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화
당황하는 병사들을 향해서 라시에타는 거듭해서 호통을 쳤다.
“누가 그런 변명을 듣고 싶다고 했지? 지금 내 옆에 있는 자들이 누군지 본적 없느냐?”
“··············.”
“동방의 암살자 진. 죽음의 그림자 디오클레이우스, 그리고 그 뒤를 따르는 것은 충성스런 우리 레마이오스 양성소의 검투사들이다.”
“···검투사를 데리고 가시는 것입니까? 호위로?”
순간 라시에타는 아차 싶었다.
검투사는 노예다.
자칫 잘못하면 탈주를 할 수도 있기에 호위로 쓰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그···. 그렇다. 왜? 뭔가 잘못 됐는가?”
라시에타는 잠시 당황했지만 이내 안면에 철판을 깔고 대응했다.
그런 그녀의 고압적인 반응에 병사는 이상하다고 생각을 하면서도 달리 방법이 없었다.
“아닙니다···. 제가 잘못 판단 한 것 같습니다. 저들이 지키는 한 부인의 안전은 하데스가 지옥에서 올라와도 괜찮을 것입니다.”
“············.”
“문을 열겠습니다. 그러니 노여움을 거둬 주십시오.”
순간 병사의 말에 우진을 포함한 모두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이윽고 병사들이 분주하게 움직이면서 로마의 성문이 열리기 시작했다.
육중한 성문이 2중으로 되어 있는 성문은 여는 것에만 해도 20분 가까이 걸렸다.
그 광경을 보고 우진은 속으로 가슴을 쓸어 내렸다.
‘역시 이 전력으로 로마의 성벽을 뚫을 시도를 하는 것은 미친 짓이야.’
스파르타쿠스가 카푸아에서 했던 것과 같은 방식의 강행 돌파를 했다면 단 한명도 살아 남지 못했을 것이다.
우진이 이끄는 일행은 검투사 70과 몸종 50으로 이뤄진 총 120의 일행이었다.
우진은 이들을 이끌고 로마를 한참 벗어난 다음에 일행을 모아두고 말했다.
“모두들 수고 많았다. 우선 나를 믿고 따라준 형제들에게 감사한다.”
우진의 말에 검투사들은 환희의 미소를 지었다.
“별 것 아니오. 감독관···.”
“맞소. 우리는 당신을 따랐을 뿐이오.”
“그렇소. 앞으로도 당신이 우리를 이끌어 주시오.”
고대 로마의 인간들은 미신에 강했고 강력한 지도자에 약했다.
어쩌면 민주주의라는 개념이 인류의 머릿속에 도입되기 전에는 대부분의 인간이 이렇게 의타적인 것인지도 몰랐다.
그러니 왕권 제도가 그렇게 여러 대륙에서 유행했던 것 아니겠는가?
어쨌든··. 우진으로서는 그들의 압도적인 지지를 받으면서 리더로 추대 되었으니 잘 되었다고 할 수 있었다.
“모두들 알겠지만···. 우리는 아직 안심 할 수 없다. 로마에서 빠져는 나왔지만 그래도 로마의 그림자는 아직 우리 머리위에 있다.”
“·············.”
“·············.”
“·············.”
“하지만···. 저 알프스를 넘어가서 라인강의 상류로 거슬러 올라가면 아직 로마의 손아귀에서 반항하고 있는 우리들의 형제들이 있다. 그렇지 않은가!?”
“오오!!!!”
검투사들 중에서도 라인강 부근에서 잡혀서 끌려온 자들이 열렬하게 환호했다.
“하지만 그 전에 처리해야 할 일이 있다.”
우진은 그렇게 말하고는 라시에타를 모두의 앞에 끌고 왔다.
“봐라. 이 여자를··. 우리가 한때 도미너스라고 부르면서 발치에서 대가리를 박고 있어야 했던 여자다.”
“우우!!!!”
“나한테 주시오!!! 그 X같은 년 다리를 찢어 버리겠소.”
“아니 나한테 맡기시오. 저 빌어먹을 년이 자기 항아리를 깼다고 내 등에 채찍질을 했던 것을 갚아주지.”
“죽여라!!! 죽여 버려!!!”
라시에타는 온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이제까지 그녀는 주인이라는 위치를 이용해서 수많은 노예들을 고통 스럽게 했다.
검투사들 보다는 주로 몸종이었던 자들이 격렬하게 그녀를 죽이라고 외쳤다.
그런 그들의 광기를 접하면서 라시에타가 이제 믿을 수 있는 것은 자신을 꽉 잡고 있는 우진 뿐이었다.
“살···. 살려주세요. 제발···.”
그녀는 이제까지 자존심 때문에 우진과 대화를 하지 않으려고 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어쩔수 없었다.
살기 위해서 무조건 우진에게 빌붙은 수 밖에는 없었기에 그녀는 우진에게 달라 붙어서 애원했다.
“살려주세요···. 그런다고 했잖아요? 당신은 신의 있는 자가 아니었던 가요?”
라시에타의 혀는 뱀처럼 교활했다.
그녀는 우진의 체면을 미끼로 삼아서 우진이 자신을 살려 줄 수밖에 없게 만들려고 했다.
그런 그녀의 뻔한 수작을 보면서 우진은 비릿한 미소를 지었다.
“모두 들어라···. 우리가 로마를 빠져 나오기 위해서 우리는 이 여자를 살려 준다고 약속을 했다.
“···상관없습니다. 그 여자는··· 그 여자는····.”
“너희들의 분노는 이해한다.”
“··········.”
“··········.”
“··········.”
“하지만····. 약속을 지키지 못하면 우리는 우리가 혐오하는 로마인들하고 똑같은 족속이 되어 버린다.”
우진의 말에 다른 노예들은 안타까운 표정을 하고 우진을 바라봤다.
“그러니···. 난 이 여자를 살려주고 싶다. 비록 우리에세 못할 짓을 많이 한 여자지만···. 그래도 약속은 지킨다. 다만···.”
우진은 그녀를 노예들에게 던져 주면서 말했다.
“죽이지는 않는다. 하지만 그동안 겪은 모멸과 억울한 처사에 대한 분풀이는 다소 허락해 주겠다.”
우진이 그렇게 허락을 하자 노예들의 눈이 반짝이면서 빛이 났다.
특히 남자 노예들은 얼굴에는 욕망의 빛이 떠 올랐다.
우진은 그들을 보고 말했다.
“경고하건데···. 쓸데 없는짓은 하지 마라. 오로지 그동안의 분노를 풀기만 하도록.”
“·············.”
“·············.”
“·············.”
우진의 말에 몇몇 노예들은 억울한 표정을 지었지만 감히 우진에게 항명하는 자는 없었다.
‘좀 빡세기는 하겠지만···. 초반에 바로 잡아야 해.’
이 시대의 인권이라는 것은 그야말로 바닥을 기는 것이었기에 전쟁터에서 승리한 자들이 약자를 약탈하고 능욕하는 것은 별로 잘못이라고 생각도 하지 않았다.
물론 무기를 쥐어주고 그것을 군대화 시키기 위해서는 명예가 필수불가결 하기는 했다.
하지만 이 시대에서 말하는 명예라는 것은 전투에서 도망가지 않고 용감하게 싸우는 것.
지휘관의 명령에 절대 복종 하는 것.
그런 것에 집중되어 있었다.
약탈지에서 여자를 범하고 재물을 약탈하는 것 정도는 불명예라는 개념 자체가 없는 시대였다.
그저 승자의 권리라고 생각 할 뿐.
그랬기에 지금 남자 노예들이 라시에타를 범하지 못하게 하는 우진에게 불만을 가지고 있는 것은 사실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것을 허락하다 보면 세력을 쌓아가기 힘들어 진다.
우진은 로마를 뛰어넘기 위해서 제대로 된 전투 전력을 만들고 싶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제대로 된 군율이 필요했다.
결국 라시에타에 대한 제재는 대부분 폭력이 점철된 것으로 끝났다.
특히 여자 시종들이 라시에타에게 당한 것이 많았는지 그녀를 엉망진창으로 만들었다.
‘···하긴 여자 노예들이 채찍을 맞지 않는 날이 거의 없었지.’
라시에타는 여자 노예들에게···. 특히 자신보다 젊은 노예들에게 무척이나 신경질 적이었다.
그랬기에 툭하면 꼬투리를 잡아서 그녀들의 고운 등에 채찍자국을 새기고는 했다.
그 응보를 지금이야 받아내고 있는 것이다.
한참의 린치가 끝난 후에 라시에타는 엉망진창이었다.
곱던 머리칼은 흐트러지고 빠지고 진흙으로 얼룩 졌다.
그녀의 고운 피부는 멍 투성이고 그녀의 그럭저럭 아름답던 얼굴도 엉망진창으로 망가졌다.
사실 더 했다가는 죽을 것 같았기에 우진이 나서서 중간에 말린 것이다.
우진은 엉망이 된 그녀에게 말했다.
“잘 들어라. 라시에타···. 우리는 이제 알프스를 넘어서 자유의 땅으로 간다. 더 이상 만날 일은 없을 것이다.”
“···············.”
“다시는 노예들을 학대하지 마라. 마냥 복종만 하는 그들이 어떤 분노를 쌓아두고 있는지 이번 기회에 충분히 알았다면 말이다.”
“················.”
라시에타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우진은 그녀의 흐려진 눈동자 사이에서 원한과 집념을 엿 볼수 있었다.
그것은 그야말로 복수의 결의.
이 여자는 절대로 반성 따위는 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런 그녀의 눈빛을 보고 우진은 속으로 미소를 지으며 생각했다.
‘모두 계획 대로군.’
우진은 라시에타를 풀어줬고 일행은 그녀를 두고 길을 따라서 사라졌다.
다음날···.
“뭐? 남쪽으로 간다고? 어이 진····.”
“뭔가 불만이라도 있어?”
“아니 네가 일행의 리더이기는 하지만···. 남쪽이라니? 알프스를 넘는 것 아니었어?”
디오클레이우스의 말에 우진은 미소지으면서 대답했다.
“그랬다가는 추적자에게 잡혀서 죽을 거야.”
“···············?”
“우리는 대부분 걸어서 도보로 이동하고 있지만 로마인들은 기병대를 출병 시켜서 우리를 추적하겠지.”
우진의 말에 디오클레이우스는 설마 하는 얼굴로 우진을 바라보며 말했다.
“이 자식···. 전부 예상했구나.”
“···글쎄? 뭐가?”
“시치미 때지 마. 전부 알고 라시에타를 풀어 준거지? 그 년의 앞에서 알프스, 알프스 한 것도 미리 예상한 일이고.”
“········그래.”
우진이 긍정하자 디오클레이우스는 씨익 웃으면서 말했다.
“크큭···. 좋아. 부하들에게도 모두 전하지.”
“혹시 반발하는 애들이 있을지 몰라. 그러니 확실하게 목적지를 밝히도록 해.”
“목적지? 그게 어딘데?”
“···시칠리아.”
우진이 목적지를 시칠리아로 정한 것에는 나름 이유가 있었다.
시칠리아의 경우는 스파르타쿠스의 반란이 있기 전까지만 해도 최대의 노예 반란이 있었던 곳이다.
카푸에서만 해도 스파르타쿠스의 반란이 있기 30년 전에 반란이 한 번 일어났고 그 전에 기원전 104년에도 200명의 노예들이 반란을 일으켰었다.
그 뿐만이 아니다.
기원전 2세기에 일어난 10여차례의 노예 반란 중에서도 가장 굵직하게 일어난 것이 시칠리아에서 일어난 반란이었다.
기원전 132년에서 135년에 한 번.
기원전 104년에서 100년까지 해서 두 번.
그렇게 해서 일어난 두 번의 노예 반란은 스파르타쿠스라는 이름에 지워지지만 않았다면 틀림없이 로마 최대의 반란으로 이름을 남겼을 것이다.
로마 남서쪽의 시칠리아에서 벌어진 노예 반란은 그만큼 크고 강대했다.
애당초 반란이 그렇게 커진 것에는 로마의 책임도 있었다.
노예 반란의 소식을 들은 로마 원로원은 느리고 무능하게 대응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그들에게 있어서 노예 반란이라는 것은 얼마든지 제압 할 수 있는 작은 불씨로 여겼던 것이다.
하지만 첫 번째 전쟁에서 그 노예들에게 정벌군이 굴욕적인 패배를 당하자. 로마는 정신을 바짝 차렸다.
카르타고도 소아시아도 아닌 노예들에게 최강 로마군의 이름이 더러워 진다.
로마는 당시의 콘술 푸블리우스 루필리우스가 직접 출정했다.
노예들이 접수한 도시를 포위해서 섬멸하고 가담자를 전원 처벌하는 등.
그리고 두 번째 반란도 결국은 로마의 콘술이 나서서 해결해야 했다.
왜냐 하면 이전의 교훈도 잊어 버리고 무능한 지휘관들이 방심한 탓에 줄줄이 패배 했으니 말이다.
결국 당시의 콘술 마니우스 아퀼리우스가 능력을 발휘했다.
역사에 크게 이름을 남기지는 않았지만 그는 단 한번의 전투로 반란군의 수장을 죽였다고 한다.
상대가 노예였기 때문에 원로원은 그를 크게 평가하지는 않았지만 역사가들은 몇 년이나 애먹은 노예 반란을 한번에 정리한 그를 두고 로마의 숨겨진 명장으로 평가하고 있었다.
어쨌든···. 이런 저런 이유로 시칠리아에는 거대한 반란이 두 번이나 일어났다는 전과가 있었다.
그리고 섬으로 이뤄진 지형의 특성상 로마의 대응이 늦을 수 밖에 없다는 것도 한몫을 했고 말이다.
결국 목적지는 정해졌다.
로마 군단은 우진이 알프스를 넘기 위해서 북쪽으로 향한 줄 알겠지만···.
우진은 무리를 이끌고 동쪽의 산악 지대를 넘어가서 남쪽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거기서 쭉 남쪽으로 가서 부르티움을 지나 이탈리아 최남단인 레기움에 도착할 것이다.
그리고 거기서 메시나 해협을 건너면 바로 시칠리아의 메사나다.
‘거기서 시작인 거야.’
조잡한 지도를 바라보는 우진의 눈은 깊게깊게 타오르고 있었다.
============================ 작품 후기 ============================
고대 로마의 시칠리아 지도 가지고 계신분!!!!
자세하게 주요 도시하고 도로하고 곡창지대가 분류되어 있는 지도 가지고 계신 분!!!
제발요!!!
흑... 자료가 너무 없어....
그래도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즐감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