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1- Epilogue8
우려가 맞았다.
침대도 없는 방에서 일인용 소파와 카우치, 그리고 카펫 위를 구르며 정사를 치른 그날 페란스는 예정에 없던 발정기를 맞았다.
몸이 약해질 동안에는 발정기 주기도 바뀌었다. 몇 달에 걸쳐 한 번, 어떨 때는 반년도 넘어서야 시작되던 게 몸이 거의 회복된 상태에서 익숙한 알파 페로몬에 무방비로 노출되다 보니 마치 미뤘던 일을 보상하듯 아주 길고 지독한 발정기가 찾아왔다.
“한 입만 더.”
페란스는 반쯤 몽롱하게 풀린 눈으로 로젠게인이 입 안에 넣어 주는 스푼을 받아 삼켰다. 먹고 자는 최소한의 휴식 시간에도 페로몬이 끊임없이 번져 왔다.
“하아…… 맛, 있…… 흐응.”
뭔지 모르겠지만 입 안이 달아졌다. 페란스가 입술 끝으로 밀려 나온 꿀을 핥았다.
로젠게인이 다시 입에 스푼을 물리며 말했다.
“맛있다는 말을 그렇게 신음하듯 하지 마십시오.”
“하아, 진짜 맛있……,”
먹이는 사람이나 먹는 사람이나 둘 다 알몸이었다. 그나마 로젠게인은 먹을 것을 가져온 시종들에게 문을 열어 주느라 가운을 걸치고 있었지만, 다시 침대로 돌아오는 순간 끈이 풀렸다. 눈을 감은 채 코끝만 벌름대며 페로몬을 좇은 페란스가 한 짓이었다.
다른 건 먹을 수 있을 것 같지도 않아서 레몬 알맹이를 으깨 섞은 꿀을 가져오게 했는데, 다행히도 페란스는 수월히 받아 삼켰다.
그러나 손을 쉬지 않는다는 게 문제였다. 입에 들어오는 건 고분고분 받아 삼키면서 양손은 로젠게인의 성기를 꼭 쥐고 있었다.
“맛있어……. 너도 먹어.”
페란스가 꿀과 레몬 향이 나는 혀로 제 혀를 핥았다. 발정기에 시달린 몸에 꿀처럼 단 게 들어오자 위험할 정도로 기가 막힌 맛이 되었다.
“전하, 좀,”
도무지 키스를 멈출 수가 없었다. 더 먹여야 한다는 걸 아는데, 페란스는 이미 미쳤고 그가 흘려 대는 페로몬도 마찬가지였다.
“전,”
“흐읏,”
페란스가 제 얼굴을 부둥켜안고 입 안을 전부 빨아 댔다. 얼마나 사정을 했는지 기억도 안 나는 성기가 거세게 일어서 상대의 살갗에 페로몬 향이 진하게 섞인 선액을 발라 댔다.
이러다간 곧 저도 이성을 잃고 그릇을 팽개칠 것이다. 로젠게인은 스푼을 내던지고 대신 꿀을 뒤엉킨 다리 사이에 흘렸다.
“전하.”
다시 두 볼이 붉어진 페란스를 꿀이 묻은 곳으로 이끌었다.
“아, 흐으……,”
페란스가 처음 듣는 야릇한 신음을 내며 제 사타구니에 입술을 댔다. 츠읍, 살갗을 빠는 소리가 부지런히 들려왔다.
머리가 어떻게 될 것처럼 야한 소리였다.
로젠게인이 페란스의 몸을 돌려 다리를 끌어왔다. 그와 마찬가지로 페란스의 허벅지 사이 여기저기에 꿀이 묻어 있었다.
달아.
혀를 대니 정신이 나갈 것처럼 달았다.
그가 제 몸 위에 엎드린 자세가 된 페란스의 다리를 벌려 꿀을 핥아 갔다. 한 입씩 빨릴 때마다 페란스가 몸을 비틀며 같은 말을 내뱉었다.
“하, 흐으…… 너무 맛있어.”
후두는 미친 것 같은 페로몬으로 채워지고 입 안은 꿀맛으로 채워졌다. 살갗의 감촉이 다른 감각을 채웠다.
로젠게인도 이성을 놓고 굶주린 사람처럼 페란스의 다리 사이를 빨았다. 오메가 액이 뚝뚝 흘러 꿀과 뒤섞였다. 뭐가 뭔지 알 수 없게 되어 버린 맛은 더 강렬했다.
단맛이 살맛이 되었을 때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자세가 바뀌었다.
페란스가 로젠게인의 몸 위로 올라와 혀를 찾아 빨았다. 살짝 다물린 입구는 로젠게인이 성기를 맞추자 알아서 제 안으로 빨아들였다.
“하으읏…….”
질퍽대는 매끄러운 마찰음이 귀를 데웠다. 살갗이 전부 녹아 서로 뒤섞이는 듯했다.
페란스의 발정기는 오 일을 넘어가는 새벽에 끝이 났다.
* * *
“하, 제발. 꿀은 그만.”
기진맥진한 페란스가 다 쉬어 빠진 목소리로 웅얼거렸다.
로젠게인이 피식 웃으며 입술 새로 스푼을 물렸다.
“입이 단 건 압니다만, 목이 너무 상하셨습니다.”
“……차라리 약을 먹여. 너무 달아.”
“다른 약을 드시기엔 아직 이릅니다.”
“젠장.”
투덜대면서도 페란스는 그가 물려 주는 꿀물을 전부 삼켰다.
거칠게 갈라진 목소리가 페란스의 얼굴과 조금도 안 어울리는 것 같으면서도, 또 그 어울리지 않는 점이 야하게 느껴졌다.
“잘하셨습니다.”
로젠게인이 페란스의 입술에 남은 꿀의 흔적을 핥았다.
맛이 인식되며 몸에 반응이 왔다.
곤란했다. 당분간 꿀은 냄새도 맡아서는 안 될 것 같았다.
“갑자기 왜 그래?”
“…….”
그리고 페란스는 제 반응을 기민하게 알아차렸다.
“야해서요.”
속여도 소용없는 일이라 로젠게인은 아랫도리 사정을 털어놓았다.
“아……. 젠장, 나도 그래서 싫다는 얘기였는데.”
온몸에 근육통이 왔다며 방금 전까지 끙끙 앓던 페란스가 로젠게인의 목을 홱 휘어 감았다.
아직 뜨듯한 찻잔을 손에 쥐고 있던 로젠게인이 황급히 손을 뒤로 돌렸다.
“위험합니다, 전하.”
“네가 알아서 잘할 거잖아. 엄살은.”
페란스가 로젠게인의 머리를 제 목덜미에 대고 누르며 장난처럼 머리칼을 헝클였다.
“너한테서 아직도 야한 냄새가 나.”
로젠게인이 페란스의 살갗에 대고 작게 웃었다.
“말만 한다고 안전하진 않습니다. 발정기가 지나간 건 전하뿐입니다.”
“아아, 그러고도 더 할 수 있다고? 어린 게 좋긴 좋네.”
페란스가 보지 못하는 사이 로젠게인의 얼굴이 굳었다.
“세 살 차이는 그리 크지 않습니다.”
“지금 네가 꽤 귀여운데, 그래도 나는 못 해. 하루 종일 이렇게 누워서 앓아야 될 것 같아. 아니, 하루가 아니라 이틀.”
“더 앓으십시오. 제가 시중을 들겠습니다.”
“그러다 계속 못 일어나겠지.”
페란스가 키득키득 웃으며 느리게 머리칼을 문질렀다.
스푼 들 힘도 없다고 엄살을 피우던 그가 머리칼을 만져 주는 게 사랑스러웠다.
둘 다 미친 듯이 흘려 대던 페로몬이 아직 다 지워지지 않았다. 옅게 배어 있는 페로몬 향을 맡고 있자 자연스럽게 페로몬이 흘러나왔다.
성기에 살짝 힘이 들어가긴 했지만, 이 분위기를 끝낼 만큼은 아니었다.
“찻잔은 내려놔.”
로젠게인이 찻잔을 든 팔을 여전히 불편하게 뒤로 돌린 채 있는 걸 보고 페란스가 말했다.
“왜 그런 걸 참고 있어. 불편하게.”
불편한 걸 참은 게 아니라 불편해도 괜찮았을 뿐이었다.
로젠게인은 페란스가 다정해도 너무 다정하다고 생각했다.
가끔은 필요 이상으로.
달칵.
찻잔을 내려놓은 로젠게인이 아예 이불을 젖히고 페란스의 옆으로 파고들었다.
우습게도 그가 불안할 정도로 독점욕을 느낄 때는 페란스가 다정할 때였다.
페란스는 쓸데없는 인간들한테도 다정하니까. 예를 들면 빨간 머리 같은.
최근에는 연금술사도 있었다.
연금술사 같은 경우는 페란스가 채혈을 피하려고 부린 수작이었지만, 로젠게인의 머릿속에서는 그것도 다정함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그 페로몬은 평생 겪을 일이 없는 행운 같은 거였으므로.
채혈하던 날을 되짚던 로젠게인이 울컥 인상을 썼다.
생각해 보니 연금술사가 그때 아래를 세웠던 것 같기도 했다.
……치료가 끝나면.
두 번 다시 위스타드에는 발을 붙이지 못하게 해야 했다. 블루와렌에 연구실을 하나 만들어 줘서 평생 그 안에서 썩게 만들 것이다.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해?”
페란스가 꿀 냄새가 나는 입술을 열었다.
“제가 하는 생각은 하나밖에 없습니다.”
로젠게인이 그를 두 팔로 감았다.
“아, 숨 막혀.”
페란스가 저를 이마로 툭 쳤다.
“좀 살살 하지 그래?”
“……불편하십니까?”
“음……. 뭐, 잠깐이라면 참아 보고.”
이렇게나 다정했다.
“그럼 잠시만 더.”
“그래.”
페란스가 제 몸에 이마를 묻었다. 불편하다는 말이 무색하게 페란스는 곧 잠이 들었다.
발정기의 여파인지 그가 숨을 내쉴 때마다 잔잔히 페로몬 향이 묻어 나왔다.
말도 안 되게, 끔찍할 정도로 유혹적인 향이었다. 로젠게인이 속삭이듯 아주 작은 목소리를 페란스의 귓가에 흘렸다.
“전하, 주무십니까?”
“으음…… 졸려.”
자다가 깬 건지, 아니면 잠이 얕게 든 건지 알 수 없었다.
그러나 알파의 본능이 지금이 적기라는 말을 하고 있었다.
“내일은 어떻습니까?”
“뭐……가?”
“혼인식.”
“……? 무슨…… 말을 하는 거야.”
농담이라 생각했는지 페란스가 피식 웃었다.
로젠게인은 한 손으로 페란스의 뺨을 어루만지며 더 작게 속삭였다.
“내일이 좋을 것 같습니다.”
“무슨……. ……가능하긴 해?”
“네.”
페란스의 목소리도 점점 느리고 작아졌다. 페란스는 귀찮아졌는지 대충 고개를 끄덕이는 시늉을 했다.
“아, 몰라…… 네가 알아서…… 하겠지. 나는…… 네가 하라는 것만 할 거야…….”
“네, 전하. 감사합니다.”
로젠게인이 페란스의 정수리에 입술을 붙였다.
“……감사합니다.”
혼인식을 올린다고 한들 페란스의 쓸데없는 다정함이 묶여지는 건 아닐 것이다. 쓸데없는 알파들이 쓸데없이 주변을 알짱대며 아무짝에도 쓸데없는 간이며 쓸개를 꺼내 드는 일도 끊이지 않을 것이다.
그래도 혼인을 하면 자신에게는 그 새끼들을 공식적으로 처벌할 수 있는 권한이 생겼다. 그렇기에 혼인식은 꼭 필요했다.
로젠게인은 아직 반지가 끼워져 있지 않은 페란스의 왼손 약지를 만지작댔다. 완전히 잠이 든 페란스가 뭐라고 웅얼대며 제게 이마를 비볐다.
내일이면 이 손가락에는 반지가 자리를 잡을 것이다.
자신이 다른 시간에서 삼켰던 그 반지가 이제야 몸 밖으로 토해진 것 같은 기분을 느끼며 로젠게인이 페란스의 약지에 자신이 할 수 있는 가장 정중한 키스를 남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