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화
베레스의 시칠리아 총독 재임기간은 그렇게 길지 않다.
원래 시칠리아는 로마인들이 속주의 총독으로 가고 싶어하는 곳 중에서 무척 인기 있는 장소였다.
로마의 곡창지대 역할을 하고 있었고, 기후도 따뜻했으며 무엇보다 로마로 가는 교통편이 가까웠다.
그렇다 보니 베레스도 이 시칠리아의 총독으로 취임하기 위해서 돈을 제법 많이 썼다.
그렇게 해서 총독으로 부임한 베레스가 가지고 있는 생각은 딱 하나.
뽑을 수 있을 만큼 뽑아 보자는 것이었다.
그래서 산적들과의 거래도 서슴치 않은 것이다.
산적이나 도적때를 토벌하고 속주의 치안을 안정 시켜야 할 총독이 그 산적들하고 내통을 하고 있다니···.
이게 로마인들에게 알려지면 큰 스캔들이었다.
그러나 이 시칠리아에서 총독은 사실상 왕이나 다름 없는 권력을 가지고 있었고···.
결국 베레스는 자신의 심복인 비비아노를 통해서 이렇게 산적들하고 거래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비비아노는 그 주인에 그 심복 아니랄까봐 중간에서 적당하게 자기 마진을 때고 있었다.
어디까지나 베레스의 눈에 거슬리지 않을 정도로 눈치껏 말이다.
그런 비비아노에게 있어서 이렇게 많은 황금을 가져다 준 우진은 참으로 쓸모 있는 인재로 보렸다.
‘적당히 머리도 굴릴 줄 알고, 자기 밥그릇만 챙겨주면 일은 충실히 할 개로군.’
그게 비비아노가 우진에 대해서 가지고 있는 생각이었다.
그는 회계사이기는 했지만 정치가로서의 역량은 없는 것 같았다.
정치적으로 인간을 바라보는 식견이 약간만 있는 존재라면 우진의 행동에 위화감을 느끼고 의심도 하겠지만···.
그는 황금이 전부인 인간이라서 우진에게 넘어가 버리고 말았다.
“총독 각하에게는 잘 말해 두마.”
“감사합니다.”
그렇게 해서 우진은 이 전의 산적들이 가지고 있던 거래선과 더불어서 안전이 어느 정도 보장되는 거처까지 얻었다.
그 덕분에 양성소에서 탈출 할 때 가지고 온 레마이오스의 보물의 반을 써 버렸지만 그래도 얻은 것이 컸기에 후회는 하지 않았다.
‘앞으로 남은 시간이 얼마인지는 몰라도···. 그 동안에 최대한 힘을 키우면 되는 거야.’
우진은 그렇게 마음을 다잡았다.
그리고 그는 비비아노가 가는 길에 그에게 말했다.
“비비아노 어르신. 사실 부탁이 한 가지 있습니다.”
“부탁?”
“예. 저희들의 세금에 대한 대가 말인데···. 식량과 생필품과 더불어서 무기를 지급 받을 수 있을까요?”
우진의 말에 비비아노의 얼굴은 험악해 졌다.
“무기? 무슨 생각이냐?”
아무리 그래도 산적들에게 무기를 지급한다는 것은 큰 일이었다.
단번에 험악해진 비비아노의 얼굴을 보고 우진은 미리 준비해둔 대사를 했다.
“이 주변에 제법 큰 신흥 산적단이 생겼습니다.”
“신흥 산적단?”
“예. 붉은 파도라는 놈들인데····. 그 놈들에게서 우리 영역을 지키기 위해서는 아무래도 무장을 단단하게 해야 할 것 같습니다.”
“붉은 파도···? 붉은 파도라·····? 본거지는 어디냐? 정 거슬린다면 우리가 정규군을 파견해서 제거해 주겠다.”
“아니···. 저희도 거처는 잘 몰라서····.”
‘칫, 빌어먹을 개자식····.’
우진은 속으로 혀를 찼다.
붉은 파도라는 것은 우진이 지어낸 거짓말이다.
다만 그것으로 인해서 무기를 얻어낼 구실을 만들려고 할 뿐이었다.
하지만 비비아노는 차라리 산적들에게 무기를 주느니 자신들이 그것을 토벌하고 전과로 삼는 편이 이득이라고 생각했다.
역시 산적단에게 무기를 주는 것은 그에게도 내키지 않았던 것이다.
‘할 수 없지. 지금 당장 무기 거래는 포기 하는 수밖에····.’
우진은 그렇게 생각하면서 말을 마무리 지었다.
“아직은 거처를 모르지만 혹시 알게 된다면 반드시 비비아노 어르신에게 알리겠습니다.”
“알면 됐다. 그럼 다음 거래부터는 대리인을 보내겠다. 가자!!”
그는 그렇게 말하면서 부하들을 데리고 떠났다.
어쨌든 원하는 무기 거래는 아직 불가능 하게 되었지만··. 그래도 한가지 수확은 있었다.
“디오클레이우스.”
“음···.”
“참느라 수고 많았다.”
우진의 말에 디오클레이수는 피식 웃으면서 말했다.
“너만 하려고. 내가 너라면 저 새끼 대가리를 수백번을 쪼개 버렸을걸?”
‘····언젠가는 그렇게 할 거야.’
우진은 그냥 피식 웃으면서 디오클레이우스에게 말했다.
“이 식량을 안으로 날라. 그리고 오늘은 연회다. 숨어 있던 여자들도 불러서 모두 마음껏 먹고 마시라고 해.”
“알겠다. 진.”
진은 놈들이 두고 간 막대한 식량과 와인을 보면서 한껏 미소를 지었다.
식량 뿐만이 아니라 옷감과 생필품도 한가득 있었다.
이런 것 들을 구할 루트가 생긴 것만 해도 우진에게 있어서는 정말 반가운 것이었다.
그날, 우진의 일행들은 안도의 땅을 찾았다는 것을 기념하면서 실컷 먹고 마셨다.
달 밤 아래에 취해서 노래 하는 여인들과 사내들.
각각 민족도 고향도 제각각 이었지만··.
그래도 이들은 이미 한 가족이나 다름 없었다.
다음날.
우진은 슬슬 앞으로의 계획을 정하기 시작했다.
우진은 돌에 숯으로 적어 가면서 앞으로의 계획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우선 지금 부족한 것. 그리고 앞으로 필요한 것.’
우진은 차분하게 생각하면서 현 상황을 정리해 갔다.
필요한 것은 일단 머릿수, 그리고 무기였다.
우진의 지금 일행에서 제대로 된 전투 인력은 100여명 남짓이었다.
그 중에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검투사들은 강력한 전력이었지만 그래도 그걸로 로마한테 덤빈다는 것은 용기를 넘어선 만용이었다.
‘최소한 5,000명 정도의 전력은 모으고 싶어.’
우진이 생각하는 최소한의 전력은 이것이었다.
50여명의 검투사들을 전원 백인장으로 만들어서 50개의 부대로 나누면···.
그것은 훌륭한 전력이 될 터였다.
스파르타쿠스 역시 200의 동료들로 시작해서 수만에 이르기까지의 무수한 군세를 모았다.
그 대부분이 노예들이었지만 개중에는 로마의 현 체제에 반기를 드는 자유민들도 있었다고 한다.
어쨌든 사람을 모으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명분과 명성이다.
스파르타쿠스는 명분이 있었다.
로마 공화국의 발길질 아래에서 노예들을 해방 시키겠다는 명분이 말이다.
그동안 억제 당하고 탄압 당하고 있던 노예들이 들불처럼 일어나서 스파르타쿠스에게 동조했다.
하지만 지금 우진이 그렇게 하기는 무리이다.
그 이유는 두 가지가 있었다.
첫째, 우선 이 시칠리아는 스파르타쿠스의 반란이 있기 전에도 대규모 노예 반란이 두 번이나 있었다.
원래 시칠리아는 포에니 전쟁에서도 로마와 카르타고 사이를 오가면서 양국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특히 서부 지방에는 아직까지 카르타고의 잔재가 많이 남아 있었고 그곳의 시민들은 로마인들을 인정하지 않으려고 했다.
그렇다 보니 시칠리아에 정착한 로마인들은 두 번의 노예반란에서 크게 학을 때어서 다른 지역보다 노예들을 관리 하는게 특히 더 엄했다.
그리고 둘째는 우진 스스로 생각하기에 지금은 이름을 날리는게 아니라 멀리 뛰기 위해서 한참 웅크리고 있어야 할 때라고 판단했던 것이다.
운이 좋아서 시칠리아의 총독과 선이 닿았다.
이것은 한동안, 적어도 스파르타쿠스의 이름이 날려지기 전에는 별일 없이 우진이 힘을 모을 수 있는 최소한의 여건이 마련된다는 것이나 다름 없었다.
그런데 우진이 무작정 노예들을 선동해서 머리수를 늘린다면 그때는 총독과의 연계로 인한 안전이 붕괴 될 것이다.
언젠가는 로마 전체를 상대로 싸워야 겠지만··.
적어도 그게 지금은 아니다.
‘결국 머리수는 몰래 몰래 조금씩 모으는 수···. 아니 아니지····. 그래. 그런 수가 있었지.’
우진은 잘만 하면 일거양득의 계책을 잡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머릿속에서 번뜩이는 좋은 생각이 난 것이다.
“디오클레이우스!!!”
우진은 아침부터 일어나지도 숙취로 뻗어 있는 친구를 불렀다.
지금 머릿속에 떠 오른 나이스 아이디어를 빨리 설명하기 위해서 말이다.
“····그거 진심으로 하는 말이야?”
“그래. 물론 진심이고 말고.”
“·········.”
우진의 계획을 다 들은 디오클레이우스는 우진의 머릿속을 한 번 열어보고 싶었다.
‘도대체 어떻게 하면 이런 대담한 생각이 가능한 거지? 혹시 지름신의 신탁이라도 받은 건가?’
우진의 계획을 다 들은 디오클레이우스는 처음에는 말도 안 된다고 헛웃음이 나왔다.
하지만 우진의 설명이 계속 됨에 따라서 꼭 그렇지만은 않다는 생각이 서서히 들기 시작한 것이다.
“···정말 들키지 않을까?”
“물론이지. 우리 나라에 이런 말이 있어.”
“············.”
“등잔 밑이 어둡다.”
“·······좋았어. 어차피 우리야 널 따를뿐. 해보자 우진.”
“좋아. 그럼 애들 모아.”
그렇게 우진과 디오클레이우스는 바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로마인들 중에는 도시에 모여서 살아가는 자들도 있었지만 그렇지 않은 자들도 있었다.
예를 들어서 개인 농장이나 빌라를 가지고 있는 자들은 거기에 저택을 지어 놓고 수백명의 노예들을 부리면서 살아가기도 했다.
우진은 부하들과 함께 그런 농장이 한눈에 보이는 언덕에 올라와 있었다.
“저기가 첫 번째 목표군.”
우진은 한눈에 내려다 보이는 농장을 보고 살짝 감탄했다.
마치 한국의 작은 농촌을 보는 듯 했다.
방대한 농장에는 포도밭과 보리밭이 넓게 펼쳐져 있었고 거기에 깨알처럼 움직이고 있는 것은 아마도 노예들일 것이다.
우진을 뒤를 보면서 말했다.
“모두들 준비는 됐나?”
“예!!”
“예!!”
“예!!”
우진의 말에 뒤편의 부하들은 모두 크게 외쳤다. 그런 그들의 얼굴에는 모두 붉은 복면이 감겨져 있었다.
검투사 출신의 부하들 말고 그동안 훈련을 받아온 다른 노예들도 이번에 무기를 들고 이 습격에 참가했다.
“모두들···. 잘 들어라. 이것은 저 거대한 로마를 쓰러트리기 위한 첫 걸음이다. 우선···. 저 농장에서 탄압 받고 있는 우리와 같은 처지의 동포들을 구한다. 알겠나!!”
“옛!!!”
“옛!!!”
“옛!!!”
“좋다. 그럼 가자!!”
우진은 그렇게 말하고 부하들과 함께 농장을 습격하기 위해서 진격했다.
============================ 작품 후기 ============================
추천과 댓글은 작가에게 큰 힘이 됩니다.
즐감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