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화
<우진 베레스를 엿 먹이다.>
우진은 비비아노를 심문해서 최대한의 정보를 얻어냈다.
사실 고문을 곁들일 생각이었는데 비비아노는 그럴 필요도 없이 아는 것을 순순히···. 아니 오히려 필사적으로 말했다.
안 물어보는 것까지 알아서 줄줄 불고 있을 정도였다.
그런 비비아노의 진술에 의하면 이번의 어설픈 공성계는 비비아노 본인이 짠 것이라고 했다.
총독인 베레스는 로마의 원루원에 원군을 청했다고 했지만 그것은 자신이 서신을 가로챘기 때문에 오지 않을 것이라는 것부터 해서 그는 아는 것을 다 말했다.
“대강 알겠다. 그런데 그때, 내 앞에 나타난 이유는 뭐냐?”
“그건····.”
비비아노는 원래 파르노무스의 유지와 얘기가 끝난 후에 목욕을 하면서 편하게 쉬고 있었다.
적당히 와인에 취기가 올랐고 이제 반반한 노예 계집이나 끼고 기분 좋게 쾌락에 취하려고 했다.
그런데 갑자기 도시가 소란스러워 졌다고 하자 덜컥 겁이났다.
그는 서둘러 피하기 위해서 자신의 부하들을 데리고 도시를 벗어려고 했다.
원래 도시에서 방화 한 두 번 일어났다고 겁을 먹을 일은 아니었다.
하지만 최근 시칠리아에서는 붉은 파도로 인해서 로마인들이 잔뜩 겁을 먹고 있는 상태였다.
그래서 비비아노도 서둘러서 도망가려고 했던 것이다.
오히려 그 결과 우진에게 딱 걸리게 되었지만 말이다.
어쨌든 덕분에 우진은 이번 작전의 최초 목적이던 정보의 습득에는 완벽하게 성공했다.
거기서 비비아노를 잡을 수 있었으니 운이 좋았던 것이다.
‘쯧, 그나저나 그 공성계가 총독이 짠게 아니라 이 놈이 짠 것이라면···. 이제 역이용 하는 것은 무리인가?’
아마도 계획의 주체가 되는 비비아노를 잡았으니 계획은 자연스럽게 무산될 것이다.
그렇다면 지금 우진은 자신의 손에 들어온 인질을 최대한으로 이용해야 했다.
“비비아노.”
“예. 진님.”
마치 진의 부하라도 된 것처럼 비굴한 태돌르 보이는 비비아노에게 우진이 말했다.
“지금부터 네 가치를 증명해야 겠다.”
“···그게 무슨···.”
“내가 말하는 대로 양피지에 받아 적어라.”
우진은 비비아노에게 양피지를 주면서 얼굴이 새파래질 문장을 쓰게 했다.
쓰는 내내 비비아노가 식은땀을 줄줄 흘릴 정도였다.
‘이 서신이 총독에게 도착하면····. 난 죽은 목숨이다.’
그렇게 생각, 아니 확신하고 있는 비비아노였지만 그렇다고 해서 지금 다른 생각을 할 수도 없었다.
말을 듣지 않으면 바로 우진의 손에 의해서 목이 날아 갈 테니까 말이다.
다쓴 양피지를 우진에게 내밀자 우진은 씨익 웃으면서 중얼 거렸다.
“이걸로···. 한 방 거하게 먹여 주지.”
쿠웅!!!!
“개···· 자식이·····. 감히······.”
우진에게 패전을 겪은 후에 나날이 술에 취해서 쩔어 있던 베레스 총독의 분노는 극에 극을 뛰어 넘을 정도였다.
만약 지구인이 아니었다면 금발에 노란 오오라라도 뿜어낼 것처럼 분노하고 있었다.
그가 그렇게 분노하고 있는 이유는 다름 아니라 그에게 도착한 한 장의 서신 때문이었다.
그 서신은 그의 최고 측근이라고 할 수 있는 비비아노의 이름으로 되어 있었다.
문제는 그 서신의 내용이었다.
그 내용이란····.
[총독각하.
전 각하의 측근인 비비아노입니다. 시작부터 이런 말씀을 드리기는 죄송하오나 제가 그만 붉은 파도의 진님에게 잡혀 버렸습니다.]
이미 이 대목에서 베레스 총독의 혈압은 한계치에 도달해 있었다.
하지만 그것은 시작에 불과했다.
[지금 붉은 파도에서는 저를 인질로 잡고 총독 각하에게 정규군의 무장 1만 세트와 말 3,000마리, 그리고 현금으로 천만 데나르를 가지고 오라고 합니다.
부디 저를 가엽게 여겨서 구해 주십시오.]
빠드득····.
이쯤 되면 말도 안 되는 행동이었다.
무엇보다 베레스는 붉은 파도에게 사로잡힌 비비아노에게 그런 거액을 쓸 만큼 다정다감한 인간은 절대로 아니었다.
하지만··. 문제는 이 뒤에 있는 문장이었다.
[만약에 저의 요구를 들어주지 않으면 저는 그 동안 총독 각하게서 부정축재한 재산을 원로원에 서신으로 알리겠습니다.
그럼 이만····.]
이런 서신을 받고 베레스가 빡치지 않을 리가 없었다. 한 번에 술기운이 싹 달아나고 대신에 분노로 미칠 것만 같았다.
“크아아아아!!!!”
베레스는 결국 폭발했다.
닥치는 대로 집무실을 부수고 집기를 던지고···.
난리를 부리는 그의 모습은 속주의 총독 이라기 보다는 정신병으로 구금되어야 할 환자 같았다.
“망할!! 개 같은··· 살아 생전 도움이 안 되는 새끼 같으니라고!!!!”
베레스는 비비아노라는 존재를 측근으로 삼은 자기 자신을 저주하고 싶을 정도였다.
비비아노의 서신에 적혀 있는 요구 사항은 어마어마한 것이었다.
로마 정규군의 무장 1만 세트와 말 3,000마리. 거기다 현금으로 천만 데나르라니····.
무장과 말은 총독의 권한으로 긁어 모아서 어찌어찌 빼돌리면 간신히 될 법했다.
하지만 천만 데나르를 지불하기 위해서는 그가 이제까지 온갖 더러운 수작으로 만들어낸 재산을 싹싹 털어야 간신히 가능한 것이었다.
천만 데나르는 그만큼 큰 돈이었다.
잠깐 이 시대 로마의 화폐와 물가를 설명하자면···.
아우레우스(금화)가 있고 그 밑에 데나르(은화), 세스테르타우스(놋쇠), 두폰디우스(놋쇠), 아스(구리) 등의 화폐가 있었다.
지방에서 따로 쓰는 자잘한 화폐를 제외하면 대강 이 정도가 이시대의 화폐였다.
이 시대에 화폐, 즉 돈이라는 것은 그 자체로 가치를 가지고 있어야 했다. 그러서 금이나 은은 물론이고 다른 금속을 돈으로 이용했던 것이다.
물가는 시시각각 변했지만 대략적인 기록에 의하면····
1아우레우스 = 25데나르
1데나르 = 4세스테르타우스
1데나르 = 8두폰디우스
1데나르 = 16아스.
의 가치를 가지고 있었다고 한다.
다만 가장 상위 등급인 금화인 아우레이우스는 일반인들 사이에서는 거의 유통되지 않았다고 하며 상거래에 가장 많이 사용되는 화폐는 데나르라고 한다.
물건의 가격 역시 일정하지는 않았지만 보통 서민에게 필요한 식료품의 경우.
빵 하나에 1아스.
포도주 1리터에 1아스.
고기 1인분에 2아스.
정도였고 필수 식량이 아닌 향신료의 경우는 가격이 더 비싸서···.
생강 1파운드 6데나르.
계피 1파운드 10데나르.
정도는 했다고 한다.
그것 말고도 운송비 장례비, 검투사 시합 같은 운동경기 개최에 드는 비용 등등.
당시의 로마는 고대라고 볼 수 없을 정도로 이미 화폐의 사용이 활발했다.
아, 참고로 그냥 여담하는 말이지만 창녀의 화대는 8아스였다고 한다.
이게 왜 기록으로 남아 있는지는, 누가 남겼는지는 미스테리할 뿐이다.
어쨌든 그런 상황 속에서 천만 데나르는 굉장한 금액이었다.
작은 콜로세움 같은 공공건물 건축비가 오십만 데나르였을 정도니 천만 데나르면 그런 건물을 20채는 세울 수 있다는 말이다.
선박으로 치면 중형 선박을 200선이나 살 수 있는 금액인 것이다
‘크윽····. 내 천만 데나르를····.’
베레스의 입장에서 진짜 미치고 환장할 일은 이 돈을 주지 않을 수가 없다는 것이었다.
우선 비비아노를 앞세운 우진의 요구가 무척 절묘했다.
비비아노는 원래의 역사에서 베레스가 카케로에게 까여서 몰락하는 말로의 시기까지 회계사로 함께 있었던 자였다.
즉, 베레스의 재산에 관해서는 베레스 본인 보다 더 잘 알고 있었다.
겉으로 드러난 재산은 물론이고 숨겨진 뒷면의 재산까지 모두 말이다.
지금 이 서신에 적혀 있는 요구 사항은 딱 그 재산을 총 동원해서 아슬아슬하게 지불 할 수 있는 금액의 한계치에 걸쳐 있었다.
그렇다면 이걸 주지 않고 생 까면 어떨까?
어차피 베레스의 입장에서 봤을 때는 붉은 파도는 그냥 반란군일 뿐이고, 비비아노도 이제는 변절자일 뿐이니 말이다.
하지만 그렇게 했을 때는 베레스의 그간의 부정부패가 원로원의 귀에 그대로 들어갈 것이다.
이번 붉은 파도의 일로 정치생명에 금이 쩍쩍간 상태인 베레스이다.
그런데 그런 대형 스캔들까지 겹치면 목숨 부지하는 것도 바라기 어려울 것이다
“크윽···. 망할···. 망할 붉은 파도새끼들·····. 크아아아!!!!”
베레스는 분통이 터져서 절규했다.
하지만 아무리 성질을 부려 봤자 결국···. 베레스에게 남은 선택권은····
“하나 밖에 없는 거지.”
“호오·····.”
우진의 설명을 다 들은 디오클레이우스는 감탄의 탄성을 내 뱉었다.
우진이 정찰에 갔다가 소란을 겪고 위험에 처했었다는 말을 들었을 때는 눈살을 찌푸렸던 그였다.
하지만 자세히 상황을 듣고 나니 절대 손해가 아니었다.
그 정도의 무구와 재산이 모아지면 파르노무스를 집어 삼키는 것에 준할 정도의 이득이었다.
“진, 그런데 너 이런 짓 꼭 자주 해 본 것 같이 능숙 한걸?”
“타고 났나 보지.”
“어쨌든···. 이로써 파르노무스를 포기해도 충분한 이득이 있겠군.”
“응? ·····나 파르노무스를 포기한다는 말은 한 번도 안 했는데?”
우진의 말에 디오클레이우스는 눈을 휘둥그레 뜨면서 말했다.
“그게 무슨 말이야? 진.”
“그러니까···. 어차피 시칠리아 전체를 장악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고 파르노무스는 그런 과정에서 필수 인 걸? 포기는 안해.”
“하지만 적어도 지금 당장은····.”
“훗, 디오클레이우스, 내가 우리 고향의 속담 하나를 가르쳐 줄까?”
“·············.”
“꿩 먹고 알 먹고.”
디오클레이우스를 바라보는 우진의 얼굴에는 희미한 승리의 미소가 떠올라 있었다.
결국 베레스는 거래에 응하겠다고 응답했다.
비비아노가 가지고 있는 정보가 원로원에 넘어가면 정말로 베레스는 목숨은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실제의 역사에서 베레스는 자신의 부정이 드러났을 때 전 재산을 갖다 바치고 간신히 목숨은 구했었다.
스파르타쿠스의 난에서 시칠리아를 완벽하게 봉쇄한 성과를 인정받아서 그나마 목숨이나 건진 것이었다.
하지만 이번에 시칠리아에서는 붉은 파도의 진이라는 이름이 크게 일어났다.
거기에 엎친데 덮친격으로 시칠리아 속주 총독으로서의 부정 축재까지 드러나면 진짜 끝장이었다.
원래 정치가들 사이에서 한 번 약점이 드러나면 있는 일 없는 일 다 뒤집어 써야 한다.
그것은 고대 로마시대나 현대나 별로 다를바 없었다.
그래서 정치판이 더럽다고 하는 것이겠지만 말이다.
그렇게 해서 베레스와 함께 거래에 응하겠다고 한 우진은 파르노무스 남서쪽의 산기슭의 길목에서 만나기로 했다.
좁은 계곡을 지나가면 약간 넓어지는 분지가 있는데 바로 거기서 만나기로 한 것이다.
약속의 날.
“진님!!! 로마 놈들이 왔습니다.”
“모습은 어떻냐?”
“대량의 짐 마차를 가지고 왔습니다. 약속은 지킨 것 같습니다.”
“군사의 숫자는?”
“대략 1,000정도입니다.”
부하의 보고에 우진은 손가락을 톡톡 두드리면서 계산에 들어갔다.
“흐음···. 좀 많기는 하지만···, 뭐 상관없지. 가자.”
“옛!!!”
“옛!!!”
“옛!!!”
우진은 부하들을 이끌고 로마의 총독을 맞이하기 위해서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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