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화
그거야 릴리바이움의 시민들이 대체적으로 로마를 싫어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었다.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도시 하나가 나타난지 얼마 되지도 않는 혁명군에게 넘어갈 이유는 없었다.
상식적으로 생각할 때 말도 되지 않는 생트집이었던 것이다.
군중들은 노골적으로 베레스를 우습게 보면서 비웃고 있었다.
하나의 촌극이라도 바라보는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베레스는 그런 시선에도 아랑곳 하지 않고 말을 이었다.
“나 베레스는 그런 정보를 듣고 붉은 파도라는 간악한 무리를 처형하기 위해서 찾아왔다. 자, 붉은 파도의 끄나플이 이 자리에 있다면 앞으로 나와라.지금 당장 나와서 공화국의 심판을 달게 받아라.”
베레스의 말을 들은 릴리바이움의 시민들은 어이가 없었다.
이 도시에 실제로 붉은 파도의 끄나플이 있다고 해도 나오란다고 나올 리가 없지 않은가?
시민들이 보기에 베레스는 제정신이 아닌 머저리로 밖에는 보이지 않았다.
‘병신 같은 놈····.’
‘저런게 총독이라니···.’
‘지금 로마에 사람이 그렇게 없나?’
‘내가 해도 저것보다 잘 하겠다.’
군중은 베레스에게 조소를 보냈다. 하지만 이어지는 베레스의 말에 그들의 입가에 맺혀 있던 미소는 싹 사라져 버렸다.
“만약 나오지 않으면, 이 도시 전체에 붉은 파도의 뿌리가 내려져 있다는 것으로 간주하고 이 도시의 모든 시민을 죽여 버리겠다.”
쿠쿵!!!
순간 시민들의 머릿속에 뭔가 무거운 것이 쿵 하고 떨어진 느낌이었다.
“모두 죽인다고?”
“설마···. 우리를?”
“말도 안 돼····. 농담이겠지?”
사람들은 불안감에 술렁 거렸다.
비록 여기 있는 사람들은 로마인은 아니지만 그래도 로마의 속주인 시칠리아의 자유민들이었다.
결국 로마의 시민권을 가지고 있는 자들이란 말이었다.
그런 시민들을···.
그것도 한 도시 전체를 한꺼번에 지워 버리겠다는 것은 시민들에게 있어서 재미없는 농담으로 밖에는 들리지 않았다.
하지만····.
“내가 장난으로 이런 말을 한다고 생각하면 큰 오산이다.”
베레스는 한쪽 손을 들어서 신호를 보냈다.
그러자 어느새 광장을 포위하고 있는 로마의 병사들이 활을 매기고 방패를 들었다.
“어···. 어어····?”
“이건···. 이거 설마?”
“엄마·····.”
“걱정하지 마렴···. 아무 일도 없을 거야. 아무 일도···.”
시민들은 극도로 불안해 했다.
몇몇 여성들은 눈물을 글썽이고 있는 아이들을 안심 시키고 있었다.
그들 모두가 한마음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이 모든 것이 협박일 뿐이라고 말이다.
실제로 아무리 속주의 총독이라고 해도 중요 도시의 인구 전체를 말살 시켰다가는 두고두고 악평이 뒤를 따를 것이다.
하지만···. 궁지에 몰린 쥐가 발악을 하듯이 지금 베레스는 눈에 보이는 것이 없었다.
“아무도 나오지 않는 건가? 유감이군.”
그리고 베레스가 손을 내린 것과 동시에 군대가 시민들을 향해서 활을 쐈다.
쉭!!
“아악!!!”
시민 한명이 날아온 화살이 어깨를 맞았다. 그리고 그것을 시작으로 로마군의 학살이 시작되었다.
“모두 죽여라!! 이들 모두가 붉은 파도이다.”
“옛!!!”
“옛!!!”
“옛!!!”
로마의 병사들은 무자비하게 릴리바이움의 시민들을 학살해 가기 시작했다.
“아악!!!”
“사람 살려!!!”
“이놈 베레스!! 아악!!!”
“엄마···· 엄마·····.”
순식간에 아비규환이 벌어졌다.
로마의 군대는 광장에 모인 시민들을 무차별적으로 학살했다.
남자, 여자, 노인, 아이.
그 무엇도 가리지 않고 이들 모두를 확실하게 죽여갔다.
몇몇 남자들이 분노로 그들에게 덤벼 들었지만 맨주먹으로 로마의 정예병력에게 덤비는 것은 자살행위였다.
좀 전 까지만 해도 사람들이 가득했던 관장의 바닥은 붉은 피의 연못이 생겼고 작은 시체의 무더기가 쌓였다.
신이 있다면 지금 이 참극을 만든 자를 절대로 용서하지 못할 정도로 잔인한 행동이었다.
하지만 베레스는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지금 당장 도시의 문을 걸어 잠궈라. 그리고 광장에 나오지 않은 시민들을 모두 체포해라. 죄목은 붉은 파도와의 내통죄다.”
“옛!! 알겠습니다.”
베레스의 명령을 전달 받은 전령은 바로 병사들엑 지시를 내렸다.
그리고 병사들은 당장 명령대로 성문을 봉쇄하기 위해서 움직이기 시작했다.
사실 베레스는 잡음을 없애기 위해서 사전에 지휘관들에게 지시를 내렸다.
이 도시를 점령하게 되면 약탈을 마음껏 허락하겠다고 말이다.
보통 약탈이라는 것은 이 시대의 배경으로는 전쟁터에서 당연한 권리였다.
돈, 가축, 보물, 그리고 여자까지···.
로마군에 대항했던 부족이나 국가는 그 모든 것을 공화국의 발길질 아래에 유린당하고 빼앗겨야 했다.
하지만 평화로운 속주에서 복무중인 이 군대에게 있어서 약탈이라는 것은 그리 쉽게 찾아오지 않는 기회였다.
그로 인해서 병사들은 오히려 신이 났다.
재빨리 성문을 봉쇄하고 쥐 잡듯이 도시 전체를 뒤지면서 생지옥을 만들기 시작했다.
“이리 내놔!!!”
“이 개자식들··· 크악!!”
“아악!!! 여보!!!”
“호오!! 제법 괜찮은걸? 이리 와 봐라.”
“안 돼!!!”
“이리 오라고!!!”
“엄마!!!! 엄마!!!”
“이 애새끼가!!!”
지옥.
꼭 죄 짓고 죽어야만 볼 수 있는 곳은 아니었다. 인간은 원래 천사보다 선하게도 악마보다 악하게도 될 수 있는 존재들.
지금 이 시간, 이 장소가 바로 악마들의 욕망과 광기로 만들어진 지옥인 것이다.
수많은 자들이 죽거나 노예로 쓰기 위해서 낙인이 찍혔고, 여자들은 병사들에게 무차별적으로 겁탈 당했다.
개중에는 남편이나 아이들이 보는 앞에서 욕을 당하는 안타까운 여성들도 있었다.
너무나 분해서 그대로 피를 토하며 죽어 버리는 여자들.
죽은 여자들의 시체를 고사리 같은 손으로 부여잡고 울고 있는 아이들.
억센 로마의 병사들에게 잡혀서 자신의 가족의 죽음을 그저 지켜만 봐야 하는 남자들.
지금 이 자리. 이 장소에 그야말로 진정한 지옥이 펼쳐져 보이고 있었다.
“빌어먹을 개 자식들!!!!”
릴리바이움의 성벽이 봉쇄 당하기 전에 재빨이 빠져나온 마시르의 보고를 받은 우진은 이를 악물고 분노했다.
설마설마 하기는 했다.
공적을 세울 수 없으면 공적을 만들어 버리면 되는 것.
예전부터 자신의 전공을 과대 보고하거나 아무 상관없는 산적이나 해적들을 토벌하고 적군을 물리친 것으로 보고하는 꼼수는 고대사 어디에나 즐비했다.
하지만···. 설마하니 속주의 시민이라고 해도 로마 법령 아래에 자유와 신변의 보호를 보장받은 시민을 학살 할 것이라고는 우진도 확신하지 못했다.
‘개자식······. 그렇게 나온다 이거지····.’
우진의 분노는 정점에 달했다.
사실 우진이 릴리바이움의 시민들의 안전을 책임져야 할 의무는 없다.
그들인 그렇게 된 것은 어디까지나 베레스가 자신의 무능함을 감추기 위해서 희생양으로 쓰려고 했던 것 뿐이다.
하지만 그것과 별개로 우진은 분노하고 있었다.
이것은 아직 우진의 머릿속에 남아 있는 21세기 현대인의 감정이 작용한 것인지도 모른다.
살인에 무감각해 졌다.
적을 죽이고 나서 죄책감 대신에 고양감과 승리감을 느끼게 되었다.
자신의 길 앞에 수많은 피와 시체가 있다는 것을알고 있지만 주저 없이 걸어가기를 결심했다.
하지만···. 이번 릴리바이움의 사태는 뭔지 모를 근본적인 우진의 어떤 감성을 자극했다.
“절대 그냥 두지 않겠다. 마시르.”
“예. 진님.”
“너에게 한 가지 위험한 임무를 내리겠다. 수행 할 수 있겠나?”
“진님의 물음은 불필요한 것입니다.”
“··········.”
“제 목숨은 이미 한 번 버린 몸. 진님이 원하신다면 언제 어디서든 소모하는 한 번의 도구로 사용해 주십시오.”
충성심이 가득한 마시르의 눈을 보고 우진은 듬직하다는 듯이 말했다.
“고맙다. 그럼····.”
우진은 마시르에게 상당히 위험한 임무를 수행시켰다.
잘못 하면 죽을 수도 있는 임무를 말이다.
죽음과 피의 저주를 받은 것 같은 릴리바이움.
얼마전까지만 해도 시칠리아 중요 해안 도시중에 하나였던 이 도시의 시민들은 모두 두 가지 중에 하나로 변했다.
시체, 혹은 노예.
약탈을 허락 받은 순간 제1표적이 되었던 것은 여자들이었다.
여자들은 당장 혈기 왕성한 병사들의 노리개로도 인기였지만 나중에 노예로 판다고 해도 제법 값을 받을 수 있었다.
노예의 가격은 시시때때로 폭락을 동반하기는 했지만 그래도 언제 어느 때건 유용한 재산이었다.
그래서 릴리바이움의 살아남은 인구 중에 7할 가까이는 젊은 여성이었다.
그렇게 지옥으로 변한 릴리바이움은 며칠 사이에 주변 도시에 그 소식이 전해졌고 그 어떤 상인도, 심지어는 떠돌이 나그네 하나도 릴리바이움의 성문에 문을 두드리지는 않았다.
그런데 오늘 멀리서 한명의 청년이 말을 타고 나타난 것이다.
릴리바이움의 성문을 지키고 있던 로마 병사들은 그걸 보고 눈에 이채를 띄었다.
“누구지?”
“글쎄···. 미친놈 아니면 겁 없는 놈이겠지.”
중이 고기 맛을 알면 절에 벼룩이 사라진다고 했던가?
그것과 마찬가지로 병사들이 약탈을 알고 나면 그 후로는 군기가 문란해지는 법이다.
이미 릴리바이움을 점거한 로마의 2개 군단은 반쯤 산적때 비슷한 인간들로 변질되어 있었다.
인간··. 특히 단체라는 멍울에 매여져 있는 인간의 타락은 정말 순식간인 법이다.
그들의 앞에 나타난 청년은 말 위에서 그들을 당당하게 내려다 보면서 말했다.
“총독에게 안내해라. 전언을 가지고 왔다.”
그의 그런 말에 병사들은 순간 어이가 없었다.
“총독각하가 네놈 종으로 보이냐? 겁도 없는 놈이군.”
“보아하니 이 놈도 붉은 파도와 한패로군. 지금 당장 머리를 몸에서 분리시켜 주마.”
윽박지르는 병사들을 보고 마시르가 말했다.
“그렇다. 난 영광스런 혁명군 붉은 파도의 전사 마시르다.”
“·············.”
“·············.”
순간 마시르가 순순히 자신이 붉은 파도라는 것을 인정하자 병사들은 할 말을 잃어 버렸다.
설마설마 했는데 정말로 그럴 줄은 몰랐던 것이다.
============================ 작품 후기 ============================
로마의 누구 식으로 말하자면....
'주사위는 던져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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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즐감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