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화
<멀리 날기 위해서 지금은 움추릴 때.>
“시칠리아의 총독하고 직거래? 그게 정말이냐?”
우진의 말에 산적 두목은 고개를 열렬하게 끄덕이면서 제발 자기 말을 믿어 달라는 듯이 말했다.
“정말입니다. 제가 어느 안전이라고 거짓말을 하겠습니까?”
“·············.”
우진은 섣불리 믿지 못하고 있었지만 그래도 상대가 거짓말을 하는 것 같지는 않았다.
‘그 잘난 로마인. 그것도 시칠리아의 총독이 산적 나부랭이하고 거래라니···. 사실이라면 어지간히 썩은 관리이겠군.’
우진은 가이우스 베레스를 모른다.
사실 이 시대의 로마인들 중에 유명한 인물은 시저, 크라수스, 폼페이우스 정도가 다였다.
다른 이들이 무능하다기 보다는 이들 세명이 이끈 삼두정치가 워낙에 세계적으로 커다란 전기를 가져온 시기였기에 다른 인재들은 묻혀진 것이다.
우진은 키케로의 베레스 반박문도 모르고, 가이우스 베레스가 후일 부패의 대가로 비참한 말년을 보내는 것도 몰랐다.
하지만···. 산적들의 뒤를 봐주는 로마인. 이라는 것 하나만으로도 그가 상당히 썩은 관리라는 것을 직감하고 있었다.
‘좋군··. 아주 좋아.’
로마의 썩은 관리라니···.
우진에게 있어서는 실로 하늘이 내려주신 행운이 아니라 할 수 없었다.
‘계획을 약간 수정해야 겠군.’
우진은 자신의 계획을 약간 수정하기로 하면서 부하들을 이끌고 산적들의 본거지를 점거했다.
산적들의 본거지를 점거하는 것은 매우 쉬웠다.
애당초 산채에 남아 있는 인원은 극소수였고 그나마 남아 있는 인원도 걸레짝이 된 산적두목을 인질로 내세우자 감히 싸울 생각을 하지 못했다.
산채를 접수한 우진은 재빨리 산채를 리폼(?)하기 시작했다.
우선 여자들이 살 수 있는 공간을 우선적으로 확보해서 그녀들을 배려했다.
사실 여자를 우선적으로 보호하려고 하는 우진의 태도는 이 시대의 남자들에게 공감대를 얻지 못하고 있었지만···.
그 대신에 여성들에게는 압도적인 지지를 받고 있었다.
우진은 여자들이 머물게 된 건물을 최대한 멀쩡하게 수선하고 또 남자들의 인력을 두 부류로 나눴다.
전투 병력과 후원 병력.
전투 병력은 우진을 포함한 검투사들과 그 외에도 싸움에 능숙할 것 같은 자들을 뽑았다.
그리고 싸움에 익숙하지 못한 자들은 따로 뒤에서 일행을 보조하는 역할을 하기로 했다.
한마디로 전체적인 잡부였다.
사실 이것도 나름 중요한 역할이기는 했다.
한 무리가 존재하려면 잡일이 산재하게 생기는 법이고 그것을 처리하기 위해서 예비 병력을 만드는 것은 중요한 일이었다.
일 예로···. 대한민국의 군인들이 어째서 전역 할 무렵이면 삽질에 도가 트는지를 예로 생각하면 알기 쉬울 것이다.
어쨌든 산적들의 산채는 지내기 좋았다.
산적들이 그동안 쌓아두고 있던 식량도 풍족하게 있었고 비바람을 피할 주거 환경이 있다는 것만 해도 대단한 일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반가운 것은 이 산채에 온천이 있다는 것이었다.
애당초 화산지대에 속해 있는 곳이니 온천이 있는 것은 놀랍지 않았지만 그래도 산채의 바로 뒤편에 온천이 있다는 것은 정말 반가운 일이었다.
원래 이 온천은 산적의 두목이 자신과 자신의 애첩들만을 데리고 이용하던 곳이었다.
하지만 우진은 그런 온천을 모두에게 개방했다.
그리고 부하들에게 가능하면 자주 씻을 것을 명령했다.
‘위생만 약간 신경 써도 질병의 반은 줄일 수 있지.’
우진은 위생이라는 관념을 철저하게 부하들에게 주입 시켰다.
이렇게 산채에서 하루하루 모양을 잡아가던 우진에게 드디어 기다리고 기다리던 인물들이 나타났다.
“진!! 네가 말한대로 로마인들이 나타났어.”
디오클레이우스의 보고를 받은 우진은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나면서 말했다.
“그래···. 알겠어. 내가 지시한 대로 안내해.”
“알겠어. 하지만···. 꼭 그렇게 해야 해?”
우진의 말이라면 어지간한 일은 군말없이 다 따르는 디오클레이우스다.
하지만 그런 그가 이렇게 싫은 티를 낸다는 것은 정말로 하기 싫은 일이라는 것이었다.
“디오클레이우스. 자세한 얘기는 나중에 해 줄게. 하지만 이게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일이라는 것은 알아 줬으면 해.”
“····난 내키지 않아. 로마인들을 어떻게 믿고··.”
“나도 안 믿어. 엿 같은 로마인들을 어떻게 믿어?”
“········.”
“대신 나 자신을 믿을 뿐이지.”
“·······.”
“넌 나를 믿나? 디오클레이우스?”
우진의 말에 디오클레이우스는 머리를 벅벅 긁으면서 말했다.
“그래. 난 너를 믿는다. 형제여.”
“좋았어. 그럼 난 너의 믿음에 보답하지. 가자. 엿 같은 로마 새끼들에게 사기를 칠 시간이다.”
우진은 그렇게 말하면서 디오클레이우스와 함께 산채의 정면으로 나갔다.
거기에 가니 로마의 군대로 보이는 자들이 수례를 싣고 다가오고 있었다.
‘저들이 바로 이 시칠리아의 총독인 가이우스 베레스의 부하들이란 말이지.’
이 산채의 두목은 장물아비로 간 크게도 로마의 총독과 거래를 하고 있었다고 한다.
그리고 그 커낵션은 우진에게 있어서 지금 그 무엇보다 필요한 것이었다.
우진은 마음을 굳게 먹고 무리를 이끌고 있는 자들에게 가서 깊숙하게 고개를 숙이면서 말했다.
“오셨습니까? 저는 이 산채의 새로운 관리자인 숀이라고 합니다.”
우진은 자신의 이름인 진이라는 이름이 혹 들킬까봐 숀이라는 영국식 이름을 썼다.
“흐음···. 북방 이민족의 이름이군. 그래. 이 산채의 새로운 주인이라고?”
우진의 정중한 인사를 받은 로마인은 우진을 오연하게 내려다 보면서 말했다.
“예. 그렇습니다.”
“····내가 누군지는 아나?”
“모릅니다.”
우진의 단호한 대답에 로마인은 턱을 쓰다듬으면서 기특하다는 듯이 말했다.
알면서도 모르는 척 한다는 것이 눈치가 있어서 기특하다는 것이었다.
“조금은 싹수가 있는 놈이군.”
“··············.”
“내 이름은 비비아노다. 비비아노 어르신이라고 부르도록 하라.”
“영광입니다. 비비아노 어르신.”
비비아노는 원래의 역사에서 가이우스 베레스의 회계사로 그의 횡령이 드러났을 때 증거를 인멸하려고 했다가 된통 욕을 치른 인물이다.
뭐···. 사실 역사적으로 봤을 때 정말 정말 피라미나 다름 없는 인간이었다.
이탈리아인 이라면 혹 모를까 유럽이 다른 나라 사람들도 베레스라고 하면 ‘너 누구?’ 라고 할 정도로 피라미였다.
당연히 우진도 비비아노가 누군지 모른다.
다만 지금 중요한 것은 이 피라미의 비위를 맞춰서 거래의 커낵션을 손에 넣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이렇게 비굴할 정도로 고개를 숙이고 있는 것이다.
우진에게 사전에 주의를 들은 디오클레이우스와 우진의 부하들은 이런 우진의 모습에 애써 담담함을 보이고 있었지만···.
‘저 빌어먹을 배불뚝이 새끼를·····.’
‘죽인다··. 반드시 죽인다.’
‘대가리를 열 조각으로 부셔서 하데스의 면전에서누군지 말도 못하게 해 주지.’
그렇지만 우진의 부하들의 심장은 부글부글 끓어 오르고 있었다.
한편 우진이 한참 고개를 숙이고 있으니 비비아노가 입을 열었다.
“일단····. 들어가서 얘기하지.”
“감사합니다. 비비아노 어르신.”
우진은 그렇게 말하면서 비비아노를 안내해서 자신의 방으로 데리고 갔다.
“자리에 먼저 앉으십시오.”
“북방 미개인 치고는 예의를 아는 구나.”
비비아오는 우진의 가명을 보고 북방의 야만인. 그러니까 잉글로 색슨족 계열로 보고 있었다.
사실 금발에 푸른눈이 심벌인 잉글로 색슨족하고 우진의 모습은 차이가 컷지만···.
거기까지 식별할 수 있을 정도로 이 시대의 인간의 견문은 넓지 않았다.
그리고 무엇보다 놈에게 중요한 것은 우진의 이름이나 민족이 아니었다.
우진이 자신에게 충실한 개가 될 것인가? 말 것인가야 말로 놈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이었다.
“전 두목은 어떻게 되었나?”
“죄송합니다. 제가 그만····.”
“흠, 죽였나?”
“····죄송합니다.”
“됐다. 과연 야만인이군. 문명의 이기라고는 조금도 누려보지 못한 미개한 인간다운 행동이야.”
‘지중해 전역에 걸쳐서 온갖 민족의 노예를 다 끌어 모으고 있는 너희 로마인들이 할 말은 아니지. 이 병신 새끼야.’
우진은 입은 꾹 다물고 어디까지나 속으로만 놈의 말에 반박했다.
지금은 참아야 할 때.
그리고 굴욕을 감내해야 할 때이다.
다만 나중에 돌려 줄 때 100배로 돌려 주기로 마음먹고 있는 우진이었다.
“그래···. 우리가 누군지는 알고 있나?”
“예. 전 산적 두목이 죽기 전에 모두 말했습니다.”
“그래··. 그럼 그놈들이 우리 보호하에 있었다는 것도 잘 알고 있겠군.”
그렇게 말하는 비비아노의 목소리에는 진한 살기가 흘러넘치고 있었다.
그런 비비아노의 목소리를 들으면서 우진은 지금이 이 거래의 성사 여부를 가르는 승부처라는 것을 알았다.
“무슨 생각을 하면서 그들을 죽였지?”
“그 대답을 하기 전에 보여 드리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우진은 그렇게 말하면서 손뼉을 쳤다.
그러자 부하들이 상자 몇 개를 들고 나타났다.
사람의 머리만한 상자 몇 개를 가지고 온 후에 우진은 비비아노에게 말했다.
“이것을 확인해 보십시오.”
“·······이게 뭐지?”
“제 입으로 듣는 것 보다 직접 보시는 것이 나을 것 같습니다.”
“·············.”
우진의 말에 비비아노는 불쾌하다는 듯이 인상을찡그리면서 상자의 뚜겅을 열었다.
그리고 상자를 열어본 순간 놈의 얼굴에서 불쾌감은 온대간대 없이 사라져 버렸다.
“오오오!!!”
얼굴을 때리는 찬란한 황금빛과 갖가지 보물들.
이런 상자가 다섯 개나 눈앞에 있으니 비비아노는 크게 마음이 흔들렸다.
그때를 놓치지 않고 우진이 재빨리 입을 열었다.
“이것은 전 산적 두목이 개인적으로 가지고 있던 것입니다.”
비비아노는 베레스의 심복이자 회계사이기도 했다.
당연히 우진이 하는 말이 무슨 뜻인지도 이해했다.
“놈이 중간에 빼돌렸다는 말이군.”
“그렇습니다.”
“그리고 넌 절대로 그럴 일 없을 것이니 믿어 달라는 말이고 말이야.”
“그 증거가 지금 눈앞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
우진의 고분고분한 태도를 보고 비비아노는 내심 고개를 끄덕였다.
‘괜찮군···. 이 놈 쓸만 하겠어.’
============================ 작품 후기 ============================
멀리 날기 위해서는 때로는 움추리고 바람이 불기를 기다리는 것도 중요한 법이죠.
우진이 본격적으로 힘을 모으기 시작할 시기입니다.
응원해 주시는 분들에게 감사드립니다.
즐감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