해. 식량 따위 바리바리 쥐고 싸울 수는 없지.’
우진은 그렇게 생각 하면서 그 식량을 원주인에게 돌려줬다.
이런 우진의 사고 방식은 나름 현대인의 흔적이 남아 있는 것이었다.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이 은혜에 감사드립니다.”
“신의 축복이 함께 하시기를····.”
마을에 도착한 우진은 식량을 돌려주고 부하들에게 시켜서 불이 붙은 집의 소화 작업도 돕게 했다.
이런 우진의 행동에 좀 전까지 약탈을 당했던 마을의 주민들은 크게 감명 받았다.
그들은 마치 신의 사자라도 본 것처럼 우진에게 크게 감사했다.
좀 전에 자신들을 악랄하게 약탈해 갔던 로마군단이 악마라면 그 후데 나타나서 그들을 물리치고 자신들의 물건을 돌려준 우진들은 그들에게 있어서 천사나 다름 없었다.
우진은 이런 마을 사람들의 과도한 감사에 약간 당황했다.
“원래 당신들 것입니다. 가지고 가서 이번에는 잘 숨겨 두십시오.”
“감사합니다. 당신의 이름을 가르쳐 주시겠습니까?”
마을의 촌장쯤 되어 보이는 노인의 말에 우진은 잠시 알려줘도 될까 말까 망설였다.
이러니 저러니 해도 이들은 로마의 지배하에 살고 있던 자유민들이었는데 자신의 이름을 듣고 거부감이 강하게 들지는 않을까 생각한 것이다.
하지만 그냥 정직하게 자신의 이름을 말해 줬다.
“붉은 파도의 진이라고 합니다.”
우진의 말을 들은 촌장은 눈썹을 살짝 치켜떴다.
그리고 주변의 마을 사람들도 술렁 거렸다.
“진?”
“그 붉은 악마라는···.”
“쉿, 말 조심해···.”
웅성 거리는 마을 사람들을 보고 우진은 쓴 웃음을 지었다.
몇몇 아낙들은 아이들을 뒤로 숨기기도 했다.
그때····.
“이 어리석은 놈들!!!”
우진과 대화를 하던 노인이 주변의 젊은이들에게 호통을 쳤다.
“우리를 직접 구해주는 것을 두 눈으로 보고서도 소문만으로 판단한단 말이냐!!?”
세상을 오랜 세월 살아온 촌부에게는 그 촌부 나름의 지혜가 있었다.
소문 보다는 자신의 눈으로 직접 본 것을 믿어야 한다는 것을 그 노인을 알고 있었다.
그는 우진에게 정중하게 허리를 숙이며 말했다.
“마을 젊은이들의 무례를 용서하십시오. 사실은 저희 마을 사람들도 대부분 카르타고의 피가 섞여 있습니다.”
“그렇군요. 딱히 기분 상하지 않았으니 안심하십시오. 그럼 저희는 이만 가보겠습니다.”
우진은 마을 어르신이 자신을 알아준 것에 기분이 좋아졌다.
그리고 그 기분을 그대로 간직한 체로 우진은 등을 돌려서 마을을 떠났다.
‘역시 그냥 식량을 챙기거나 불태우는 것 보다는 이게 훨씬 잘 한 짓이야.’
우진은 자신의 결정을 다행이라고 여겼다.
“자 가자!! 잘 하면 오늘밤 안으로 로마놈들 한두 무리 정도는 더 사냥 할 수 있을 것이다.”
“오오오!!!!!”
“엿 같은 로마새끼들을 죽이자!!!”
우진과 부하들은 실제로 그날 밤에 또 다른 무리 하나를 잡아서 전멸 시키는 것에 성공하게 된다.
“습격이다!!!”
“제길!! 일어나!! 일어나란 말이야!!!”
베레스의 본군이 우진의 부대를 추적한지도 어느덧 일주일이 넘었다.
그 시간 동안 우진은 베레스에게 잡힐 듯이 안 잡힐 듯이 아슬아슬한 강격에서 베레스의 병사를 괴롭히고 있었다.
야밤에 습격해서 한 바탕 휘젖고 가는 것부터 정찰병이나 주변에 보급을 위해서 징발하는 별동대를 섬멸하는 것 까지.
우진의 부하들은 베레스의 본군의 주변을 맴돌면서 그들을 피곤하게 했다.
사실 우진은 이렇게 해서 이들을 피곤하게만 하는게 목적이었지만 실질적인 전과도 제법 올렸다.
추격 당시에 베레스의 군사는 총 5,000이었는데 이제는 4,000도 되지 않았다.
우진의 게릴라전에 죽거나 부족한 보급으로 낙오한 전력들 때문에 로스가 생긴 것이다.
이런 상황 속에서 우진은 부하들과 함께 게릴라전을 하면서 베레스를 약올리고 있었다.
이렇게 일주일이라는 시간이 흐르자 베레스는 슬슬 생각을 바꾸기 시작했다.
‘본대만으로 쫓아서는 도저히 기마대인 놈들을 잡을 수 없다. 포위망을 넓게 펴자.’
베레스는 4,000도 안 남은 병력을 넓게 퍼트려서 일대를 통째로 포위망을 구사하기로 했다.
사실 나쁜 생각은 아니었다.
다만 그런 수작을 쓰려면 진작에 써야 했다.
이렇게 병사들이 줄고 사기다 바닥을 치기 전에 말이다.
“진님!! 로마의 본대의 병사들이 일정 무리를 이뤄서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대 낮부터? 징발을 하려고 하는 것은 아닌가?”
“그렇게는 보이지 않습니다. 대략 500정도의 무리로 갈라져서 일정 거리를 두고 흝어졌습니다.”
“흐음···. 어떻게 할까?”
우진은 적들이 흩어졌다는 소식을 듣고 고민에 빠졌다.
‘일정 거리를 두고 흩어졌다는 것은 수색을 하겠다는 건데···. 본진을 한 번 쳐볼까?’
우진은 순간 본진을 쳐서 직접 베레스의 목을 칠까 생각했었다.
하지만 이내 머릿속에서 그게 유인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기 자신을 미끼로 써서 나를 유인한다. 라는 대법한 계획을 쓸 인물로는 보이지 않았지만···. 그래도 혹시나 라는 사태가 있으니···.’
우진은 적을 얕보는 실수를 하지 않았다.
몇 번의 패배를 겪어도 아직 멀쩡하게 전력을 유지하고 있는 로마와 달리 우진의 붉은 파도에게는 단 한 번의 패배도 치명적일 수 있었다.
무엇보다 아직까지는 우진이라는 절대적인 리더가 꼭 필요한 시점이었다.
‘위험을 무릅 쓸 필요는 없지. 그렇다면 주변의 별동대들을 일단 슬슬 찌르면서 시간을 끌자.’
우진은 그렇게 생각하고 군사를 움직이려고 했다.
그때 아군의 전령이 말을 달려서 다가왔다.
게릴라전을 하는 틈틈이 릴리바이움의 소식을 알기 위해서 보냈던 전령이 돌아온 것이다.
“진님!!! 급보입니다.”
“무슨 일이냐?”
“디오클레이우스 님의 전언입니다. ‘해냈다.’ 라고 하셨습니다.”
그 전언을 들은 우진의 얼굴은 환해 졌다.
“그래··. 해 냈단 말이지?”
“그렇습니다.”
“좋다. 작전을 최종단계로 이행한다. 모두 확실히 따라와라!!!”
“옛!!!”
“옛!!!”
“옛!!!”
우진의 말에 따라서 부하들은 크게 복창했다.
“총독 각하 적들을 찾았습니다.”
“그래? 놈들은 어디에 있는가?”
우진을 찾았다는 소식에 베레스의 얼굴에는 초조함이 드러났다.
아무리 바보라도 더 이상 야전으로 시간을 끌 수는 없다는 것을 알고 있는 베레스였다.
수색망을 펼치고 바로 우진을 찾았다는 연락은 그에게 있어서 가뭄의 단비였다.
“적들은 아군의 수색망을 피해서 북쪽으로 이동중. 그 후에는 동쪽으로 산을 돌아서 동쪽의 대로로 이동 중이라는 말입니다.”
“북동쪽이라····. 좋군. 아주 잘 몰았어.”
지도를 살펴보던 베레스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우진이 북쪽의 대로를 타고 서쪽으로 향했다면 골치 아팠을 것이다.
거기로 계속해서 돌파하면 그때는 붉은 파도의 근거지라고 할 수 있는 릴리바이움이 있으니 말이다.
철벽의 요새이기도 한 붉은 파도는 그렇게 쉽게 떨어 트릴 수 있는 곳이 아니었다.
거기에 우진이 틀어박히면 베레스는 졸지에 닭 쫓던 개 신세를 면 할 수 없게 될 것이었다.
하지만 북동쪽으로 가면 파르노무스가 나온다.
거기는 아직 로마의 영역인 것이다.
“적들을 몬다. 도심의 성벽지 바로 너머까지 놈들을 몰아 붙여서 잡을 것이다.
“옛!!!”
베레스는 부하들과 함께 우진을 파르노무스쪽으로 몰기로 했다.
빠드득····.
“이번에야 말로 끝장을 내 주마.”
베레스는 우진의 목을 쳐서 장대에 꽃고 다 썩어 빠질 때까지 저주를 해 주겠다고 다짐했다.
이미 한 발 먼저 죽여 버린 비비아노와 똑같이 말이다.
============================ 작품 후기 ============================
잘도 하겠다.
응원해 주시는 분들에게 모두 감사드립니다.
즐감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