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로마의 혁명-44화 (44/220)

44화

<아주 잠깐의 휴식과 전운의 기운.>

시라쿠사의 베레스의 관저.

“크윽····. 이··· 이익·····.”

패배한 개의 분노는 더럽고 지저분했다.

이번의 패전은 로마 전체로 봤을 때도 그렇게 가볍지 않았다.

인간으로 치면 개에게 다리를 한 번 콱 물린 정도?

시칠리아 서부의 곡창지대를 포함한 요새 도시인 릴리바이움이 반란군의 손에 들어갔다.

그 말은 적들에게 기점, 식량, 그리고 결정적으로 사기의 진작이 이뤄졌다는 것이다.

시칠리아의 총독인 베레스는 이제까지 원로원에게 붉은 파도의 규모와 피해사례를 대규모 축소해서 보고했다.

그렇게 해서 자신의 무능함을 감추려고 했던 것이다.

하지만 이번에는 격이 달랐다.

원로원의 300명이 전부 귀머거리에 장님이 아니라면 이제 붉은 파도의 손에 릴리바이움이 손에 들어갔다는 것을 알고 있을 것이다.

더구나 릴리바이움이다.

카르타고와의 전쟁 시절에 그 요새를 손에 넣기 위해서 죽어갔던 로마 장병은 널리고 널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요새는 철벽의 강건함을 자랑하면서 떨어지지 않았다.

그 요새가 떨어진 것은 후일 1차 포에니 전쟁에서 협정을 치르면서 로마의 손에 들어온 요새였다.

즉, 만들어지고 나서 단 한 번도 함락된 적이 없는 요새라는 것이다.

그런 중요한 거점을 빼앗긴 이상 이제 원로원에서는 베레스에게 책임을 물을 것이다.

이번에야 말로 무슨 수를 써도 책임을 면하지 못한다.

베레스가 끈을 대고 있는 자들도 순식간에 등을 돌릴 것이 뻔했다.

‘아니···. 이제는 정치 생명이 문제가 아니다.’

베레스는 이제 정치 생명이 아니라 자신의 실제 생명이 위기에 처했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제까지 시칠리아에서 일어났던 두 차례의 노예반란.

아직 스파르타쿠스의 반란이 지나가지 않은 이 시점에서 그것은 노예 반란으로서는 로마 역사상 최대의 것이었다.

그리고 이번에 진에 의해서 손에 들어온 3차 반란이 베레스의 통치하에서 일어나 버렸다.

정치 생명은 고사하고 목숨이라도 이어가고 싶다면 베레스는 어떻게든 붉은 파도를 물리치는 수밖에 없었다.

“비비아노.”

“예. 총독각하.”

“····원로원에····. 사정을 설명하고 원군을 받아와라. 최소 3개 군단 이상의 병력이 필요하다고 해.”

“각하!! 3개 군단이면····?”

“그래. 로마 공화정에서 1만, 그리고 우리 시칠리아 예비군 3개 군단을 동원하면 총 2만, 징집해서 더 모으면 2만5천까지 모을 수 있다.”

베레스는 잔인하게 이를 드러내면서 짓 뭉게 버릴 것처럼 지도상의 릴리바이움을 엄지로 누르면서 말했다.

“짓눌러 버리겠다.”

“····하지만 각하····.”

“어서 전해라. 이제는 체면을 가릴 때가 아니다.”

“·····알겠습니다.”

비비아노는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베레스의 경우도 그렇지만 로마의 정치사는 철저하리 만치 지연과 혈연으로 이뤄진 것이었다.

개개인의 유능함을 둘째 치고 혈통과 연줄이 없으면 원로원에서 직책을 유지하는 것은 하늘에 별 따는 것 보다 어려웠다.

비비아노도 지금은 베레스의 개인 회계사로 있었지만 언젠가는 정계의 진출을 노려보고 있었다.

그래서 오랜 세월에 걸쳐서 베레스에게 충성을 하면서 그의 더러운 재산 증식에 한 몫을 한 것이다.

그런데···.

이제야 결과가 나왔다.

그가 잡았던 밧줄이 썩어 버린 것이다.

베레스는 이번 사태를 아무리 좋게 해결한다고 해도 이제 출세가도에서 떨어졌다.

이제 자신은 다시 시작하거나 아니면 정계로의 진출을 영원히 포기해야 할 것이다.

‘아니···. 아니지. 다른 방법이 있을 것도 같은데···.’

한숨을 내쉬고 베레스의 앞에서 물러나려던 비비아노는 머릿속에서 다른 한 가지 시나리오가 떠 올랐다.

그의 머릿속에만 있는 시나리오···.

그 시나리오에 이름을 붙인다면 ‘무리수’라고 해야 할 것이다.

우후죽순(雨後竹筍).

비온 뒤에 대나무가 쑥쑥 자란다고 하는 말로 몰라보게 쑥쑥 성장하는 것을 보고 흔히 하는 말이다.

지금 혁명군 붉은 파도가 바로 그랬다.

릴리바이움에 자리를 잡은 우진은 거기서 본격적으로 세력을 키우기 시작했다.

우선 릴리바이움에는 이미 남자들의 상당수가 죽었기 때문에 전력으로 쓸 수 있는 사람이 적었다.

하지만 그래도 뒤져보니 병사로 지원할 사람들이 2,000명 정도는 나왔다.

우진의 입장에서 봤을 때는 이것도 감지덕지였다.

총 병력 5만.

우진이 생각하기에 시칠리아를 완전히 재패한 시점에서 최소한 그 정도의 정예 병력이 없다면 로마를 상대하는 것은 불가능 했다.

지금 릴리바이움을 점령한 우진에게 있는 총 병력은 8,000.

에트나 화산에서부터 따라온 자들과 이 릴리바이움에서 확충한 병력.

그리고 릴리바이움의 주변 농장이나 목장에서 도망쳐 온 노예들이 하루하루가 다르게 늘어난 결과였다.

사람이 늘어남에 따라서 우진은 다시 한 가지 문제에 봉착했다.

바로 무기의 수급이었다.

“으음···. 이건 어떻게 하지····.”

이전에 우진은 무기의 확충을 위해서 베레스의 측근인 비비아노를 등쳐 먹었다.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이제와서 그게 또 통할 것 같지는 않았다.

그나마 이번 전투에서 로마인들에게서 빼앗은 무기들을 재활용하고는 있었지만 아직 부족했다.

사실 거기서 얻은 무기들은 대량 4,000세트 정도.

하지만 우진은 무기를 그냥 쓰지 않고 자신들에게 유리하게 가다듬어서 사용하고 있었다.

언월도 하나를 만드는 데 들어가는 쇠는 글라디우스 두자루 분 정도였다.

그나마 언월도는 나았다.

할버드의 경우는 하나를 만들려면 글라디우스 네 자루를 녹여야 했다.

갑옷이야 적당히 다시 사용할 수 있었지만 할버다와 언월도의 생산에 박차를 가하자 4000자루의 글라디우스와 각종 투창들에게서 고작 1,000세트 정도의 무기 박에는 나오지 않았다.

하지만 이미 한 번 언월도와 할버드의 효용을 맛 본 우진이었기에 그 무기들의 생산량에 박차를 가하지 않을 수도 없었다.

그나마 릴리바이움의 무기 창고와 온갖 쇠를 다 긁어 모아서 2,000세트를 더 추가했다.

하지만 나날이 늘어나는 인원을 생각하면 역시 무기의 부족은 심각했다.

‘일부의 부대는 그냥 구식 무장을 하고 싸우라고 해야 하나··? 아니야. 그런 식으로 차별 했다가는 내분의 시초가 도리 거야.’

우진은 머리를 싸매고 생각에 잠겼다.

전략, 전투, 그리고 보급과 릴리바이움의 시민들의 관리까지···.

우진은 거짓말 아니고 몸이 다섯 개라도 부족 할 것 같았다.

듬직한 오른팔인 디오클레이우스는 전투에는 믿음직 했지만 나머지는 별로 도움이 안 되는 남자였다.

그나마 군사들의 훈련에서 제 역할을 하고 있으니 그 점은 고마웠지만 말이다.

어쨌든 지금 이 도시의 모든 일은 하나부터 열까지 모두 우진의 손이 닿지 않으면 되지 않았다.

“진님, 바다에서 오는 로마군을 상대하기 위해서는 배의 건조가 꼭 필요합니다.”

“지금 당장은 무리야. 원래 항구가 있는 도시니까 연안에 있는 배를 재활용 하는 선에서 그쳐.”

“진님, 새롭게 온 사람들의 거주지가 부족합니다.”

“···도시 외각에 숙영지를 만들어. 그리고 병사들은 모두 거기서 생활하게 해.”

“진님, 오늘 저녁은 뭐 먹을까요?”

“····나한테 그딴 것 까지 묻지 마!!!!!!”

시민들 까지 포함해서 대략 1만 5천의 인간이 하나같이 진님 진님 하고 있다.

우진의 입장에서는 애들 1만 5천을 키우는 심정이었다.

그런 우진에게 한줄기의 구원을 내려 준 것은 다름 아닌 디도였다.

우진이 한참 업무로 인해서 과로사 하기 직전.

하늘에서 울리는 맑고 고운 복음이 들려왔다.

“진님. 도시의 식량 분배와 무기 보급은 제가 할까요?”

“·····할 수 있겠어요?”

우진은 처음 디도가 그 말을 꺼냈을 때 약간 미심 쩍었다.

그녀가 머리 나쁜 여자가 아니라는 것은 대강 알았다.

하지만 이 시대에서 여자에게 주어지는 교육은 정말 제한적인 것이었다.

문자를 읽을 수 있다는 것 하나만으로도 충분히 대단한 일이었다.

그 외에 여자들에게 주어지는 교육이라는 것은 자수, 요리, 육아법 등등.

대부분 가정에 충실하게 하기 위한 교육이 주류였다.

그런 시대에서 여자인 디도가 도시의 행정 업무를 제대로 볼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기에는 어려웠다.

그래도 더 이상 자신 혼자서 끌어 안고 있어서 해결될 일도 아니었기에 우진은 반신반의 하면서 그녀에게 일을 맡겼다.

결과는 바로 나왔다.

우진의 걱정은 오판이었다.

디도는 놀랍도록 뛰어난 수완을 보였고, 특히 식량의 분배와 도시 내부의 거주지 사정에 관해서는 우진보다 더 빠삭해 보였다.

소위 말하는 토박이의 사정이라는 걸까?

기존에 릴리바이움에 있던 도시의 시민들 중에 상당수는 아직 우진의 말 보다는 같은 도시의 출신인 디도의 말을 더 잘 들었다.

어쨌든 그런 그녀의 도움 덕분에 우진은 한숨을 놓고 병력의 육성에 전념 할 수 있었다.

물론 그녀는 공짜로 일할 생각은 없었지만 말이다.

“대가로 우진님. 아시죠?”

“····잘 모르겠는데요?”

“어머? 세체니 양을 간신히 설득했는데 본인이 이 핑계 저 핑계····. 남자답지 못하기는···.”

“··········.”

할 말이 없는 우진이었다.

사실 에트나 화산에서 일행이 도착했고, 당연한 얘기지만 우진의 본처(?)인 세체니도 들어왔다.

그녀를 보자마자 디도는 광속으로 담판을 짓기 시작했다.

무슨 말을 어떻게 했는지는 아직도 진에게는 비밀이었다.

하지만 세체니는 디도의 존재를 허락까지는 아니지만 반쯤 묵인하고 있었다.

그녀가 우진에게 굉장히 중요한 힘이 되어 줄 수 있는 존재라는 것을 자각한 것이다.

세체니는 우진에게 순종적이고 또 그가 굉장히 중요한 일을 하고 있다는 자각도 있었다.

그런 진에게 자신의 질투심 때문에 진의 심기를 불편하게 하고 싶지는 않았다.

하지만 우연인지 노리고 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런 세체니의 태도는 우진에게 있어서 절대로 그녀를 배반 할 수 없게 만들었다.

세상에 예쁜 여자는 적다.

하지만 예쁘고 마음까지 착한 여자는 더욱더 드물다.

우진은 여기서 자신이 세체니를 버리면 날 벼락이라도 맞을 것 같은 기분이었다.

덕분에···. 지금 우진의 주변에는 디도가 틈틈이 빈틈을 노리고 있었고 진은 알아서 요령껏 피해가는···.

그런 줄타기 같은 연애전선이 계속되고 있었다.

언제까지 피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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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즐감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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