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화
레마이오스 검투사 양성소.
로마의 많고 많은 검투사 양성소 중에 하나였을 뿐이었던 이곳에 최근에 새로운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바로 훈련의 모습이 변한 것이었다.
이전까지는 훈련에서 그저 악을 쓸 뿐인 검투사들이었다.
기껏해야 나무 말뚝을 후려치거나 서로 엉성하게 대련을 할 뿐이었다.
그런데 최근에 훈련장의 모습이 좀 변했다.
“우선 유산소 운동부터. 버피테스트 시작!!!”
“하나, 둘, 셋, 넷····.”
“하나, 둘, 셋, 넷····.”
“하나, 둘, 셋, 넷····.”
모두의 앞에 나와 있는 우진의 구령에 맞춰서 엎드렸다가 일어났다가 부지런히 움직이는 검투사들의 모습은 이전과는 확연이 달라져 있었다.
이전처럼 막 몸만 굴리는 것이 아니라 체계적이고 효율적인 훈련을 하고 있었다.
버피테스트는 이 시대에는 없었지만 공간을 많이 차지하지 않고 스테미너와 근력을 동시에 기를 수 있는 훌륭한 운동이었다.
우진은 이것을 비롯해서 PT체조 팔굽혀펴기, 윗몸일으키기 등··.
도구를 필요로 하지 않는 운동을 중점적으로 해서 검투사들을 훈련시켰다.
그리고 체력 훈련으로 몸을 만드는것과 별개로 이 시대에는 아직 없는 검도의 기술들도 전수했다.
한손검인 글라디우스와 방패를 드는게 표준 스타일인 이들에게 정통 검도를 가르치는 것은 불가능 했다.
하지만 발놀림이라던가 허를 찌르는 기술이라던가 근거리에서 격의 공방이라거나 하는 것들을 아낌없이 가르쳤다.
사실 우진의 이런 행동은 본인 스스로도 위험을 무릅쓰고 하는 것이다.
원래 검투사들은 검투사가 되는 시점에서 모두가 경쟁자라고 봐야 했다.
드물기는 하지만 같은 양성소의 소속끼리라고 해도 필요에 따라서는 죽고 죽이는 사투를 벌여야 할 수도 있었다.
그런데 우진은 그런 라이벌들에게 아낌없이 기술을 전수하고 있었다.
그 결과 그냥 완력을 이용한 칼 부림밖에 몰랐던 검투사들이 정식으로 칼 쓰는 법을 익히고 실력이 일취월장하기 시작했다.
특히 디오클레이우스는 원래 검에 재능이 있는 타입이었는지 그야말로 하루가 다르게 실력이 늘고 있었다.
우진은 그런 제자(?)들을 보면서 내심 생각했다.
‘이제 슬슬·····, 떡밥이 올 때가 됐는데····.’
그때···.
가드중에 한 명이 훈련장에 와서 우진을 향해서 말했다.
“어이 진!!! 호출이다.”
“····디오클레이우스. 나머지는 네가 지도해.”
“알겠다. 진.”
우진은 마치 당연하다는 듯이 디오클레이우스에게 훈련 지시를 내리고 호출을 따라갔다.
보통 우진에게 호출을 하는 사람은 이 양성소의 여주인인 라시에타였다.
그 여인은 우진에게 푹 빠져서 틈만 나면 남편 몰래 우진을 불러서 섹스를 명령하고는 했다.
하지만 이번에 우진을 부른 것은 다른 사람이었다.
“어서 와라. 진.”
“····부르셨습니까? 도미너스.”
우진의 앞에 있는 사람은 배가 살짝 부른 갈색 곱슬 머리의 전형적인 로마의 중년 남자였다.
바로 우진의 주인이자 이 양성소의 주인기도 한 레마이오스 파르티스였다.
그는 와인을 놋쇠잔에 따라 마시면서 우진을 보고는·····.
“요즘 들어서 이상한 짓을 하고 있다고 하더군.”
“·····제가 심기를 거슬렀다면 죄송합니다. 도미너스.”
우진은 정중하게 고개를 숙이고 굴종의 표시를 표했다.
우진은 지금 노예다.
노예답지 못하게 행동하면 금방 죽어도 이상할 것이 없다.
더구나 지금 우진은 양팔과 양손에 족쇄를 차고 있어서 행동이 불편했고 주변에는 완전무장을 하고 있는 가드가 10명이나 있었다.
이래서는 섣불리 반항하는 순간 바로 다진 고기가 되어 버릴 참이었다.
“·············.”
비굴할 정도로 고개를 숙이고 반성하는 우진의 모습을 보면서 파르티스는····.
“큭··· 큭큭큭··· 크하하하하하····.”
그는 배를 잡고 미친 듯이 웃어 재꼈다.
우진의 입장에서는 기분 나쁠 정도로 재수 없는 웃음이었다.
그는 실컷 웃고 나서 우진을 보고 말했다.
“크큭···. 걱정하지 마라. 진···. 난 너를 책망하고자 부른게 아니다. 오히려 칭찬하려고 한 것이지.”
“····감사합니다. 도미너스.”
“후후후··. 내가 널 왜 칭찬하는지 알겠느냐?”
“죄송합니다. 잘 모르겠습니다. 도미너스.”
“후후···. 이 로마에서 말이다···. 검투사 사업만큼 돈이 쏠쏠한 벌이도 참 드물다. 야만적인 너희들 노예를 이용해서 돈을 벌 수 있는 일중에 가장 잘 버는 일이지.”
“·············.”
“하지만 돈이 된다는 것을 알자 이 놈도 저 놈도 검투사 양성소를 차리고 판에 끼어들기 시작했지. 그렇게 해서 검투사가 많이 늘어나면 어떻게 될 것 같으냐?”
‘····경쟁이 붙었겠지?’
우진은 그렇게 생각했지만 입은 다르게 움직였다.
“많은 로마인들이 돈을 벌었을 것 같습니다.”
“크하하하하···. 그래···. 그렇게 생각하는게 네놈의 한계구나·····.”
“·············.”
‘망할 돼지 자식···. 비위 맞추기도 힘들군.’
우진은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경쟁자가 많으면 말이다··. 그만큼 개인당 돌아가는 수입도 적어지지. 그러니 지금 검투사 양성소는 두가지로 나뉘어 졌다. 적자만 보다가 망하는 곳과 유능한 검투사를 써서 살아 남는 쪽이지.”
“················.”
거기까지 말한 파르티스는 우진을 보고 말했다.
“최근에 네가 검투사들을 가르치고 있다는 말을 들었다. 스스로 검투에 자신 있느냐?”
“·····고향에서는 절 당할자가 없었습니다.”
우진의 말은 반쯤 진실이었다.
실제로 우진은 현대에서 검도 세계 챔피언이었으니까 말이다.
사람이 눈치 라는게 있지 않은가?
우진은 본능적으로 지금이 자신감 넘치게 치고 나가야 할 시기라고 판단했다.
그리고 그 판단은 정답 이었다
“크크··· 굉장한 자신감이군···. 마음에 들었다. 진.”
“예. 도미너스.”
“너 감독관을 할 생각은 없나? 물론 선수도 겸해야 겠지만···. 따로 소정의 보수를 챙겨주지.”
감독관이라는 것은 일종의 검투사들의 교관과 같은 것이었다.
훈련을 봐주고 검투를 가르치고···.
보통 실적이 우수한 검투사라던가? 로마 군단에서 퇴역한 자들이 하는게 보통이었다.
그런 감독관들은 가끔씩 시합을 뛰기도 했지만 기본적으로 보통 검투사들 보다 권위가 높았고 몸값은 더욱더 높았다.
이 레마이오스 양성소에 감독관이 없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였다.
파르티스가 거금을 들여서 감독관을 들일 생각이 없었기 때문이다.
우진은 조금 망설이는 것처럼 침묵하다가 대답했다.
“·····영광입니다. 도미너스 하지만··· 제가 그 역할을 잘 할 수 있을지 걱정됩니다.”
우진은 속으로 쾌재를 불렀지만 겉으로는 어디까지나 공손하게 말했다.
아직 한 가지 더 얻어내고 싶은 것이 있었기 때문이다.
우진이 뒤로 빼자 파르티스는 피식 웃으면서 말했다.
“뭔가 원하는 것이 따로 있느냐?”
“····훈련에 필요한 시설을 만들고 구입하려면 돈이 필요합니다. 그러니····.”
“돈은 못 준다.”
“················.”
“네 놈이 내 침실에서 내 마누라 XX에 재미를 보는 것을 알고 있다. 그 정도는 봐주지. 하지만 돈은 줄 수 없다.”
우진은 순간 파르티스의 말을 듣고 흠칫했다.
‘뭐 이런 놈이 다 있지?’
노예인 자신이 아내와 관계를 가지고 있는 것을 알고 있음에도 쿨하게 넘어간다?
그리고 아내의 몸은 줄 수 있어도 돈은 줄 수 없다?
우진이 생각하는 것 보다 레마이오스 파르티스라는 남자는 돈에 환장한 인간이었다.
하지만 괜찮았다.
라시에타와의 일을 알고 있는 것은 좀 의외였지만 우진에게도 방법은 있었으니 말이다.
“도미너스의 돈을 지원해 주시지 않아도 됩니다. 대신에···. 저에게 배팅에 참여할 기회를 주시지 않겠습니까?”
“배팅? 네가 돈을 걸겠다고?”
“그렇습니다. 훈련에 필요한 도구를 구입하고 만들 돈은 저희가 직접 돈을 마련해서 구입 할 생각입니다.”
어차피 우진도 파르티스가 돈을 순순히 줄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그래서 검투사의 대결에 돈을 거는 배팅에 자신도 참여할 수 있는 권리를 요구할 생각이었다.
“흐음····. 그래. 그렇단 말이지·····.”
파르티스는 곰곰하게 생각에 잠겼다.
검투사는 노예지만 사유 재산을 가지고 있는 것이 보통인 노예들이었다.
그리고 다른 양성소의 검투사들 중에서 배팅에 참여하는 검투사가 종종 있는 것도 잘 알고 있었다.
‘괜찮겠군.’
어쨌든 파르티스에게 중요한 것은 자신의 돈이 나가지 않는 것이었다.
우진이 배팅에서 승부를 해서 돈을 버련 알아서 훈련에 필요한 돈을 충당 할 테고···.
실패해도 자신이 돈을 지원해 줄 이유는 없다.
어느쪽이 되던 간에 자신의 돈 주머니는 물샐틈 없이 견고해지는 것이었다.
“좋다. 내가 허락하지.”
“감사합니다. 도미너스.”
우진은 깊숙하게 고개를 숙였다.
그런 우진의 태도를 보고 파르티스는 마음에 들었는지 선심을 쓰듯이 말했다.
“감독관이 되었으니 거기에 맞게 네놈의 대우를 상향 조정해 주마. 아마 마음에 들 것이다.”
“제가 표 할수 있는 모든 존경을 담아서 감사합니다. 도미너스.”
우진은 마음에도 없는 말을 하고는 그렇게 파르티스의 앞을 나왔다.
어쨌든 원하는 것은 손에 넣었다.
그것만 해도 충분히 만족 할 만 했다.
파르티스는 우진의 언행이 생각보다 훨씬 더 마음에 들었나 보다.
그는 우진에게 새로운 방을 배정해 줬다.
문자 그대로 이번에는 방이다.
밖에서 두꺼운 자물쇠가 걸려 있고 창문과 빠져나가는 통로에 다시 창살이 걸려 있기는 하지만···.
그래도 이번에는 인간이 머물 수 있는 방을 우진에게 배정한 것이었다.
방에는 나무로 적당히 지은 침대가 아니라 로마시대의 보통 사람들이 자는 벽돌로 만든 침대가 있었다.
벽돌로 침대를 만들고 그 위에 두꺼운 천과 양모를 덮어서 안락하게 만든 것이 로마의 부유층들이 쓰는 침대였다.
우진에게 배정된 것은 그 정도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벽돌의 침대에 제법 두터운 모포가 몇 벌이고 있었다.
그 뿐만이 아니었다. 방의 한 구석에는 두 개의 항아리와 물컵이 있었는데 한 개의 항아리에는 와인이. 또 한 개의 항아리에는 물이 들어있었고 그 위의 선반에는 몇 벌의 여분의 의복이 있었다.
자유만 없을 뿐 이 정도면 보통 로마인들의 살림살이나 별로 다를게 없었다.
“후우····. 이게 좋은 시작의 증표였으면 좋겠는데 말이야·····.”
우진은 침대에 모포를 접어서 두껍게 깔고는 드러누워서 생각에 잠겼다.
사실 우진은 몰랐겠지만 우진의 방을 만들어 준 것은 파르티스가 아니라 라시에타였다.
그 특급 구두쇠가 우진에게 이렇게까지 해 줄 리가 없지 않은가?
파르티스는 라시에타에게 우진에게 방을 하나 배정해 주라고 했을 뿐이었다.
그러자 라시에타가 알아서 자신의 애첩(?)인 우진을 위해서 이렇게 제대로 된 방을 준비해 준 것이다.
그러나 그게 끝은 아니었다.
파르시타는 돈이 들어가는 것만 아니라면 그렇게 쫀존한 인간은 아니었다.
그래서···. 그가 우진에게 준비한 선물은 하나가 더 있었다.
“진!! 나와라.”
방의 밖에서 가드가 우진을 불렀다.
우진이 방의 밖으로 나가자 가드는····.
“골라라. 파르티스 님이 너에게 한명을 너의 소유로 허락하셨다.”
“············.”
우진은 오늘 있었던 일들 중에 가장 크게 놀랬다.
우진의 눈앞에 거의 반라로 늘어져 있는 여자들이 다섯 명이나 대기하고 있었던 것이다.
상반신을 다 드러내고도 그녀들은 부끄럽지도 않은 것처럼 그냥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이들 중에 하나를 고르란 말입니까?”
우진의 말에 가드는 씨익 웃으면서····.
“그렇다. 이 중에 하나를 주신다고 하셨다.”
“·············.”
============================ 작품 후기 ============================
실제로 고대 로마 시대에는 검투사들도 아내를 가지고 있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아내라고 해도 일반적인 아내라는 개념 보다는 여자라는 개념이 더 강했다고 합니다.
참고로... 이미 고수 분들의 지적이 시작되고 있지만 저 역시 이 소설의 시대 고증을 맞추기 위해서 많은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나름 관련 서적도 구입해서 보고 따로 인터넷에서 보기도 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료가 부족합니다.ㅠㅠ하지만 장르 소설인 만큼 부족한 자료는 저의 상상력으로 보완하겠습니다.
뭐... 좀 봐 달라는 겁니다. 하하하하^^;;;;;
그럼 즐감하십시오.
보고 오늘 12시 전에 한 편은 더 올려 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