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
로젠게인이 책상을 돌아 페란스를 마주보는 위치에서 앉았다. 무릎을 굽혀도 긴 다리가 의자에 앉은 제 발 사이로 들어왔다.
의도한 건 아니었지만 자세가 묘했다. 마침 로젠게인의 얼굴은 그가 딱 좋아하는 각도에 자리를 잡았다. 의자를 조금만 당겨도 그의 무릎이 사타구니를 건드릴 것만 같았다.
“둘 중 하나를 골라.”
페란스가 공연히 제 무릎을 손끝으로 툭툭 치며 침을 삼켰다.
“지금 입을 열든지, 아니면 끝까지 가 보든지. 네가 입을 열지 않으면 위스타드 역시 블루와렌과의 거래를 전부 끊겠다. 그 어떤 야비한 수를 써서라도 네가 발레스 해협을 지나다니지 못하도록 만들겠어.”
그 말에 로젠게인이 이쪽으로 고개를 숙였다.
시선이 더 가까워졌다. 밤공기에 섞이는 숨결이 더 가까워졌다.
“제가 떠난 이유가 그렇게 알고 싶으십니까?”
“너라면 아닐 것 같아?”
“……그땐 그게 맞다고 생각했습니다.”
“뭐가? 말도 없이 떠나는 게?”
“네.”
“대체 왜?”
“…….”
로젠게인은 대답 대신 물었다.
“혼자 계실 때도 장갑을 끼고 계십니까? 증상이 나타난 지는 얼마나 된 겁니까?”
“말 돌리지 마. 묻는 말에나 대답해.”
페란스의 말에는 아랑곳없이, 그가 손을 끌어와 장갑을 벗겼다.
깨지고 갈라진 손톱이 드러났다. 로젠게인이 손가락 전부를 씹어 먹을 것처럼 살펴 댔다.
“아직 변색이 되진 않았군요.”
“빌어먹을. 나를 위하는 척이라면 집어치워. 안 믿기니까.”
“각인을 깨기 전에 하시시의 독성부터 치료해야 할 겁니다. 각인을 깨는 일도 몸에 무리가 될 테니.”
페란스가 미간을 구기며 손을 잡아 뺐다.
“말 돌리지 말라니까.”
“그러니까 치료가 우선입니다. 다른 일은 가급적이면 뒤로 미루십시오.”
“다음 발정기 때나 보자던 인간이 왜 그런 말을 하는 건데. 그리고 묻는 말에 대답해. 나를 왜 떠났는지.”
“블루와렌의 약제사를 불러들여야 했습니다. 치료가 가능한지 알아야 해서.”
퍽!
참다 못한 페란스가 로젠게인의 다리를 걷어찼다.
“그걸 묻는 게 아니라는 걸 알고 있잖아! 대체 무슨 이유라서 말을 못 하는 건데!”
“……그거라도 알고 싶어 하시니까.”
“뭐?”
어이없음을 내뱉는 페란스를, 로젠게인이 갑자기 홱 잡아당겨 안았다.
동시에 페로몬이 터지듯 쏟아져 나왔다.
“무슨, 짓이야!”
“각인 반응이 오기까지 시간이 있다는 걸 압니다.”
“그, 래서 뭘,”
“그 시간은 제 겁니다. 제가 그렇게 만들어 드렸으니.”
말을 마친 로젠게인이 덥석 입술을 삼켰다.
발정기 때는 오히려 조심스럽고 느리던 키스가 지금은 성급했다. 생각할 틈을 주지 않고 혀를 감싸 빨아들였다.
입 안에서 온통 로젠게인의 페로몬 향이 났다. 페로몬을 떠서 먹는 것 같았다. 아랫배가 순식간에 뜨거워졌다.
“너, 흣…… 무슨 짓이야. 당장,”
“잠시만……. 각인 반응이 오기 전까지만.”
“이, 런 건…… 하읏,”
제 몸의 반응이 무서울 정도였다.
기억이 몸을 어디까지 속일 수 있는지 묻고 싶었다. 이제껏 로젠게인과 각인을 풀려는 시도를 한 건 단 한 번이었다. 그러나 제 기억은 그보다 많다고 속삭이는 중이었다.
기억과 정확히 겹쳐지는 페로몬은 믿을 수 없을 만큼 황홀했고, 각인 반응이 없는 키스는 죽을 것처럼 좋았다.
“하, 하읏…….”
저항은 어느샌가 신음이 되었다. 페란스는 입에서 흐르는 대로 신음을 내뱉었다. 하체가 저도 모르게 들썩대며 로젠게인의 몸에 저를 문질러 댔다.
“전하. ……전하.”
“흐으…….”
몸이 얽히는 건 순간이었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책상에 등이 닿아 있었다. 셔츠를 벌린 로젠게인이 저를 눕히고 유두를 삼키는 중이었다. 검은 머리칼이 흔들리며 가슴을 간질였다. 양손은 끝도 없이 살갗을 어루만졌다. 작은 감각들이 쌓여 숨 막히는 쾌감이 됐다.
“이제, 좀,”
페란스가 허리를 비틀었다. 각인 반응이 언제 시작될지 몰라 욕망은 더 다급했다. 페란스가 제 목덜미를 끌어안고 숨을 들이켜자 로젠게인은 그 작은 신호를 알아듣고 바지를 끌어 내렸다.
투둑.
속옷이 벗겨지는 순간 투명한 애액이 허벅지를 타고 가늘게 흘러내렸다.
“하아, 전하.”
발정기도 아닌데 이런 적은 처음이었다. 제 반응도 놀라웠고, 날것 같은 성감도 놀라웠다.
로젠게인이 제 다리 사이로 고개를 숙였다. 성기가 아니라 꽃줄기를 쥔 것처럼, 그가 눈을 감고 숨을 들이쉬었다. 찌걱, 하고 젖은 소리를 내며 손가락이 입구를 벌렸다. 아래가 열리는 순간 성기로 피가 몰렸다. 로젠게인이 성기를 삼키면서 동시에 손가락을 깊숙이 박아 넣었다.
“하읏, 으읏!”
허리가 마구 들썩였다.
몸에 걸친 것은 셔츠 하나가 전부였다. 그마저도 단추가 전부 풀려 양옆으로 활짝 벌어져 있었다. 책상에 등을 댄 채, 맨다리는 그 아래로 내려와 로젠게인의 어깨에 닿은 채였다. 제 다리 사이에 로젠게인의 머리가 있었다. 성기를 빨아 당기며 안을 휘저었다. 손가락이 앞뒤로 움직일 때마다 애액이 후드득 손가락을 타고 흘러내렸다.
“하으, 읏! 하읏!”
머릿속이 하얗게 달아올랐다. 다급한 욕구는 작정을 한 듯 쾌락을 향해 달려갔다. 입에서 나오는 대로 신음을 내뱉으며 페란스가 로젠게인의 머리칼을 움켜쥐었다.
축축한 살이 성기를 전부 감싸고 조여 댔다. 우묵하게 패이는 볼과 광대가 시야를, 머릿속을, 몸을 전부 헝클였다. 세상이 온통 하얘진다고 느낄 무렵, 성기 끝에서 쾌감이 튀어 나갔다.
“하아, 하…….”
달아오른 입술이 하얀 입김을 내뿜었다. 흐려진 시야에 들어오는 것은 로젠게인이 손등으로 입가를 닦는 모습이었다.
“너…… 삼켰,”
그가 제 다리 사이에서 일어섰다.
“전하.”
입술을 바싹 붙인 채 말을 하자 그의 숨결에서 제 페로몬 향이 맡아졌다. 비틀린 향이 잔뜩 응축된 정액은 대체 무슨 맛이었을지 궁금했다.
“입을 맞춰도 되겠습니까.”
“그럴 거면 삼키질 말,”
애초에 답을 기다린 질문이 아니었다. 로젠게인이 입을 벌려 제 입술을 삼켰다. 혀에 희한한 맛이 묻어났고, 두 다리가 그를 감아들고 있었다.
“침실로 가도 되겠습니까.”
“왜 자꾸 묻,”
뭐라고 하든 듣지 않았을 것이다. 셔츠 한 장에 감긴 몸이 들렸다. 페란스는 두 발이 공중에 들린 채 로젠게인의 얼굴을 움켜쥐고 입술을 빨았다. 둘 다 그것밖에 모르는 사람들처럼 혀를 얽었다. 엉덩이를 받친 팔이 바위처럼 단단했다. 세상 그 어떤 것이라도 제 몸을 떨어트릴 수 없을 것 같았다.
툭!
몇 개나 되는 문을 어떻게 지나쳤는지도 몰랐다.
등이 침대에 닿았고 셔츠가 사라졌다. 한쪽 허벅지를 잡아 위로 들어 올린 로젠게인이 알몸이 된 페란스를 닥치는 대로 훑고 빨았다. 애무라고 하기엔 너무 탐욕적이었다. 전희라고 하기엔 너무 경건했다. 섹스라고 하기엔 기도 같았다.
“좀……, 그만,”
고간을 타고 내려온 혀가 입구에 들러붙었다. 안을 온통 녹일 것처럼 핥고 빨아 댔다. 페란스가 로젠게인의 머리칼을 잡아당겼다.
“그만, 해. 그만…… 넣어.”
그사이에도 로젠게인은 발목을 붙잡고 허벅지 안쪽에 제 입술 자국을 남겼다.
“더 즐기십시오. ……오늘은.”
“아니, 그……, 넣어.”
페란스가 로젠게인의 목에 팔을 휘감아 끌어당겼다.
“어서.”
각인 반응이 오기 전에.
삽입이 시작되면 애액은 순식간에 말라붙었다. 자신은 고통을 견디다 결국 정신을 잃을 것이다.
지금이라야 했다. 그래야 몸이 이어지는 순간을 조금이라도 기억할 수 있었다.
“그……,”
로젠게인이 헛숨처럼 무슨 말을 토해 내려다가 제 옷을 벗었다. 순식간에 알몸이 된 그가 얼굴을 붙이고 입술을 겹쳐 왔다.
“전하.”
페란스가 눈을 감고 그에게 매달리듯 혀를 얽었다. 손가락이 아래를 벌리는 게 느껴졌다. 제 배 속이 다가올 통증을 두려워하며 꿀렁대는 것도 느낄 수 있었다.
스으윽…… 쿡!
뜨겁고 딱딱한 성기가 제 몸을 벌리며 촘촘히 층진 주름을 밀치며 들어섰다.
“흣!”
손가락이 로젠게인의 어깨를 파고들었다. 고통과 쾌감이 뒤엉키는 이 혼란을 기억하기 위해 페란스가 어금니를 물었다.
“움직이겠습니다.”
퍽!
끈기 있게 안쪽까지 파고든 성기가 내벽을 짓찧었다. 로젠게인을 부둥켜안은 페란스의 몸이 그의 움직임에 맞춰 격렬하게 흔들렸다.
“이번에는…… 흣, 사라지지 마.”
페란스가 로젠게인의 목덜미를 깨물었다. 살갗에 이가 박히자 로젠게인이 입을 벌려 소리 없이 웃었다.
“그럼…… 루레티아 공국과 혼인해서라도…… 하읏, 발레스 해협을 틀어막을…… 거야.”
이유는 모르겠지만 로젠게인이 웃는 것 같았다. 웃음이 멎자 그는 페란스의 턱을 움켜쥐고 숨 막히게 혀를 빨았다.
아…….
방금 전까지 이슬에 젖은 깨끗한 이끼 냄새와 닮았던 페로몬이 점차 점성을 띠고 질척해져 갔다.
아파……. 빌어먹을.
그리고 각인 반응이 시작되었다.